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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물체를 지으셨을 때는 반드시 그 물체의 모양과 속성과 특징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물체를 이해시키려 할 때 일반적인 대상에게는 그 물체의 외형적인 모양을 설명하게 되고 용도에 관심 있는 대상에게는 속성과 특징을 알려주는 것이 이해가 빠르게 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로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상으로 할 때는 신앙이라는 모양을 드러내 보이게 되고 나를 중심으로 말씀을 대할 때는 이해 범주내의 신념이라는 특징을 드러내 보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각 성도 마다 믿음을 다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 모양과 속성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믿음의 표현도 서로 다른 특징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12명 정탐꾼은 겉보기에는 다 같은 믿음을 지닌 것 같았지만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그들의 믿음과 여호수아, 갈렙과의 믿음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대상으로 한 믿음인가 아니면 자신을 중심으로 한 믿음인가가 서로 반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구조와 특성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요?
1. 믿음의 모양을 갖추는 데는 예수님의 속죄 사역이 기본이 되어야만 합니다.
1) 예수님은 우리를 죄인에서 의인으로 변화 시켜 주십니다. 인간이 죄인의 모습으로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 수 밖에 없는 것은 죄인 된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또한 죄인 된 모습 속에서 나를 다스리는 주체는 자아입니다. 이는 하나님 대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하나님 편에서는 심판의 대상으로 규정되어진 실체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누가 이렇게 만들었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이는 순진한 인간을 사단 마귀가 유혹함으로 그 올무에 빠져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지녔기 때문에 무엇이든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되었을지라도 고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약관계에 따른 부분입니다. 그래서 다시 회복하기위해서는 언약의 대상이신 분이 해결을 하여주실 때에만 가능하게 됩니다. 이미 죄 아래 팔려간 인간은 사단 마귀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에 그 관계가 끊어지려면 그 세력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셔서 그 관계를 끊어 주셔야만 회복이 가능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온 인류의 죄를 보혈로 씻어 주셨으며 마귀와의 관계를 대속의 죽음으로 단절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예수님 안에 있음으로 마귀와의 관계가 끊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 회복이 되었으며 죄인의 모습에서 죄가 씻어진 의인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믿음으로 인한 그리스도인의 외면의 모습입니다.
2)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신분의 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있음을 주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원에 필요한 믿음을 우리는 가지는 것이 중요 합니다.
또한 구원은 죄사함 보다 크며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구원보다 훨씬 큰 것임을 볼 때에 이를 얻기 위하여는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게 세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인간 편에서는 전 인격적인 믿음이 필요한데 [1] 모든 말씀에 대한 지적인 동의의 믿음이 필요 합니다.
영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와 다르기 때문에 물질의 세계만을 이해 할 수 있는 이성의 능력만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성경은 영의 세계에 관한 내용을 기술한 것이기 때문에 이성으로 보기보다는 이해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2]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감정적인 신뢰의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이해는 가능성을 인정한 것에 불과한 반면 소망은 그 가능성이 나에게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끌어당김입니다. 주님이 자라난 동네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신 이유는 바로 주님의 능력을 믿고 고침 받으려는 소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이해는 소망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부족한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3] 의지적인 결단의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이해와 소망이 소극적인 믿음에서 생겨난 것이라면, 행동의 믿음은 적극적인 믿음에서 이루어 질수 있는 결과 입니다. 홍해 바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기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갈라진 것이지만 요단강은 백성들이 믿음으로 강물 속에 들어갔을 때 멈춰서게 된 것입니다. 그 결단이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이를 볼 때 구원의 완성은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에 이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 정, 의, 가 완전히 믿음으로 세워지면 천국은 이미 나의 마음속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믿음으로 인한 그리스도인의 내면의 모습인 것입니다.
2. 믿음의 참된 속성을 나타나는 데는 성령님의 성화 사역이 적용되어야만 합니다.
믿음의 시작은 구원받기 위하여 거듭남으로 출발하지만 믿음의 완성은 구원받은 후의 삶의 결과로 이루워지게 됩니다. 이를 위하여 성령님께서는 구원의 기회에 참여하시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로는 성화의 과정에 관여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신의 뜻에 따라 사는 삶보다 성령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게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진면목입니다.
[예]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당시 어떤 수도사와 아주 가까운 친구사이로 지냈다고 합니다. 그 수도사는 루터와 같이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서로의 의지에 따라 루터는 세상에 나가 전장에서 싸우기로 하였고 그 수도사는 루터의 사역이 성공되기를 시간마다 기도하기 위하여 수도원에 남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 수도사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다만 혼자서 무한히 광대한 밭의 추수를 하는 불가능한 일에 열중하고 있는 외로운 농부를 보았습니다. 그 고독한 농부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수도사가 그의 얼굴을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마틴 루터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수도원를 떠나 기도하는 일도 버리고 그를 도와주기 위하여 출발해야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클레이 주석 야고보서) 우리가 만일 구원에만 만족하는 믿음만을 갖기 원한다면 우리 삶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열매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야고보는 죽은 믿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1) 성령의 충만은 믿음의 참된 속성을 피어나게 한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를 닮았나요? 자녀가 태어나면 모습은 부모를 닮습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얼마큼 부모의 말씀에 따랐느냐에 따라 성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는 자녀를 볼 때, 아기의 자녀 모습을 내가 인정하는 모습으로 보기 보다는 성인이 되어 다 자란 모습을 자녀의 모습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거듭난 우리의 속사람도 완성된 모습으로 다 자랐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성령의 내주하심과 인도하심이 따르게 됩니다. [] 이때 겉 사람의 죄 된 욕망과 속사람의 성령의 내주하심은 자꾸 부딛히게 됩니다. 자아가 주인의 자리에 있을 땐, 내가 지닌 믿음은 오직 나의 뜻을 이루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줍니다.
신념적인 믿음은 인간의 지,정,의, 한계 범주만큼만 자랍니다. 반면에 신앙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삶만큼 자라 자라나게 됩니다. 신념이 신앙으로 바뀌는 시점이 성령세례를 받음으로 기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통하여 주어지는 권능은 속사람이 강건하게 자라남을 의미합니다. 마치 속사람이 성인식을 치룬 성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춘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2) 성령의 은사와 열매는 믿음의 참된 속성을 완성시킨 모습입니다.
우리 겉 사람이 성장하면 인격과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속사람도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성장하면 성령의 열매와 은사인 권능을 갖추게 됩니다. 처음에는 한 가지 열매에 한 가지 은사부터 부여 받게 되지만 말씀으로 믿음이 성숙하게 됨에 따라 열매와 은사도 9가지 모두를 갖출 수 있을 때까지 자라나게 성령님께서는 예비하고 계십니다. 이 단계를 영화의 단계라고 부르며 주님이 이루셨던 완전한 인간의 모습의 단계입니다.
우리들의 믿음과 목표는 바로 이 부분까지 자라나도록 예비 되어져 있는데 혼과 육의 제한성으로 인하여 믿음이 자라난 성화의 수준이 모두 달라 대부분 성화와 영화 사이의 중간가운데 수준까지 이르더라도 상당한 믿음의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부터는 성숙함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임으로 자라나기 보다는 자라난 부분을 모든 영역에 적용시킴으로 열매가 이루어지는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일 나무에 열매가 많이 열려 다 익으면 떨어지듯이 우리의 믿음의 열매도 다 익으면 떨어지게 됩니다. 떨어진 익은 열매를 농부가 주듯이, 다 익은 믿음의 떨어진 열매도 주님이 주어 천국 바구니에 담습니다. 다 익은 과일은 색갈이 예쁘고, 다 자란 모양이 좋고, 맛이 납니다. 우리의 믿음도 다 자라면 속사람의 모습이 겉 사람으로 투영이 되어져서 합하여진 모습에 주님을 연상시키는 인자한 모습으로 변하여질 것입니다.
우리는 어부 베드로와 사도 베드로를 연상해 볼 수 있습니다. 투박한 모습에서 녹아진 모습으로, 또한 열심당원 사울과, 바울 사도를 보면서 독종의 모습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달라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믿음에는 산 믿음과 죽은 믿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산 믿음은 주님이 내 안에 살아계셔서 내 삶을 인도하실 때만 이루어질 수 있는 반면에 죽은 믿음은 내 안에 자아가 내 삶을 주관할 때, 신념적인 믿음으로 사는 경우 실천이 없는 죽은 믿음이 될 수 있음을 봅니다. 나보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믿음의 완성단계입니다. 이때 믿음은 환경을 뛰어 넘을 수 있고 어느 곳에 있든지 성령의 열매가 열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믿음의 모습은 의인이지만, 속성은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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