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부활이며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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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복음 11:25-26(신약 166쪽)
설교제목 : 예수님은 부활이며 생명입니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일전에 나눈 이야기를 이어서 하려 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자기소개가 7번 나옵니다. 이것을 이른바 ‘에고 에이미’라고 하는데요. 이는 ‘나는 무엇무엇이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7가지로 소개하십니다. 첫째, 나는 생명의 떡이다. 둘째, 나는 세상의 빛이다. 셋째, 나는 양의 문이다. 넷째, 나는 선한 목자이다. 다섯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여섯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일곱째, 나는 참 포도나무다.
앞서 넷째까지의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오늘을 포함해서 기회가 닿는데로 세 번에 걸쳐 앞으로 다섯째부터 일곱째까지의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저는 이것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지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고 여겨지고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으로써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러한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앞선 이야기들의 기억이 희미해졌겠지만, 또 다른 기회가 되면 다시 좀더 다듬어서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 하고요. 오늘은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임을 얘기나누려 합니다.
반복하지만 오늘 성경 구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사실 이것의 참 의미는 예수님 밖에 모르는 것이지만요. 저는 이 말씀을 곱씹으며 잘 묵상해 봅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오늘은 이에 관해 얘기를 짧게 나누려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과 생명을 이이기하시는 배경에는 죽음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사로의 죽음입니다. 나사로와 그의 자매인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과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에 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나사로에게 바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동족인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른바 경건한 유대인들 혹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게 신성모독이라는 혐의를 씌워서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곳에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머물던 곳에 며칠 계시다가 나사로에게 가려고 하자, 제자들이 만류하기도 했고 도마는 같이 죽으러 가자는 다소 엉뚱해 보이는 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예수님이 반대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혈안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제자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이 나사로에게 더디 가신 것에 더 중요한 이유는 이를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것처럼 예수님이 나사로에게 도착했을 때, 나사로는 이미 죽어서 무덤에 묻혀 있었습니다. 하지마 예수님은 그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 특별하고 신비한 분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부활이며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의 의미를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배경을 놓고 묵상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 생명의 원천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이 예수님께 혹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이에 관해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고 말입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증명되고 우리가 아는 불변의 진리는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다스리를 수 없고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생명에 관해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는 것과 죽는 것에 관해 우리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날을 정할 수 없고, 죽는 날도 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니다. 우리의 태어남과 죽음을 하나님의 선택으로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여 살아가는 것이 안전한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 잘 믿는다고 더 오래 살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 밖에서 살 수 없고 우리가 공기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 없는 우리의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선택은 하나님께 붙들려져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살아간 부자는 어리석다고 평가받았는데요.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삶에 죽음이 언제 어느 때 닥칠지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우리의 삶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은 여러 하나님의 대체물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의지하여 살아가곤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돈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가장 확실하게 우리의 두려움을 잠재워 줄 것처럼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많은 돈이 우리의 삶을 보다 안락하고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어리석은 부자 역시 자신에게 닥칠 죽음 앞서 그의 재산은 참으로 무기력 하였음을 봅니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우리가 믿고 기댈 곳은 그와 같은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함으로 그분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죽음에 승리하신 것을 말해줍니다. 또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원천이시기에 우리가 속할 것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세상에 어떤 것도 예수님처럼 죽음을 이기고 살아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여 사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믿고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삶을 달라지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세상을 더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두려움을 느낍니다. 예를 들면 갑자기 무언가 튀어나오는 것이나 우리가 정체를 알지 못하는 미지의 대상에게서 어떤 불안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가 되면 어떨까요? 아마 지금과 같은 모습과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일전에 수요예배를 통해 소개한 영상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삶의 방식으로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불확실하고 두려움이 있는 것에서는 자기만을 위하며 살아갑니다. 나의 안전이 최우선이고 나중심의 이기적인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이 제거된 상태에서 우리는 기꺼이 사랑할 수 있고 이타적인 삶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속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이와 같이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르치고 그것을 따라 살도록 해줍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방식의 삶이 틀렸음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을 비롯하여 예수님을 진실하게 따랐던 삶은 세상에서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는 많이 다름을 봅니다. 진정으로 우리를 지키고 우리를 살리는 삶은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의 말씀을 따르고 사랑실천하는 삶을 이루게 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부활이며 생명이 도심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이는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예수님의 고유한 특성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님께 속하여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지혜로운 삶의 길이 됩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묻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우리가 이에 믿음으로 응답한다면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부활과 생명으로 믿으며 하나님의 뜻에 따른 삶을 살고 있습니까? 또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께서 부활과 생명이 되심을 믿고 있을까요? 오늘 이에 관해 잘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바라건데, 부활이며 생명이신 주님을 우리가 진정으로 믿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에 따라 힘써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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