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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대답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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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과 나다니엘을 부르시다.

543, 321답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변하고

진리에 대한 갈망

인간은 누구나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갈망하는 종류만 다르지 인간의 내면을 보면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갈망하는 종류가 사람들마다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끝없이 과학이 발전하고 사회가 변해도 인간의 내면에 끊임없는 갈망은 무엇이냐면 바로 진리를 찾는대에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끝없이 과학이 발전하고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내면에 끊임없는 갈망은 진리를 찾는대에 있습니다.
그래서 유수한 대학들의 로고를 봐도 veritas라고 적혀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뜻은 바로 진리라느 뜻이다. 그런 진리에 대한 갈망이 인류에게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리를 찾으면 그 진리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리를 찾으면 그 진리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라는 것은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하냐면 영원성과 불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진리라는 것이다. 그런 성경은 여러번 진리에 대해서 선포하고 있다라는 것이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며 그 진리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런 진리를

성경속빌립

그런 오늘 성경속에 빌립이 등장합니다. 그런 빌립에게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하셨을때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진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진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래서 나다니엘에게 간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를 따르라 하셨을때 빌립이 예수님을 따라 제자가 되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그가 예수를 따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진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지 못했습니다. 친구 나다니엘에게 찾아갑니다. 그래서 나다니엘에게 간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빌립이 진리를 찾았을때 가만히 있지 못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가 되었고 참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진리를 안 빌립은 자신처럼 진리를 구던 나다니엘에게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리고나서 빌립은 그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친구 나다니엘에게 찾으러 가게 되는데 그때 빌립이 나다니엘에게 뭐라고 말을 하냐면 44절 말씀에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다”라고 증언을 하게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가 되었고 참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진리를 안 빌립은 자신처럼 진리를 구던 나다니엘에게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가 알고 있기로 메시아는 다윗의 동네 베들레햄에서 나시는데 빌립이 소개한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라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빌립은 그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친구 나다니엘에게 찾으러 가게 되는데 그때 빌립이 나다니엘에게 뭐라고 말을 하냐면 44절 말씀에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다”라고 증언을 하게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그런 모세의 율법에서 부터 선지지가 증언했던 메시야 바로 진리되시는 예수님이다라고 나다니엘에게 말하게 되어집니다.
그런데 그런 빌립의 말을 들은 나다니엘의 반응이 시큰둥합니다. 그가 뭐라고 말을 하냐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것이 날 수 있느냐라는 것이죠 말도 되지 않는다라는 것이죠

나사렛동네란

시큰둥합니다. 달갑지 않아 합니다. 말도 되지 않는다라는 것이죠
그런 나사렛이란 동네는 당시에 유대사람들에게 버림 받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였다라는 것이죠 그러니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동네에서 무시당하고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인데 나다니엘의 반응은 결코 이상한게 아니다.
그런 나사렛이란 동네는 당시에 유대사람들에게 버림 받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였다라는 것이죠 그러니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동네에서 무시당하고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인데 나다니엘의 반응은 결코 이상한게 아니다.
그런 나다니엘이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반응이 아닙니다.
그런 반응에 빌립이 다시 한번 말하게 되는데 뭐라고 말을 합니까? 바로 46절에 와서보라라고 말했다라는 것이죠 그런 빌립의 말에 나다니엘이 어떻게 합니까?
발걸음이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어지는 것이죠 그런 다음 절은 나다니엘의 발걸음이 예수에게 옮겨지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습

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 그 진리되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이라면 그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확신있는 대답이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죠
그럴때 그 확신의 대답이 자신의 어떠한 우위를 보여주거나 당당하거나 꿀리지 않다거나 그런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진리에 대한 확신의 대답은 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킨다라는 것입니다.

그럴때 다른 사람들이 그 말에 진지하게 고려하고 반응하게 되어진다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말에 진지하게 고려하고 반응하게 되어진다라는 것입니다.

음식점

우리가 음식점을 갈때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먹어본 음식이 맛있고 음식을 잘하는 집이 있으면 말하지 않습니까? 참 그집 음식을 잘한다라고 확신있게 말하면 그거 들은 사람이 거기 꼭 찾아갑니다. 주로 제가 그런데요… 그런데 뭐 그 음식 그냥 그럭 저럭 해 라고 확신있게 대답하지 못하면 믿지 못해서 못간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확신있는 대답을 가지지 못할때가 참 많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말을 꺼내려면 부끄럽고 크리스천이라는 단어를 꺼내면 식상한것같고 손해보는 것 같아서 예수님에 대해서 확신있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러니 나눔도 안되고 전도하는 것도 힘들고 부끄럽게 되어진다라는 것이죠
그러니 나눔도 안되고 전도하는 것도 힘들고 부끄럽게 되어진다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런때 내가 점검해봐야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제대로 서있는지 보셔야 합니다. 내가 그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것을 점검하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면 내가 점검해봐야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바로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제대로 서있는지 돌아 보셔야 합니다. 내가 그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것을 점검하셔야 합니다.
그런 관계가 바로 서 있다면 나의 확신 있는 대답 한 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때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려하면서 반응이 있게 되어진다라는 것이죠 그럴때 다른 사람의 발걸음이 주님께로 옮겨진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가 그런때 내가 점검해봐야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제대로 서있는지 보셔야 합니다. 내가 그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2.그런 또 하나 오늘 본문을 보면 48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을 보면 48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다니엘이 예수님께 나아올때 예수님은 간사한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런 나다니엘이 어떻게 하시냐고 물을때 예수님이 나다니엘에게 한 말은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근데 좀 이상해요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말씀하시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 도 있지만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당시에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다라는 말은 무화과 나무라는 것은 유대민족자체를 상징할 정도로 곳곳에 많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랍비들은 말씀을 가르키고 떄로는 기도하고 떄로는 묵상하는 것을 말한다. 그 말은 나다니엘이 무화과 나무 아래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하였다라는 것이다.
그런 빌립이 나다니엘을 찾아가 구약성에서 예언된 메시아를 만났다고 알립니다.
그런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물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살아가면서 믿음 가운데 바로 서 있어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해 확신의 대답을 가질때 전도도 가능하지만 이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믿음이 정체되어진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앙을 갖는다라는 것은 과거에 만났던 하나님 그때의 은혜로 10년 20년 30년 40년을 끌고 가는게 아니예요 매일매일 자신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10년전 20년전 믿었던 그떄 만났던 하나님 그때 누린 은혜를 가지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을 하면서 살아가시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니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삶에서 누리지 못하고 매너리즘 가운데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분들이 굉장히 많다라는 것이다.
10년전 20년전 믿었던 그 하나님 그때의 누린 은혜를 가지고
그런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주변을 보면 하나님과 가까이 하고 싶어도 가까이 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믿음은 있어도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참으로 많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믿음을 가진 한 사람이 그 진리에 대한 확신있는 대답 한마디가 주변을 깨우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통로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주변을 보면 하나님과 가까이 하고 싶어도 가까이 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믿음은 있어도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참으로 많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믿음을 가진 한 사람이 그 진리에 대한 확신있는 대답 한마디가 주변을 깨우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통로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보여 준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 그 예수님에 대해서 확신의 대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때 주님을 가리키고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이 주님께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겠습니까?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부끄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의 대답을 갖고 오늘 하루도 우리의 맡겨진 삶에 터전에서 주님께로 발걸음을 인도하는 도구로 저와 여러분들이 사용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맡겨진 삶에 터전에서 주님께로 발걸음을 인도하는 도구로 저와 여러분들이 사용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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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믿음을 꺠울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주변을 보면 하나님과 가까이 하고 싶어도 더 가까이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더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런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물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살아가면서 믿음 가운데 바로 서 있어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해 확신의 대답을 가질때 전도도 가능하지만 이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믿음이 정체되어진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가진 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때
여러분 한사람의 믿음의 확신을 가진
하나님을 믿고 신앙을 갖는다라는 것은 과거에 만났던 하나님 그때의 은혜로 10년 20년 30년 40년을 끌고 가는게 아니예요 매일매일 자신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10년전 20년전 믿었던 그떄 만났던 하나님 그때 누린 은혜를 가지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을 하면서 살아가시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니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삶에서 누리지 못하고 매너리즘 가운데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분들이 굉장히 많다라는 것이다.

나다니엘의 반응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것이 날수 있느냐? 45절
나사렛이란 동네 유명하지 않는 동네이다.
나사렛이란 동네 유명하지 않는 동네이다.
그의 말에 주목해봐야한다.
그런 나다니엘의 반응은 무엇이냐면 예수님의 출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사렛의 요셉의 아들인 예수를 생각하면서 그가 꺼냈던 반응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냐라는 비아냥 섞인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빌립이 나다니엘에게 말합니다. 와서 한번 보라고 말한다.
그런 나다니엘이 빌립의 말을 듣고 예수를 찾아 보게 되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나다니엘을 가리키면서 아시는 말씀이 그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예수님이 나다니엘의 마음을 보시면서 거짓된 것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와서 한번 보라고 말한다. 그런 나다니엘이 예수를 찾아 보게 되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나다니엘을 가리켜 그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나다니엘이 에수님에게 다시 한번 물으면서 나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나다니엘에게 한 말은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나다니엘이 에수님에게 다시 한번 물으면서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라고 묻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나다니엘에게 한 말은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때 내가 너를 보았다라는 것이다.
그말을 듣고 나다니엘의 대답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나다니엘이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길래 그것을 보면서 놀라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되어질까요?

나다니엘이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길래 그것을 보면서 놀라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되어질까요?

무화과 나무에서 있었던 일? 48절

예수님이 속속히 사정을 아신다? 예수님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아신다? 마음을 아신다? 어떻게 나다니엘이 무화과 나무아래서 예수님을 보았길래 보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런 예수님의 대답에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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