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7 새음 고등부; 하늘 아버지의 형상으로,,

westmister short 11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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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1:26-28‌

*주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귀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삶을 살자
Genesis 1:26–28 NKRV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설교 구조

서론: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하늘아버지의 자녀로 지어졌다는 사실과, 또 우리에게 사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론(1) 본문 이야기: 하늘 아버지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아버지께서 6일간 창조하시며, 그 창조의 절정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모습을 보면 다른 것들과는 독특한 차별점이 있죠.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다른 표현으로는 낳으셨다 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낳듯이 하늘 아버지께서는 저희를 낳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습에 아버지를 닮은 형상이 있습니다.
여기서 형상이라고 할 때 형상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요한 복음 4장에서 증언하는 것처럼 하늘 아버지는 영이십니다. 그렇기에 영이신 분의 겉모습을 닮을 수 없죠.
우리가 지난 3월달에 하늘 아버지께서 그분만이 가지고 계신 성품이 있고, 우리와 닮은 점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례교육을 받은 친구들은 최근에 한번더 들었던 내용이다보니 기억이 잘 나리라 생각됩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창조주로서, 또 영으로서, 무한하시며, 어디에나 언제나 계시며, 불변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와 공유하지 않으시는 모습이시죠. 그래서 비공유적 속성이라고 불렀죠.
그렇다면 우리와 공유하고 계시고 우리와 닮은 점을 공유적 속성이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사랑, 거룩, 정의, 진실, 자비 등이 있어요. 자녀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우리가 닮은 점이죠. 감히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에게 창조주이신분께서, 무한하신 분께서 당신을 닮게 지으셨어요. 낳으셨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더 놀랍게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의지를 허락하셨어요. 우리도 우리의 소유물을 가지면 내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데, 하늘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소유인 우리들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셨어요.
이 말은 방종이 아니라, 더 큰 사랑을 말해요. 내 소유라 생각하고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로봇처럼 행동하게 만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고 폭력이죠.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셔서 그 자유를 통해서 마음껏 자유롭게 우리를 지으시고 낳으신 아버지를 찬양하고 높이길 원하셨어요.
우리가 누군가 시켜서 ‘이거 해’ 라고 하면 잘 안하잖아요? 또 하더라도 마음이 영 찝찝하죠.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거는 남이 시키지 않더라도 너무나 재밋게 즐겁게 하잖아요? 또 잘 하려고 하잖아요? 아버지께서 자유를 주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시고 사랑해주신거에요.
이런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형상, 하늘 아버지의 모양이라는 사실이, 그분의 자녀라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지 않습니까? 베드로전서2장에는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어요.
베드로전서 2:9 (NKRV)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택함받은 족속이요, 왕같은 왕인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인 백성 자녀이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너무나도 높은 것이지요.
이런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다 하늘 아버지의 성품을 가진, 하늘 아버지의 형상을 가진 자녀들입니다. 왕같은 제사장, 아버지의 소유인 아들 딸들입니다.

본론(2) 사람의 창조가 가진 의미 자녀로 태어남, 사명이 주어짐

이런 우리에게 아버지는 역할을 부여하셨어요. 아버지의 형상을 지니게 하시고, 아버지의 성품을 닮게 하셨어요. 그리고 그런 높으신 기준을 가지신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향해 보기에 ‘심히 좋다, 훌륭하다’ 라고 말할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부여하신 거에요. 그런 우리에게 아버지께서는 ‘땅을 다스리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명을 주셨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와요. 놀라우신 하늘 아버지께서 피조물인 우리에게 역할을 주셨다는 것,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을 주셨다는 것 자체가 감사합니다. 모든 걸 하실 수 있으신 분께서 아무리 당신을 닮게 창조하셨다고 해도 얼마나 부족해보이시겠어요. 그러나 우리를 그만큼 믿어주시고 지지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 너 한번해봐’ ‘잘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응원해주시는 거죠.
그리고 맡기신 일들을 감당할 능력이 있다고 인정해주신거에요. 그러한 모습을 우리는 창세기 2장의 기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이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동물들의 이름을 붙여줍니다. 기린, 코끼리, 악어, 상어, 타이거, 호랑이, 사자 등등 물론 한글이나 영어가 아닌 히브리어와 같은 고대언어로 얘기했겠지요.
그가 붙인 이름들이 딱 알맞은 거에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단순히 떠오르는 데로 개똥이, 똥구 이런 아무런 의미없이 붙인 게 아니라 그 생물의 특징을 파악하는 예민함이 있었던 것이고, 그에 알맞은 단어를 떠올릴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는 거에요.
이름은 짓는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사물에 대한 특징도 특징이지만 이 존재가 어떻게 살아가줬으면 좋겠다 하는 소망도 담고 있어야 해요. 앞으로 이런 모습이 되면 좋겠다 하는 바램을 함께 담고 이름을 짓습니다. 이름을 지을 때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도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놀라운 능력을 부여 받아서 하늘 아버지의 대리인으로서 이 땅을 통치할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은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들을 성실히 해나갔습니다.
그들이 다스리고 땅을 경작하는 행위가 단순히 수고하는 노동이 아니라 자신을 지으신 아버지를 찬양하는, 그분께 예배드리듯 마음을 다해 신실히 임했습니다. 자기를 자녀 삼으신 분께 마음과 정성을 다해 자기가 맡은 일을 신실히 충성되게 섬겼습니다.

본론(3) 죄로 인해 망가짐

그러나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지금도 여전히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 있나요? 사랑. 서로를 잘 사랑하고 있습니까? 진실됨. 서로에게 진실되게 행동합니까? 나 스스로 나를 잘 사랑하고 있습니까? 스스로 진실되게 살아갑니까? 정의. 정의롭습니까? 불의를 보고 눈을 감고 무시하지 않습니까? 거룩. 우리의 마음이 계속해서 거룩을 좇아 살아갑니까? 우리의 모습이 망가져서 나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고, 다른 누구도 진실되게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식이 있고, 위선이 있고요. 진실함과는 거리가 멀죠.
아버지께서 부여하신 지혜가 남아 있나요? 그것으로 여전히 우리가 지혜를 발휘하며 살아가나요? 나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사용하며, 남들을 이용하고 속이는데 우리의 지식을 사용하고 있지 않나요?
말씀에서 우리가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하는데, 정작 우리의 모습이 그렇지 못합니다. 그럼 하늘 아버지께서 거짓말을 하고 계신건가요? 아니죠. 그럼 왜 우리에게 아버지를 닮은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 바로 죄죠, 죄. 죄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아버지의 모습이 깨져버렸죠. 한사람의 불순종으로 들어온 죄로 이 땅에 모든 사람에게 미쳐, 의로운 사람, 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로마서 3장에는 말하고 있어요.
Romans 3:10–13 NKRV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이 땅에 한 사람도 의로운 사람이 없어졌고, 모든 행동들이 악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형상이 다 깨져서 이후 14-18절에는 그러한 악한 모습들을 나열하고 있어요. 저주, 악독, 살인, 불안 등을 말입니다.
이 죄가 어떻게 시작됐나요? 나 스스로가 신이 되려고 하는,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그 마음에서부터 시작됐죠. 하나님과 같이 될거야, 신과 같이 될거야 신이 될거야 너가 신이될거야 라는 사탄의 속삭임이 사람을 시험에 빠지게 만들었고, 결국 죄를 짓게 됩니다.
선악과를 그냥 단순히 앙하고 먹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신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자녀로서 있기 싫고 내가 아빠가 되겠다, 부모님 저리 가시라 내가 이제부터 아빠이다, 나는 보호받지 않고 나 스스로 알아서 살 것이다 라고 행동하는 거에요.
그 뒤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요? 떳떳하게 살았나요? 선악과를 먹자마자 그들이 한 행동은 바로 부끄러워서 가리고, 두려워서 숨은 그런 초라하고 나약한 모습을 하고 있어요.
Genesis 3:7–8 NKRV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자기들이 하늘 아버지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던 거에요. 사탄이 너희들도 신같이 될 수 있어. 무한한 존재, 불변하는 존재, 스스로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어 너희들은 대단해 너희들이 알아서 다 할 수 있어 말하지만 아니에요.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거에요.
이 시대의 흐름이 그래요. 제가 설교를 통해 자주자주 얘기를 해요. 포스트 모더니즘. 이 시대의 모습이 개인주의가 극심해지면서 나혼자 살고, 내 알아서 살고 하는 그런 흐름이 이 시대 속에 영화속에, 광고 속에, 드라마와 예능 속에, 연예인들의 대사 속에 다 들어가 있어서 우리가 그런 문화들을 무분별하게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에 빠지는 거에요.
그렇다고 우리가 그런 문화들을 다 끊고 산에 들어가 살자 그런 건 아니에요.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누리되 우리가 분별력을 가지고 바라봐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문화를 통해 우리를 미혹하는 사탄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을 잠식시킬 것입니다. 어느새 나 스스로가 신이되어 내가 다 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에 자본은 추진력을 얻게 합니다. 그래서 뭐야 내가 해보니 되잖아, 내가 어떻게 하니까 잘 살잖아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드는데,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죠. 그렇게 잘 살게된 부자들이 결국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자신이 가진 재산을 다 쏟아붓지만 안되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역사를 통해서도 기원전에 살았던 진시황제도 자신이 가진 재산을 쏟아가며 죽지 않고자 했지만 진시황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불로불사를 꿈꾸던 그는 한줌의 흙먼지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그의 영혼은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갔습니다.
내가 신이되고자 하는 결말은 어벤저스의 주인공등이나 저스티스의 주인공들처럼 멋있지 않습니다. 초라해집니다. 사람이 연약함, 결핍, 부족함을 경험할 뿐입니다.
이런 초라한 사람이 구원을 얻을 방법은 어디 있나요? 오직 하늘아버지의 은혜에 있습니다. 3장 21절입니다.
Genesis 3:21 NKRV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늘아버지께서 은혜를 주시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가죽옷, 어떤 생명의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희생은 불완전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하늘 아버지와 함게 할 수 없어서 그들을 에덴에서 내쫓으십니다. 이 내쫓으심 또한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늘 아버지와 죄로 부정해진 사람이 함께 있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이란 구별됨입니다. 부정한 것을 제거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와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함께 있을 수 없었기에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가죽옷을 입히신 은혜를 베풀어주셨지만 이 은혜가 불완전함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희생이 필요하다 라는 것을 알려주셨십니다. 그 놀라운 희생 그 은혜 완벽한 제물 우리를 하늘 아버지의 품에 온전히 안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완벽한 제물,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아버지와 하나가 되었고 우리가 다시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권세를 능력을 주셨습니다.
John 1:12 NKRV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신분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만이 우리의 정체성이 다시 회복되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내가 어찌저찌 이 땅에서 아둥바둥 살아간다고 해서 우리가 회복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의 자존감이 높아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끊어진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우리를 하늘의 정체성을 갖게 합니다.
어디에 사는 나, 어느 대학에 다니는 나, 어느 직장에 다니고, 얼마를 버는 나 가 나의 정체성이 되는게 아니라, 놀라운 하늘의 정체성, 하늘의 신분을 갖게 합니다.
이 예수님을 여러분이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아버지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분이 빌립보서 3장의 말씀처럼 하늘에 있게 되었습니다.하늘의 시민권을 얻게 되었습니다(3:20).
이 땅의 여러 사람들이 탐욕을 자신의 신으로 삼고, 자기 자신의 만족을 누리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누리며 정체성을 자아를 찾아가려는 이 시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아버지를 알고 믿어 이 땅에서 감히 폐기처분 될수 없는, 영원한, 비교 불가능한 ‘incomparable’ 한 것이지요.

적용

(1) 하늘 자녀로 살아가자

우리의 지금 모습이 초라할 지라도 이미 우리를 변화시켰고, 우리를 바꾸실 하늘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분의 자녀로서 살아갑시다.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낮은 몸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형상이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된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진 자들로서 그 형상을 회복하기까지 수고하고 힘씁시다. 바울도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노력하자고 합니다.
Galatians 4:19 NKRV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우리도 그와 같이 아버지께서 이미 너희가 거룩하다고 하셨음을 믿으며, 그 소망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수고합시다.
우리의 위치가 우리가 바라볼 곳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우리의 위치는 하늘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Philippians 3:20–21 NKRV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이 세상은 우리를 별거 아닌존재라고 말하며 나의 가치를 물질적인 것으로 좌우합니다, 이 시대 속에서 외모, 돈, 재산, 학벌로 평가되는 이 시대 속에서 여러분이 아버지의 자녀라는 그 인식, 아버지께 세상 그 어느것보다도 큰 은혜를 받았다는 그 사실에 감격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들을 내어주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 그 사랑으로 저와 여러분의 죄의 값을 지불하시고 원수 같이 아버지 필요없다고 내가 알아서 살겠다고 떠나버린 우리를 다시 거둬들이신 그 놀라운 사랑, 목숨을 내거신 사랑, 온우주 만큼 아니 그보다더 큰 사랑으로, 죽음을 죽이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그 사랑을 받은 자녀들이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부끄럽지 않고요, 작지 않습니다. 별거 아닌, 변변찮은, 형편없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존귀한 자들 베드로전서2장의 말씀처럼 존귀한자, 왕과 같은 제사장, 아버지의 백성, 자녀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여러분이 되길 소원합니다.

(2) 성찬식을 통해 하나됨을 경험하자

지난주에 우리가 세례식에 참여했고, 이번주는 성찬식입니다. 이 예식을 우리는 성례라고 부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수단이 3가지가 있는데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성례를 통해서입니다. 이 세례와 성찬을 통해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너희가 나의 자녀이다. 내가 너희를 위해 죽었고, 너희도 나와 함께 죽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난 것처럼 너희도 다시 살아났다. 새것이 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될 것이다 라는 약속을 보여주시고 믿게 해주시는 수단입니다.
물론 세례를 받지 않고, 입교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버지의 자녀가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예식을 통해서 온 교회에 나 자신이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찬예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찢기신 살과 피 그 은혜가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안에 있다. 또한 우리가 그의 안에 있다라는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찢기신 살을 떡을 통해 우리가 눈으로 보고, 흘리신 피를 포도주를 통해 우리가 봅니다. 이것들을 먹고 마시므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아버지의 사랑, 붉은 포도주를 통해 나의 추악하고 붉은 죄를 보며, 그것을 마시므로 나의 죄의 추악함, 쓰라림을 느끼며, 그러나 그끝에 달콤함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이 이처럼 달콤하구나 사랑스럽구나 은혜롭구나 라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성찬을 장난으로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 예식이 진행되는 곳에 모두가 참석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예식에 다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엄준한 선언과 고백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진지하게 고백한 입교자 세례자들이 참여할 수 있고, 아직 학습중이거나 유아세례까지 받은 자는 이 예식을 눈으로보며 나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은혜를 누리고 싶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익합니다.
성찬을 통해 우리가 누리는 큰 은혜는 또한 떡이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포도주가 원래 한잔이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가 예수님의 몸이 된 것처럼 떡과 잔을 받은 우리가 한몸임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 될 수 없는 존재들인데 하나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몸입니다. 주님을 통해 한 몸이 되었습니다. 전혀 관계가 없고 서로에게 무관심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로 연결되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경험하고 주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허무는 그 연합의 은혜를 저버리는 우리가 되지 않고 하나되기를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자녀이며 가족, 한 몸입니다.

(3)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함

아버지께서 우리의 회복시켜주셨기에 우리는 다시 아버지께서 명하신 사명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땅을 다스리라..이 것은 아버지의 자녀로서 통치권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늘의 방식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따라 살아라!
어떤 외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뒤흔드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내 안에 올라오는 압력들, 방해들, 내가 예수님을 따라 말씀을 따라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유혹들을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봐야지 라고 마음먹고 오늘 예배 잘드려봐야지 주중에 또 말씀읽고 기도하고 예배도드려봐야지, 기도회도 가봐야지 하지만 그 때 무슨일인지 참 재밋는 일이 생기거나 걱정거리가 찾아옵니다. 우리 마음을 흔듭니다. 처음 마음먹었던 믿음을 따라 살지 못하게 합니다. 걱정되게 하고요.
또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방해가 들어옵니다. 친구들, 부모님들, 형제들 너 갑자기 왜그래 너 안그랬잖아 너 왜 신앙생활 열심히 할려고 그래, 너 뭐 잘 못먹었어? 지금 이 상황에 교회가는게 예배 가는게 중요하니? 뭐가 더 중요한지 모르니? 무수한 공격들이 우리가 가장 넘어지기 쉬운 것들을 어쩜 그리 잘 아는지 약점을 파고들어옵니다.
그때 우리의 자세는 그것들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가족들과의 화목, 친구들과의 관계 열심히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선순위 뭐가 더 중요한지 모르니?’ 라는 물음에 예배가 예배 드리는 것이, 말씀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말씀대로 살려고 도움을 주는 것이 나의 삶에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나의 삶에 가장 유익하다 그것을 위해 살아간다 라고 고백하시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결론

우리는 아버지의 형상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되어 아버지의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존귀한 자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존귀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된 자들입니다. 세례와 성찬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된 자들임을 기억하며, 하나되기 위해 한몸이 되기 위해 서로 사랑하는 우리가 됩시다.
더 나아가 서로 사랑하는 것,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것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우리는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고백
내가 하늘 아버지의 존귀한 자녀임을 기억하며, 세상의 속삭임에 휘둘리지 않고 아버지의 말씀으로 ‘다스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우리의 삶
1) 최근에 자존감이 낮아졌던 경험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아버지의 뜻을 따라 내 삶 속에서 다스려야 할 영역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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