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에게 예수님을 전하다

괴정제일교회다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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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드라마 듣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기억이 나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좋았했던 드라마는 ‘격동의 50년’과 ‘삼국지’였습니다. 성우들이 나와서 각자 맡은 배역을 연기하고 중간중간 설명을 해주는 성우, 나레이터가 상황을 설명해주는데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듣는 내내 숨을 죽이고 집중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방송이 끝나면 내일 방송을 상상하며 기다렸습니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니 ‘삼국지’를 듣고는 아버지께 삼국지 소설을 사달라고 졸랐고, ‘삼국지’라는 소설에 푹빠졌고 ‘격동의 50년’을 듣고서는 한국현대사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드라마 라디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저라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향을 끼치는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이 움직이고, 그 삶이 변화됩니다. 당연히 저도 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움직이고 삶이 변화된 사람이고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아니라면 이 강추위를 뚫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올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추운 날씨지만 나오셨으니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에 은혜가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왔습니다. 베드로가 가고 싶어서, 고넬료가 베드로가 보고 싶어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왜 모여 있습니까? 성령께서 그들을 그렇게 모여 있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있을 때 하늘로부터 부정한 동물이 보자기에 쌓여 내려오는 환상을 경험했고, 그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방인들에게 가는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고넬료에게는 천사가 나타나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고넬료가 예수님을 믿게 하시기 위해서 같은 시간에 다른 두 사람을 준비시켰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와서 이야기를 풀어서 알려주었을 때 그 집에 모인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내용입니다. 너무 간단하지 않습니까? 너무 짧아서 놀라셨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그들이 놀란 것처럼 놀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예수님의 명령,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가 이루어지며, 성령님께서 믿는 사람들을 바람으로 움직이는 돛단배와 같이 움직이시며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크게 숨을 들이 마시고, 내뱉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무게 있고 진중하게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하면서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선언합니다. 34절에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고,,,” 즉 하나님은 그 사람의 겉모습에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를 선택하시지 않는다는 의미였고, 고넬료는 이방인이었기에 ‘과연 하나님의 백성일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지만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 즉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에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는데 예수님의 생애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종종 오해하고 있는 말일 수 있는데 복음은 구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구원받는 이야기이지만, 예수님의 이야기의 효력이며 조목조목 구원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우리 예수님을 이야기합니까? 그는 먼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시점과 시작이 세례 요한의 세례부터라고 이야기하며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받으시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음을 알려줍니다.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과 능력이 충만하여 선한 일을 하고, 마귀에 눌린 사람을 치료하며 억눌리고, 잡힌 자를 자유케 하신 일을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일어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일어난 이야기, 그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저희가 생각할 때에는 베드로가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이야기만 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베드로는 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도행전은 그 이야기를 누가가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선한 일과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고치시는 이야기를 열심히 전했습니다.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았던 예수님의 기적을 기쁨으로 전했고, 자신이 직접 들었던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감사함으로 전합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일을 하는 그 마음에 중심에는 “이 일은 예수님의 증인인 내가 당연히 해야하는거야”라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는’이라는 말로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로, 사도로 부름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 되었음을 떠올립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죽였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고, 예수님은 자신들과 함께 먹고 마심으로 다시 살아나신 것을 증거합니다.
화평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다시 화평하게 만드셨고, 이 화평의 은혜가 먼저는 유대인들에게 주어졌지만,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같은 사도들을 증인으로 세우셔서 이방인들에게도 이 은혜의 범위가 넓혀지게 하셨습니다. 이방인들까지 포함되는 은혜는 유대인들이 누렸던 은혜보다 더 큰 은혜였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만 유대인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닫아놓은 마당 밖에서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 기웃기웃하고 있었는데 지금 베드로는 그에게 마당 문을 활짝 열고서 “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들어오셔서 이제 함께 우리와 좋은 집에서 지냅시다!”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화평의 은혜, 넓어지는 은혜 모두를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셨기에 누구나 차별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43절의 말씀입니다.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라고 하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인종, 문화, 사상, 직업에 상관없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고넬료와 그 가정은 베드로가 전하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들의 입으로 “우리가 이 모든 이야기를 믿습니다!”라고 말하기도 전에 곧바로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그 영을 기다렸던 사람들과 그 이후에 예수님을 믿게 된 유대인들에게 임하였던 그 성령께서 고넬료와 그 집에 모여 있던 자들, 이방인에게도 동일하게 임하셨습니다. 유대인 신자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 유대인들에게만 성령을 선물로 내려주시는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 이방인들도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조금 강조해서 말하면 ‘심지어’ 이방인들에게까지도 성령이 임한 일로 놀랐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순절에 그들에게 성령으로 임재하신 것처럼 이방인들에게 임재하셨기에 ‘이방인들의 오순절’이라고 불려도 무방한 사건이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납니다.
사도행전에는 새로운 생명, 하나님의 백성이 됨, 성령의 임재에 대한 증거가 여러 가지 기록되어 있는데 ‘방언’은 그중 하나일 뿐이며 언제나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 그 일이 일어날 때는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방언’하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베드로와 그와 함께 있던 할례받은 남자들, 즉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할례받지 않은 이 사람들도 성령의 임재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릇으로 여기심을 알아야 했습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시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간 베드로를 비방하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사도들이 이방인에게 예수님이 하신 일에 증인이 되게 하신 것처럼 베드로와 그 유대인 형제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베푸신 구원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이제 고넬료와 그 가정이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의 일원이 되는데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크게 숨을 쉬며 진중하게 이야기를 시작할 때 말하였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라는 선언이 성령의 임재로 확실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이방인들을 받아들이셨음으로 교회도 그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47절에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라고 하면서 베드로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그들을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세례를 행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그들은 하나의 신앙을 가진 교회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 뒤 고넬료의 요청에 따라 베드로와 그 일행, 고넬료과 그 가정은 함께 며칠을 더 보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집에 있는 것을 부정하다고 여긴 사람들에게 ‘며칠 더’ 보내는 일은 그들이 하나의 믿음으로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더는 인종적, 지리적, 문화적, 도덕적 장벽 없이 모두에게 용서와 새 생명을 주십니다. 고넬료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어서 문밖에서 기웃거리면서 환영받고, 용서받고, 치유받고, 변화받기를 원했지만 닫혔던 문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열렸습니다.
오늘 베드로의 설교내용과 고넬료와 그 가정에 성령께서 내리시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습니까? 먼저 하나님은 차별이 없으신 분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며, 하나의 공동체는 하나의 믿음으로 증명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움직여 이 자리에 모여있습니다. 저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매서운 한파를 맞으며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문밖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문을 열고 이 집으로 초대할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누추한 옷차림, 다른 피부색, 다른 정치성향, 가치관 등등 하나하나 검사하고 들어오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차별이 없으시기에 우리도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차별 없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증거하는 우리가 됩시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의 믿음이 우리에게 있게 때문입니다. 차이를 차별로 만들지 맙시다. 차이를 인정하면서 하나님께서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나갑시다. 서로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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