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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랑하셨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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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 Transcripts
정말 사랑하셨나이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어떤 때는 하나님이 참으로 가깝게 느껴지고, 어떤 때는 하나님과 결별한 듯한 느낌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종종 묻는 구원의 확신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 그 사람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나타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이 문제에 대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와 같은 신앙을 극복하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길 원합니다.
1. 당시의 상황
말라기서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멸망 후 포로 생활을 끝내고 세 차례의 귀환을 한 이후에 쓰여진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 귀환을 한 이후에 했던 일은 성전 재건과 성벽재건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사명이었고, 그들의 정체성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사실상 택한 백성 곧 선민이라는 의식 속에 사로잡혀 있던 자들에게 자신들이 범죄로 인한 나라의 멸망과 포로귀환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성전 재건과 성벽 재건의 사명은 잃었던 그들의 정체성을 되찾고 여전히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돌아오면서 상당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왔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그들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들이 떠나 있던 땅에는 이방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고, 그들의 영향력을 여전히 행사하려고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성전 재건과 성벽 재건 더욱 힘든 일이었습니다. 주변의 대적과 공격에 계속 시달려야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참으로 많은 수고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처했던 당시 상황들을 스가랴나 느헤미야의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면, 비록 당시의 페르시아 정부가 식민지 백성에 대하여 문화나 종교적 유화 정책을 쓰고 있었다고는 해도 정치적인 억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실직자들이 많아지고(), 느헤미야 이전에 귀환한 이들을 통치했던 페르시아에서 온 권력자들에게 납부해야 하는 세금이 그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위해 거두었던 성전세가 부족하게 되자 레위인들까지도 농업에 종사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부담을 심하게 느낀 사람들은 자녀들을 노예로 팔기까지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5). 이런 중에 하나님이 보내신 학개와 스가랴와 같은 선지자들의 독려를 받으며 힘들게 성전 재건을 했고, 당시 페르시아 황제의 술관원장이었던 느헤미야가 엄청난 지원을 받아서 유다의 총독으로 온 이후 성벽 재건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시는 복으로 인해 부강하여지며, 번영을 누릴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난했습니다. 주변의 위협은 여전히 존재하였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예언자들이 외쳤던 꿈과 희망이 넘치는 사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제적인 피폐만이 계속되었습니다.
2. 백성들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
이런 중에 귀환한 백성들이 했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 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시지만, 하나님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맞으십니까?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증거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라며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심하기 시작한 이 백성들은 그들의 신앙도 변질되었습니다. 먼저 그들의 예배가 변해 버렸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드릴 제물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드리지 않고 자기들이 편의에 따라 대충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흠이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하는데, 병든 것, 문제 있는 것들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 일에 제사장들은 이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백성들에게 편의를 봐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 부를 주시지도 않는 것 같고, 먹고 사는 문제가 쉽지 않은 때이니 그냥 아무것이나 드려도 된다며 용인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배려하고 생각한다고 하는 것이었겠지만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나타난 모습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대한 멸시를 행했던 것입니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신분을 소홀히 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던 그 명령을 어기며 소홀히 여겼습니다. 우상 숭배를 하는 이방의 딸들과 결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사돈 관계를 맺으면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을 쉽게 볼 수 있을 터이니 말입니다. 또한 너무나도 쉽게 이혼을 하는 등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매우 소홀히 하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어디 있느냐며 하나님께 반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삶에 있어서 그들이 생각하는 만족할 만한 응답과 채우심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행동을 하면서도 그들이 지금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습니다. 그들이 우상 숭배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그들의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잘못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도 백성들은 오히려 ‘하나님께 우리가 뭘 잘못했습니까?’ 라고 물으면서 자기들의 상황에 따라 하나님과 상관없이 결정하고 행동을 하였습니다.
적용
적용
환경과 상황이 어려울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가장 첫 번째 큰 문제는 하나님이 과연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는가에 대한 확신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귀환한 백성들은 성전 재건과 성벽 재건이라는 일에 그들 자신이 헌신하였고, 율법에 규정한 대로 절기와 제사를 드리는 등의 일을 감당했음에도 여전히 그들이 기대했던 풍요와 만족이 이르지 않자 근본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의심은 우리에게도 나타납니다.
오늘날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어려움 때문에 세상에서는 살벌하게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부모와 자식이, 형제가 서로의 연을 끊기도 하며,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이런 어려움은 그리스도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경제적인 것 뿐만 아니라, 장래를 꿈꾸며 나아가야 할 크리스천 청년들과 청소년들에게도 암담한 상황과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이 문제를 돌파해 보려고 기도하고 몸부림 쳐 보지만, 어찌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을 때 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는 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나하고 관계하시기는 하시는 걸까... 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존재까지도 의심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의심을 뒤따라서 우리의 신앙이 변질되고 생활이 피폐해집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상황에 의해서 나의 믿음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으로 인해 나의 신앙의 삶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겨우 종교적인 행위만 하며 유지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내 생활에서 과연 말씀이 가르치고 있는 대로 삶의 원칙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신앙 자체를 삶 속에서 숨기거나 삶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신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러하지 않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려 있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실제로 내 삶 속에서는 별로 효과적이거나 상관없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의 답변
이러한 백성들의 의심에 대하여 하나님은 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그들 가운데 있다고 답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예로서 야곱과 에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하나님은 야곱이 에서의 동생인데도 하나님께서 에서는 미워하였고, 야곱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미워하다’와 ‘사랑하다’는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언약적인 선택하심을 나타낼 때 주로 쓰인 말인데, 하나님은 야곱이 에서의 동생인데도 특별히 선택하여 사랑하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과연 하나님께 선택받을만한 그런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난 에서와 야곱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에서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고 야곱이 선택받을 만한 일을 한 적도 그럴 이유도 없는데 하나님은 야곱을 모태로부터 아브라함의 언약을 상속할 자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일들보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일방적인 은혜를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놓고 바울 사도는 서 은혜 가운데 그의 주권으로 택하심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이 이야기를 꺼내고 있습니다.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즉, 하나님은 그들이 처한 상황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의심하는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야곱을 일방적으로 선택했고 사랑했는데, 야곱의 후손이 너희들도 내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말라기 전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결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고, 경외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조차 무거운 짐으로 여기기까지 하였습니다. 바로 그처럼 패역한 자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2절 하반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에돔에 대해서 어떻게 하실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말라기가 쓰인 당시는 에돔이라는 나라가 한 국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세력을 가지고 유다 주변에 조금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에돔에 대해서 이런 예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이 말씀은
‘하나님은 말씀에서 이 바벨론이 그들의 나라를 다시 재건하려 할 것이지만, 그들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것이며 영원히 페허로 남게 될 것인데, 하나님을 대적하던 나라로서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바벨론이 남유다를 함락시킬 때, 에돔은 바벨론을 도와서 남 유다를 치는데 함께 했었습니다(). 그래서 남 유다 멸망 후에 에돔은 유다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에돔은 역사에서 사라지는데, 많은 학자들에 의하면 에돔은 BC 552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추측합니다. 즉, 바벨론이 남유다를 공략하는데 앞장을 섰던 에돔이 바벨론에 의해서 종말을 맞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훗날 페르시아가 통치하던 시기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 민족이 귀환하여 나라를 재건하였고, 반면에 바벨론 군을 도와서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그 대가로 유다 땅을 차지하시다시피 했던 에돔이 오히려 바벨론에 멸망당해서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5]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말씀하시면서, 3-4절에서 말씀하시는 이와 같은 것을 그들의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에돔이 망하고 이스라엘이 남아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적용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선조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맺으신 언약에 관하여, 또한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딪히는 문제들 가운데 파묻혀서 ‘정말 그러하다면, 그 증거를 보여주십시오.’라고 땡깡을 부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과거로부터 그 백성을 어떻게 택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백성을 특별하게 여기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행해 오셨던 것을 그들에게 증거로 제시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역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왔을 때,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그 사랑에 대한 의심이 생길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계신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행하셨던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그리고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입니다. 인간적인 어떤 가치 기준에 의함이 아니라 아무런 자격 없는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희생을 시키신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이제 와서 우리에게 실망하시어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이제 와서 덮어 버리실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하신 사랑은 인간적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무조건적인 은혜에 따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기억할 때, 우리는 믿음의 흔들림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어려운 상황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는 백성들의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상황에 매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무 자격도 없는 우리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심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을 확증시키시면서까지 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가장 소중한 것을 우리와 바꾸시면서 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그의 영원으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고 어떤 상황에 있어서든지, 인간적 환경과 형편에 좌지우지 되지 않고 하나님과의 온전한 사랑의 관계를 누리며 기쁨 가운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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