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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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진짜 믿음인가?

Notes
Transcript
* 설교일: 2018-07-18 새벽기도
* 제목: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 주제: 회개
* 성경:
* 찬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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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도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큰 은혜를 부어 주실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세례 등장을 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의 탄생에서부터 매우 특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제사장 가문의 사람으로서 자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편하고 안일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절에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라고 한 것처럼, 스스로 고난과 역경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때가 이르자 유대 광야에 나타나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특별히 그가 광야를 사역 장소로 삼았다는 것은 큰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예언되어진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광야는 당시의 종교적 상황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400여 년의 공백 기간을 지나 이스라엘이 광야 같은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들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400여 년의 공백 기간 후에 들려진 최초의 메시지는 회개와 천국이라는 두가지 주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회개와 천국에 맞추어져 있는 만큼 그의 메시지는 매우 강렬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요한은 특히 당시에 만연하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외식을 지적하였습니다.
우리 7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 볼까요? 7절 입니다.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비난합니다.
왜인가요?
바로 8절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라고 지적하는 것과 같이 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회개의 기도는 화려하지만, 정작 삶으로 변화 되어지는 열매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받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 의식만 중요하게 여겼지, 정작 자신들의 삶의 열매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9절의 말씀을 한번더 읽어 볼까요?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아주 대단한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그들에게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을 선포하고 있으니…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퍼붓는 이 비난을 우리는 피해갈 수 있나요?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누가 뭐래도,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의 모습속에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나요?
종교적 모양은 있어서 예배와 기도회와 봉사는 다 하고 있는데…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스스로 만족하고,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지만…
정작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냐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종교적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 즉 삶의 변화 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참 선한 사람인데…
사회에만 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교회 안에서는 사랑이 많은 사람인데… 세상에만 나가면… 사랑의 모습은 찾아 볼수없는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은 아닌지요….
예수님을 믿기 전이나, 예수님을 믿고난 후나 전혀 변화 없이 똑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회개를 하면서 여전히 그 죄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없는 삶입니다.
세례요한은 그러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해서 10절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10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 봅시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진정한 믿음의 신앙이 아니라, 종교적 모습만 가지고 있는 외식하는 이들을 향해서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고 선포합니다.
또한 앞으로 예수님이 오시는데 요한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고 소개하면서 12절과 같이 행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태는 마태복음을 통해 독자인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이러한 메시지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내용과 똑 같은 내용을 7장 15절부터 27절까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7장에 가서 좀 더 자세히 살펴 보기로 하구요...
어쨌든, 오늘 이 새벽에 요한의 외침 앞에서 우리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뒤에 회개한 우리의 기도들을 떠올려 봅시다.
혹시나, 삶의 변화는 전혀 없고, 말로만 회개한 삶이지는 않는지요?
아마도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아니 믿으면 다 구원 받는 것 아닌가요? 라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원자로서 믿으면 다 구원 받습니다.
하지만, 그 구원받는 믿음은 성령 하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성령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고, 성령님이 함께하는 사람의 삶은 변화 되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만약 우리의 삶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야고보서 2장 26절의 말씀과 같은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무슨 말인가요?
성령님을 통해 주신 믿음은 행함이 당연히 나타나는데, 가짜 믿음, 즉 종교생활로 예수님을 택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생활만 하고 있는 가짜 믿음은 행함이 없으니,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애시당초 그 믿음이 죽어있는 가짜였기 때문에 행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 새벽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이 외침앞에 참된 회개의 열매로 반응하는 복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시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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