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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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하고 인격모독하는 것도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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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 2018-08-20 새벽기도
* 제목: 살인하지 말라 - 라가라 하는것과 미련하다하는것
* 주제: 살인
* 성경:
* 찬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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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하지 말라-라가라 하는 것과 미련하다 하는것
할렐루야!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평강이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제 우리는 살인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서 형제에게 노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읽은 22절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처럼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것과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각각 공회에 잡혀가거나 지옥 불에 들어간다는 아주 무서운 심판의 결과를 말씀하십니다.
먼저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 가게 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라가라 하는 것은 멍청이 나 도덕적 정도가 낮은 사악한 자를 가리킵니다.
성경에서는 잡류, 비류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상대방에 대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밝고 인격을 모욕하는 심한 욕설입니다.
세상 어디를 가나 이렇게 상대방의 인격을 모욕하는 욕설들이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이지요.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 중에 상대방의 인격을 모욕하는 말들이 참 많이 있잖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도 이러한 말들을 가끔 할때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떨때는 의도적으로 할때도 있고, 어떨때는 무의식중에 실수로 할때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누군가의 인격을 모욕하는 말을 하는 자는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유는 인격을 모독하면 상대방은 죽고 싶은 고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자존감이 다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고는 정말 죽고 싶은 고통을 경험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살인과 같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야기하시는 것이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것도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미련한놈으로 말은 유대사회에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유대인 사회에 있어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라는 말은 도덕적인 정죄를 넘어선 종교적인 정죄이며 멸망받은 자라는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라가’보다 더 심한 욕설이라 할 수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의 욕설을 하는 자는 바로 하나님의 고유 영역인 심판권을 남용한 죄를 범한 것이며, 영혼의 살인 행위까지도 서슴지 않는 죄를 범한 것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사람의 육체적 목숨을 헤치는 것 뿐 아니라 인격을 모독하여 인간성을 상실케 하는 것까지 살인으로 규정 하셨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바로 인격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율법의 근본 정신에 비추어 볼 때 인격을 말살하는 행위 역시 육체적 살인과 동일한 범죄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인은 사람을 실제로 죽이는 것 뿐만 아니라 형제에게 노하고 욕하는 것까지 포함된다는 살인의 새로운 기준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22절에서는 이러한 자들이 받게될 형벌이 심판과 공회에 잡힘 그리고 지옥불에 들어간다고 묘사 하십니다.
우리 22절의 말씀을 한번더 읽어 볼까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것은 그 형벌의 정도가 점차 심해지는 삼중 점층법적 묘사가 사용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22절의 마지막 형벌인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은 힌놈의 골짜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힌놈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족과 남서쪽 사이에 있는 깊은 골짜기인데, 옛날부터 이곳에서는 가나안의 우상 몰렉에게 드리는 인신 제사가 행하여 진 곳입니다.
이곳은 사람을 불태워 우상에게 제사지냈던 끔찍한 장소였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쓰레기들이 태워져서 늘 연기가 나며 불이 타오르는 더럽고 공포스러운 장소였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범죄한 자가 죽은 후 들어가서 영벌을 받는 장소인 지옥을 힌놈 골짜기에 비유를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노하고, 욕하고 저주하는 자들의 죄가 이토록 심각한 것임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 이러한 심판들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땅에 살아가는 우리는 주위의 사람들과 만날 때 이러한 것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말한마디 때문에 상대방이 죽음의 고통을 당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나의 감정만을 앞에수고, 상대방보다 내가 더 나은 것처럼 설려고 할때가 참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혹시나 내 말한마디 때문에 누군가 힘들어 하면, 뭐 그런 말가지고 상처받냐고, 오히려 따져 묻는 것이 우리이죠...
아니면, 그냥 미안하다는 말한마디로 끝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조용히 끝나는 가벼운 일들로 치부해 버립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예수님 말씀처럼 살인과 같습니다.
내가 손에 칼을 들고 상대방을 찌르지 않았을 뿐이지, 상대방은 나의 말한마디에 칼에 찔린 것 보다 더 큰 심령의 상처를 받고 보이지 않는 피를 철철 흘리며 죽음의 고통을 경험 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형제들과 대화 할 때 우리의 입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세치 혀는 사람을 살리기도하고, 죽이기도 하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시편 141편의 시편기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저도 예수님을 제일처음 믿었을 때, 이러한 기도를 참 많이 하였습니다.
욕을 많이하고, 저주를 퍼붓던 입술의 죄를 더 이상 짓지 않도록 하나님앞에 참많은 눈물을 흘리며 저의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참 많은 기도를 하였던 것이 기억납니다.
오늘 이 새벽에 우리의 모습을 한번 돌아 봅시다.
누군가를 인격적으로 모독하고있는 욕과 저주의 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욕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인격적으로 무시하며 말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없는지요...
혹시나, 나는 느끼지 못하지만 누군가가 나로인해 고통받고 있을수도 있는데, 오늘 새벽에 알지못하고 지은죄까지도 회개하며 나아갑시다.
그리고 우리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주셔서, 누군가를 죽이는 입이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는 축복의 입술이 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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