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하지 말라-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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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는 것은 살인과 같다

Notes
Transcript
* 설교일: 2018-08-20 새벽기도
* 제목: 살인하지 말라 - 분노
* 주제: 분노
* 성경:
* 찬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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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하지 말라-분노
할렐루야!
한주간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앞선 본문에서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된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1절부터 48절까지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가 무엇인지를 6가지의 예를 통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6가지는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복수, 이웃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의 외부 규정만을 중시하여 지극히 형식주의적인 태도에 빠진데 비해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규정의 기준을 절대적인 차원으로까지 끌어 올리시고 또한 율법 준수의 기준을 내면적 차원으로까지 확대시키셨습니다.
그래서 마음 중심에서부터 우러 나오는 순종의 자세로 온전히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도록 교훈하고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법과 윤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뿐만 아니라 속에 감추어져 있는 생각, 그리고 행위의 결과만이 아니라 그 마음의 동기에까지 그 규정이 확대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이 언급하신 내용은 오늘 우리가 읽은 내용으로 살인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 21절의 말씀을 한번더 읽어 볼까요?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우리는 출애굽기 20장 13절과 신명기 5장17절에 나타나는 십계명중에 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는 이 계명을 대할 때 우리와는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계명으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특별한일 아니고는 살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할수도 없고, 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계명 만큼은 자신있게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예수님이 이 6계명의 진정한 의미를 확대해서 해석해 주신 예들을 보면, 우리는 참으로 참담해 집니다.
먼저 22절에 있는 내용은 우리가 읽은 대로 형제에게 노하는 것,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것,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만 놓고 봤을 때...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무거워 집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노합니다.
여기서 노하는 대상인 형제는 교회의 형제들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노한다는 것은 죄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아니라, 정당한 사유없이 자신의 감정이나 이기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솔직히 이러한 분노를 우리는 참많이 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분노의 결과를 예수님은 살인과 연결시켜서 동일하게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즉 형제에게 분을 내어서, 상대방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한 것은 살인을 저지른 것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이 보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분을 품고, 분을 내는 것을 왜 살인과 같은 것으로 여기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많은 경우의 살인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향한 분노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현 시대에 일어나는 수많은 살인들을 보십시오...
바로 이러한 마음들로부터 시작되어서 그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죽이는 그 실제적 행위 뿐만 아니라 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 동기인 마음에까지 살인죄를 확대 적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도 이전에 많은 분을 내면서 살았습니다.
제 안에 있는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서툴러서 많은 사람들에게 분을 내었고, 그들을 고통스럽게 한적이 많습니다...
그리고는,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자신을 미화 했습니다.
이 분노의 책임은 상대방에게 있다고 하면서 분노를 발한 저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치부해 버리며 그냥 넘어가 버렸던 적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잠언 12장 16절에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나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사람에게 지금 당장 분을 내는 것이 정당한 것이고,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르게 이야기 합니다.
오히려 그 분을 참는자가 슬기롭다고 합니다.
왜 슬기로운가요?
왜냐하면, 한번의 인내로 살인과 같은 심판을 면할수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노를 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분냄의 결과인 심판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야고보서 1장 20절에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성내는 것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까지 방해한다는 겁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화를 내고 나서 그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는게 가능하던가요?다시 화해 하지 않는한... 불가능합니다.
상대방은 나의 분냄으로 인하여 다시는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게 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수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살다보면 이런일 저런일로 인해서 마음에 분노가 생길때가 있는데 그것을 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말입니다
네 맞습니다.
분노가 마음에 생기지 않으며 사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 분을 품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그렇습니다. 분이 생기는건 연약한 우리에게 당연한 겁니다.
그래서 분을 품어도 죄를 짓지는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 분을 상대방에게 표현하지는 말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분을 계속해서 묵상하고 묵상해서 몇날 몇일동안 끌고 가지 말고, 해가 지기 전에 그 분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분노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죠... 솔직히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분노를 없대는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온갖 조롱속에서도 충분히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그 십가가의 여정속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를 위해 참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분노를 참을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자 인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생길 그 분노를 지혜롭게 해결하여서, 분냄으로 인하여 당하는 심판을 피하고,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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