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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사순절 6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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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을 씻겨주신 것은 섬김의 본을 보이신 것이다.

Notes & Transcrip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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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온전히 배우고 순종하며 스승이 하는 일을 조력하는 자다. 그래서 제자는 자기 스승의 수종자가 되어 섬기고, 배우는 자가 되어 본받고, 또 추종자가 되어 스승의 학문을 계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가장 온전하신 스승이 되신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본을 보여 제자들이 따라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본을 보이는 스승! 얼마나 귀한 분입니까? 언행의 일치를 이루지 못하므로 세인들의 비판을 받는 많은 지도자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흔한 이 세대에서 예수님은 참으로 귀한 지도자의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다. 상고해 보기로 하겠다.

1. 주님이 행하신 것

1. 주님이 행하신 것

1) 종의 모범을 보이심

유월절이 시작되는 저녁에 주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신 후에 그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식사 전에 발을 씻는 법이 있었고, 그것은 종이 할 일이었다. 그렇다면 주님은 종만이 하는 일을 하는 일을 하신 것이 아닌가?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우들에게 주님께서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고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종의 일을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만유의 주가 되시는 주님이 종이 되신 것이다.
'선생'이란 일반적인 교사의 신분을 가리키는 말로 이 용어는 흔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나, '주'라는 호칭은 신성을 내포하는 말로서 그리스도에게만 국한되는 호칭이다. 즉 예수는 단지 스승의 위치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분으로서 인간들의 발을 씻겨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신적인 행위는 당시 사람들의 인간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신의 행위로서 무한히 낮아져 종의 신분이 된 신의 겸손을 상징하는 것이다. '본을 보였노라.' 중세기 때의 많은 교황과 왕들은 예수의 이런 행위를 실행하기 위해 세족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의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본받으라고 교훈하고 계신다. 즉 선생인 자신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과 같이 제자들도 서로 상대방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신다. 탄자니아엔 어른에게 하는 인사인 '시카무'(Shikamoo)가 있다. '시카무'하고 인사하면 '마라하바'(Marahaba)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은 '와라하바 와낭구'(Marahaba Wanangu - Wanangu는 '내 새끼'라고 해석한다)라고 하기도 한다. '시카무'는 '나쉬카 미구 야코'(nashka miguu yako, 당신의 발을 만집니다.)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누군가의 발을 만질정도로 몸을 숙여 인사하는 것은 고대 반투민족 문화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존경을 담아 인사할 때 주로 쓰던 방법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인사법은 반투 문화 뿐 아니라, 힌두 문화 등 아시아권 문화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본받으라고 교훈하고 계신다. 즉 선생인 자신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과 같이 제자들도 서로 상대방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신다. 탄자니아엔 어른에게 하는 인사인 '시카무'(Shikamoo)가 있다. '시카무'하고 인사하면 '마라하바'(Marahaba)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은 '와라하바 와낭구'(Marahaba Wanangu - Wanangu는 '내 새끼'라고 해석한다)라고 하기도 한다.'시카무'는 '나쉬카 미구 야코'(nashka miguu yako, 당신의 발을 만집니다.)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누군가의 발을 만질정도로 몸을 숙여 인사하는 것은 고대 반투민족 문화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존경을 담아 인사할 때 주로 쓰던 방법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인사법은 반투 문화 뿐 아니라, 힌두 문화 등 아시아권 문화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2) 겸손을 보여주심

2) 겸손을 보여주심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위하여 같이 앉아 있던 식탁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물기 있는 제자들의 발을 말끔히 닦아 주셨다(4절). 이 얼마나 철저한 종의 모습이며 상전을 섬기는 자세인가? 얼마나 완벽한 봉사인가? 이 모든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삼 년 간의 제자 훈련을 받고서도, 주님은 곧 십자가에 달리실 터인데 그때 제자들 사이에는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일고 있었다(참조, ). 누가 더 커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권세자가 된다는 것인가?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이 세상의 질서와는 매우 다르다.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는 큰 자다(참조, ). 주님은 제자들을 다시 불러 이르셨다.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스승 예수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시는 하늘 뜻을 일깨워 주셨다.
3) 사랑을 나타내심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무엇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제자들을 사랑하셨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에 기꺼이 그들을 위해 봉사하듯 사랑하시기에 허리 굽혀 발을 씻기셨던 것이다. 주님의 수고는 사랑의 수고였다. 앞 절(1절)에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했다. 물론 여기에는 가룟 유다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자기를 배신할 제자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는데, 발을 씻겨가면서 사랑하셨다. 이것이야 말로 평소신에 하신 말씀처럼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2. 주님이 바라시는 것

2. 주님이 바라시는 것

1) 낮아지는 자 되기를 바라심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주님은 발의 더러움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제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세속의 욕망까지 씻겨 주셨습니다. 높고 위대해 지려는 속된 욕망을 씻어내야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참조, ; ; ). 주님은 허리를 굽혀 봉사하심으로 제자들의 마음의 허리를 굽히게 하셨습니다.

2) 하나가 되기를 바라심

선교하는 공동체가 분열과 다툼이 있으면 복음 전도에 결코 유익될 것이 없습니다(참조, ). 분열과 다툼은 인간의 헛된 야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참조, ). 주님은 앞으로 복음 전도의 중대한 사역을 감당해야 할 제자들이 허영심으로 인하여 분열되고 다투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또한 그것을 가볍게 넘기시지도 않으셨습니다(참조, ). 그래서 겸손의 교훈(참조, , )으로, 섬김의 교훈(참조, ; )으로 낮아지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시어 서로 섬기는 자로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3)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심

주님은 14, 15절에서 발 씻기심의 깊은 뜻을 가르쳐 주셨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은 종의 도, 섬김의 도를 가르치셨다. 뿐만 아니라 서로 발을 씻기라는 교훈을 통하여 서로 공경하고 사랑할 것을 교훈하셨다. 요한은 '우리가 사랑함을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말하였다. 주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의 수고를 나누기를 바라고 계신다.

3. 행하는 자의 복

1) 본을 보이신대로 행하라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은 당시 제자들과 또한 우리들을 위함이었다. 본보기로 발을 씻기셨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그것을 따라해야 한다. 그러면 세족식을 하라는 것일까? 우리 교회에서는 세족식을 성례전으로 채택하지 않는다. 분명히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는데, 성찬식을 성례전으로 행하면서 세족식은 하지 않는가? 예수님께서 너희도 서로 이렇게 하라는 것은 발을 씻어주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 정도로 서로를 피차 섬기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본이다. 원수를 사랑하기 까지 온전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 원수 가룟 유다를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본을 따라가야 한다.

2) 보내신 자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

상전보다 큰 종이 없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한데, 그런 이치를 알면서 이 일을 행하면 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6, 17절).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위계질서는 많이 섬기는 자가 위에 있는 자이며 낮아지는 자가 존귀한 자라는 말씀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고 아들은 '사도들'을 보낸다. 요한복음에서 “apovstolo”(아포스톨로스)란 말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다. 보내신 분보다 더 큰 자가 아니기 때문에 보내신 분의 뜻대로 행할 뿐만 아니라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인식을 항상 하고 있어서 늘 겸손하게 몸을 굽히고 순종과 복종과 섬김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우리를 보내신 분이 가장 천하고 낮은 일을 행하셨을진데, 보내심을 받은 우리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낮은 자세로 일하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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