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 제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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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인생 = 길
여러분은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예수님의 인생도 ‘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인생 길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가복음 1:1–3 (NKRV)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마가복음 전체를 통해
예수님이 어떤 길을 걸어가셨는지를 보여준다.
본문은 3가지 ‘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번째 이야기 = 예수님의 길
두번째 이야기 = 제자들의 길
세번째 이야기 = 맹인 바디매오의 길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인생 길을 돌아보며 은혜 받는 시간 되길 축복한다.

본론

1. 예수님의 길

3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예수님의 인생 길
=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 십자가의 길
‘그들 앞에 서서 가셨다’
당당하게 그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
구체적으로 그 길을 설명하시는 예수님
33-34절
Mark 10:33–34 NKRV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
= 성자 하나님
=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 하신 하나님
= 이 땅에 죽기 위해 오신 하나님
=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기 위해 오신 분
물론 죽음이 끝이 아니다
죽음 뒤에 부활이 있다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 길을 걷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 사실을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마가복음에는 ‘세 번의 수난예고’가 나온다.

세 번의 수난예고

첫번째 수난예고(막 8 장)
빌립보 가이사랴에서의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Mark 8:30–31 NKRV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두번째 수난예고(막 9 장)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신 후
Mark 9:30–31 NKRV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세번째 수난예고
막 10 장 - 오늘의 본문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십자가의 길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
감사하자!

2. 맹인 바디메오의 길

예수님의 길을 뒤따라 걸어가는 자들
= 예수님의 제자들
= 제자의 길
= 제자도
제자도는 특별한 사람만 걷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 = 제자
지상대명령(마 28:9-10) / The Great Commission
예수님의 주신 명령 중에 지극히 중요한 사명
Matthew 28:19–20 NKRV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 모든 민족을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라
= 그리스도인 = 제자
우리가 걸어가는 길 = 제자의 길 = 제자도
그 중의 한 사람을 만난다
맹인 바디메오
46절
Mark 10:46 NKRV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여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위치
북쪽 갈릴리에서 요단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다
서쪽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
여리고를 나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가, 길목에 앉아 있던 바디매오
바 - 아들이란 의미
바디메오 - 디메오의 아들
그를 규정하는 두 단어
맹인 / 거지
맹인 = 앞을 보지 못하는 자
거지 = 가난한 자
길 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구걸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소리
무슨 일인지 사람들에게 물었을 것이다.
‘나사렛 예수’가 오셨다.
이 말을 듣자 마자 큰 소리로 외치는 바디메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는 사람들을 꾸짖음
어느 앞이라고…
(맹인 주제에… 거지 주제에…)
오히려 더 크게 외치는 바디메오
48절 -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

구약의 약속을 따라 이 땅에 오신 메시야를 의미하는 표현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임을 강조함
Matthew 1:1 NKRV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가복음에서는 처음으로 등장하는 표현
누구의 입술의 고백인가?
‘사람들이 무시하는’ 맹인 거지의 입술의 고백
바디메오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를 부르신다.
51절
Mark 10:51 NKRV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의 간절한 소망
보는 것
단순히 육체의 눈을 뜨고 싶다는 고백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인생을 벗어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다.
장애를 넘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다는 의미 그 이상이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나의 구원자 예수님,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그 소원이 이 말 속에 들어 있다.
예수님의 응답
예수님은 그 믿음에 응답하신다.
52절 -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의 눈이 열렸다.
곧 보게 되었다.
곧 = 즉시
예수님의 말씀과 동시에 그의 눈이 치유되었다.
가라
늘 앉아 있었던 바디메오
다른 사람의 손길에 의지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며 살아가던 인생
가라 - 스스로 걸어가라
너의 의지로 가고 싶은 곳으로 걸어가라
예수님께 받은 은혜
‘흑암’이었던 그의 인생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바디메오의 선택은?
그는 어떤 길을 걸어가는가?
52절 하반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주저하지 않고 예수의 길을 뒤따라 걸어가는 바디메오
구원받은 자가 걸어가야 하는 길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하신 말씀
“나를 따르라”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이다. /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도 바디메오와 같은 자였다.
어둠 가운데 있던 자 -> 빛으로 부르셨다
가난한 자 -> (하나님의 기업으로) 부요하게 하셨다
John 8:12 NKRV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Ephesians 1:18 NKRV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우리도 바디메오처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3. 제자의 길

제자의 길(제자도) = 예수님의 길 = 십자가의 길
Mark 8:34 NKRV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질문: 제자의 길 / 예수님의 길 / 십자가의 길이 무엇인가?
막연하고 추상적이다.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나와는 너무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는?
다들 십자가 목걸이라도 해야 하는가?
그 실마리와 답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번째 이야기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와 구함
35절
Mark 10:35 NKRV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
37절
Mark 10:37 NKRV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이런 것을 ‘청탁’이라 한다.
청탁 - 청하여 남에게 부탁함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예수님 오른팔, 왼팔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이 넘버 원, 우리가 넘버 투, 넘버 쓰리
지금 배경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신다.
그런데 제자들은
비록 몸은 그 길을 걷고 있었지만
마음은 아직 그 길을 따르고 있지 못했다.
높아지려는 마음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앞선 9장부터 이런 조짐이 있었다.
Mark 9:33–34 NKRV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제자들의 생각
점점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인기를 얻는 예수님
정치적인 메시야로 기대
세상의 왕처럼 될 것이라 여김
그러면 자신들도 그 권세를 누릴 것이다.
그것을 미리 생각하며
자신이 얼마나 큰 공을 세우고 기여를 했는지 서로 따지고 있는 것임
자기들끼리 서열을 정하고 있었던 것
그 이면의 생각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기를 원하는 것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생각을 아시고
점잖게 타이르신다
Mark 9:35 NKRV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그런데 여전히 제자들의 마음에는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급기야 예수님께 청탁이 들어간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의 청탁
마태복음 20 장을 보면 이들의 어머니까지 등장함 = 빽을 이용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을 경쟁자로 여김
그들보다 더 높은 자리를 얻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됨
이것을 알게 된 다른 제자들의 반응은?
41절
Mark 10:41 NKRV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반칙이다.
너만 빽이 있냐? 나도 빽이 있다….
제자들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의 길 = 십자가의 길
누누이 예수님이 말씀한 사실이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은 다시 한번 더 분명하게 제자들을 가르치신다.
42-45절 / 같이 읽어보자
Mark 10:42–45 NKRV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길 = 섬김의 길
제자의 길 = 섬김의 길
십자가의 길 = 섬김의 길
섬긴다 = 다른 사람의 종(하인)이 된다.
영어) 섬기다 = serve
종, 하인 = servant
그리스도인은 섬기는 자이다.
제자는 섬기는 자이다.

섬김은 곧 필요를 채우는 것이다

그 다음 질문
섬김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보면 이것도 추상적이다.
섬김이 무엇인지 그 답을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45절을 다시 읽어보자
Mark 10:45 NKRV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섬김 = 필요를 채우는 것
예수님이 행한 섬김이 무엇인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는 것
대속물 = 몸값, 보석금
죄의 종, 어둠의 종, 사탄의 종으로 있는 사람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자유
죄로부터 자유
어둠으로부터 자유
사탄으로부터 자유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 ‘대속물’이다
노예와 포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필요한 돈 = 대속물
그 대속물을 대신 갚아 주셨다.
무엇으로?
자신의 목숨으로
십자가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신 예수님
섬기기 위해서는 필요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 대상을 잘 이해해야 한다.
잘 살펴야 한다.
섬김은 결코 자기 만족이 아니다.
내가 이만큼 해주었다(X)
실질적으로 그 대상의 필요를 채워주는 데 섬김의 의미가 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필요를 너무나 잘 아셨고 그것을 채우셨다.
가장 큰 필요인 죄와 사망에서의 자유와 구원만 채우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라.
우리 삶에 필요한 크고 작은 것들을 살피고 채워주셨다.
육체적, 정신적 질병으로 고통받는 자들 / 고치심
오병이어 사건 / 배가 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심
나병환자와 군대귀신 들린 자를 고치심 / 사회와 공동체와 가족에게 소외당한 이들을 회복시켜 그들의 품으로 들어가게 하심
사마리아 여인 / 외로운 자들에게 찾아가 그들의 말동무가 되어 주시고 심령을 회복시켜 주심
혈루병 여인 / 믿음에 확신을 더해 주심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들의 필요를 세심하게 채우셨다.
그 정점에 바로 ‘십자가’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제자도’이고 ‘십자가의 길’이다.
그것이 섬기는 자의 모습이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섬기는 자가 되자!
필요를 채우는 자가 되자!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는 ‘묵상’이 필요하다

멀리서 섬김의 대상을 찾지 말라
바로 옆에 있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부터 섬기라
남편/아내의 필요를 채우고 있는가?
남편/아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가?
필요를 알기 위해서는 ‘묵상’을 해 보라.
새벽에 일어나 직장에 나가 하루종일 업무와 사람들과 씨름하다 저녁 늦게 돌아온 남편
하루 종일 대화 상대도 없이 아이와 시부모님과 집안 일로 보낸 아내
무엇이 필요할까?
내가 피곤하고 힘든데…
너도 피곤하냐? 나도 피곤하다…
남 챙겨 줄 여유가 없는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섬기는 자’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다.
상대방이 하루 종일 어떻게 지냈을지를 ‘묵상’해보라. 생각해 보라.
그러면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다.
“커피 한 잔 하러 나갈까?” 이야기할 수 있다.
피곤한 팔과 다리를 주물러 줄 수 있다.
따뜻한 물을 받아 두고 ‘몸 좀 풀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저녁은 차리지 말고 밖에 나가서 간단하게 먹고 오자 말할 수 있다.
물론 둔감하고 센스가 부족한 사람이 분명 있다.
그를 탓하지 말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로 알려주라.
기쁜 마음으로 섬길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섬김의 지경을 점점 더 넓혀 주신다.
가족을 넘어, 이웃으로,
직장 동료들을, 교회 교우들을,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 사람들의 구체적인 필요를 채우며 그들을 섬기는 자가 된다.
그리고 처음에는 작은 일이지만 더 나아가 목숨을 내어주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목숨 = 나에게 가장 가치가 있는 것
지금 우리교회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

결론

금요일 밤
우리는 기도하러 이 자리에 나왔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섬기는 자가 될 수 있다.
기도를 통해 다른 이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다.
물론 채우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의 필요만을 위한 기도를 넘어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가 사는 지역, 우리나라, 세계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목요제자반
각자의 기도제목을 받아 정리해서 나누었다.
총무 집사님이 그걸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올렸다.
다닐 때마다 보면서 기도하면 좋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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