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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사랑

선교적인 교회 #5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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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 Transcripts | Handout
요한1서 4:17–19 NKRV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17절은 모든 사람이 갖기 원하는 것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그리고 18절은 모든 사람이 없애길 원하는 것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담대함
하나님 앞에서의 담대함
17절에서 요한은 우리에게 심판의 날에 자신감 혹은 담대함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18절에서 요한은 우리의 삶에서 두려움을 내어 쫒을 수 있는 방법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보면 같은 것을 긍정적인 방법과 부정적인 방법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없애는 것은 담대함을 가지는 것의 부정적이 표현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감을 즐길 수 있도록 돕기를 원합니다. 그는 우리가 심판의 두려움으로 우울해하거나 경직되어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심판의 날에 그들을 받아들이실 것이라고 말할 필요 없이 자신감 있는 그리스도인 세대를 생산하는 것보다 요한을 더 기쁘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
요한1서 1:4 NKRV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심판의 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심판의 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저는 우리 모두가 요한처럼 심판의 날을 진지하게 고려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따금씩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자주 그리고 생생하게 말씀하셨던 지옥의 고통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 , , , , , , )
마태복음 5:22 NKRV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29 NKRV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마태복음 10:28 NKRV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8:9 NKRV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태복음 23:15 NKRV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33 NKRV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10:15 NKRV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태복음 11:22–24 NKRV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5:22 NKRV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22 NKRV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29 NKRV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마태복음 5:29 NKRV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마태복음 10:28 NKRV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28 NKRV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8:9 NKRV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태복음 23:15 NKRV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33 NKRV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10:15 NKRV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태복음 11:22–24 NKRV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신약에서 ‘지옥’이라는 단어는 12번 사용되었고, 그 중 11번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예수님은 오늘 본문처럼 심판 또는 ‘심판의 날'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10:14 NKRV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마태복음 10:14–15 NKRV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주님께서는 매우 명확하게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옥의 공포에 대해서 생생하게 말씀하셨습니다. (
마가복음 9:47–48 NKRV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우리는 지옥의 공포를 정말로 믿습니까?
우리는 지옥의 공포를 정말로 믿습니까?
우리가 정말로 이것을 믿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던 이유들 중 하나는, 바로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핵무기의 가능성에 대해서 경고하는 공공의 열심과 얼마나 진실하게 그것을 막기 위하여 노력하는가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고 저는 묻습니다. “최후의 심판 날에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의 홀로코스트가 우리를 이만큼 깊이 두렵게 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가?”
핵은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의 홀로코스트는 성경적으로 확실한 일입니다. 핵은 그저 일시적이고 이 땅에 속한 생명만을 먹어치우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핵 방사선에 의해 발생되는 어떤 질병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절망으로 불신자들을 데려가며 영생을 삼켜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심판의 날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우리들의 마음이 핵의 비극에 대한 가능성으로 두려워 떨 때, 그러한 합당한 이성적 걱정을 이 땅의 생각이라는 한계 내에서 흐르도록 허락하되,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비극 또한 고민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이 세상을 폭탄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충동을 여러분이 느낄 때, 여러분의 마음을 확장시켜서 이웃의 영원한 구원과 세상의 수백만에 이르는 미전도 종족을 향한 구원을 바라는 열망으로 발전시키기를 소망합니다.
담대함으로 심판의 날에 다가가기
요한일서 4장 17절과 18절에 따르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두려움 없는 담대함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요한의 가르침을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이면 그 누구도 다가오는 죽음에 겁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우리 누구도 우리가 과연 통과할까 고민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심판의 날에 대한 담대함'을 주기 위하여, 그리고 ‘두려움을 내어 쫓기 위하여' 이 책을 쓴 것입니다.
17절의 세 부분
17절은 세 부분으로 나뉘게 되는데,
17a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17b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17c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본문은 우리 안에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진 결과가 심판 날의 담대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사랑이 담대함을 주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 부분을 하나씩 차례로 살펴봅시다.
온전한 사랑이 무엇인가?
17a에서 말하는 온전한 사랑은 무엇일까요?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이로써'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17절 이전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그러므로 저는 이 구절의 “이로써"가 우리가 사랑 안에 거하는 것, 또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의미한다고 이해합니다. 여러분이 사랑 안에 거하면, 사랑이 여러분 안에서 온전해집니다.
<하나님의 우리 안에 거하심과 사랑 안에 거하는 우리>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4장 12절의 연결 내용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동일한 두 개의 개념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리 안에 거하심과 우리 안에 온전하여 지는 사랑,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달리 말하면 온전한 사랑이란 우리 안의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때 작동하는 혹은 완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러므로 “온전한 사랑"은 서로를 향한 우리의 사랑 안에서 표현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실수 없는 완전함이 아닙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온전한'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생각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가 온전하여 졌다고 말하면, 그것이 흠이 있는 불완전에서 실수가 전혀 없는 완전한 상태로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사용하는 온전하다는 헬라어 단어는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신약에서는 이 단어를 일반적으로 ‘완성된, 완료된, 성취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행이나 과제가 목표를 달성했을 때 ‘온전하여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온전함이라는 단어의 다른 사용법>
예를 들어, 동일한 단어가 의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사용됩니다.
요한복음 4:34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여기에서 ‘이루다'라는 단어가 , 에서 ‘온전하여진'으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흠 있는 사역을 흠 없이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사명을 받아 그 과제를 행동을 통하여 완수하셨음을 의미합니다. ()
요한복음 5:36 NKRV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에서는 예수꼐서 “내가 목마르다"하시니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하셨다고 전합니다. “응하다"라고 번역된 단어가 오늘 본문의 ‘온전하여진'으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실수가 있던 성경 말씀이 흠 없이 완전하여졌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약속이 행동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의미합니다.
'‘' 은 매우 중요한 비유입니다.
야고보서 2:22 NKRV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온전하게'라는 단어가 오늘 우리 본문의 ‘온전하여진'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행함이 어떻게 믿음을 온전케 합니까? 흠이 있던 신앙으로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능동적인 믿음이 되게 만들어서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믿음은 그것이 선한 행함 안의 목표를 달성하기 까지는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온전하여진’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언가 개선의 필요가 있거나 그것에 흠이 있어서가 아니라, 행위의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흠결 없는 완전한 여행이 아니더라도 여행은 완성되거나 끝마쳐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에서 ‘온전한'이라는 단어는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사도행전 20:24 NKRV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가 흠 없는 사역을 하기를 기대했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는 주께서 그에게 맡기신 일을 행함을 통해 완수할 것을 온전히 기대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완전함'이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작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은 말합니다.
요한1서 4:12 NKRV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단어의 일방적인 사용을 따라,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흠 없는 표현으로써 서로를 사랑하는 우리의 사랑이 아님을 압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행함을 통하여 성취됨을 의미하다는 것을 압니다. 실제적인 인간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작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온전하여진 사랑은 마음 안에 불완전한 개념이나 감정이나 가능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완수되고, 성취된, 실행된 행위입니다. 그러한 차이로 온전하여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17의 첫부분으의 의미는 이렇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로써 그것은 서로를 향하여 사랑하는 너희를의 사랑 안에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행위로 실행되어 직정한 목푤르 달성하게 된다. 그저 말에 그치는 불완전한 단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2. 심판의 날의 담대함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17b 이제 두 번째 부분은 우리 안의 온전한 사랑을 가진 결과가 심판의 날에 담대함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의 행위로 행함을 통하여 >
온전하여진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살펴본 것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심판의 날에 담대함을 어떻게 얻었습니까? 답은 이렇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행동으로 옮김을 통해서 압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에 있어서 죄 없이 온전하기 때문에 담대함을 얻지 않습니다. 그것은 까지의 말씀과 모순됩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그리고 그것이 온전한 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아니라는 바를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죄 없이 완전함을 통해 담대함을 얻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이 있는 곳에 우리의 재물을 놓음으로 담대함을 얻습니다.
요한1서 1:7–10 NKRV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
이 생각의 흐름은 3장 18절과 19절의 말씀과 매우 비슷합니다.
요한1서 3:18–19 NKRV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녀들아,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 안에서 온전케 하라. 실제로 실행에 옮겨보자. 너희들의 말을 너희들의 행함과 일치하도록 완성하라.”
그렇다면 다음 구절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4:17과 같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달리 말해, 심판의 날에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으로 서로를 살랑하는 것입니다. 즉, 그저 말뿐인 사랑이 아닌 행함을 통한 사랑을 말합니다.
3. 왜 능동적인 사랑이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는가?
17c 마지막 부분은 능동적인(온전한)사랑이 심판의 날에 담대함을 주는 이유가 우리가 예수님과 같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예수님의 정신을 갖는 것>
우리가 가정하는 것은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과 같은 사람들은 꾸짖지 않으실 것이라는 겁니다. 능동적인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영을 지닌 것으로 나타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담대함을 우리에게 허락해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성정에 대한 확률을 가지고 살면서 최후의 심판 날에 그의 아버지 앞에 설 때 담대함을 가질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현재의 삶이 그분의 성격과 같다면, 여러분은 그분의 아버지 앞에서 담대함을 지닐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전체를 통해 나타남>
우리는 동일한 생각의 흐름을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한1서 2:28 NKRV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다른 말로, 여러분이 그 안에서 난 사람인 줄 아는 방법은 여러분이 그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떄 담대함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그 안에 거하며, 그가 의로우신 것처럼 올바른 일을 행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1서 3:2–3 NKRV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2절의 엄청난 표현을 보십시오.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안다고 합니다. 심판의 날의 담대함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담대한 소망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3절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이 증거는 과 같습니다.
요한1서 4:17 NKRV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우리는 이 깨끗함을 공유하고, 우리가 그분 안에서 진실하게 소망함을 통해 확신을 얻습니다.
17절 요약
17절을 요약하자면, 우리는 이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저 말뿐이 아닌 그 이상으로 서로를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삶 안에서 실제적인 행위의 목표를 달성하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깊은, 흔들림 없는 담대함을 결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저 말뿐인 사랑, 행동이 없는 사랑은 확신을 파괴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이따금씩 경험해 왔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행동을 생각하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을 때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책망합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재물이 우리의 혀가 향한 곳에 놓아지고, 우리의 시간이 우리의 말이 있는 곳에 쏟아질 때, 우리는 각자의 신앙의 현실을 깊이 체험하게 될 것이며, 심판의 날에 대한 담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한 것과 같이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행할 능력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사랑하심>
오늘 본문 19절 말씀으로 설교를 맺고자 합니다.
요한1서 4:19 NKRV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다른 일들을 대신한 우리의 사랑의 행위는 절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시작되도록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늘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가진 사랑을 깨닫고 믿습니다. 그가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신 사랑을 믿음을 통하여, 그는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행위로 흘러넘치며 우리 안에서 온전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심판의 날에 담대함을 갖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시작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입니다.” 여러분이 혹시 사랑할 힘이 부족하거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소망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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