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0UNLIKELY
Disgust
0UNLIKELY
Fear
0UNLIKELY
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59LIKELY
Conscientiousness
0.13UNLIKELY
Extraversion
0.46UNLIKELY
Agreeableness
0.61LIKELY
Emotional Range
0.34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 .5
.5 - .6
.6 - .7
.7 - .8
.8 - .9
> .9
이것이 예배 질서 유지를 위해 준 권면이다.
‘양보의 원리’
즉, 양보하는 의무는 나중 된 자가 아닌 먼저 된 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양보는 윗 사람이 아닌 아랫 사람, 앞선 사람이 아닌 뒤에 선 사람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세상은 그렇다.
어른에 대해서는 어린아이들이 양보해야 한다.
찬 물도 위아래가 있듯이 고참에 대해서는 신참이 양보해야 하고, 상관에게 부하가 양보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없는 세상의 이치이다.
믿는 사람의 이치는 세상 사람들의 것과는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양보를 해도 먼저 믿은 사람이, 앞선 사람이 먼저 해야한다는 것이다
선지자로서 세례 요한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는가? 자기의 생명을 걸고 유대인들로부터 종교 정치 지도자인 사두개인, 바리새인, 심지어 헤롯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죄악상을 거침없이 질타한 업적(?)에 있습니까?
물론 그것을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가 자기보다 뒤에 오실 약속된 선지자인 예수님을 위해 자리를 아낌없이 양보했다는 데서 그의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다.
여러분이라면 과연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뒤에 오면서도 여러분을 능가하는 사람을 볼 때, 과연 그를 위해 자기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중국 주나라 때의 사상가인 노자는 이런 말을 했다.
“성인(구별된자)은 남보다 앞서기 위한 다툼을 하지 않고, 항상 양보하므로 남보다 앞서가고, 그 몸을 사욕에 쏠리지 않게 함으로써 자신을 오래 보존하는 것이니, 나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니랴! 그러므로 도리어 자기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내가 높은 지위에 있고, 내가 항상 좋은 자리에 있으며, 앞선 자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해서 자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정말 큰 사람입니까?
누가 정말 큰 그릇입니까?
누가 정말 앞선 자입니까?
후진 양성, 혹은 나보다 더 나은 후진의 앞길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자기를 희생하고 앞길을 열어주는 인물입니다.
;;;;;;;;;;;;;;;;;;;;;;;;;;;;;;;;;;;;;;;;;;;;;;;;;;;;;;;;;;;;;;;;;;;;;;;;;;;;;;;;;;;;;;;;;;;;;;;;;;;;;;;;;;;;;;;;;;;;;;;;;;;;;;;;;;;;;;;;;;;;;;;;;;;;;;;;;;;;;;;;;;;;;;;;;;;;;;;;;;;;;;;;;;;;;;;;;;;;;;;;;;;;;;;;;
박해자에 불과했던 사울이 어떻게 위대한 사도 바울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겠는가?
그의 앞길을 위해 목회와 선교의 길을 열어주었던 바나바가 아니었다면, 과연 ‘사도 바울'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복음의 전세계적 확장은 물론 이처럼 견고한 신학적 토대를 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내가 모든 자리를 독점하고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변을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오래 믿고, 신앙생활을 오래 했을수록 후진을 살펴야 합니다.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이 잘 마련되고 있는지, 그들의 활동에 내가 장애물이 되고있진 않은지 잘 살펴야 합니다.
lk
1 the
1 cor.
14
은사를 사용함에 있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제제를 받다’ = 종속하다.
복종하다.
굴복하다.
절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성령 충만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경우는 없다.
< .5
.5 - .6
.6 - .7
.7 - .8
.8 - .9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