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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그리스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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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 Transcripts
2018년 3월 11일 학생-청년부 설교
본문: 야고보서 1:2-4
2018년 3월 11일 학생-청년부 설교
본문:
본문:
제목: ?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그리스도인이다)
본문: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그리스도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그리스도인이다!

아프니까 그리스도인이다!

오늘은 야고보서 두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야고보 사도가 야고보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큰 그림을 살펴봤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신앙의 건강 검진표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저는 삶은 변화시키지 않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을 다른말로 하면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나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했다면 그 복음은 여러분의 삶을 변화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만 “여러분 정말 거듭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지 못하면 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신앙은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야고보서를 통해 하나 둘씩 살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두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야고보 사도가 야고보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큰 그림을 살펴봤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신앙의 건강 검진표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저는 삶은 변화시키지 않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을 다른말로 하면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나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했다면 그 복음은 여러분의 삶을 변화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만 “여러분 정말 거듭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지 못하면 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신앙은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야고보서를 통해 하나 둘씩 살펴 보고자 합니다.
제목: ?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그리스도인이다)
제목: ?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그리스도인이다)
(설교 제목을 나중에 보여주기)
(설교 제목을 나중에 보여주기)
오늘은 야고보서 두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야고보 사도가 야고보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큰 그림을 살펴봤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신앙의 건강 검진표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저는 삶은 변화시키지 않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을 다른말로 하면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나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했다면 그 복음은 여러분의 삶을 변화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만 “여러분 정말 거듭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지 못하면 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신앙은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야고보서를 통해 하나 둘씩 살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두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야고보 사도가 야고보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큰 그림을 살펴봤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신앙의 건강 검진표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저는 삶은 변화시키지 않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을 다른말로 하면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나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했다면 그 복음은 여러분의 삶을 변화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만 “여러분 정말 거듭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지 못하면 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신앙은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야고보서를 통해 하나 둘씩 살펴 보고자 합니다.
(설교 제목을 나중에 보여주기)
오늘은 여러분에게 책을 하나 소개하면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혹시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책을 아십니까? 아마 여기 청년들 중에는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책의 부제가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이 책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 밑에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이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홀로 겪어야 하는 그 아픔과 고통이 하나의 성장통이며 홀로 겪어야할 자신의 짐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2010년 출간된 이 책은 2011년 엄청난 히트를 치며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청년들이 돌려보는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감성팔이라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오포, 칠포를 넘어 엔포 세대로 가는 청년들에게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말은 공감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책을 하나 소개하면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혹시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책을 아십니까? 아마 여기 청년들 중에는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책의 부제가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이 책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 밑에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이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홀로 겪어야 하는 그 아픔과 고통이 하나의 성장통이며 홀로 겪어야할 자신의 짐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2010년 출간된 이 책은 2011년 엄청난 히트를 치며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청년들이 돌려보는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감성팔이라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오포, 칠포를 넘어 엔포 세대로 가는 청년들에게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말은 공감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설교 제목을 나중에 보여주기)
여려분에게 묻겠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책을 하나 소개하면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혹시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책을 아십니까? 아마 여기 청년들 중에는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책의 부제가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이 책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 밑에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이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홀로 겪어야 하는 그 아픔과 고통이 하나의 성장통이며 홀로 겪어야할 자신의 짐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2010년 출간된 이 책은 2011년 엄청난 히트를 치며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청년들이 돌려보는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감성팔이라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오포, 칠포를 넘어 엔포 세대로 가는 청년들에게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말은 공감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책을 하나 소개하면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혹시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책을 아십니까? 아마 여기 청년들 중에는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책의 부제가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이 책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 밑에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이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홀로 겪어야 하는 그 아픔과 고통이 하나의 성장통이며 홀로 겪어야할 자신의 짐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2010년 출간된 이 책은 2011년 엄청난 히트를 치며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청년들이 돌려보는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감성팔이라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오포, 칠포를 넘어 엔포 세대로 가는 청년들에게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말은 공감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여려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아프십니까? 그 아픔을 청춘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여려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려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아프십니까? 그 아픔을 청춘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지금 아프십니까? 그 아픔을 청춘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야고보서 본문에서 사도 야고보는 우리에게 똑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야고보서 본문에서 사도 야고보는 우리에게 똑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아프십니까? 그 아픔을 청춘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야고보서 본문에서 사도 야고보는 우리에게 똑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야고보서 본문에서 사도 야고보는 우리에게 똑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사도 야고보는 우리에게 오늘 시험을 당하면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아픔을 겪거나 고통 가운데 있으면 그것을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어려운 시련이나 고난이 왔을 때 그것을 외면하지 말고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사도 야고보는 우리에게 오늘 시험을 당하면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아픔을 겪거나 고통 가운데 있으면 그것을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어려운 시련이나 고난이 왔을 때 그것을 외면하지 말고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사도 야고보는 우리에게 오늘 시험을 당하면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아픔을 겪거나 고통 가운데 있으면 그것을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어려운 시련이나 고난이 왔을 때 그것을 외면하지 말고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우리에게 오늘 시험을 당하면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아픔을 겪거나 고통 가운데 있으면 그것을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어려운 시련이나 고난이 왔을 때 그것을 외면하지 말고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사역한 메시지 성경에는 이 본문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사역한 메시지 성경에는 이 본문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 시험과 도전이 사방에서 여러분에게 닥쳐올 때,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선물로 여기십시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사역한 메시지 성경에는 이 본문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 시험과 도전이 사방에서 여러분에게 닥쳐올 때,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선물로 여기십시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사역한 메시지 성경에는 이 본문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 시험과 도전이 사방에서 여러분에게 닥쳐올 때,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선물로 여기십시오’
‘친구 여러분, 시험과 도전이 사방에서 여러분에게 닥쳐올 때,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선물로 여기십시오’
유진 피터슨 목사는 우리가 겪는 고난과 시련을 선물로 여기라고 합니다. 또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고통과 고난을 즐거워하십니까? 아니 즐거워 하실 수 있으십니까? 없으시죠!!! 어느 누구도 환난이나 시련을 기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우리가 겪는 고난과 시련을 선물로 여기라고 합니다. 또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시험과 고난을 즐거워하십니까? 아니 즐거워 하실 수 있으십니까? 없으시죠!!! 어느 누구도 환난이나 시련을 기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 성경이 우리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걸까요?
그럼 성경이 우리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걸까요?
오늘 본문에서 시험이라고 해석된 헬라어 ‘페리라스모스’는 내부의 갈등 유혹, 또는 외부의 고난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즉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겪는 시험과 더불어 내 자신의 욕심과 욕망으로 인해 생기는 그 모든 시험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우리가 겪는 고난과 시련을 선물로 여기라고 합니다. 또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고통과 고난을 즐거워하십니까? 아니 즐거워 하실 수 있으십니까? 없으시죠!!! 어느 누구도 환난이나 시련을 기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우리가 겪는 고난과 시련을 선물로 여기라고 합니다. 또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고통과 고난을 즐거워하십니까? 아니 즐거워 하실 수 있으십니까? 없으시죠!!! 어느 누구도 환난이나 시련을 기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 성경이 우리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걸까요?
대부분의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하게 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는 걸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믿지 않는 친구들은 다 승승장구, 속된 말로 잘나가는데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 하나님이 계신 걸까? 하는 의심의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험이라고 해석된 헬라어 ‘페리라스모스’는 내부의 갈등 유혹, 또는 외부의 고난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즉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겪는 시험과 더불어 내 자신의 욕심과 욕망으로 인해 생기는 그 모든 시험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성경이 우리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걸까요?
오늘 본문에서 시험이라고 해석된 헬라어 ‘페리라스모스’는 내부의 갈등 유혹, 또는 외부의 고난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즉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겪는 시험과 더불어 내 자신의 욕심과 욕망으로 인해 생기는 그 모든 시험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하게 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는 걸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믿지 않는 친구들은 다 승승장구, 속된 말로 잘나가는데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 하나님이 계신 걸까? 하는 의심의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3절을 보면 하박국 선지자의 이런 호소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험이라고 해석된 헬라어 ‘페리라스모스’는 내부의 갈등 유혹, 또는 외부의 고난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즉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겪는 시험과 더불어 내 자신의 욕심과 욕망으로 인해 생기는 그 모든 시험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하게 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는 걸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믿지 않는 친구들은 다 승승장구, 속된 말로 잘나가는데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 하나님이 계신 걸까? 하는 의심의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대부분의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하게 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는 걸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믿지 않는 친구들은 다 승승장구, 속된 말로 잘나가는데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하는 생각에 정말 하나님이 계신 걸까? 하는 의심의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시험과 고통을 경험해 보신 사람은 아마 공감할텐데, 시험은 고통과 고난은 무너지는 일입니다. 시험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나를 보호고 있던 성벽이 무너지고 자신이 기대고 있던 담벼락이 넘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프고 쓰라린 상처가 우리를 감싸며 고통과 좌절 가운데 머무르게 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런 상황을 선물이라 여길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는 시험을 당한 사람들에게 그 시험들 가운데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고통 속에서 기뻐한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시험과 고통을 경험해 보신 사람은 아마 공감할텐데, 시험은 고통과 고난은 무너지는 일입니다. 시험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나를 보호고 있던 성벽이 무너지고 자신이 기대고 있던 담벼락이 넘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프고 쓰라린 상처가 우리를 감싸며 고통과 좌절 가운데 머무르게 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런 상황을 선물이라 여길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는 시험을 당한 사람들에게 그 시험들 가운데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고통 속에서 기뻐한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시험과 고통 가운데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절대자’ 우리가 신이라고 표현하는 그 ‘절대자’를 찾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우리 크리스챤은 대부분의 시험과 환난 가운데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기도하고 부르짖게 되며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절규가 흘러 나오게 됩니다.
시험과 고통을 경험해 보신 사람은 아마 공감할텐데, 시험은 고통과 고난은 무너지는 일입니다. 시험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나를 보호고 있던 성벽이 무너지고 자신이 기대고 있던 담벼락이 넘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프고 쓰라린 상처가 우리를 감싸며 고통과 좌절 가운데 머무르게 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런 상황을 선물이라 여길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는 시험을 당한 사람들에게 그 시험들 가운데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고통 속에서 기뻐한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따졌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요.. 근데 그 아들이 지금 죽을거 같은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는데 왜 하나님은 이 상황을 모른척 하시냐고!! 따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험과 고통 가운데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절대자’ 우리가 신이라고 표현하는 그 ‘절대자’를 찾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우리 크리스챤은 대부분의 시험과 환난 가운데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기도하고 부르짖게 되며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절규가 흘러 나오게 됩니다.
시험과 고통을 경험해 보신 사람은 아마 공감할텐데, 시험은 고통과 고난은 무너지는 일입니다. 시험 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나를 보호고 있던 성벽이 무너지고 자신이 기대고 있던 담벼락이 넘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프고 쓰라린 상처가 우리를 감싸며 고통과 좌절 가운데 머무르게 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런 상황을 선물이라 여길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는 시험을 당한 사람들에게 그 시험들 가운데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고통 속에서 기뻐한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시험과 고통 가운데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절대자’ 우리가 신이라고 표현하는 그 ‘절대자’를 찾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우리 크리스챤은 대부분의 시험과 환난 가운데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기도하고 부르짖게 되며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절규가 흘러 나오게 됩니다.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따졌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요.. 근데 그 아들이 지금 죽을거 같은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는데 왜 하나님은 이 상황을 모른척 하시냐고!! 따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험과 고통 가운데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절대자’ 우리가 신이라고 표현하는 그 ‘절대자’를 찾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우리 크리스챤은 대부분의 시험과 환난 가운데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기도하고 부르짖게 되며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절규가 흘러 나오게 됩니다.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따졌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요.. 근데 그 아들이 지금 죽을거 같은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는데 왜 하나님은 이 상황을 모른척 하시냐고!! 따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당하면, 고통과 아픔의 상황에 처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그 고통과 상처의 깊이가 깊을수록 점점 더 크게 그리고 처절하게 부르짖고 매달리게 됩니다. 이 시험과 고난은 지금까지 자신을 사로 잡고 있던 모든 사슬을 끊고 하나님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 기도하게 합니다.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따졌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요.. 근데 그 아들이 지금 죽을거 같은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는데 왜 하나님은 이 상황을 모른척 하시냐고!! 따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당하면, 고통과 아픔의 상황에 처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그 고통과 상처의 깊이가 깊을수록 점점 더 크게 그리고 처절하게 부르짖고 매달리게 됩니다. 이 시험과 고난은 지금까지 자신을 사로 잡고 있던 모든 사슬을 끊고 하나님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 기도하게 합니다.
우리는 시험을 당하면, 고통과 아픔의 상황에 처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그 고통과 상처의 깊이가 깊을수록 점점 더 크게 그리고 처절하게 부르짖고 매달리게 됩니다. 이 시험과 고난은 지금까지 자신을 사로 잡고 있던 모든 사슬을 끊고 하나님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 기도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학생-청년 여러분 고난은 시험은, 믿음을 역경이라는 불로 연단하여 모든 찌꺼기를 제거하고 정화해서 단단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즉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시험은 여러분의 믿음의 유무를 확인하고 여러분이 기독교인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통해 여러분의 믿음이 정금과 같이 단단하게 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학생-청년 여러분 고난은 시험은, 믿음을 역경이라는 불로 연단하여 모든 찌꺼기를 제거하고 정화해서 단단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즉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시험은 여러분의 믿음의 유무를 확인하고 여러분이 기독교인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통해 여러분의 믿음이 정금과 같이 단단하게 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는 시험을 당하면, 고통과 아픔의 상황에 처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그 고통과 상처의 깊이가 깊을수록 점점 더 크게 그리고 처절하게 부르짖고 매달리게 됩니다. 이 시험과 고난은 지금까지 자신을 사로 잡고 있던 모든 사슬을 끊고 하나님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 기도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학생-청년 여러분 고난은 시험은, 믿음을 역경이라는 불로 연단하여 모든 찌꺼기를 제거하고 정화해서 단단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즉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시험은 여러분의 믿음의 유무를 확인하고 여러분이 기독교인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통해 여러분의 믿음이 정금과 같이 단단하게 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아픈만큼 성장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믿는 우리들이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뻐해야 할 이유를 3-4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학생-청년 여러분
‘아픈만큼 성장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픈만큼 성장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야고보 사도는 믿는 우리들이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뻐해야 할 이유를 3-4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고난은 시험은, 믿음을 역경이라는 불로 연단하여 모든 찌꺼기를 제거하고 정화해서 단단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즉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시험은 여러분의 믿음의 유무를 확인하고 여러분이 기독교인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통해 여러분의 믿음이 정금과 같이 단단하게 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아픈만큼 성장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믿는 우리들이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뻐해야 할 이유를 3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는 고난의 시험이 믿음의 연단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논리를 전개한다. 믿음의 연단에서 인내가 나온다. 인내는 성도가 지녀야 할 중요한 성격 중의 하나이다.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믿음의 증명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깨달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고난의 시험이 믿음의 연단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논리를 전개한다. 믿음의 연단에서 인내가 나온다. 인내는 성도가 지녀야 할 중요한 성격 중의 하나이다.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믿음의 증명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깨달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è 대부분의 신앙생활은 삶의 인도에 대한 …. 사건에 대한 반응 있다는 것은 고난 받을 성숙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야고보는 고난의 시험이 믿음의 연단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논리를 전개한다. 믿음의 연단에서 인내가 나온다. 인내는 성도가 지녀야 할 중요한 성격 중의 하나이다.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믿음의 증명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깨달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과 시련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믿음을 시험하고 달아보는 것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야고보는 고난의 시험이 믿음의 연단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논리를 전개한다. 믿음의 연단에서 인내가 나온다. 인내는 성도가 지녀야 할 중요한 성격 중의 하나이다.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믿음의 증명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깨달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è 시험을 기뻐할 수 있는 이유 -- ? 논리의 비약 고난의 시험이 믿음의 연단을 이룸. à 야고보는 따로 설명하지 않음.. 왜? 당연하기 때문에!!!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로마서 5:3-4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줍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를 사도 바울을 다음과 같이 로마서에서 말합니다.
을 같이 찾아 읽겠습니다.
è 성도가 각종 시험에 대해 기쁨으로 반응해야 할 이유는 그러한 시험이 보다 더 깊고 확고한 믿음을 가져오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3절에 보면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과 시련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믿음을 시험하고 달아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앎이로다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4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갑자기 밀어닥친 어려움을 통하여 믿음의 진정성을 시험해 보십니다.우리가 말로 하는 것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해 보면 그가 고백한 신앙이 얼마나 진정한 것이지 구별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테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련은 우리를 만들어가는 연단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성도가 각종 시험에 대해 기쁨으로 반응해야 할 이유는 그러한 시험이 보다 더 깊고 확고한 믿음을 가져오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험은 기쁨의 원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불이 금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듯이 시험의 방편(고난)이 믿음을 참된 것으로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앎이로다
인내 à 야고보는 고난의 시험이 믿음의 연단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논리를 전개한다. 믿음의 연단에서 인내가 나온다. 인내는 성도가 지녀야 할 중요한 성격 중의 하나이다.
여기 학생들도 있는데 보통 우리가 시험을 치면 어떻습니까? 시험을 잘 치른 사람이 있고, 폭망한 친구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험점수가 나오고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구별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험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을 겪으면서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어떤 이유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이런 시련을 통하여 더 기도하게 되고 말씀을 더 읽고 결단하게 되며, 결단을 통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가 우리에게 인내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시련을 통하여 인내심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시련을 통해 단단해져서 훈련된 하나님의 정예 군사가 되어집니다.
è 성도가 각종 시험에 대해 기쁨으로 반응해야 할 이유는 그러한 시험이 보다 더 깊고 확고한 믿음을 가져오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è 인내에서 온전한 사역이 나온다. à 인내가 온전한 사역을 얻게 하라 à 인내가 없이는 온전한 사역이 이루어 질 수 없다. 온전한 사역은 인내의 열매이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앎이로다
è 대부분의 신앙생활은 삶의 인도에 대한 …. 사건에 대한 반응 있다는 것은 고난 받을 성숙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갑자기 밀어닥친 어려움을 통하여 믿음의 진정성을 시험해 보십니다.우리가 말로 하는 것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해 보면 그가 고백한 신앙이 얼마나 진정한 것이지 구별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테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련은 우리를 만들어가는 연단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성도가 각종 시험에 대해 기쁨으로 반응해야 할 이유는 그러한 시험이 보다 더 깊고 확고한 믿음을 가져오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험은 기쁨의 원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불이 금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듯이 시험의 방편(고난)이 믿음을 참된 것으로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가 생각한 것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으면 쉽게 낙심해 버립니다. 또 자기가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거나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쉽게 좌절합니다. 또 금방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시련을 통화한 성도들은 놀라운 인내심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내하지 못하는 자는 결코 사용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급할 때 하나님은 전혀 급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급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은 급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기본적인 자세는 시간을 나에게 맞추지 않고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è
è 시험을 기뻐할 수 있는 이유 -- ? 논리의 비약 고난의 시험이 믿음의 연단을 이룸. à 야고보는 따로 설명하지 않음.. 왜? 당연하기 때문에!!!
믿음 = 에무나 à 충선 헌신 진리
우리가 겪는 시험과 그 시험을 통해 길러진 인내의 최종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입니다.
여기 학생들도 있는데 보통 우리가 시험을 치면 어떻습니까? 시험을 잘 치른 사람이 있고, 폭망한 친구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험점수가 나오고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구별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험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을 겪으면서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어떤 이유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이런 시련을 통하여 더 기도하게 되고 말씀을 더 읽고 결단하게 되며, 결단을 통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가 우리에게 인내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시련을 통하여 인내심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시련을 통해 단단해져서 훈련된 하나님의 정예 군사가 되어집니다.
è 성도가 각종 시험에 대해 기쁨으로 반응해야 할 이유는 그러한 시험이 보다 더 깊고 확고한 믿음을 가져오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가 생각한 것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으면 쉽게 낙심해 버립니다. 또 자기가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거나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쉽게 좌절합니다. 또 금방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시련을 통화한 성도들은 놀라운 인내심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내하지 못하는 자는 결코 사용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급할 때 하나님은 전혀 급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급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은 급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기본적인 자세0는 시간을 나에게 맞추지 않고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온전함이 τέλειος 는 부족함이 없는 것을 의미하며 70인역 성경에는 이 단어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샬롬(שָׁלֵם)이라고 번역합니다. 샬롬은 가득찬 상태, 즉 부족함이 하나도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보통 샬롬이라고 인사를 많이 하지요? 평안하라~~ 라는 뜻으로 전해지는 이 인사의 원래 뜻은 주님으로 인해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어서 우리 삶이 평안하다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온전함: 그리스도인의 온전함은 야고보의 기본 관심.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과 그 분의 뜻에 대한 전심의, 무조건적인 헌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두마음’을 죄의 근원으로 부각시킨다.
2절: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명령문
우리가 겪는 시험과 그 시험을 통해 길러진 인내의 최종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입니다.
인내 à 야고보는 고난의 시험이 믿음의 연단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논리를 전개한다. 믿음의 연단에서 인내가 나온다. 인내는 성도가 지녀야 할 중요한 성격 중의 하나이다.
시편 23:1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è 대부분의 신앙 생활은 삶의 일들에 대한 태도이며 사건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는 종종 환경과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환경과 사건들을 생각하는 방식과 반응하는 방법은 통제할 수 있다. 사건과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아는 것은 지혜의 큰 부분을 차지하며 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신실한 태도는 기쁨의 태도이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è 인내에서 온전한 사역이 나온다. à 인내가 온전한 사역을 얻게 하라 à 인내가 없이는 온전한 사역이 이루어 질 수 없다. 온전한 사역은 인내의 열매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è
è
우리는 보통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물질의 부족함, 경제적인 부족함이 없음으로 이해합니다.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야고보서의 부족함이 없는 상태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신자의 온전함은 결국 주님으로 인해 부족함이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야고보는 인내를 통해 우리가 완전한 상태, 즉 부족함이 없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본문 4절을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3절
믿음 = 에무나 à 충선 헌신 진리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이 온전함은 다음 주에 살펴볼 6-8절에 나오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과는 다른 신자의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온전함이란 우리의 마음이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닌 주님으로 인해 가득 찬 상태입니다.
온전함: 그리스도인의 온전함은 야고보의 기본 관심.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과 그 분의 뜻에 대한 전심의, 무조건적인 헌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두마음’을 죄의 근원으로 부각시킨다.
야고보는 독자들에게 의식적으로 믿음의 증명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깨달으라고 명령한다. 이 방법은 시험을 기쁨으로 여기도록 도와주는 방법이다.
2절: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명령문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시험은 기쁨의 원인이 된다. 왜냐하면 불이 금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듯이 시험의 방편(고난)이 믿음을 참된 것으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è 대부분의 신앙 생활은 삶의 일들에 대한 태도이며 사건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는 종종 환경과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환경과 사건들을 생각하는 방식과 반응하는 방법은 통제할 수 있다. 사건과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아는 것은 지혜의 큰 부분을 차지하며 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신실한 태도는 기쁨의 태도이다.
시험을 이기는 방법
온전함이 τέλειος 는 부족함이 없는 것을 의미하며 70인역 성경에는 이 단어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샬롬(שָׁלֵם)이라고 번역합니다. 샬롬은 가득찬 상태, 즉 부족함이 하나도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보통 샬롬이라고 인사를 많이 하지요? 평안하라~~ 라는 뜻으로 전해지는 이 인사의 원래 뜻은 주님으로 인해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어서 우리 삶이 평안하다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1을 보면
1. 지혜를 구함
è
3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인내를 온전히 이룸
야고보는 독자들에게 의식적으로 믿음의 증명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깨달으라고 명령한다. 이 방법은 시험을 기쁨으로 여기도록 도와주는 방법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3. 기도
시험은 기쁨의 원인이 된다. 왜냐하면 불이 금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듯이 시험의 방편(고난)이 믿음을 참된 것으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신자의 온전함은 결국 주님으로 인해 부족함이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야고보는 인내를 통해 우리가 완전한 상태, 즉 부족함이 없게 된다고 합니다.
시험을 이기는 방법
이 온전함은 다음 주에 살펴볼 6-8절에 나오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과는 다른 신자의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온전함이란 우리의 마음이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닌 주님으로 인해 가득 찬 상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마음 교회-학생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혹시 나뉘어져 있지 않습니까?
1. 지혜를 구함
우리의 마음이 나뉘어져 있다면 우리는 항상 만족함을 못 느낄 것입니다. 항상 부족하고 항상 무엇인가를 더 구하게 됩니다. 열 개를 가지고 있다면 백 개를 구하게 되고 그래서 백 개가 채워지면 천 개가 채워지기를 갈구합니다. 그것이 인간인 우리의 죄악 된 모습입니다. 끝없는 탐심과 탐욕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족함을 느낄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완전해 질 수 없습니다.
2. 인내를 온전히 이룸
3. 기도
우리가 온전해지는 방법을 :1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온전해 지고 성숙한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여러분 제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태워 없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림은 나를 태워 온전히 죽이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이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고 우리 영을 지배하는 말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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