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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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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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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수(7일) 마5장  
오늘 본문의 마태복음 5장의 말씀입니다. 그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라고 말합니다. 왜 산상수훈이라고 말을 하냐면 오늘 본문의 1절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마태복음 5:1 NKRV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그런 본문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그때 갈릴리 부근 호수 근처의 산에 올라가 산상설교의 내용을 기록하였기 때믄에 산상수훈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그떄 예수님께서 갈릴리 부근 호수 근처에서 산상설교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산상수훈의 말씀은 마태복음 5장에서 부터 마태복음 7장 까지 전하고 있는데 그런 오늘 5장에서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이 내용들을 다 나누기에는 시간이 참 부족하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오늘 새벽시간에 혹자는 구약 율법의 핵심이 십계명이 있다면 신약에 산상수훈의 핵심을 팔복이 이라고 중요하게 생각 할 만큼 여기는팔복에 관해 여러분들과 말씀을 통해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팔복은 8가지 복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다.
그런데 이 복은 세상이 말하는 복하고 다르다. 세상에서 복은 이렇게 말한다. 특별히 사전을 보니까 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good luck, good fortune 운수가 좋거나 행운이 좋은것이 복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 복받는 것을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남보다 잘되고, 자식이 잘되고,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것 그것이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복을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대문 손잡이로부터, 문갑, 은수저, 옷의 무늬, 베게 모, 방석 등에 복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그래서 옛날 가구들이나 침구에서 복자를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대문 손잡이로부터, 문갑, 은수저, 옷의 무늬, 베게 모, 방석 등에 복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그래서 옛날 가구들이나 침구에서 복자를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중국사람들은 더 좋아한다. 여러분들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중국사람들은 복자를 대문이나 벽에 붙여넣는데 그런데 어떻게 붙여 넣냐면 일부러 복자를 거꾸로 대문이나 벽에 붙여넣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복이 쏱아져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복이 대부분 세상에서 생각하는 복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이 복은 일반적으로 아주 실제적(물질적)이고 아주 현실적인 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하는 팔복은 하나같이 세상에서 말하는 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복과는 전혀다름을 보여준다. .
하나같이 세상에서 말하는 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은 그런 복과는 다르다.
예수님은 팔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복하고 다르다. 왜냐하면 팔복의 복은 이렇게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왜냐하면 팔복의 복은 이렇게 말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전혀 세상이 말하고 있는 복하고는 다르다.
어떻게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는 전혀 다르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에서 복과는 전혀다르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단어 하나 하나씩 나누면 좋겠지만 왜 예수님께서 복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팔복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냐면 “팔복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의 방식과 하나님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단순한 물질적이고 아주 현실적인 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팔복을 4가지씩 나누어 볼 수가 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경제적 빈곤, 가난과 혼동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경제적인 빈곤인 가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마음에 가난함을 말한다.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그리고 애통하다라는 것은 자기에게 옳은 것이 없고 죄만 잇음을 보고 회개함을 말한다.
그리고 온유하다라는 것은 다름 아닌 겸손한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다라는 것은 자기의 죄를 원통히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처음 4가지 복은 사람이 자기에게 의가 없음을 발견하는 것이 참으로 복이 있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는 갈망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긍휼히 여기는 자를 말한다. 이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받은 자가 아직 그 의를 받지 못한 사람을 볼 때 불쌍히 여김을 말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오직 하나님 한분을 섬김으로 그 영혼의 눈이 열려 하나님을 더욱 섬기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화평하게 한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과 화목한 자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전할때 그 복음을 듣는자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것을 가르킨다.
마지막으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라는 말은.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때가 있지만 그러나 천국에서 상급을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것은 신자가 된 후에 신자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르킨다.
정말 복이 있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고 죄많은 자로서 의가 없음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의를 입은 자가 이땅에 신자의 삶으로 사는 것이 참 복이 있음을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국어 사전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은 그러한 복을 많이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하냐면 여러분들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일부러 복자를 거꾸로 대문이나 벽에 붙여넣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복이 내려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방식의 복은 영원하지 않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의 복은 영원한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복이 있나니 하면서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이 무엇이냐면 천국과, 위로와, 기업과, 배부름,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팔복에서 말하는 복은 그런 복과는 다르다.
그런 이 팔복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가져야 할 정체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때 13-16절에 말씀처럼 세상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들을 감당할 수 있다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같이 세상에서 말하는 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시간 마음에 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속에 살아가지만 그러나 세상과 다른 존재로 살아간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도 세상을 닮아가는 것이아니라 세상속에 하나님을 닮아가 세상과 구별된 자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예수님을 의지하므로 의로운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팔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태복음 5:1 NKRV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86: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365: 마음속에 근심있는 사람
그뿐 아니라 "축복하다"(bless)와 "복이 있다"(blessed)는 고대 영어 단어 "bliss"(행복, 기쁨)와 철자 및 발음이 유사했다는 사실에서 의미가 유래된다. 이러한 정의에 의거할 때, 예수님 자신이 가장 행복(평온, 확신, 만족, 평화, 기쁨, 영혼의 만족)한 분이셨다. 외적인 자극에 상관 없이 삶의 갖가지 상황과 미레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는 비결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다. 팔복은 이런 예수님의 초상이다.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복과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이 어떻게 다른가?
마태복음5장 
- 마이클 윌킨스
오늘 본문의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라고 말합니다.
왜 산상수훈이라고 말을 하냐면 오늘 본문의 1절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NKRV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그런 본문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산위에 올라가 설교를 하셨는데
그때 갈릴리 부근 산 위에 올라가셔서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실때 산위의 중턱에 앉아 설교를 하셨는데
그래서 산상수훈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다녀오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산상수훈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앞에는 갈릴리 앞바다가 보이고 
언덕위에는 교회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교회의 이름이 바로 팔복교회이다. 
비잔틴 시대에 다시 리모델이 되어있고 위에는 돔으로 되어있고
지금은 이태리 프란체스코 수녀들이 돌보고 있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말씀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져 있는 것이지요? 
그런 산상수훈의 말씀은 마태복음 5장에서 부터 마태복음 7장 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 오늘 5장에서도 우리가 1절부터 25절까지 읽지 않았습니까?
참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그런데 이 내용들을 다 나누기에는 너무 시간이 참 부족합니다.
그래서 참 고민이 많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산상수훈의 핵심인 팔복에 관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약 율법의 핵심이 십계명이 있다면
신약에 산상수훈의 핵심을 팔복이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만큼 산상수훈에 핵심이라고 여기는 데 그런 팔복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팔복은 그대로 8가지 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은 세상이 말하는 복하고 많이 다름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복을 이렇게 말한다.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사전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복은  Good luck, Good fortune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말하는 복은 운이 좋거나 행운을 받은 것 그것이 복이라고 말한다. 
내가 남보다 잘되고, 자식이 잘되고,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복입니다.
복) 우리나라
그런 우리나라 사람들 참 복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가 어렸을때부터 자라면서 많이 봤는데 대문 손잡이나, 문갑, 장롱이나, 은수저,
옷의 무늬, 베게 모, 방석 등에 무엇을 세겨 놓았냐면
복자를 그렇게 많이 새겨 놓았습니다.
복) 중국사람들 
그런데 보니까 중국사람들도 복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여러분들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중국사람들은 복자를 대문이나 벽에 붙여 놓는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붙여 넣냐면 복자를 거꾸로 대문이나 벽에 붙여넣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복이 쏱아져서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복을 많이 원하는 것이죠.
그래서 복은 일반적으로 아주 물질적이고 실제적이고 아주 현실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하나같이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는 전혀 다름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팔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7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9절: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10절: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그런 세상이 말하는 복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이 다릅니다.
그렇죠?
어떻게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이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 같습니까? 다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는 전혀 다른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은 물질적이고 실제적이고 아주 현실적인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물질적이고 실제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단어 하나 하나씩 나누면 좋겠지만 팔복에서 말하고자 하는 그 복의 개념은 그런 복이 아니라는 것이죠 
여기서 복이 있나니라는 단어를 예수님께서 하셨는데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냐면 
헬라어로 메카리오스라고 말합니다.
그 뜻은 행복을 말하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방식의 행복과 
하나님의 방식의 행복이 다르다라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 
그런 세상의 방식은 실제적이고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누리는 것이
복을 받아 행복하다고 여기지만
그러나 그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라는 것이죠 
한계가 있고 잘못된 결과를 만들 수 있다라는 것이죠 
특별히 돈) 명예) 성) 그런것에서 많이 행복을 누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을 받아 행복을 누리는 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물질적이고 실제적이어서 현실적인 것이 복받아 행복하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알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적이고 내세적인 영원한 행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팔복은 두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그리고 둘째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치신 말씀이다.
1)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경제적 빈곤, 가난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경제적인 빈곤인 가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마음에 가난함을 말한다.
2) 그리고 애통하다라는 것은
영적인 슬픔이며 간절한 소망입니다. 
자기에게 옳은 것이 없고 죄만 있는 자신의 연약함과 
죄악된 속성을 하나님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3) 그리고 온유하다라는 것은
다름 아닌 겸손한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낯추어 겸손함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겸손의 진짜 의미는 자기부인의 자리까지 내려가는 것이 온유이다.
진짜 겸손한 자는 자신의 능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4)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다라는 것은
옳고 그름의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그런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이다라는 것이고 
5) 그리고 두번째는 긍휼히 여기는 자를 말한다.
이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받은 자가
아직 그 의를 받지 못한 사람을 볼 때 불쌍히 여김을 말한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마음이 청결한자라는 뜻은 인간의 마음이 참 많이 부패했지만
그러나 부패한 죄인의 마음을 그 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셨다. 
따라서 청결한 마음이라는 것은 거듭난 새 사람에게 주시는 새 마음이다.
이전의 습관과 죄악의 마음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된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오직 하나님 한분을 섬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7) 그리고 화평하게 한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화목한 자로 세상속에서 하나님과 이웃과 화목한자로 서는 것이다.
8) 마지막으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때가 있지만 그러나 천국에서 상급을 말한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한자가 되고 의를 위해 핍박까지도 감수하며 살아야 함을 말한다. 
그럴때 진짜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팔복은 어디에서 어디로 끝나냐면 천국에서 천국으로 끝난다.
그 말은 세상나라속에 살아가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것 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정말 복은 눈에 보여지는 물질적이고 손에 잡혀져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 복은 무엇이냐면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알고
그 믿음의 모습으로 하나님과 관계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때 
그것이 정말 행복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럴때 13-16절에 말씀처럼 세상속에서 빛이 되고
소금의 역할들을 감당할 수 있다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화 하성이) 아이 이름, 제가 느낀 것은 정말 복은 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진짜 복이다. 
    하성이) 아이 이름, 제가 느낀 것은 정말 복은 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진짜 복이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오늘 여러분에게도 진짜 복이 회복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길 바랍니다.
Conclusion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시간 마음에 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에 살아갈때 세상과  사람과 너무 비교하며 사는 존재가 아니길 바랍니다.
우리는 눈에 보여지는 세상과 사람들과 늘 비교하며 산다.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비교하며 겨루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닮으며 비교 의식 가운데 거할때가 참 많다.
다른 사람들과 입은 옷, 사 는 집, 모는 차, 일하는 직장, 내 자녀와 남의 자녀, 
내가 가진 것과 남이 가진 것을 비교하면서 지금도 꾸준히 비교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내가 좀더 갖고 내가 좀더 나은 환경 가운데 있으면 특별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할때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특별하지 않고 불행하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지 모른다. 땅의 소망은 크지만 
하늘의 소망은 작아서 어쩌면 진정한 팔복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내 존재 자체를 특별한 존재로 만드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오늘 예배하며 나갈때 내 존재 자체를 특별하게 계획하고 만드신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교제하고 함께 함으로 이 세상이 담지 못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과 구별 된 자로 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함이 진짜 행복인지 알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 나라에 살아가는데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7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9절: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10절: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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