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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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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른 지역보다는 따뜻한 부산에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니 따뜻한 봄과 여름이 간절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봄과 여름이 오기 전에 봄과 여름을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따뜻한 나라로 해외여행을 가면 어떻겠습니까? 여기에 모인 모든 분들이 반팔에 반바지만 입어야 하는 그런 나라도 다 같이 여행을 떠났다고 상상해봅시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니 야자수가 우리를 반겨주고, 아름다운 해변 옆 숙소에 짐을 풀었습니다. 너무 따뜻한 그 곳에서, 이곳에 우리가 왔다는 기념을 어떤 방법으로 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것입니다. 요즘은 사진을 찍는 일이 너무 편해졌습니다. 그냥 휴대폰을 꺼내서 쉽게 찍을 수 있습니다. 다같이 좋은 곳에 오면 함께 왔다는 의미로 좋은 배경을 두고 사진을 찍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밥먹기 전에 무엇을 하는 줄 아십니까? 식사기도를 반드시 꼭 하는 것처럼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습니다. 음식이 담겨져 있는 그 상태를 찍고 혹시나 누가 먼저 숟가락으로 음식을 해치면 그렇게 기분나빠할 수 없습니다. 음식을 먹으러 온 것인지 그 음식을 찍으러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이 음식을 먹었다는 기념으로 음식사진을 찍습니다.
여기 우리에게는 사진이 있어서 자신이 간 곳, 경험 등을 기념할 수 있도록 한다면 옛날 사람들은 어떤 일이 일어났거나 좋은 일, 슬픈 일을 기념하였을까요? 돌을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성경에 돌을 세운 일들이 몇 군데 등장합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형 에서를 피해서 밧단아람의 외삼촌 집으로 가다가 저녁에 잠을 잤습니다. 돌을 베개로 삼고 잠이 들었는데 그 날 밤,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곳에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의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40년 세월을 보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 앞에 섰을 때에 요단강은 범람하는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그 요단강을 마치 모세를 통해서 홍해를 가르셨던 것처럼 지나갈 수 있도록 물을 막아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그 길로 지나가며 하나님이 요단강을 갈라주신 사건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열두 돌을 그 곳에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기념비
하나님의 기념비
이렇게 돌을 세워서 기념하는 일, 천안에 있는 고려신학대학원에도 있습니다. 한쪽면에는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라고 쓰여있고, 그 뒤쪽 편에는 고신교단의 귀한 유산과도 같은 말, 여주동행, 일사각오, 지사충성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고신교단이 세워진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만들어둔 비석입니다. 이후에 이 비석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갔던 길을 기념하고, 또 이후 세대들에게 이 돌을 보고 그 일을 기억하며 그들의 삶을 따라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두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신 일과 이야기를 어떻게 기억하게 하고 기념하셨겠습니까? 창조의 때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자신이 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창조세계에 보이시기 위해서 자신의 형상을 닮을 사람을 만들어 세워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 일에 실패하고 감당할 수 없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주셔서 모든 것을 바로 잡으셨습니다. 죄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구원하여 내시고, 만물이 고통 가운데 근심하던 일을 해방시켜주시고, 죄와 사망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사건과 승리를 하나님은 어떻게 기념하시고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은 커다란 기념비를 하나 세우셨습니다. 그 기념비가 무엇이며, 그 기념비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함께 읽은 말씀을 따라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념과 기억
기념과 기억
한파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건강하신지요? 집에 물은 다들 잘 나오고 그렇습니까? 다른 지역보다는 따뜻한 부산에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니 따뜻한 봄과 여름이 간절합니다. 이제 2월 초라서 봄과 여름은 소원해보입니다만 시간이 지나서 봄과 여름이 오기 전에 봄과 여름을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따뜻한 나라로 해외여행을 가면 어떻겠습니까? 여기에 모인 모든 분들이 반소매에 반바지만 입어야 하는 그런 나라로, 이왕이면 하와이는 어떻습니까? 저도 가본 적은 없지만, 다 같이 여행을 떠났다고 상상해봅시다. 긴 시간 동안 비행기 타고 공항에 내리니 따뜻한 공기와 야자수가 우리를 반겨주고, 아름다운 해변 옆 숙소에 짐을 풀었습니다. 추위는 온데간데 없고 발씨는 너무 따뜻한 이곳, 겨울에서 여름으로 여행을 온 기념을 어떤 방법으로 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진을 찍습니다. 간편하게 휴대폰을 꺼내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여행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좋은 일과 장소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특성인 것만 같습니다. 사진으로 다른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일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좋은 식당에 가서 음식이 나오면 하는 일입니다. 음식이 나오면 식사기도를 하는 것처럼 휴대폰을 꺼내서 음식사진을 찍습니다. 음식이 담겨져 있는 그 상태를 찍고 혹시나 누가 먼저 수저로 음식을 해치면 그렇게 기분 나빠할 수 없습니다. 음식을 먹으러 온 것인지 그 음식을 찍으러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좋은 식당에 왔다는 기념과 이후에 그 장소와 음식을 기억하기 위해서 음식사진을 찍습니다.
한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건강하신지요? 집에 물은 다들 잘 나오고 그렇습니까? 다른 지역보다는 따뜻한 부산에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니 따뜻한 봄과 여름이 간절합니다. 이제 2월 초라서 봄과 여름은 소원해 보입니다만 시간이 지나서 봄과 여름이 오기 전에 봄과 여름을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따뜻한 나라로 해외여행을 가면 어떻겠습니까? 여기에 모인 모든 분이 반소매에 반바지만 입어야 하는 그런 나라로, 이왕이면 하와이는 어떻습니까? 저도 가본 적은 없지만, 다 같이 여행을 떠났다고 상상해봅시다. 긴 시간 동안 비행기 타고 공항에 내리니 따뜻한 공기와 야자수가 우리를 반겨주고, 아름다운 해변 옆 숙소에 짐을 풀었습니다. 추위는 온데간데없고 날씨는 너무 따뜻한 이곳, 겨울에서 여름으로 여행을 온 기념을 어떤 방법으로 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사진을 찍습니다. 간편하게 휴대전화를 꺼내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여행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좋은 일과 장소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특성인 것만 같습니다. 사진으로 다른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일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좋은 식당에 가서 음식이 나오면 하는 일입니다. 음식이 나오면 식사 기도를 하는 것처럼 휴대전화를 꺼내서 음식 사진을 찍습니다. 음식이 담겨 있는 그 상태를 찍고 혹시나 누가 먼저 수저로 음식을 해치면 그렇게 기분 나빠할 수 없습니다. 음식을 먹으러 온 것인지 그 음식을 찍으러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좋은 식당에 왔다는 기념과 이후에 그 장소와 음식을 기억하기 위해서 음식 사진을 찍습니다.

하나님의 찬송 이후에 이어지는 기도

우리에게는 휴대전화와 사진이 있어서 여행지, 먹었던 음식, 일어난 일을 기념한다면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했던 일과 그 의미, 혹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한 일을 어떻게 기념하고 기억하였을까요? 신기하게도 세계 곳곳에서는 돌을 세웠습니다. 광개토대왕비가 있고, 모아이 석상이 있고, 스톤헨지와 같은 돌을 그렇게 세웠습니다. 성경에도 돌을 세운 일들이 몇 군데 등장합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형 에서를 피해서 밧단아람의 외삼촌 집으로 가다가 저녁이 되어 길에서 잠을 잤는데, 돌을 베개로 삼고 잠이 들었고, 그 날 밤,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곳에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의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돌을 세운 일이 기억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세월을 보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요단강 동편에 섰을 때 요단강은 범람하는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그 요단강을 마치 모세를 통해서 홍해를 가르셨던 것처럼 지나갈 수 있도록 물을 막아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그 길로 지나가며 하나님이 요단강의 물을 막아주신 사건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열두 돌을 그곳에 세웠습니다.
우리에게는 휴대폰과 사진이 있어서 여행지, 먹었던 음식, 일어난 일을 기념한다면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했던 일과 그 의미, 혹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한 일을 어떻게 기념하고 기억하였을까요? 신기하게도 세계 곳곳에서는 돌을 세웠습니다. 광개토대왕비가 있고, 모아이 석상이 있고, 스톤헨지와 같은 돌을 그렇게 세웠습니다. 성경에도 돌을 세운 일들이 몇 군데 등장합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형 에서를 피해서 밧단아람의 외삼촌 집으로 가다가 저녁이 되어 길에서 잠을 잤는데, 돌을 베개로 삼고 잠이 들었고, 그 날 밤,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곳에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의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돌을 세운 일이 기억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40년 세월을 보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요단강 동편에 섰을 때에 요단강은 범람하는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그 요단강을 마치 모세를 통해서 홍해를 가르셨던 것처럼 지나갈 수 있도록 물을 막아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그 길로 지나가며 하나님이 요단강을 갈라주신 사건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열두 돌을 그 곳에 세웠습니다.
바울은 이전에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이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아서 누림을 선언했습니다. 그 복은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도 누리고 있는 복입니다. 그 복을 가진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믿음이 있었고, 서로를 향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런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내용이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 그들에게 있어, 그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 예수님께서 보내어주신 그 성령이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더 잘 알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돌을 세워서 기념하고 기억하는 일, 천안에 있는 고려신학대학원에도 있습니다. 한쪽면에는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라고 쓰여있고, 그 뒤쪽 편에는 고신교단의 귀한 유산과도 같은 말 “여주동행, 일사각오, 지사충성”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고신교단이 세워진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세워둔 기념비입니다. 학교에서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이 기념비를 보면 ‘아,,주기철 목사님이 신사참배에 반대하시면서 고난을 참으셨지,,,”라는 자부심과 더불어 ‘나도,,,그래야겠지,,,’라는 두려움이 함께 생기곤 했습니다. 믿음의 선진이 걸어간 길을 기념하고, 그들이 살아간 생애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면 그 돌은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이렇게 돌을 세워서 기념하고 기억하는 일, 천안에 있는 고려신학대학원에도 있습니다. 한 쪽에는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서"라고 쓰여있고, 그 뒤쪽 편에는 고신교단의 귀한 유산과도 같은 말 “여주동행, 일사각오, 지사충성”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고신교단이 세워진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세워둔 기념비입니다. 학교에서 산책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이 기념비를 보면 ‘아,,주기철 목사님이 신사참배에 반대하시면서 고난을 참으셨지,,,”라는 자부심과 더불어 ‘나도,,,그래야겠지,,,’라는 두려움이 함께 생기곤 했습니다. 믿음의 선진이 걸어간 길을 기념하고, 그들이 살아간 생애를 잊지 않게 하려고 만들었다면 그 돌은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승리를 바라보아야 하는데 우리는 상상을 해야 합니다. 지금 제가 여기서 설교를 하는데 꽤나 많은 시간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그 준비하는 시간과 과정 가운데 제가 생각해도 조금 웃긴 일이 있습니다. 본당에 거의 다 만들어진 설교 원고를 가지고 올라와서 미리 한 번 해봅니다. 이 자리에 앉으신 분들이 없지만 마치 있는 것처럼 상상하고 해봅니다. 그러면서 손동작도 해보고, 말이 자연스럽게 되는지, 호흡은 괜찮은지, 여러분이 계신다고 상상하고 해보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상상력을 발휘해서 마치 진짜 여러분이 있는 것처럼 해봅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은 우리에게 이런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데 ‘영적 상상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셨고, 하고 계시면, 앞으로 하실 일을 우리는 상상해봅니다. 실제로 우리가 본 적이 없고, 일어나지 않았기에 상상해볼 수 밖에 없지만 이 상상은 내 머리 속 어딘가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계시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할 수 있는 상상입니다. 영적인 상상을 할 때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집니다. 이 밝아지는 것은 눈 먼자들이 보게 되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는 일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우리에게 영적인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셔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보게 됩니다.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기념비를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아니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기념비를 한 번 그려보겠습니다. 자, 마음 속에 큰 비석을 하나 마련하시고 그 비석에 기념비에 새길 내용을 적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신 일을 어떻게 기념하고, 기억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자신이 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창조세계에 보이시기 위해서 자신의 형상을 닮을 사람을 만들어 세워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 일에 실패하고 감당할 수 없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주셔서 모든 것을 바로 잡으셨습니다. 죄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구원하여 내시고, 만물이 고통 가운데 근심하던 일을 해방시켜주시고, 죄와 사망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이루어주셨습니다. 크고 놀라운 이승리를 하나님은 어떻게 기념하시고 기억하십니까? 하나님도 커다란 기념비를 하나 세우셨습니다. 그 기념비가 무엇이며, 그 기념비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함께 읽은 말씀을 따라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신 일을 어떻게 기념하고, 기억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자신이 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창조세계에 보이시기 위해서 자신의 형상을 닮을 사람을 만들어 세워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 일에 실패하고 감당할 수 없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주셔서 모든 것을 바로 잡으셨습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구원하여 내시고, 만물이 고통 가운데 근심하던 일을 해방해주시고, 죄와 사망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이루어주셨습니다. 크고 놀라운 이 승리를 하나님은 어떻게 기념하시고 기억하십니까? 하나님도 커다란 기념비를 하나 세우셨습니다. 그 기념비가 무엇이며, 그 기념비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함께 읽은 말씀을 따라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도들이 영적인 상상을 통해 믿어야 할 내용

하나님의 찬송 이후에 이어지는 기도
하나님의 찬송 이후에 이어지는 기도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마음의 눈이 밝아진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이 깨닫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기도하였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기념비에 새겨야하는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알기'가 세기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에 ‘영적인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누구 한 명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육체를 입고 이스라엘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고, 병든 자를 치료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이 여기에 혹시 계십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알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알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아갑니다. 이렇게 하나님,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알게 되는 일이 복된 일임을 아십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른 제자들이 보았다고 말했지만 “그 손의 못자국에, 허리의 창자국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도마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이 복되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마음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더욱 아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 혹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면 교회에서 마련되어있는 양육 및 훈련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들 하나하나 살펴보시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단순히 교회에서 하니깐, 아니면 내가 어떤 사역을 하기 위해서, 직분을 받기 위해서 참여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 영적성장훈련에 참가해봅시다.

지난 설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설교에서 저는 바울이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이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는다고 하고, 그 복은 저와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하게 누린다고 전했습니다. 그런 복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지난 설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설교에서 저는 바울이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이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는다고 하고, 그 복은 저와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같게 누린다고 전했습니다. 그런 복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른 제자들이 보았다고 말했지만 “그 손의 못자국에, 허리의 창자국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도마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이 복되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마음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더욱 아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또 기념비에 ‘부르심의 소망'이라고 세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를 때에 우리 인생은 소망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열심히 살지만 그 열심히 사는 소망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웠습니다. 유리 방황하는 인생으로 하루 하루를 그냥저냥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자들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심으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이 부르심은 우리를 한 교회로 모이게 하셨습니다. 에베소교회의 상황이 이러했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고, 남자와 여자가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상전과 종이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서 교회 안에서는 그들이 하나되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모여있을 수 있었습니까? 그들에게는 ‘하나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하나로 만드셔셔 함께 구원 받는 자리로 나아가게 하시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 소망이 쉽지 않았기에 에베소서 4장에 이르면 “부르심에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하면서 “서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로 명령합니다. 몸도, 성령도, 주님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부르심의 소망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또 상상해봅시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는 어떻게 ‘부르심의 소망'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몇 주안에 실버구역이 새롭기 시작되고, 구역모임의 방학이 끝납니다. 함께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로 부르셨기에 그 부르심 안에서 시작되는 모임들을 소망으로 누려갑시다.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그 다음에는 무엇이 세겨져 있습니까? 기업의 영광이 세겨져 있습니다. 기업의 영광이라고 하니 우리가 하나님께 상속받을 기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원래 그 의미를 살려리면 ‘그의 기업의 영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기업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 부르심의 소망으로 부름을 받아서 살고 있는 우리들, 성도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한 말씀을 들어봅시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으로 영광을 누리며 삽니다. 세상이 모른다하여도,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바라보며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를 돌아보면 ‘과연 내가 하나님의 영광일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부어졌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이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상상하여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주신 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바라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영광의 존재들입니다. 불러주셔서 얻게 하신 이 영광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누릴 수 있겠습니까?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예배'의 자리로 나아옵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고, 그 영광을 다시 올려 드리기 위해서 예배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한 줄 더 세겨져 있는 문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무한하고 초월적인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서 네 가지 단어를 사용합니다. 위력이라고 하면서 장애물을 극복하는 힘, 힘이라고 하면서 무엇인가 앞으로 내지르는 힘, 역사하심이라고 하면서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힘, 능력이라고 하면서 목표한 것을 이루어 내는 힘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것을 뛰어 넘을 만큼 크고 위대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을 알고, 부르심의 소망으로 부름 받아, 그 기업의 영광이 된 자들에게 있기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인데 이 능력을 우리가 어디에 어떻게 쓰면 좋겠습니까? 성도로 부르심을 받아서 살고 있으니, 교회로 함께 모여 있으니 교회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다들 이 시간 예배의 자리로 나오기 전에 많은 일들을 하셨는 줄 압니다. 교사로, 안내로, 주차봉사로, 차량으로, 예배를 도우며, 식당에서, 또 제가 언급하지는 못하였지만 많은 일들을 하실 줄로 압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이 모든 일들을 잘 감당합시다. 기념비에 새겨질 내용은 하나님을 알아가기, 부르심의 한 소망, 하나님 안에서 성도의 영광,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저희가 좀 더 자세히 볼 내용은 바울이 그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같은 복을 받았다면, 같은 기도의 내용이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이라고 기도하는지 보겠습니다. 먼저 17절과 18절입니다.
오늘 저희가 좀 더 자세히 볼 내용은 바울이 그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동일한 복을 받았다면, 동일한 기도의 내용이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이라고 기도하는지 보겠습니다. 먼저 17절과 18절입니다.

하나님 능력의 증거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기념비에 한 자 한 자 잘 아로새기셨습니까? 그러면 이 모든 것을 굳건히 세울 받침돌이 필요합니다. 기념비 못지 않게 중요한 돌입니다. 기도하면서 바울이 에베소교회가 세우기를 원하는 받침돌은 예수님의 사역과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물의 권세입니다. 이 받침돌은 우리의 믿음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받침돌은 부활과 승천, 재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 중에서도 부활, 승천, 재림을 두고 기도합니다. 더 많은 영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신 일,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승천도 마찬가지 입니다. 많은 증인들과 성경을 통하여서 듣게 된 사건이지만 실제로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오심은 어떻습니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알게 하시며, 마음의 눈을 밝혀주셨기 때문에 믿습니다. 그 내용이 20절부터 22절에 잘 나와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영적상상력을 가지고 우리 한 목소리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 그들에게 있고, 그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온 세상에 행하신 일을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더욱 깨닫기를 바라는데 이 일 저와 여러분에게도 행하신 일임을 잊지 말고 본문을 보겠습니다.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 그들에게 있고, 그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온 세상에 행하신 일을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더욱 깨닫기를 바라는데 이 일 저와 여러분에게도 행하신 일임을 잊지 말고 본문을 보겠습니다.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신 일,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승천도 마찬가지 입니다. 많은 증인들과 성경을 통하여서 듣게 된 사건이지만 실제로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오심은 어떻습니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알게 하시며, 마음의 눈을 밝혀주셨기 때문에 믿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함께 계시면 우리에게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지금 여기에 있다고’ 상상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지금 제가 여기서 설교를 하는데 너무 긴장하고 두렵고 떨려서 여러분의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그 준비하는 시간과 과정 가운데 이제는 습관처럼 하지만 제가 생각해도 웃긴 일이 있습니다. 본당에 거의 다 만들어진 설교 원고를 가지고 올라와서 미리 한 번 해봅니다. 이 자리에 앉으신 분들이 없지만 마치 있는 것처럼 상상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저렇게 손도 움직여보고 심지어 이 손도 연습의 결과입니다. 말이 자연스럽게 되는지, 호흡은 괜찮은지, 여러분이 계신다고 상상하고 합니다.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좋게 표현해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설교할 때 조금 덜 긴장하고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해봅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함께 계시면 우리에게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지금 여기에 있다고’ 상상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지금 제가 여기서 설교를 하는데 너무 긴장하고 두렵고 떨려서 여러분의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그 준비하는 시간과 과정 가운데 이제는 습관처럼 하지만 제가 생각해도 웃긴 일이 있습니다. 본당에 거의 다 만들어진 설교 원고를 가지고 올라와서 미리 한 번 해봅니다. 이 자리에 앉으신 분들이 없지만 마치 있는 것처럼 상상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저렇게 손도 움직여보고 심지어 이 손도 연습의 결과입니다. 말이 자연스럽게 되는지, 호흡은 괜찮은지, 여러분이 계신다고 상상하고 합니다.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좋게 표현해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설교할 때 조금 덜 긴장하고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해봅니다.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지혜와 계시의 영은 우리에게 이런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데 ‘영적 상상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저희는 본 적이 없고, 구원의 여정 그 끝에 일어난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상상해볼 수밖에 없지만, 이 상상은 내 머릿속 어딘가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계시의 영이 우리와 함께하셔서 할 수 있는 상상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은 우리에게 이런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데 ‘영적 상상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저희는 본 적이 없고, 구원의 여정 그 끝에 일어난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상상해볼 수 밖에 없지만, 이 상상은 내 머리 속 어딘가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계시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할 수 있는 상상입니다.
영적인 상상력으로 읽으시니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좀 실감이 나십니까? 이 능력을 주춧돌로 삼는다는 것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싸우는 대상이 있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21절에 나오는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에 대해서 나오는데 하늘의 영적존재들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에베소에 유명한 신전이 있습니다. 아데미 신전이 있었고, 이방인의 도시였으니 분명히 온갖 신들이 있었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그 영적인 존재를 믿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입니다. 그런 가운데 바울이 다시 한 번 “우리 예수님이 그 모든 우상들 위에 계신다!”라는 것을 시편 8편과 110편의 말씀을 인용하여서 기도하면서 그들이 이 사실을 꼭 알기를 바랍니다. 이후 바울을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우리가 예수님과 더불어 이 싸움을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이 싸움이 비단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악의 영들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워야 합니다. 영적인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권투선수들이 하는 훈련 중에 ‘쉐도우복싱'이라는 훈련법이 있습니다. 혼자서 마치 상대와 싸우듯이 주먹을 내지르며, 몸을 움직이며 상대방의 주먹을 피하는 연습을 합니다. 저희도 지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악한 영들과 싸워나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수도 있지만 믿음으로 싸워 나갑시다.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그러면서 바울은 단순히 영적인, 마음의 눈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설명에 그치지 않고,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찬양하고, 이야기하기 전에 자신들에게 하신 그 일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 분을 높입니다. 그런 표현을 할 때에 그 하나님이 온 세상의 ‘왕’이 되셨음을 멋지게 말합니다. 산과 산위에 계시는 하나님, 바다보다 넓은 하나님의 능력, 여러분같으면 어떤 표현을 사용해보시겠습니까? 진부한 표현은 그대로 사골국물같은 진함이 있고, 신선한 표현은 신선한 과일처럼 상큼한 맛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어떻습니까? 로마황제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고 만물의 주인이라고 믿고 있는 세상에서의 그리스도가 만물의 머리라고 말합니다. 아주 무서운 말입니다. 찬양을 받을 만한 다른 주인이 있다고 말하기에 역적으로 몰리기에 딱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역적들의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특징은 만물을 발 아래 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살아가고, 그 분의 몸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승리에 대한 멋들어진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소망과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누릴 때에 완전해집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바울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영적인, 마음의 눈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설명에 그치지 않고, 더 큰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 밑밥을 깔고 있습니다. ‘신적전쟁’이라는 표현인데 유대인들은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찬양하고, 이야기하기 전에 자신들에게 하신 그 일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 분을 높입니다. 그런 표현을 할 때에 그 하나님이 온 세상의 ‘왕’이 되셨음을 멋지게 말합니다. 산과 산위에 계시는 하나님, 바다보다 넓은 하나님의 능력, 여러분같으면 어떤 표현을 사용해보시겠습니까? 진부한 표현은 그대로 사골국물같은 진함이 있고, 신선한 표현은 신선한 과일처럼 상큼한 맛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어떻습니까? 로마황제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고 만물의 주인이라고 믿고 있는 세상에서의 그리스도가 만물의 머리라고 말합니다. 아주 무서운 말입니다. 찬양을 받을 만한 다른 주인이 있다고 말하기에 역적으로 몰리기에 딱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역적들의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특징은 만물을 발 아래 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살아가고, 그 분의 몸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승리에 대한 멋들어진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소망과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하나님의 승리를 시작하는 부분으로 볼 때에 알 수 있는 일들입니다.
이런 상상을 한다는 표현을 오늘 성경의 말씀대로 하면 마음의 눈이 밝아집니다. 성경에서 ‘밝아짐’은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 보이는 단어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우리에게 영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셔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영적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기념비를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아니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만드신 기념비를 한 번 집중해서 보겠습니다. 오래되어서 먼지가 쌓여 있는 것 같으니 새겨져 있는 내용을 드러내서 볼 수 있도록 깨끗하게 닦아보겠습니다.
이런 상상을 한다는 표현을 오늘 성경의 말씀대로 하면 마음의 눈이 밝아집니다. 성경에서 ‘밝아짐’은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 보이는 단어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우리에게 영적인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셔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영적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기념비를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아니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만드신 기념비를 한 번 집중해서 보겠습니다. 오래되어서 먼지가 쌓여 있는 것 같으니 새겨져 있는 내용을 드러내서 볼 수 있도록 깨끗하게 닦아보겠습니다.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물의 머리로 만들고 승리를 기념/기억하심

성도들이 영적인 상상을 통해 믿어야 할 내용
성도들이 영적인 상상을 통해 믿어야 할 내용
저희는 지금까지 기념비에 적혀야 할 내용과 기념비를 든든히 받칠 수 있는 받침돌을 준비했습니다. 자, 그래서 아름답게 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러면 이 기념비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웅장하고 멋있게 이 땅에 세우신 기념비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광개토대왕이 영토를 넓혀나가고 세운 비석의 이름을 광개토대왕비라고 부르고, 야곱이 배게로 삼은 돌로 세우고 불렀던 이름은 벧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셔서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기념비의 이름은 바로 ‘교회'입니다.
자, 준비되셨습니까?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마음의 눈이 밝아진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이 영적인 상상을 통해 기념비에 내용으로 기도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알기'가 보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에 ‘영적인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눈’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눈이 작다고 해서 못 본 것도 아니고 눈이 크다고 해선 본 것도 아닙니다. 살아 역사하시지만,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자, 준비되셨습니까?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마음의 눈이 밝아진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이 영적인 상상을 통해 기념비에 내용으로 기도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알기'가 보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에 ‘영적인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눈’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눈이 작다고 해서 못본 것도 아니고 눈이 크다고 해선 본 것도 아닙니다. 살아 역사하시지만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춧돌을 삼고, 기념비에 하나님을 알고, 부르심의 한 소망, 기업의 영광, 하나님의 능력이 세겨져 있는 이 기념비는 예수님 안에서 모든 만물을 충만하게 합니다. 먼저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움을 받으셨습니다. 교회의 머리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제는 교회로 모인 성도들을 통해서 세상을 충만하게 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이미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영적인 상상력을 더 발휘하게 되고, 성령은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더욱 충만하도록 임하십니다.
요한계시록20장 6절 말씀처럼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성육신하셔서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서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신 예수님을 본 사람이 여기에 혹시 계십니까? 시력이 좋거나 나쁘거나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 우리는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알게 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그 분께서 우리에게 충만히 임재하며 역사하셔서 깨닫게 하실 때, 특히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고 읽을 때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더욱 알아갑니다.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성육신하셔서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서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신 예수님을 본 사람이 여기에 혹시 계십니까? 시력이 좋거나 나쁘거나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 우리는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알게 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그분께서 우리에게 충만히 임재하며 역사하셔서 깨닫게 하실 때, 특히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고 읽을 때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더욱 알아갑니다.
6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6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향하여서 왕 노릇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서 세상에 자신이 행하신 일을 기념하고 기억하게 하시려고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여주어야 하는 기념비입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알게 되는 일이 복된 일입니다. 도마의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른 제자들이 보았다고 말했지만 “그 손의 못 자국에, 허리의 창자 국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도마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이 복되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마음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욱 아는 복 된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알게 되는 일이 복된 일입니다. 도마의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른 제자들이 보았다고 말했지만 “그 손의 못자국에, 허리의 창자국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도마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이 복되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마음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욱 아는 복 된 자들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본다면 하나님이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교회를 이 땅에 세워놓으셨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교회가 소망과 풍성함과 능력의 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을 하나로 불러 모아주셨고, 사랑으로 풍성함을 느끼게 해주시고, 능력의 크심을 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기념비에 하나님께서 아로새겨 놓으신 글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바울의 기도에서 우리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교회는 십자가가 세워져있다고 교회가 아니고, 건물이 있다고 해서 교회가 아닙니다. 물론 십자가와 건물도 보이는 교회를 구성하기 위한 요소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저희가 더 생각해보아야할 것은 소망과 풍성함과 능력의 크심이 존재하냐 하지 않냐 입니다. 요즘 우리 한국교회를 보면 과연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지 한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몇몇 사람들과 몇몇 교회라고 부르기에는 우리도 그들과 너무 닮아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소망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소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생각이 있어야겠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풍성함이 있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풍성함이 존재합니까? 우리에게 그 분이 만물위에 계셔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능력의 크심이 있습니까? 소망과 풍성함과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사라지고, 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기념비를 보면서 우리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교회는 십자가가 세워져있다고 교회가 아니고, 건물이 있다고 해서 교회가 아닙니다. 물론 십자가와 건물도 보이는 교회를 구성하기 위한 요소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저희가 더 생각해보아야할 것은 소망과 풍성함과 능력의 크심이 존재하냐 하지 않냐 입니다. 요즘 우리 한국교회를 보면 과연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지 한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몇몇 사람들과 몇몇 교회라고 부르기에는 우리도 그들과 너무 닮아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소망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소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생각이 있어야겠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풍성함이 있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풍성함이 존재합니까? 우리에게 그 분이 만물위에 계셔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능력의 크심이 있습니까? 소망과 풍성함과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사라지고, 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기념비에 새겨진 내용이 훼손되거나 가려지지 않고 또렷하게 보여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기억하기 위해서 세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승리를 기억하고 기념하게 하는 공동체가 되어야겠습니다. 괴정제일교회,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평로449번길 17이라는 주소를 가지고 있는 이 교회가 사하시장 안에, 괴정 4동에, 사하구에, 부산에, 대한민국에 세워져 있는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려 나가며 예수님의 승리를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기념비로 모여서 승리를 경험하고 계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 기념비의 내용이 더욱 진하게 세겨지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부르심의 소망에 거하며, 기업의 영광을 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고백합시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기념비로 모였다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이 지역사회에는 교회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게 하셨다면 가정과 직장과 학교와 삶의 자리에서는 여러분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기념비가 되어서 그 승리를 기억하고 기념합시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입으로만 말고, 행동으로 삶으로 그분의 승리를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소원하기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히사 하나님의 소망,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우리를 통해서 그 승리가 나타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해야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입으로만 말고, 행동으로 삶으로 그분의 승리를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소원하기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히사 하나님의 소망,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우리를 통해서 그 승리가 나타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위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주시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면 교회에 양육 및 훈련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들 하나하나 살펴보시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단순히 교회에서 하니깐, 아니면 내가 어떤 사역을 하기 위해서, 직분을 받기 위해서 참여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 영적성장훈련에 참가해봅시다.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위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주시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면 교회에 양육 및 훈련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들 하나하나 살펴보시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단순히 교회에서 하니깐, 아니면 내가 어떤 사역을 하기 위해서, 직분을 받기 위해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 영적 성장훈련에 참가해봅시다.
또 기념비에 먼지로부터 드러내니 ‘부르심의 소망'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를 때에 우리 인생은 소망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열심히 살지만 그 열심히 사는 소망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웠습니다. 유리 방황하는 인생으로 하루 하루를 그냥저냥 살았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자들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내어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백성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이 부르심은 우리를 한 교회로 모이게 하셨습니다. 에베소교회의 상황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고, 남자와 여자가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상전과 종이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서 교회 밖에서는 하나가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 기념비에 먼지로부터 드러내니 ‘부르심의 소망'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를 때에 우리 인생은 소망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열심히 살지만, 그 열심히 사는 소망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웠습니다. 유리 방황하는 인생으로 하루하루를 그냥저냥 살았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내어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백성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이 부르심은 우리를 한 교회로 모이게 하셨습니다. 에베소교회의 상황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고, 남자와 여자가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상전과 종이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서 교회 밖에서는 하나가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하나로 만드셔셔 함께 구원 받는 자리로 나아가게 하시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의 소망으로 나와 하나 되는 일이 쉽지 않았기에 에베소서 4장에 보시면 “부르심에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하면서 “서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로 명령합니다. 몸도, 성령도, 주님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부르심의 소망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하나로 만드셔서 함께 구원받는 자리로 나아가게 하시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의 소망으로 나와 하나 되는 일이 쉽지 않았기에 에베소서 4장에 보시면 “부르심에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하면서 “서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로 명령합니다. 몸도, 성령도, 주님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부르심의 소망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그러면 또 상상해봅시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는 어떻게 ‘부르심의 소망'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몇 주안에 실버구역이 새롭기 시작되고, 구역모임의 방학이 끝납니다. 함께 모일 기회가 생기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로 부르셨기에 그 부르심 안에서 시작되는 모임들을 부르심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심으로 누립시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그러면 또 상상해봅시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는 어떻게 ‘부르심의 소망'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몇 주안에 실버구역이 새롭기 시작되고, 구역모임의 방학이 끝납니다. 함께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로 부르셨기에 그 부르심 안에서 시작되는 모임들을 부르심 안에서 하나되게 하심으로 누립시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습니까? 기업의 영광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업의 영광이라고 하니 우리가 하나님께 상속받을 기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원래 그 의미를 살려리면 ‘그의 기업의 영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기업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 부르심의 소망으로 부름을 받아서 살고 있는 우리들, 성도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한 말씀을 들어봅시다.
그다음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습니까? 기업의 영광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업의 영광이라고 하니 우리가 하나님께 상속받을 기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원래 그 의미를 살릴려면 ‘그의 기업의 영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기업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 부르심의 소망으로 부름을 받아서 사는 우리, 성도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한 말씀을 들어봅시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과 20절입니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으로 영광을 누리며 삽니다. 세상이 모른다 하여도,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바라보며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를 돌아보면 ‘과연 내가 하나님의 영광일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부어졌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이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상상하여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영적 상상인 필요하고 이 영광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이 영광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누릴 수 있겠습니까? 다시 또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주일’예배'를 사모하며 나와 집중합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고, 그 영광을 다시 올려 드리기 위해서 예배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함께 모여 예배드리라고 하신 이날,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고 기대하고 나오셨습니까? 그 영광을 풍성히 누리기 위해 더 기도하시고 기대합시다.
한 줄 더 새겨져 있는 문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무한하고 초월적인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서 네 가지 단어를 사용합니다. 위력이라고 하면서 장애물을 극복하는 힘, 힘이라고 하면서 무엇인가 앞으로 내지르는 힘, 역사하심이라고 하면서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힘, 능력이라고 하면서 목표한 것을 이루어 내는 힘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바울의 표현과 더불어 영적인 상상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 크고 위대함을 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을 알고, 부르심의 소망으로 부름을 받아, 그 기업의 영광이 된 자들에게 있기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인데 이 능력을 우리가 어디에 어떻게 쓰면 좋겠습니까? 성도로 부르심을 받아서 살고 있으니, 교회로 함께 모여 있으니 교회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다들 이 시간 예배의 자리로 나오기 전에 많은 일을 하신 줄 압니다. 교사로, 안내로, 주차 봉사로, 차량으로, 예배를 도우며, 식당에서, 또 제가 언급하지는 못하였지만 많은 일을 하실 줄로 압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이 모든 일을 잘 감당합시다. 기념비에 새겨질 내용은 하나님을 알아가기, 부르심의 한 소망, 하나님 안에서 성도의 영광,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으로 영광을 누리며 삽니다. 세상이 모른다하여도,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바라보며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를 돌아보면 ‘과연 내가 하나님의 영광일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부어졌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이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상상하여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주신 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바라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영광의 존재들입니다. 불러주셔서 얻게 하신 이 영광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누릴 수 있겠습니까?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예배'의 자리로 나아옵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고, 그 영광을 다시 올려 드리기 위해서 예배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 능력의 증거
한 줄 더 세겨져 있는 문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무한하고 초월적인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서 네 가지 단어를 사용합니다. 위력이라고 하면서 장애물을 극복하는 힘, 힘이라고 하면서 무엇인가 앞으로 내지르는 힘, 역사하심이라고 하면서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힘, 능력이라고 하면서 목표한 것을 이루어 내는 힘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것을 뛰어 넘을 만큼 크고 위대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을 알고, 부르심의 소망으로 부름 받아, 그 기업의 영광이 된 자들에게 있기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인데 이 능력을 우리가 어디에 어떻게 쓰면 좋겠습니까? 성도로 부르심을 받아서 살고 있으니, 교회로 함께 모여 있으니 교회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다들 이 시간 예배의 자리로 나오기 전에 많은 일들을 하셨는 줄 압니다. 교사로, 안내로, 주차봉사로, 차량으로, 예배를 도우며, 식당에서, 또 제가 언급하지는 못하였지만 많은 일들을 하실 줄로 압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이 모든 일들을 잘 감당합시다. 기념비에 새겨질 내용은 하나님을 알아가기, 부르심의 한 소망, 하나님 안에서 성도의 영광,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 능력의 증거
하나님의 은혜만큼 커다란 기념비에 적힌 글자 잘 보셨습니까? 그러면 이 기념비를 굳건히 서 있게 하는 받침돌을 보겠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서 에베소교회에 그 받침돌은 예수님의 사역과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물의 권세라고 알려줍니다. 이 받침돌은 믿는 자들의 믿음의 근본입니다. 받침돌은 부활과 승천, 재림입니다. 더 많은 영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신 일,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승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증인과 성경을 통하여서 듣게 된 사건이지만 실제로 보지 못했습니다. 다시 오심은 어떻습니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계속 말씀드렸듯이 지혜와 계시의 영이 알게 하시며, 마음의 눈을 밝혀주셨기 때문에 믿습니다. 그 내용이 20절부터 22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영적 상상력을 가지고 한목소리로 크게 읽어보겠습니다.
기념비에 한 자 한 자 잘 아로새기셨습니까? 그러면 이 모든 것을 굳건히 세울 받침돌이 필요합니다. 기념비 못지 않게 중요한 돌입니다. 기도하면서 바울이 에베소교회가 세우기를 원하는 받침돌은 예수님의 사역과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물의 권세입니다. 이 받침돌은 우리의 믿음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받침돌은 부활과 승천, 재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 중에서도 부활, 승천, 재림을 두고 기도합니다. 더 많은 영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신 일,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승천도 마찬가지 입니다. 많은 증인들과 성경을 통하여서 듣게 된 사건이지만 실제로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오심은 어떻습니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알게 하시며, 마음의 눈을 밝혀주셨기 때문에 믿습니다. 그 내용이 20절부터 22절에 잘 나와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영적상상력을 가지고 우리 한 목소리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영적인 상상력으로 읽으시니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좀 실감이 나십니까? 이 능력을 주춧돌로 삼는다는 것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싸우는 대상이 있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21절에 나오는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에 대해서 나오는데 하늘의 영적 존재들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에베소에 유명한 아데미신전이 있었고, 이방인의 도시였으니 분명히 온갖 신들이 있었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그 영적인 존재를 믿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입니다. 이후 바울을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우리가 예수님과 더불어 이 싸움을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영적인 상상력으로 읽으시니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좀 실감이 나십니까? 이 능력을 주춧돌로 삼는다는 것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싸우는 대상이 있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21절에 나오는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에 대해서 나오는데 하늘의 영적존재들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에베소에 유명한 신전이 있습니다. 아데미 신전이 있었고, 이방인의 도시였으니 분명히 온갖 신들이 있었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그 영적인 존재를 믿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입니다. 그런 가운데 바울이 다시 한 번 “우리 예수님이 그 모든 우상들 위에 계신다!”라는 것을 시편 8편과 110편의 말씀을 인용하여서 기도하면서 그들이 이 사실을 꼭 알기를 바랍니다. 이후 바울을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우리가 예수님과 더불어 이 싸움을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이 싸움이 비단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악의 영들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싸워야 합니다. 영적인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권투선수들이 하는 훈련 중에 ‘섀도복싱'이라는 훈련법이 있습니다. 혼자서 마치 상대와 싸우듯이 주먹을 내지르며, 몸을 움직이며 상대방의 주먹을 피하는 연습을 합니다. 저희도 지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악한 영들과 싸워나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왕’이 되셨음을 멋지게 말합니다. 산과 산 위에 계시는 하나님, 바다보다 넓은 하나님의 능력, 여러분 같으면 어떤 표현을 사용해보시겠습니까? 낡은 표현은 그대로 사골국물 같은 진함이 있고, 신선한 표현은 신선한 과일처럼 상큼한 맛이 있습니다. 바울의 시편 8편 6절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와 시편 110편 1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를 인용하여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합니다. 로마 황제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고 만물의 주인이라고 믿고 있는 세상에서의 그리스도가 만물의 머리라고 말합니다. 아주 무서운 말입니다. 찬양을 받을 만한 다른 주인이 있다고 말하기에 역적으로 몰리기에 딱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역적들의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특징은 만물을 발아래 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살아가고, 그분의 몸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승리에 대한 멋들어진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소망과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누릴 때 완전해집니다.
이 싸움이 비단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악의 영들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워야 합니다. 영적인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권투선수들이 하는 훈련 중에 ‘쉐도우복싱'이라는 훈련법이 있습니다. 혼자서 마치 상대와 싸우듯이 주먹을 내지르며, 몸을 움직이며 상대방의 주먹을 피하는 연습을 합니다. 저희도 지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악한 영들과 싸워나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수도 있지만 믿음으로 싸워 나갑시다.
예수님을 만물의 머리로 만들고 승리를 기념/기억하심
그러면서 바울은 단순히 영적인, 마음의 눈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설명에 그치지 않고,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찬양하고, 이야기하기 전에 자신들에게 하신 그 일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 분을 높입니다. 그런 표현을 할 때에 그 하나님이 온 세상의 ‘왕’이 되셨음을 멋지게 말합니다. 산과 산위에 계시는 하나님, 바다보다 넓은 하나님의 능력, 여러분같으면 어떤 표현을 사용해보시겠습니까? 진부한 표현은 그대로 사골국물같은 진함이 있고, 신선한 표현은 신선한 과일처럼 상큼한 맛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어떻습니까? 로마황제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고 만물의 주인이라고 믿고 있는 세상에서의 그리스도가 만물의 머리라고 말합니다. 아주 무서운 말입니다. 찬양을 받을 만한 다른 주인이 있다고 말하기에 역적으로 몰리기에 딱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역적들의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특징은 만물을 발 아래 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살아가고, 그 분의 몸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승리에 대한 멋들어진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소망과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누릴 때에 완전해집니다.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물의 머리로 만들고 승리를 기념/기억하심
저희는 지금까지 기념비에 적혀야 할 내용과 기념비를 든든히 받칠 수 있는 받침돌을 준비했습니다. 자, 그래서 아름답게 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러면 이 기념비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웅장하고 멋있게 이 땅에 세우신 기념비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광개토대왕이 영토를 넓혀나가고 세운 비석의 이름을 광개토대왕비라고 부르고, 야곱이 베개로 삼은 돌로 세우고 불렀던 이름은 벧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셔서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기념비의 이름은 바로 ‘교회'입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기념비에 적혀야 할 내용과 기념비를 든든히 받칠 수 있는 받침돌을 준비했습니다. 자, 그래서 아름답게 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러면 이 기념비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웅장하고 멋있게 이 땅에 세우신 기념비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광개토대왕이 영토를 넓혀나가고 세운 비석의 이름을 광개토대왕비라고 부르고, 야곱이 배게로 삼은 돌로 세우고 불렀던 이름은 벧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셔서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기념비의 이름은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춧돌을 삼고, 기념비에 하나님을 알고, 부르심의 한 소망, 기업의 영광, 하나님의 능력이 새겨져 있는 이 기념비는 예수님 안에서 모든 만물을 충만하게 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6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춧돌을 삼고, 기념비에 하나님을 알고, 부르심의 한 소망, 기업의 영광, 하나님의 능력이 세겨져 있는 이 기념비는 예수님 안에서 모든 만물을 충만하게 합니다. 먼저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움을 받으셨습니다. 교회의 머리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제는 교회로 모인 성도들을 통해서 세상을 충만하게 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이미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영적인 상상력을 더 발휘하게 되고, 성령은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더욱 충만하도록 임하십니다.
6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2장 6절 말씀처럼
6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향하여서 왕 노릇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서 세상에 자신이 행하신 일을 기념하고 기억하게 하시려고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여주어야 하는 기념비입니다. 교회가 세워진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본다면 하나님이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교회를 이 땅에 세워놓으셨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교회가 소망과 풍성함과 능력의 크심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을 하나로 불러 모아주셨고, 사랑으로 풍성함을 느끼게 해주시고, 능력의 크심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향하여서 왕 노릇합니다.
기념비를 보면서 우리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교회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고 교회가 아니고, 건물이 있다고 해서 교회가 아닙니다. 물론 십자가와 건물도 보이는 교회를 구성하기 위한 요소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저희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소망과 풍성함과 능력의 크심이 존재하냐 하지 않냐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소망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소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생각이 있어야겠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풍성함이 있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풍성함이 존재합니까? 우리에게 그분이 만물 위에 계셔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능력의 크심이 있습니까? 소망과 풍성함과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사라지고, 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기념비에 새겨진 내용이 훼손되거나 가려지지 않고 또렷하게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서 세상에 자신이 행하신 일을 기념하고 기억하게 하시려고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여주어야 하는 기념비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눈이 밝아져 하나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도 그 승리를 기억하고 기념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괴정제일교회,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평로449번길 17이라는 주소를 가지고 있는 이 교회가 사하시장 안에, 괴정 4동에, 사하구에, 부산에, 대한민국에 세워져 있는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려 나가며 예수님의 승리를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기념비로 모여서 승리를 경험하고 계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 기념비의 내용이 더욱 진하게 새겨지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부르심의 소망에 거하며, 기업의 영광을 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고백합시다.
교회가 세워진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본다면 하나님이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교회를 이 땅에 세워놓으셨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교회가 소망과 풍성함과 능력의 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을 하나로 불러 모아주셨고, 사랑으로 풍성함을 느끼게 해주시고, 능력의 크심을 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기념비에 하나님께서 아로새겨 놓으신 글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기념비로 모였다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이 지역사회에는 교회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게 하셨다면 가정과 직장과 학교와 삶의 자리에서는 여러분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기념비가 되어서 그 승리를 기억하고 기념합시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입으로만 말고, 행동으로 삶으로 그분의 승리를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소원하기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히사 하나님의 소망,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우리를 통해서 그 승리가 나타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기념비를 보면서 우리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교회는 십자가가 세워져있다고 교회가 아니고, 건물이 있다고 해서 교회가 아닙니다. 물론 십자가와 건물도 보이는 교회를 구성하기 위한 요소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저희가 더 생각해보아야할 것은 소망과 풍성함과 능력의 크심이 존재하냐 하지 않냐 입니다. 요즘 우리 한국교회를 보면 과연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지 한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몇몇 사람들과 몇몇 교회라고 부르기에는 우리도 그들과 너무 닮아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소망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소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생각이 있어야겠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풍성함이 있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풍성함이 존재합니까? 우리에게 그 분이 만물위에 계셔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능력의 크심이 있습니까? 소망과 풍성함과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사라지고, 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기념비에 새겨진 내용이 훼손되거나 가려지지 않고 또렷하게 보여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기억하기 위해서 세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승리를 기억하고 기념하게 하는 공동체가 되어야겠습니다. 괴정제일교회,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평로449번길 17이라는 주소를 가지고 있는 이 교회가 사하시장 안에, 괴정 4동에, 사하구에, 부산에, 대한민국에 세워져 있는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려 나가며 예수님의 승리를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기념비로 모여서 승리를 경험하고 계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 기념비의 내용이 더욱 진하게 세겨지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부르심의 소망에 거하며, 기업의 영광을 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고백합시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기념비로 모였다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이 지역사회에는 교회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게 하셨다면 가정과 직장과 학교와 삶의 자리에서는 여러분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기념비가 되어서 그 승리를 기억하고 기념합시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입으로만 말고, 행동으로 삶으로 그분의 승리를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소원하기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히사 하나님의 소망,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우리를 통해서 그 승리가 나타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벧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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