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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니고데모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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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 Transcripts

예수님과 니고데모

동문서답
그러나 계속물어본다.
상세히 설명해 주시는 예수님
당시에 니고데모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후에 변화받은 사람으로 기억이 되어있다.
니고데모를 볼때 우리는 니고데모의 모습만본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영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January 12, 2014

니고데모의 변화

요한6:22-40 오늘은 달라진 니고데모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니고데모 이야기는 요한복음 3장, 7장, 그리고 19장에 나옵니다. 이 세 부분을 연결해서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 대화한 후에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은 이전에 비해 다른 사람 같다고 느낄 만큼 달라지는 게 맞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알던 친구를 오랜 만에 만났을 때 그 친구 입에서 “야, 너 전혀 다른 사람같다” 이런 반응이 나와야합니다. 교회에 자칭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예수님 기준으로는 거듭난 사람이 아닌데, 교회에선 예수 믿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교회 다니며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사이 예수 믿는 사람들 편으로 넘어간 불신자들이 교회마다 제법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교회 생활에 매우 익숙해 있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고 그러면서 지내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게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니고데모 이야기를 들어보면 무슨 알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 니고데모 이야기 아시죠. 저도 니고데모에 대해 처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고 또 이전 교회에서도 들은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년 초에 왜 또 니고데모에 대해 말씀드리는가 하면 니고데모에 대한 이야기는 주기적으로 자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새로 나오는 분들이 들을 필요가 있고, 거듭나는 체험 없이 교회생활 잘 하고 있는 분들이 니고데모 이야기 듣고 거듭나는 기회를 얻기 바라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니고데모는 밤 중에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을 찾아왔던 엘리트 종교지도자였습니다. 그는 1절에 나오는 유대인의 관원은 산헤드린 공회원을 말합니다. 그는 왜 예수님을 찾아왔을까요? 또 예수님으로부터 무슨 말을 듣고 싶었을까요?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랍비는 율법선생으로 유대사회에서 랍비는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 대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으셨는데,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니고데모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의 영향이었습니다. 무식한 백성들이 뭘 몰라 예수를 오해한다고 치부할 수 없었던 것이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신약의 표적, 혹은 이적의 목적은 사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게 주된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동문서답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이니 표적이니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시고 갑자기 진실로 진실로 두번이나 강조하면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니고데모가 거듭나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사실 내면의 영적인 변화이기 때문에 체험이 없으면 말해줘도 이해가 안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어떻게 거듭나는 것인지 사실 친절히 설명하셨습니다. 하지만 니고데모가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할 때 여러분 중에서도 거듭난 사람은 무슨 말인지 곧 알 겁니다 왜냐면 성령으로 거듭날 때 마음에 어떤 변화가 생기고 성령이 내 안에서 어떻게 함께 하시는지 경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이 하시는 일을 바람에 비유해서 다시 한번 더 설명했습니다. 켄터키 루이빌에 있는 Southeast Christian Church(Baptist) 교육목사인 kyle Idleman은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리스도를 따를 마음은 추호도 없는 팬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열성적인 종교인들이죠. 여러분도 열광하는 Fan의 특징에 대해 어느 정도 알 겁니다.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지만 그 사람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는 없는 그런 사이죠.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니고데모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이스라엘의 선생 즉, 엘리트 종교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간 건 사실 대단한 용기였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공회원인 니고데모가 변두리 갈릴리 출신 어부의 아들을 찾아가 랍비라고 불렀다는 게 밖으로 알려지면 입장이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뒤에서 예수를 좋게 생각하는 것과 공개적으로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아무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따르는 데는 아무런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예수의 제자라고 하려면 공회원으로서의 명성과 지위를 버려야 할지 모르고 동료들의 조롱을 받아야 할 겁니다. 그걸 피하기 위해 니고데모가 밤중에 살짝 예수를 찾아갔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딱 한 번 보고도 니고데모가 거듭나짐 못한 사람임을 아신 것 같습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말은 “너 지금 그대로 안돼, 새롭게 바뀌어야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어” 이런 뜻입니다. 뭘 더 알고, 뭘 더 하라는 게 아니고 마음이 달라지고 인생의 목적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셔야죠. 하나님 편에서 하셔야 할일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니 지금은 우리 편에서 할 일에 대해 이야기 합시다. 우리 편에서 해야 할 일중에 하나는 말로만 예수 믿는 사람이 되지 말고 실제로 주님을 따르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이 단계는 패스한 사람들입니다. 이 단계도 패스 안 했다면 불신자니까 더 이야기 할 게 없습니다. 믿음을 고백한 그리스도인이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을 삶 속에서 주님으로 모시고 사느냐 그게 핵심입니다. 여기서 단지 예수님의 팬인지 제자인지 갈린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아직 팬이지 제자는 아니라는 이야기구요. 고백과 삶은 하나일 때만 둘 다 진짜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지만 인생은 주님도 원하시는 아닌지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데로 산다면 고백만 있고 삶은 없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사람들에게 옳게 보이려고 선행에 힘쓰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지 않는 것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진짜 주님의 제자는 고백과 삶, 믿음과 행함이 함께 가는 사람들입니다. 제자로 살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요즘 교회에선 제자가 되는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겁먹고 떠날까 그럽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전 가끔 듣기 싫은 설교를 하는 편인데, 그러고 나면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청중들의 반응 때문에 마음이 힘듭니다. 그래서 가능한 은혜로 듣기 좋고 위로가 되는 그런 방향으로 설교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세상에서 힘들게 한 주 살다 교회와서 위로와 소망의 말씀을 들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은 제자가 되기 위한 대가를 숨기는 설교는 다 가짜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듣는 사람들이 거부하고 교회를 떠나든지 아니면 삶을 뒤 흔들어 진정한 제자로 만들어 내든지 해야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어서 그냥 편하게 듣고 한 주도 못가서 다 잊어버리고 그런 설교를 매주 반복하는 것은 직무유기죠. 설교는 마음을 뒤 흔들어 놔야 합니다. 이대로 살면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멸망하겠구나 경각심이 들게 해야죠. 적이 공격한다는 것인지, 물러갔다는 것인지 나팔 소리가 분명해야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대비를 할 게 아닙니까? 백성들 사이에서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지자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경계심도 높아졌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구금하려고 성전 경비병을 보냈습니다. 성전 경비병들이 가서 예수의 말을 들어보니, 붙잡아올 무슨 잘못이 없었습니다. 빈손으로 돌아온 경비병들에게 바리새파 사람들이 너희들도 예수에게 미혹되었느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이 자리에 니고데모도 있었습니다.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갈 때였다면 모른척했을 터인데, 지금은 달랐습니다. 공회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의 율법으로는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거나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거나 하지 않고서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 것이 아니오?”(요7:51) 예수를 변호했습니다. 예수와 한 편으로 몰릴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여기서 니고데모는 coming out을 한 겁니다. 우리도 세상에 그리스도인으로 coming out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 너무 숨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을 보면,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장례식장에 한 번 더 등장합니다. 그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 100 리트라를 가져왔습니다. 상당한 금액이었습니다. 반역자로 처형된 사람의 장례를 위해 돈을 쓰며 후원하고 장례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를 죽이도록 지지한 공회원들과 다른 편에 서는 것이고 공회원의 지위를 잃고 더나가 생명까지 위협을 받을 만한 일입니다. 예수를 반대하고 죽이고 예수를 믿는 자들을 박해하고 처형하는 시대에 공개적으로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은 숨어서 예수 믿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상당한 비용을 들여 장례예물을 준비해 장례식을 찾는 수고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니고데모와 같이 바리새파에 속한 산헤드린공회원이라면 이유 없이 이런 행동을 할 리가 없습니다. 이 순간 니고데모는 멀리서 예수를 바라보고나 무리 속에서 따라다니다가 자기에게 이득이 없다고 판단될 때 슬그머니 떠난 제자들과 달랐습니다. 그는 위험을 피하고 체면을 지키기 위해 밤중에 눈을 피해 예수님을 찾던 이전의 니고데모가 아닙니다. 분명히 자기 소속을 드러냈습니다. 예수의 장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제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확실히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예수의 제자로 알 수 있도록 자신을 주님의 사람으로 드러내 살기 바랍니다. 그 때문에 어떤 불이익이나 위험을 당해야 한다면 그걸 감수하는 게 제자의 대가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해야 나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너희를 나의 제자로 시인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14년은 우리 모두 겉으로 보기에도 확실히 주님의 제자답게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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