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thlife Sermons

제목 :물과 생명–사순절 셋째주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64 views
Notes
Transcript
제목 :물과 생명–사순절 셋째주
(2017.3.12 요코하마 온누리교회 주일예배-서 현 목사)
본문: 출17:1-7
1. 서론-은혜를 잊은 사람들.
여러분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좋은 선물은 망각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잊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는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잊었습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마음은 어떨까요? 서운할 것입니다. 반대로, 누가 내게 기분 나쁜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 않습니다. 5년, 10년 동안 마음속에 담고 있다가 복수합니다. 우리는,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습니다. 반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습니다. 왜 반대로 할까요?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건들이 모두 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모두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습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었습니다. 그 결과,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슬픈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사순절에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2. 본문
1) 이스라엘의 상황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노예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광야에서 지냅니다. 그들은 태양신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모세라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십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열 가지 재앙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앞에서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이집트 군대가 패배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걸어서 건넜습니다. 할렐루야!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원망합니다. 그들은 불평합니다. 잊을 수 없는 일을 잊었습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을 잊었습니다. 출17:1를 읽어 주십시오.
이스라엘 온 회중이 신 광야를 출발해 여호와의 명령대로 이곳저곳을 지나 마침내 르비딤에 진을 쳤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큰일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에 있습니다. 햇빛이 뜨겁습니다. 목마릅니다. 마실 물이 없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해야 하겠습니까? 이집트에서 노예로 지낼 때, 물은 마셨습니다. 밥은 먹었습니다. 지금은 자유인입니다. 그러나, 물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성을 잃었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모세에게 항의합니다. 출 17:2 출17:3 절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모세에게 대들며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마실 물을 주십시오.” 모세는 그들에게 “너희가 왜 나와 싸우는 것이냐? 너희가 왜 여호와를 시험하는 것이냐?”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거기에서 목이 말라 모세를 원망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백성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화가 나 있습니다. 거친 숨을 쉬고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모세에게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잊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습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말을 합니다.
2) 모세와 하나님의 반응.
그러나, 하나님이 정말 이들을 죽이려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출16:35 말씀을 읽어 주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착지에 이를 때까지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의 경계에 이를 때까지 만나를 먹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주셨습니다. 하루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광야에 나왔을 때부터, 무려 40년간 주셨습니다. 매일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나를 주셔서 먹게 한 이후, 물이 없다고 불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원어에서 출17:1은, ‘그리고’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일이, 16장과 연결된다는 말입니다. 즉, 성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나를 먹고 나서 물이 없다고 불평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왜 불평했습니까? 만나 먹은 것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불평한 그날 아침도 만나를 먹었을 것입니다. 만나를 먹었음에도 불평합니다. 이들이 왜 불평했습니까?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노합니다. 가축이 목말라 죽겠다고 합니다. 가족이 목말라 죽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도, 가축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구원받은 기쁨을 잊었습니다. 엄청난 기적을 경험했지만, 눈에 보이는 문제 앞에 다시 불평합니다. 여러분, 이들이 바다를 건너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 일이 오래 된 일입니까? 아닙니다. 몇 년 된 일이 아닙니다. 바로 얼마 전 경험한 일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잊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잊었습니다.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모세가 물을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들이 곧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위를 치라고 하십니다. 물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사실을 잊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물을 주십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혼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나쁩니까? 하나님이 나쁩니까? 이스라엘이 나쁩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또 잊을까봐, 하나님을 원망했던 지역의 이름을 ‘므리바’라고 짓게 하십니다. 므리바라는 이름은, ‘싸우다’ 는 의미입니다. ‘맛사’라는 의미는 ‘시험’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잊지 말라고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잊은 그들은 이 일 이후 잊지 않았을까요?
3) 물이신 주님.
우리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많이 하나님을 잊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언제나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마실 물을 주셨습니다. 오늘 맛사와 므리바 사건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물이 없어 죽을 것 같았던 이스라엘이, 물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돌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돌이 깨지고, 그 안에 있던 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 물은 한 두 명이 마시는 물이 아니었습니다. 수십만,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먹고 살아나는 물이었습니다. 한국 수자원공사 자료를 따르면, 사람이 하루에 필요한 물이 2.5리터라고 합니다. 하루에 그 정도의 수분을 섭취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으므로 1.5-2리터는 물을 마셔야 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어른만 60만명이었습니다. 아이와 여인을 포함하면 더 많을 것입니다. 대략 400만 명 정도로 생각하면, 하루에 필요한 양이 800만 리터. 톤으로 계산하면 8,000톤입니다. 수영장 하나가 450톤 정도 물이 들어갑니다. 계산해보니, 수영장 20개 정도의 물입니다. 적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실 물만 계산했을 때 이 정도입니다. 실제로는 더 많은 물을 얻었습니다. 이 물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물 주시는 분입니다. 주실 때 아주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광야에는 물 한 방울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평합니다. 그 광야에서 물이 나옵니다. 한 방울의 물도 없는 마른 땅에서 많은 물을 얻을 때, 그들의 감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돌을 쳤을 때, 돌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마시고 살아날 정도로 많은 물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4를 읽어 주십시오.
모두 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동행한 신령한 반석에서 나는 것을 마셨는데, 그 반석은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이 반석은 그리스도다! 이것이 바울의 설명입니다. 하나님은 죽이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리는 하나님이십니다. 물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물을 주셨습니다. 반석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반석이 깨지며 물이 나왔습니다. 반석을 친 모세는 율법을 대표합니다. 그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바위를 쳤을 때 새로운 물이 나오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가 힘이 있어 바위를 깼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위를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바위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그 물을 마시고 모두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살리셨습니다. 생명을 주셨습니다.
바울이 이 사건에서 반석을 예수님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일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예수님을 쳤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율법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모독했다며 죽였습니다. 예수님의 온 몸이 찢어졌습니다.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 때문에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물과 피 때문에, 죽음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만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일부의 사람만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도, 헬라인도, 사마리아인도, 어떤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 구원의 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7:37 요7:38 입니다.
초막절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일어나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마다 성경의 말씀대로 생수의 강이 그의 배에서 흘러나올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생명의 물을 마십니다. 그러면, 배에서 생수의 강이 나옵니다. 이는 곧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가 곧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심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3. 결론-물과 생명.
물은, 생명입니다. 물은 생명을 줍니다. 모든 생명은 물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을 마심으로 생명이 유지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반석을 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반석의 자리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목말라 죽겠다고 외쳤던 사람들 앞에 외롭게 섰습니다. 모세가 반석을 칠 때, 반석이 깨지고 물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때리고 그 몸에서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마시고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물과 피를 쏟으셔서, 우리 모두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했던 그 자리가, 맛사 또는 므리바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고소하는 자리. 하나님을 시험한 자리, 하나님과 싸운 자리.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매를 맞으시고 물과 피를 쏟으십니다. 바울이 이 비밀을 알았기에, 십자가를 전했습니다. 목숨 걸고 전했습니다. 이 이상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손가락질 합니다. 하나님! 왜 내 기도 들어주지 않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 세상이 이렇습니까? 하나님 앞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공격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모두 목마릅니다. 모두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외칩니다. 무신론이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의 외침에 불과합니다. “나는 신이 없음을 믿습니다!”라는 강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은 반석을 치게 하셨습니다. 반석이 갈라집니다. 물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변명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저 물을 주십니다. 생명을 주십니다. 살리십니다. 그리고, 맛사와 므리바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기억하라! 깨어진 반석을 기억하라! 풍성하게 물을 주어 살린 하나님을 기억하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맛사와 므리바를 잊고, 매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인간들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을 향해 돌을 들고 분노하는 인간들을 향해, 예수님은 두 팔을 펴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반석인 내가 갈라지고, 너희를 살리겠다!” 이 물을 마시라!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진 의미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잊고 사는 인간들에게,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사는 우리들에게, 이것을 기억하라! 라며 맛사와 므리바로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그 아들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몸이 찢겨 물과 피를 흘리시고 여러분을 구원하신 그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잊어야 할 것을 잊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기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 Media
Related Ser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