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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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복음 6:35(신약 153쪽)
설교제목 : 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이에 관해 나름의 생각과 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요사이 저는 공동체 모임을 참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관해 얘기를 나눕니다. 그 과정을 통해 놀라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셨던 은혜를 여러 모양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고 경험한 예수님에 관한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지금까지 만났던 분들은 다 나름대로 특별한 간증거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여기 계신 우리 성도분들에게도 동일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에 관해 또는 예수님에 관해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생각말고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요? 오늘 그것에 관해 얘기를 나누려 합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는 이야기가 다수 나옵니다. 남은 사순절 기간동안 이 시간을 통해 그것을 몇차례 더 살펴볼 것입니다. 먼저 그것은 이와 같은 형식을 지니고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무엇무엇이다.’라고 말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 나눌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십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나타내는 특징적이고 중요한 표현입니다. 이것을 이른 ‘에고 에이미’라고 합니다. 이는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어에서 온 말로 영어로 옮기면 ‘I am’이 되고 우리말로 ‘나는 무엇무엇이다’라고 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사실 일찍이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한 방식과 같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나는 무엇무엇이다’라고 소개함으로써 예수님은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이 바로 자신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통해 나타나는 예수님의 에고에이미 곧 자기 소개는 총 7가지입니다. 첫째, 나는 생명의 떡이다. 둘째, 나는 세상의 빛이다. 셋째, 나는 양의 문이다. 넷째, 나는 선한목자다. 다섯째, 나는 부활과 생명이다. 여섯째, 나는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이다. 일곱째,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이렇게 요한복음은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소개 형식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자기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또 이것을 성경의 완전수인 7을 사용해서 총 7번에 걸쳐 이야기한 것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예수님이 자기소개를 실제로 일곱번 한 것이 아니라 완전수인 7에 맞춰서 예수님을 일곱번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바로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이시고 완전하신 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의 자기 소개인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언뜻 들어서 알것도 같은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좀 어려운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이 구절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몇몇의 책을 살펴보았는데, 명쾌하게 이 구절을 설명해내는 책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자기 소개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음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자신을 떡으로 비유하신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소개하시기 전에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의 사건이 있습니다. 이는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명이 넘는 무리를 먹이신 사건입니다. 이것이 복음서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모두 기록이 된 사건인 것으로 보아서 이 이야기는 꽤 유명하고 중요한 이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베풀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 자리를 떠나십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를 자신은 생명의 떡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 하는 것은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배부르게 먹은 까닭이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 당시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떡을 베풀어주는 분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사람들의 기대와 다른 생명의 떡이 되고자 하셨습니다. 이 말이 언뜻 이해가 잘 안 되시죠. 당시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베불리 먹여주셔서 앞으로 그렇게 먹여주실 것을 기대하며 왕으로 세우고 따르려 했지만, 예수님은 엉뚱한 얘기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얘기를 듣고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단지 그의 열두 제자만이 예수님의 곁을 지키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이해해 보자면 예수님이 자신을 떡에 비유하신 것은 오병이어 사건과 관련이 있고요. 오병이어 사건 때 먹었던 떡과는 다른 종류의 떡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주시는 떡은 단지 허기를 달래는 떡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주시는 떡도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게 할 것임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병이어 때처럼 먹고 배부르게 하는 종류의 떡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게 뭔데?’라고 물으면 쉽게 답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예수님도 명확하게 말씀해주지는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단지 저는 이렇게 해석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말합니다. 그러니 ‘생명’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예수님의 자기소개를 나름대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쉽게 말하면 ‘신비’입니다. 인간은 오랜 시간을 통해 과학을 발전시켜왔고 여러 동식물의 유전자 개량을 하고 심지어 유전자 지도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로 오늘 우리가 먹는 과일과 채소 또 고기류는 과거보다 질이 좋고 영양적으로 더 풍성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생명을 창조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생명은 인간이 아직 가닿지 못한 영역이고 알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비롯한 여러 동식물은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 생명이 사라지면 죽습니다. 모르지만 분명이 존재하는 것이고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사라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신비의 영역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와 같은 분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고 여전히 가닿지 못한 영역에 속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역사에 친히 찾아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이 땅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역사를 부인할 수 없지만 우리 역사를 넘어 계시는 참으로 놀랍고 신비한 분이십니다.
또 생명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확인히 차이가 납니다. 살아 있는 호흡하고 움직입니다. 죽은 것은 그렇지 못합니다. 또 살아 있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 또는 생명이 있다는 것은 호흡하고 움직이는 것이며 먹는 것입니다. 달리 보자면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하시는 분임을 말해줍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은혜에 따른 것이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예수님을 믿지 않고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도 멀쩡히 숨을 쉬고 활동하고 밥을 먹습니다. 그것에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지점에서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떡과 구별되는 생명의 떡이 되심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던지 안 믿던지 우리는 먹고사는 일에 어려움이 없을 수 있습니다. 먹을 양식이 없지 않는 한은 먹고사는 것에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양식으로만 우리가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흔히 이런 얘기를 합니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사냐고’ 말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밥만 먹고 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먹고사는 것 이상의 의미와 목적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서 그것을 찾아 헤메입니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그것을 찾는 일에 연속이었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먹는 것 이상의 것을 행하기 위해 여러 일을 벌입니다. 좋게는 학문과 예술을 번성케 하고 나쁘게는 폭력과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이 자세히 살펴보면 먹고 사는 것 이상을 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평생을 걸쳐서 인류의 역사를 통해 찾던 것이 어디 있는 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저기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여기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의 떡이 되심을 이야기하십니다. 달리 말하자면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우리 인류의 의미이고 목적이 되십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 먹고사는 것 이상으로 관심가져야 할 것은 예수님을 붙드는 일인 것입니다. 좀 복잡한 얘기를 길게 늘여 놓았지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됨을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가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의미를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아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분을 아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데, 저는 오늘 우리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붙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지고 온전한 삶을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서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여 찬양하며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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