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의로워야 하는 이유

새벽 예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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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99장

서론

유대인들의 인기를 얻고 싶어서 유대인들이 미워했던 사도 바울을 2년이나 가두어 둔 벨릭스 이후에 베스도가 새로 부임합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한 베스도에게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다시 한 번 그 사건을 상기시킨 것이죠. 수많은 범죄자들이 다양한 이유와 다양한 상태로 감금 또는 구류되어 있었을 터인데, 그 중 바울의 사건을 다시 한 번 상소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꿍꿍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다시 재판에 부쳐 바울의 사건을 당당하게 공의로운 가운데 이기려 했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하는대로 위자료라도 뜯어내려했던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을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호송하는 과정에 매복했다가 죽이고자 했던 것이죠. 그런데 마침 베스도가 가이사랴로 갈 여정 계획을 가진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고발한 유대인들 중 유력한 자들 몇과 함께 베스도는 바울을 만나러 가이사랴로 갑니다. 그리고 드디어 바울이 불려 나왔습니다.

본론

바울이 등장하자 유대인들은 앞을 다투어 다시금 미리 생각해 온 내용들로 바울을 고소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바울이 정말로 이렇게 잘못했다는 증거를 댈 수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당당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바울이 입을 열어 스스로 증언했습니다. 8절입니다.
Acts 25:8 NKRV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바울은 유대인들에게도, 로마의 시저에게도 아무런 죄를 범한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베스도가 벨릭스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유도질문을 했습니다. “혹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는 생각이 없느냐?” 많은 유대인들이 보는 앞에서 바울을 유죄로 판결했을 때, 새로 부임한 총독으로서 얼마나 큰 인기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만한 홍보 효과를 누리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물었습니다.
바울은 또렷하게 대답했습니다.
Acts 25:10–11 NKRV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Acts 25:10 NKRV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베스도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제 바울을 로마로 보내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함께 죽-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제가 전했던 말씀을 기억하신다면 오늘도 바울은 비슷한 모습을 보임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2년이나 지났음에도 낙심하거나 실망하고 있기는 커녕, 자신이 로마인이라고 주장했던 것이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인 것처럼 당당하게 또 다른 권리를 주장합니다. 로마 시저에게 재판해달라고 할 수 있는 로마인의 권리를 주장한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던 대로 이것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권리를 마음껏 사용하는 바울의 중심을 보여준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Gospel-driven Life를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수도 있었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도 있었던, 그야말로 복음에 사로잡힌, 복음이 주장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오늘 말씀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내용을 눈여겨 보고자 합니다.
바로 바울의 당당함입니다. 바울의 당당함은 단지 자신이 로마인이라고 주장하거나, 로마인으로서의 권리인 시저 상소권을 요청하는 것에서만 드러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까지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서도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었지만, 어느 때보다도 더욱 당당하게 사도 바울은 이제까지 자신이 행한 일들을 제시했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나는 율법을 어긴 적도 없고, 성전의 율례를 어긴 적도 없으며, 그렇게나 법이 발달한 로마의 법을 어긴 적도 전혀 없습니다. 나는 무죄합니다. 마음껏 고소하라고 하십시오. 내게서 죄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바울이 지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죠. 그는 세상 법정에서 세상 법규와 유대인들의 정결규례 등에 하자가 전혀 없는 올곳은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은 얼마나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까… 사실 교회가, 성직자가 법을 어길 때가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Gospel-Driven Life를 사는 자는… 복음에 사로잡힌 자, 복음이 자신의 삶과 언어를 통해 드러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자는 자신의 언과 행을 강력하게 제어하는 법임을 보게 됩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자신이 수혜를 받을 수 있을 때, 법을 어겨, 편법을 써서 유익을 얻을 수 있을 때도 당당하게 포기하고 손해를 보는 사람입니다. ‘옳음'을 때론 고리타분하게, 융통성 없어보이게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의 의를 구축해주기 때문이 아니며 - 만약 그런 이유라면 우리는 오히려 회개해야 합니다 - 나의 불의로 그리스도의 의가 책 잡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법정에 서지 않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불화에 휘말리지 않고자 애써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책잡히지 않고자 해야합니다. 때론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옳게 행하는 우직함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나의 삶을 의롭게 행하라고 종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 우리의 행하는 바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그리스도를, 말씀을, 진리를 판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불의로, 우리의 불명예로, 우리의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세상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판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만 얼마나 많은 교회가, 얼마나 많은 중직자들이,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의롭지 못함으로 무너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신문지상에 교회의 부끄러운 일들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하나님의 세상에서의 영광은 그 찬란함을 조금씩 잃어가게 됩니다. 안 그래도 스스로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데,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그나마도 가리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신을 돌이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를 살폈으면 좋겠습니다. 로마 총독 앞에서 당당하기 위해서, 늑달같이 달려들어 그 생명을 빼앗고자 온갖 노력을 다했던 유대인들 앞에서 당당하기 위해서, 그들 앞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자신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가 드러나며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히 복음 가운데 드러나길 간절히 원해서, Gospel-driven Life를 살았던 사도 바울은 세상적으로도 철저한 삶을 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성공만하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고, 많은 사람의 눈에 모이는 곳에 있는 사람, 연예인이나 성공한 기업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의 말 같이 느끼실 필요 없습니다. 그 결과보다 그들의 삶을 털었을 때 어떤 먼지가 나오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말씀을 맺으며, 제가 더 길게 이 본문으로 설교하게 된다면 추가했을 두 가지 적용점을 생각할 거리로 전해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있었던 법정에 우리가 있었다고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두 가지 법정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두 종류의 판사인 것이죠. 한 판사는 세상 판사입니다. 과연 세상 법정 앞에서 나의 삶이 어떠한가…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일이 우리를 당당하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면, 드러난 불의로 그리스도의 의가 언젠가 가리워지게 될 것이라면, 그리고 내 부끄러움으로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그리스도를 전할 수 없게 만든다면… 우리는 회개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법정을 생각해보시길 권합니다. 바로 이 다음 우리 주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후 열리게 될 하늘 법정입니다. 우리 심판과 예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옷입은 자로서 그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천국문을 열고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리스도의 의를 옷입은 자로서 그 옷에 어울리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는 꾸중을 듣게 될 것입니다. 사실 꾸중을 듣기 전에 예수님 얼굴 보고 바로 눈물을 터뜨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찬란한 영광을 내 죄로 가리웠다는 사실을 더 극렬하게 깨닫게 될 테니 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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