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0UNLIKELY
Disgust
0UNLIKELY
Fear
0UNLIKELY
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07UNLIKELY
Conscientiousness
0.15UNLIKELY
Extraversion
0.27UNLIKELY
Agreeableness
0.46UNLIKELY
Emotional Range
0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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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6
.6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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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의 사역
1.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2. 오신 주님을 드러내는 자 였습니다.
(어떻게 주님을 드러 낼 수 있을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어제 나누었던 말씀에 이어서 연결되는 본문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어제 세례요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는데
그런 그가 했던 사역은 무엇이냐면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제 목사님께서도 말씀해 주셨지만 그가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잘 감당했던 이유는 세례 요한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해야 할 일들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런 세례요한은 영향력이 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은 감히 충격적이고 말한마디에 사람을 두렵게도 하고 떨리게도하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잘 준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례 요한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해야 할 일들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런 세례요한 수 많은 군중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영향력이 컸던 사람입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리스도이지 않을까 착할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렇게 어떤 사람은 엘리야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물었을때 그런 분위기에서 내가 그리스도다 메시야이다라고 해도 누구도 뭐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뭐라고 말을 하냐면?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광야의 외치는 소리라고 말을 했습니다.
소리! 울리면 사라지는 존재 그런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소리라고 말할 수 있었는 이유는 무엇이냐면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고백한 것이 뭐라고 말을 했냐면 광야의 외치는 소리라고 말을 했습니다.
소리! 울리면 사라지는 존재 그런 그가 소리라고 말할 수 있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보다 더 큰 존재인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잘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례요한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잘 알았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그가 오실 주님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면은 자신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잘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냐면 바로 그가 오실 주님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면은 자신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른 것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나타낸 것 입니다.
오직 한가지 의미 그런 성경을 통해 내 자신을 보여줍니다.
청년부담당할때
내 자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오실 주님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고 오신 예수님을 잘 드러내게 되는 것이죠
1.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소리라고 말할 수 있었는 이유는 무엇이냐면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예수님을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결코 예수님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사람의
심리가 칭찬을 받으면 우쭐해지고 뿌듯해하고 자랑하게 되어진다.
그런 어제 말씀을 통해서 본 것은 그가 예수님의 오실길을 준비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냐면
그렇기 때문에 세례요한은 오신 주님을 드러내는 자였습니다.
2. 오신 주님을 드러내는 자였습니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두가지 욕구가 있습니다.
첫번째 욕구는 배고플때 배고픔을 체우는 욕구입니다.
배고프면 생존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배고픔을 체우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것이 지나가면 사람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 성취의 욕구 자존감의 욕구 이것은 모두가 다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런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두번째는 누구에게나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 세례요한 수 많은 군중들에게 인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말한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 정체성을 잘 가지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무엇을 그가 정확하게 파악했냐면 오실 주님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오늘 본문의 29절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어제 말씀을 통해서 본 것은 그가 예수님의 오실길을 준비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냐면 그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잘알았다라는 것입니다.
그가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제 목사님께서도 말씀하신 것 처럼 그의 아이덴티티 정체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예수님의 오실길을 잘 준비 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세례요한의 아이덴티티인 정체성을 잘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실 주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 입니다.
그런 세례요한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선포하며 수 많은 군중들에게 인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말한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 정체성을 잘 가지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무엇을 그가 정확하게 파악했냐면 오실 주님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실 주님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오늘 본문의 29절은 이렇게 말했다.
요한복음 1장 29절
그래서
그런 모습을 오늘 본문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의 29절은 이렇게 말했다.
뭐라고 말을 하냐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어린양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린양하면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떠올린다.
작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봐도 귀엽고 예쁘고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생각을 하는데 이스라엘 사회에서 어린양하면 그렇게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떠올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사회에서 어린양하면 희생양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값을 대신하여 대제사장이 어린양을 잡아 피를 뿌려 이스라엘의 죄값의 대리 희생되는 희생양이었기 떄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속죄제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양하면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단번에 희생양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면서 뭐라고 말을 하냐면 어린양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면서 뭐라고 말을 하냐면 어린양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 어린 양의 단어는 이사야서 53장의 말씀에서 말하는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 이스라엘의 죄악때문에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 그 양과 똑같은 단어를 쓰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셉투전트라는 성경이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사회에서 어린양은 그런 귀여운 양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런 어린양은 재물이 되었기 때문이예요.
그런데 세례요한이 어린양이라고 말한 것은 요한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신 것이다.
우리가 작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 귀엽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사회에서 어린양은 그런 귀여운 양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런 어린양은 재물이 되었기 때문이예요.
그런데 세례요한이 어린양이라고 말한 것은 요한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신 것이다.
본래 구약은 히브리어로 쓰여졌는데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옮겨 쓴것이 바로 셉투어전트라고 합니다.
그런데 53장의 말씀을 보면 죄악떄문에 고난받는 양이 나온다.
그 양의 원어가 어떻게 되어있냐면.
사 53장의 말씀을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적용시키고 있다.
속죄양'에 관해서는 구약의 여러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그런 양이라는 단어는 몇가지가 있는데 이사야에서 쓰인 양이라는 단어와 오늘 본문의 양의 단어가 똑같습니다.
그말은 무슨 말이냐면 세례요한은 오실 예수가 세상죄악을 담당하고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 고 있었다라는 것이다.
성경이 지목하고 있는것이 예수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있다.
그런데 셉투전트의 단어와 오늘 본문에서의 단어가 똑같다라는 것이다.
그말은 무슨 말이냐면 세례요한은 오실 예수가 어린양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 고 있었다라는 것이다.
성경이 지목하고 있는것이 예수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30절에 뭐라고 말을 하나?
그런 이사야 53:7절 말씀에 죄악 때문에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이 나와있다.
그런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양이라는 단어를 그때 그시간에 쓸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오실 예수그리스도께서 정확하게 죄악을 담당하실 어린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단어를 쓰게 되었다라는 사실입니다.
Septugent라는 성경이 있다.
이 성경은 구약의 성경들은 히브리어로 쓰여졌는데 이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인데 이때 이사야에서 쓰인 양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양에 대한 단어는 몇가지가 있다.
그런데 셉투전트의 단어와 오늘 본문에서의 단어가 똑같다라는 것이다.
그말은 무슨 말이냐면 세례요한은 오실 예수가 어린양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 고 있었다라는 것이다.
성경이 지목하고 있는것이 예수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이라는?
30절에 뭐라고 말을 하나?
그래서 30절에 뭐라고 말을 하나?
내가 전에 말한 사람이 있는데 나 이후로 오는 분이 뭐라고 말하냐면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사람이 이사람을 가리킴이라고 말을 한다.
여기서 확증하는 것을 보여준다.
세례요한보다 더 이전에 계셨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하는 것은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출생을 보면 세례요한은 엘리사벳에 의해 잉태하게 되는데 그 이후에 마리아가 잉태하게 되는데 이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면 6달이 걸리게 된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계산해봐도 세례요한이 예수님보다 6달 먼저 일찍 태어나게 됬는데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세례요한은 뭐라고 말을 하냐면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고 말을 한다.
나보다 먼저 계셨다라는 말이다.
무슨 말입니까?
그런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인 메시야가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물이 창조되시기도 전에 계셨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그분이 오셔서 어린양이 되어지시고 세상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이땅위에 오신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31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라고 말을 한다.
이 말은 예수님을 몰랐다는 말이 아.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알았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세례요한은 친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례 예수님을 모를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속에서 세례 요한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32절과 33절은 뭐라고 말을 하냐면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1)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1)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인간적인 생각으로 보면은 6개월 나보다 늦게 태어났고 친척이고 같이자란 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메시아로 믿어지지 않고 몰랐다라는 것입지다.
그런 세례요한이 정직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몰랐다.
그런데 세례요한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메시아인줄 알라 하셨던 그 말씀에 순종하니 그가 메시아인것을 알았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오신 주님을 잘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반쪽짜리 신앙
그래도 비교적 보면은 우리 자신이 의인이지 않고 죄가 많은 죄성을 가진 연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합니다.
그런 예수를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라는 사실을 합니다.
그런데 반쪽짜리 신앙에 머물대가 참 많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합니다.
그런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의 말씀을 알아가고 그의 말씀을 순종하지는 않는 반쪽짜리 신앙을 가질때가 참많다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보면 인간적인 안목으로 보면 맞지가 않는 것이죠 합리적이지 않는 것이죠 불가능한 것이죠 그런 말씀에서 우리가 순종하지 못할떄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이미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일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런 우리가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어야합니다.
오늘 세상죄를 지고 가신 예수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예수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때 우리 개인이 우리교회가 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는 예수를 드러낼 수 있고 교회에게 맡겨주신 소명을 잘 감당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오늘 하루 주어진 나의 삶에서 예수를 바라보며 말씀에 순종하여 이루는 삶을 경험하시길 소원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잘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잘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라는 말은 무슨말이냐면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말씀이 삶에 퍼즐같이 작동하니까 그가 메시아인지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두번씩이나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지만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말씀이 분명한 삶을 만들었다.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한다.
두번째는 그 말씀에 순종해야한다.
어쩌면 세례요한은 나사렛의 예수가 어린양인지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을 요한을 분명하게 증명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삶
그 말씀을 알아갈때이다.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 예수님이 드러내는 삶을 살았다.
그런 소명을 가진 증인의 삶으로 세례요한은 살았다.
어느 영화 세트장 그곳엔 수많은 스텝이 있다.
그런데 그영화 한편에서 돋보이는 사람은 주연이다., 그런데 수많은 조연들이 있다.
그런 조연들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바로 주연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수많은 조연들 그들이 가리키고 드러내야할 분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이다.
그런 소명을 가진 자이다.
그러려면
그렇기 때문에 나에 대한 정체성을 알려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때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소명
예수님을 알면 우리를 드러낼 수 없다.
세례요한이 그런 사람이다.
예수님을 몰랐다면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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