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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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편 2:12(구약 805쪽)
설교제목 : 주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창세기 11장은 바벨탑 사건 얘기가 나옵니다. 그것은 인간이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바벨탑을 쌓아서, 하나님이 계신 하늘에 닿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소원을 이루지 못했고, 그들의 계획은 허무하게 막을 내립니다. 또 창세기 3장에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 역시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수치를 당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이렇게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넘어서려는 인간은 어리석은 모습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도 그에 대한 얘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 1절에서 3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방금 읽은 성경구절은 이런 것입니다. 이방 나라들, 민족들, 세상의 군왕들, 관원들로 불리는 하나님의 대적자들은 하나님 뜻을 거부하려 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결박’이라고 표현하면서, 그것을 스스로 끊고 벗어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마치 이 장면은 하나님이 인간들을 무겁게 짓누르며, 압제하는 독재자로 묘사됩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대적자들에게는 말입니다. 그리하여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의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은 죄와 탐욕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를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들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이유가 하나님의 폭정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욕심을 채우고자 했기 때문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에덴의 동산에 머물면서, 부족함이 없는 풍족한 삶을 누려왔습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은 인간을 괴롭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의 탐욕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그 분으로부터 벗어난 삶을 쫓게 합니다.
또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것이 창세기 11장에서 바벨탑을 쌓는 모습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우리는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서 또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성경본문 4절에서 6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인간의 어리석은 선택은 하나님의 비웃음을 살 뿐이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올 따름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그 분의 뜻을 분명히 이루십니다. 방금 읽은 6절에서 ‘나의 왕을 세운다’라는 것은 하나님이 다윗과 언약을 맺은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그 분의 뜻을 세상 가운데 구체적으로 관철시키시고 이뤄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결코 하나님의 뜻을 꺾거나 그 분을 넘어설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정말로 우리에게 압제가 되고 속박이 되며, 족쇄처럼 느껴지는 가를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어쩌면,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에게 보게되는 모습과 유사해 보입니다. 그들은 부모의 관심을 간섭이나 방해 정도로 여길지 모릅니다. 되도록 부모의 속박을 벗어나 자유로워지기를 갈구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들에게 자유가 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오히려 부모의 돌봄 속에서 그들은 자유를 누리고 있음을 압니다. 왜냐하면, 부모라는 울타리가 그들을 보호해 주기 때문에 외부의 거센 바람과 위협들을 막아주는 것이고, 그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우리도 그와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그로부터 자유를 얻을 것 같지만 도리어 그것이 자유하지 않음을기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는 그것을 우리에게 그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쉽게 유혹에 빠지고 그로 인해서,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히려 그가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이전과 같이 회복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속하여 살아간다는 것이 사실은 복인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선택을 할 뿐인 것이지요.
그리하여서 오늘 성경본문 7절에서 9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아저씨와의 관계와는 다릅니다. 남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아주 가까운 관계이고, 특별한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특별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저씨의 것은 내 것이 아니지만,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그 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오늘 시편을 기록한 시인은 이 시를 이렇게 결론 맺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 10절에서 12절입니다.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복이 있도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시편의 분류법 중에서 ‘제왕시’라고 불려집니다. 제왕시의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만이 온 세상의 주인이시고, 그 분이 만왕의 왕이시다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시편2편은 그것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다스리신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그 다스림이 어떤 이들에게는 속박으로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애초에 하나님은 우리를 속박하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고, 우리에게 유업을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 할지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놓인 복과 우리에게 둘려진 울타리가 얼마나 안전한지를 깨닫지 못해서겠지요.
그러나 오늘 시편을 통해 시인은 마지막에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망하게 될 것이라고’ 또 시인은 말합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이지요.
오늘 우리는 복된 길에 서 있습니까? 그 분의 뜻을 따라 살기로 결단하며, 그 분께 거하며 살아가는 인생에게 복이 임할 것입니다. 바라건데, 오늘 저와 우리 성도님들의 삶이 복된 길에 서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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