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8 우꿈교 가족예배

우리가꿈꾸는예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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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화된 예루살렘 앞에 눈물 흘리며 예레미야가 다시 일어섰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바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이며 거기서 나오는 긍휼하심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든) 여전히 신실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배푸시는 긍휼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예레미야는 아침마다 마주하는 어제의 절망을, 이 확신에 기대어 내일의 소망으로 바꾸었다.

Notes
Transcript

배경알기

예레미야애가는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지켜보며 슬픔으로 노래한 다섯 개의 애가로 구성되어 있다.
구약의 키 예레미야

예레미야가 예레미야서의 저자이다. 그는 제사장 계열이었고(1:1), 예루살렘에서 4–5 킬로미터 떨어진 아나돗 출신으로

그는 예루살렘 곧 교회와 가까운 곳에서 자라났다.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장 그 생태계를 잘 알았고, 어려서부터 말씀으로 교육받았다.
그런 그의 사역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고 범죄한 탓이었다.
선지서 중에 가장 긴 내용을 다루고 있는
구약의 키 예레미야

예루살렘의 멸망을 지속적으로 예언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의 범죄 때문이다.

유다의 왕은 그런 예레미야를 죽이려 들었고, 예레미야는 친구들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그는 늘 박해를 받고, 음모의 표적이 되었으며, 매를 맞고 감금 당하고, 많은 대중들에게도 미움을 받았다.
구약의 키 예레미야

예레미야서에는 다른 선지자들과 달리 선지자 자신의 고난이 많이 등장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고난을 의미하며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의 고난을 예표한다. 여호야김 왕은 바벨론에 의한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는 예레미야를 제거하려고 하였지만(36:26), 예레미야는 소수의 친구들에 의해서 보호를 받는다(26:24). 이 시기에 예레미야는 박해받고(12:6; 15:15–18), 음모의 표적이 되었고(11:18–23; 18:18), 매 맞고 감금당하고(20:2), 대중들에게도 미움을 받았다(26:10, 11).

그는 마음이 약하고, 원채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40년간이나 활동하며 예루살렘의 함락을 예고 했는데, 결국 예루살렘은 북방에서 밀려들어온 바빌론에 의해 함락 되고 말았으며, 그가 지켜내려했던 이스라엘 민족들은 포로로 잡혀가거나 일제 통치와 같이 식민지배를 당하고 만다.
옹아주
이런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겨 노래한 다섯 개의 애가를 기록하였는데 그것이 오늘 본문.
1, 2, 4장은 첫 구절에 ‘슬프다’라는 표현으로 ‘죽은 자’를 애도하는 감탄사를 사용. 예루살렘이 죽었음을 말하고 있음.
*참고 아파라투스 (알파벳순서기록=완전한 슬픔을 강조함) > 찾아 보여주기

ΘΡΗΝΟΙ

Inscr θρηνοι B*A θρ. Ιερεμιου BbאQT (Ιερεμ …)

총 5개의 장으로 이뤄진 이 애가는 각 장의 중심 주제가 이렇다.

구조

1장 (22절)

2장(22절)

3장(66절)

4장(22절)

5장(22절)

옛 영광과 대조되는 현재의 시온의 고난 에 대한 애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시온의 수치 에 대한 애가

고난 가운데서 하나 님의 사랑을 기억하 며 드리는 기도

시온에 갇힌 자들 의 가련한 모습에 대한 애가

슬픔과 고통과 수 치에 시달리는 시온 백성들의 애가

1장.
애가는 기도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기도문.
3장이 중심장으로, 고난의 한 복판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가 서있었는지, 어떻게 기도했는지, 그가 그 자리에서 오늘 우리에게 외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묵상과 나눔시간

- 난해 구절 찾기 : 타번역 비교(예: 20-21절)
- 와닿은 구절과 이유 나누기
- 본문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

본문요약

출처:
Analytical Bible Expositor: Isaiah to Ezekiel B. The Comfort in Dismay (Lamentations 3:19–36)

B. THE COMFORT IN DISMAY

Lamentations 3:19–36

In spite of the

*아래 번역
abe:
abe:
B. THE COMFORT IN DISMAY
Lamentations 3:19–36
B. THE COMFORT IN DISMAY
Lamentations 3:19–36
In spite of the
예레미야는 자신이 기도하고, 막으려고 선포해왔던 대상인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당하는 모습을 눈으로 봤다.
그는 가장 깊은 슬픔 속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으로 인해 위로받았다.
1. 위로가 임하는 조건 (예레미야 )
신성한 위로는 좋은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 희망을 줄 수있는 편안함의 종류입니다.
• 절망할 때.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하나님에게 참으로 나아가는 지점은 우리의 소망이 끊어질 때 곧 절망의 지점이다.
• 겸손할 때.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미완료형태/계속 생각이 나서) 내가 낙심이 되오나(고개를 땅에 파묻다)"(). 주님께서 주시는 참 희망은 겸손한 자만을 위한 것이다.
• 기억할 때.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 이것은 22절을 수식한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 결과 > 21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예레미야는 말씀을 지켰으며 ( "내 영혼은 여전히 ​​기억하고있다."- ), 마음을 감동 시켰을 때 말씀은 그에게 희망을주었습니다.
절망>겸손>기억> 22절 본서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 이후 ‘소망’으로 나아가는 전개. 19-21절은 본 애가의 변환점.
2. 위로의 원천은 하나님 (예레미야 )
우리는 하나님이 위로의 원천이되는 세 가지 이유를 주목한다.
• 주님은 은혜로우시기 때문 "...우리가 진멸되지 않은 이유"는 “...여호와의 인자(Love/헤세드: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유대인들은 전멸된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의 희망은 하나님의 자비에 기댄다.
• 주님은 신실하시기 때문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주님이 신실하시다는 것 =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하신데로 충실하시다는 것. 그러므로 유대 민족을 심판하는 일이 매우 가혹했다할지라도, 유대인들을 진멸시키지 않을 것. -> 실재로 그들은 오늘까지 살고 있다. 하나님이 약속에 얼마나 신실하신가?
3. 다가올 위로를 통해 새롭게 바라보는 오늘 (예레미야 )
다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순결한 삶을 사는 것이 의미 있어짐.
성결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이옵니다.
• 해석의 변화 .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25 “기다리는 자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기다림이 좋도다" 어떻게? 24절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까". 그는 끊임없이 절망적인 상황 앞에, 아침마다 주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기억하며 마음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는 하나님을 상속받았다.” “나의 재산은 하나님이다.”
• 믿음의 증거. 첫째로, 침묵.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힘든시기 속에서 침묵을 지킬 것.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유익하기 위해 주셨다는 것을 믿는다는 의미기 때문.
둘째, 겸손함과 인내.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다른 번역으로 :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30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요약하면 이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겠다는 것.
4. 다가오는 위로의 날 (예레미야 )
그 계절은 심판 때에 집행 유예에 대한 많은 희망을주는 하나님의 자비의 확실성을 가리킨다.
• 하나님은 자녀에게 약속하셨다.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여"() 고난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목적을 향한) 일시적인 것.
• 하나님은 자녀들을 사랑하신다.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예레미야 ).
• 하나님은 악인들을 방치 하지 않으신다.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 지존자(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로다"().
33절 “인생으로 고생케 하시며 근심케 하심은 본심이 아니심이로다'.

결론

이찬수 “우리의 절망은 언제나 하나님의 희망이다.”

애가의 신학적인 목적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고, 그분으로 하여금 자기 백성을 위해 개입하시며 자기 백성을 회복시켜 주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애가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바벨론 포로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게 하셨다. 하지만 이 기도에 대한 궁극적인 응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의해 이루어졌다. 무너진 하나님나라 이스라엘을 예수님께서 신약 교회로 재건하셨기 때문이다. 한편 예레미야 애가는 죄를 범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우시는 예수님의 탄식과 비교될 수 있다(눅 13:34, 35). 예레미야와 예수님의 탄식이 영적으로 세속화되고 무너진 교회의 모습을 붙들고 통곡하는 성도들의 탄식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 탄식은 회개와 기도로 나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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