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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억하신 고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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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

Notes & Transcripts
하나님이 기억하신 고넬료
~8
샬롬~
오늘 수요 예배에 오신 모든 성도님들 가운데 하나님의 평강이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특별히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4남전도회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귀한 도전이 넘치기를 다시 한번더 축복합니다.
여러분에게 어느 한 김여사를 소개해 드릴려고 합니다.
이 김여사는 평범한 주부로서 가정일에 전념하며 오직 가족을 위해 살아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동창회가 열리는데 남편이 왠일인지 동창회에 참석하도록 허락을 해주는 겁니다.
정말 오랜만에 나가는 동창회여서 옷도 가지고 있는것중 가장 이쁜 것으로 입었고, 미용실에서 3시간동안 셋팅하며 준비를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기에 친구들한테 창피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정성을 들였습니다. 모든 걸 완벽하게 치장하였습니다.동창들은 오랜만에 나타난 김여사를 보고 깜짝놀랍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모두 나이가 지긋이 든 분들인데 화려한 옷과 3시간짜리 셋팅한 머리를 하고 나타났으니 모든 동창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되었죠...
김여사는 모든 동창들의 시샘의 눈길에 이제 되었다는 표정으로 뿌듯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김여사가 우아하게 인사를 합니다. “얘드아(얘들아)! 오데간마니다(오래간만이다).”다른 치장에 너무나 신경을 쓴 나머지 ‘틀니’를 깜빡 잊고 나간거죠^^
이 웃긴 이야기가 웃기긴 한데 솔직히 우리를 씁쓸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왜죠?
우리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잖아요^^
저는 요즘 이런 저의 모습을 너무 많이 발견 합니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 폰 안 가져 왔다고 찾으러 가지를 않나.... 차 문 잠궜는지 안잠궜는지 확인하기 위해 꼭 한번을 차쪽으로 돌아서서 확인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신가요?
우리 옆에 있는 분들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물어 볼까요?
“당신의 기억력은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솔직히 기억력에 자신이 없습니다.
아마 다들 한때는 우수한 기억력을 자랑하셨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것이 우리의 기억력이죠...
그래서 저는 저의 기억력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으면 기록 할려고 노력하구요... 약속들도 모두 스케줄표에 기록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일들을 동일하게 경험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억력은 이렇듯 믿을것이 되지 못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이 한분 계시죠?
누구이십니까?
바로 우리의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처럼 건망증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한번 하신 약속은 잊지 않으시고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시죠...
성경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반드시 이루시는 모습을 여러 군데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8장에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기억하사’라는 표현은 ‘새기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기억하시는데 그냥 단순하게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새기듯이 기억하셔서 잊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땅에서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을때에,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장 24절에 그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그들을 돌보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하사의 단어는 ‘마음에 두다’, ‘잊지않다’라는 뜻으로 잊고 있던 사실을 새롭게 기억해 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잊지 않고‘, ’생각하고‘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의 그 언약을 평소에는 잊고 지내시다가 어느날 갑자기 떠올리신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을 늘 ‘마음에 두시고’, 늘 ‘생각하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우리의 기억은 항상 불안하고 위태롭지만, 하나님의 기억은 변함이 없고 완전하신 것이죠...
오늘 우리가 살펴본 말씀에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 오늘 본문 4절의 말씀을 읽어 볼까요?
4절입니다. 시작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여기서 ‘기억하신 바’라는 단어는 기념 제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진실한 자의 제물을 기억하듯이 고넬료의 삶을 받아들이시고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에 새겨질 수 있는 삶은 도대체 어떤 삶일까요?
하나님께서 절대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시는 복된 삶...
이시간 하나님께 기억된 고넬료의 삶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먼저 고넬료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살펴 봅시다.
고넬료는 경건한 믿음의 가장이었습니다.
2절의 말씀을 여러분이 읽어 주시겠습니까? 시작“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고넬료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습니다.
그의 직업은 군인이었는데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는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백부장은 귀족들과는 다르게, 일반 병사였다가 자신의 노력으로 그 지위에 올라간 사람들이었죠...
정말 열심히 노력하며 인정받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100명 정도의 병사들을 거느리는 백부장이 되었습니다.
그런 고넬료에게는 다른 백부장들과는 다른 특별한 모습이 있었는데....
그것은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여느 백부장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을 자신의 신으로 인정하고 섬겼다는 것입니다.
로마 군대 장교가 유대교의 하나님을 자신의 신으로 섬기는 것은 그 당시에 아주 획기적인 사건이었던 것이죠...
뿐만 아니라 고넬료는 자신만 하나님을 섬긴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온 집안이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2절의 말씀을 보면 온 집안과 더불을 하나님을 경외하였다고 하는데, 그 앞에 ‘그가 경건하여’라는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고넬료를 통해서 온 집안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넬료라는 한사람을 통해서 온가족이 하나님을 섬기게 되고, 더 나아가 결국에는 베드로를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게 되는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넬료가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의 퐁토 속에서 믿음의 가장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도록 가장의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말로만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까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말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가 경외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구제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해 고넬료는 최선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닙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였듯이, 날마다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고 이겨냅니다.
고넬료와 같은 위치에서 많은 존경을 받게 될 때, 우리는 사단의 시험에 빠질때가 많이 있지요...
사단은 우리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씁니다.
고넬료에게도 동일한 시험을 수없이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넬료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고넬료는 날마다 깨어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순간 마다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우게 되고, 기도할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진실된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외식하는 기도를 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께 전심으로 자복하며 하나님만 의지하는 기도를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기도의 자리에서 사단의 시험을 이겨낼 수 있었고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고넬료가 천사를 만나게 된것도 기도의 자리였던 것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교넬료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제를 쉬지 않고 하였고, 매일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며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고넬료는 말로만 사랑을 외치지 않고 삶으로 사랑을 행하였습니다.
말로만 기도를 외치지 않고 기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고넬료의 모습은 가족들의 신앙을 바꾸고도 남을 만큼의 큰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었습니다.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다고 하였는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뻐 받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의 전반적인 내용을 통해 깨달을수 있게 됩니다.
고넬료의 가족은 신앙과 행동이 일치하는 고넬료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의 리더쉽을 기쁨으로 따랐습니다.
그래서 가장인 고넬료가 섬기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길수 있었던 것이죠...
요즘은... 이런 가장을 찾기가 참 많이 힘듭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교구 사역도 해보고 , 주일학교 사역을 오랫동안 감당하면서 많은 가정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게 됩니다.
어떤 가정의 가장은 고넬료와 같이 존경받고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가장들도 많이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이중적인 모습에 믿음이 연약한 배우자와 자녀들은 더 시험에 들게 되고, 극단적일 경우 다시는 내 어머니,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은 믿지 않겠다며 하나님을 떠나는 자녀들도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난 자녀들이 다시금 믿음의 자리로 오는 것이 참 많이 힘들더라구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신앙과 행함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계신가요?
가족들 앞에서는 사랑을 강조하고, 기도를 강조하면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가족들을 질타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교회에서 보이는 여러분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여러분의 모습이 일치하시나요?
혹시 너무나 다르지는 않으신가요?
만약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면 여러분을 가장 잘알고 있는 가족들은 여러분을 존경하지 않고 오히려 시험에 빠져 있을 겁니다.
믿음의 가장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모습이 결국 여러분 가정의 행복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서 존경받는 믿음의 가장 또는 영향력 있는 믿음의 가족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고넬료는 가족에게만 존경을 받고 선한 영향력을 끼친 것이 아닙니다.
온 집안이라는 말 속에는 가족뿐만 아니라 그 집안에 있는 하인들과 고넬료가 거느리고 있는 병사들도 포함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고넬료의 하인 둘과 부하 한명이 베드로를 찾아가서 이들이 고넬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고넬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의 진심을 알 수 있는데요...
22절의 말씀을 여러분이 한번 읽어 주십시오. 시작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베드로를 찾아간 이들이 고넬료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 하더니...
이 말속에서 하인들과 병사들이 고넬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고넬료의 삶이 그랬습니다.
고넬료의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고넬료를 인정했습니다.
가족들 뿐만 아니라, 하인들과 병사들이 인정하는 삶...
이 삶은 다른 특별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신앙과 삶의 모습이 일치한 것입니다.
신앙에 걸맞는 삶을 살았는데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존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고넬료의 삶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의 존경, 사람들의 인정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고넬료의 삶이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삶을 기억하신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는 일반적인 모습과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삶을 받으시고 그의 삶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을 구원하시는 놀라운 구원사역의 시작으로 연결되어 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시기 위해 베드로를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십니다.
그로 인해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과 함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성령을 받게 되고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넬료가 구원받는 이 장면을 보며서 이런 질문을 하실수 있을것입니다.
고넬료의 구제와 기도로 하나님께 기억되어서 구원받은 것을 보면서, 그럼 우리가 구원받을려면 우리의 공로가 필요하고 공로가 있으면 다른 이들도 고넬료처럼 구원받을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니죠...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공로와 상관없습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하나님쪽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우리는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있구요....
구원은 우리의 공로와는 철저하게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넬료의 이 이야기를 보면서 그렇게 오해할수도 있죠...
그렇지 않나요?
오늘 말씀을 읽으면 결국 유대교였던 고넬료가 구제와 기도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였고,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구원하신 것이죠...
결국 그가 구원 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그의 구제와 기도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을 잘살펴보면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에 보면 고넬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그가 경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였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이 문제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경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사야 11장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죄로 말미암아 강팍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셔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고넬료에게 하나님을 경외토록 하는 영이 임하여서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것이지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경외의 영을 받은 자는,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이러한 은혜를 입었고,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구제와 기도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고넬료의 구제와 기도의 삶은 결국 그의 순종의 삶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을 부으셔서, 지금 이순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바라보고 계신다면, 그 경외의 마음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살아 가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가족와 여러분과 함께 하는 많은이들이 인정하게 될것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 더 중요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기억하실줄 믿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는 모든 성도님들의 삶이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복된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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