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양의 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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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복음 10:7(신약 162쪽)
설교제목 : 예수님은 양의 문입니다.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일전에 소개했지만,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총 7가지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를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라고 한다 했습니다. 다시금 이를 나열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나는 생명의 떡이다. 둘째, 나는 세상의 빛이다. 셋째, 나는 양의 문이다. 넷째, 나는 선한목자다. 다섯째, 나는 부활과 생명이다. 여섯째, 나는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이다. 일곱째,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지난 주 이 시간을 통해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시고 세상의 빛이심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해서 오늘은 양의 문이신 예수님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에서 보듯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먼저 양에 관한 얘기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인간과 함께 생활하고 인간이 이용하기 위해 키우기 시작한 동물을 가축이라고 합니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이 처음으로 기르기 시작한 가축은 ‘개’라고 합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소, 말, 돼지, 양, 염소가 가축으로 길러졌습니다. 특별히 양은 기원전 그러니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 약 1만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길렀던 가축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가축이 양이고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축도 양입니다. 성경에서 약 500회 이상 나오는 가축입니다. 이는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근동 지역에서 양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친숙하고 특별한 존재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로 치면 소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소도 귀한 가축으로 대접받았는데, 여러 모양으로 쓸모가 많았고 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썼기 때문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양 또한 마찬가지여서 젖과 고기를 먹고 가죽과 털로 옷을 짓고 심지어 뿔을 악기로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양은 성경의 시대에 친숙한 동물이고 특별한 동물이다보니 종종 성경은 양과 관련된 비유를 많이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을 양에 비유한다던지, 예수님은 제사에 쓰이는 어린 양에 비유한다던지 합니다. 또 오늘 함께 읽은 성경 구절에서는 예수님을 양의 문으로 비유하기도 하고 좀 더 나아가 살펴보면 양을 돌보는 목자 더 정확히는 선한 목자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양의 문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양이 드나드는 문입니다. 양을 돌보기 위해서는 양을 가둬둘 우리가 필요했습니다. 양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양을 방치해 두면 야생동물 특별히 이리와 같은 동물에게 잡아 먹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서 양을 치는 목자들은 낮에는 양을 들판에 풀어서 풀을 뜯게 하고 밤에는 우리에 넣어서 안전하게 보호했습니다. 그래서 양은 이러한 우리를 드나드는 문을 늘 통과해야 했습니다.
달리보자면, 양의 문은 양을 지키고 보호하는 입구로 들어서는 길입니다. 양이 문을 통과해 우리로 들어가면 안전해지지만 해가 졌는데도 양이 밖에 있으면 위험하고 이리의 사냥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양을 보호해 주시는 분임을 말해줍니다. 더 정확히는 양으로 상징되는 그의 백성인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임을 말해줍니다. 결국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안전해 질수 있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보호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이어지는 성경 구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8절~10절을 같이 읽습니다.
요한복음 10:8-10(신약 162쪽)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저는 실제로 양이 어떤지 모르지만요. 양에 관해 설명하는 이야기를 참고하면 공통적인 얘기가 이렇습니다. 양은 눈이 어둡고 귀가 밝다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의 인도함 없이는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하지만, 목자의 소리는 정확히 분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우리에 여러 양이 섞여 있어도 문제가 없는 것이 양은 자신의 목자의 소리를 분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양들이 듣지 아니한다’라고 말입니다.
또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를 예수님은 ‘절도와 강도’라고 부르십니다. 당연히 양의 우리에서 남의 양을 데려가려는 사람은 양을 훔치려는 사람이겠지요. 그리고 그러한 도둑들이 행하려는 것은 양을 죽게 만드는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만 양이 보호받을 수 있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양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결국 예수님께 속했을 때 우리는 보호 받을 뿐 아니라 구원 받게 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일종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가운데서 주로 하나님 나라에 관해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처음으로 내뱉은 일성은 이러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씨 뿌리는 비유’를 비롯하여 여러 비유 이야기는 사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오늘 성경 구절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양의 문에 비유한 것도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고자 하신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자신을 양의 문으로 비유하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핵심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와 같은 가르침을 주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좀 전에 읽었던 요한복음 10장 8절 이하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 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며 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양을 멸망시키려 한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양을 빼앗고자 하는 이들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자신의 양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러한 가르침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양들을 빼앗고자 하는 절도와 강도는 누구일까요? 정확히 누구라고 딱 짚어서 말할 수 없지만, 추측해보면 그들은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반대하고 예수님을 없애고자 했던 바리새인들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양들의 목자인척 행동하지만 실은 양들의 진짜 주인이 아니고 절도와 강도입니다. 그들에 속하면 멸망에 길에 접어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들은 오늘 시대에 예수님 적대시하는 세력 이른바 적그릿도 혹은 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적그리스도라고 해서 또는 악이라고 해서 뿔 달린 악마처럼 우리에게 괴기하고 무섭게 다가오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백성들을 미혹했던 바리세인들처럼 오늘 이 시대의 적그리스도와 악은 훨씬 더 유혹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마치 이와 같은 방식일 수 있습니다. 꼭 예수를 믿어야지만 구원받냐? 예수도 믿고 다른 것도 믿을 수 있지? 혹은 예수를 믿는다고 쌀이 나오냐 돈이 생기냐 뭐니뭐니해도 머니가 최고지, 쓸데 없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또 평생을 예수 믿을 건데 이번 한번쯤은 예배 빠질 수도 있지. 다음에 가면 되지 않겠어. 제가 표현이 서툴러서 더 세세하게 말씀을 못드리겠지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 충분히 우리에게 유혹의 손길을 뻐치는 여러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좀 전에 읽었던 요한복음 10장 9절의 말씀입니다. 제가 다시 읽습니다.
요한복음 10:9(신약 162쪽)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구원의 문입니다. 그분은 마치 양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양의 문처럼 우리를 안전히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세상에는 양들을 미혹하는 절도와 강도가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혹을 떨침으로 우리는 구원의 문제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 예수님 밖에 없음을 믿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분이 참으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믿으며 오늘도 그 분께 속해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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