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지음받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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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에베소서 2:10(신약 311쪽)
설교제목: 하나님께 지음받은 인간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얼마 전에 알게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어떤 실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최후통첩게임’이라고 불리는 실험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게임에 참여합니다. 이렇게 갑과 을 두 사람은 이러한 규칙으로 게임을 하게 됩니다. 갑에게 만원을 주고서 을에게 자유롭게 돈을 나눠주라고 합니다. 을은 갑이 제시한 금액을 듣고 이를 받아들이면 갑이 정한대로 만원을 나눠가지게 됩니다. 반면에 을이 갑의 제안을 거절하면 갑과 을 모두 돈을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이 실험의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서로 알지 못하는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갑과 을로 나눠서 실험을 해 본 결과는 이러했습니다. 평균 갑은 을에게 4,500원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평균 을은 2,000원 이상의 금액을 제시할 때만 갑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서 확인된 결과는 생각보다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이기적이기만 하다면, 갑은 생면부지의 을에게 평균 4,500원을 제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이 게임은 갑이 을에게 1원만 주면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을은 1원만 받아도 이익이 되기 때문에 갑의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많은 2,000원을 주어도 을은 갑의 요구를 거절하여 둘다 한 푼도 가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인간의 선택은 마냥 이기적이지 않음이 밝혀졌습니다.
언뜻 잘 이해가 안 될 수 있는데, 논리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0원보다 1원을 얻는 것이 이익입니다. 그러나 실험결과는 1원을 얻기보다 1원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마도 우리 또한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당장 저에게도 갑이 자신은 9,999원을 가질테니 너는 1원을 가지라고 하면, 갑이 그렇게 가지는 것이 부당하다 생각해서 나도 기꺼이 1원을 포기하고 갑이 9,999원을 가지는 것을 가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경제학자들이 만든 실험입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믿고 이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인간은 이기적이지만은 않음이 나타났습니다. 이를 통해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이것입니다.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만은 아니기에 이를 통해서 경제에 관한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면 서로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옳은 경제의 모델이겠지만,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만은 아니기 때문에 경쟁이 아닌 협력과 공존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어떴습니까? 동의가 되십니까? 저는 이를 놓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도 언뜻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여기게 되는 순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사역을 하면서 실망하게 되고 좌절하게 되는 순간이 그렇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호의를 베풀고 최선을 다해 섬기는데 그것이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여기거나 호의를 권리라고 여기는 모습들을 보면 때로는 화가나고 때로는 크게 낙심합니다.
그 무서운 이야기가 있잖아요.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여’ 아마도 이 말 속에는 인간에 관한 낙담과 절망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말 속에는 인간에 관한 부정적인 이해가 깔려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삶 속에서 인간관계를 통해 많은 상처를 받고 그 결과로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상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마음으로 온전히 사역할 수 없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 대한 회의와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질수록 상대에 관한 사랑과 믿음이 없어지고 미움과 불신 또는 분노가 자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여러 교회를 거치면서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이 되지 않는 관계에 관해서는 회의감이 몰려오곤 했습니다. 초반에는 잘 모르니깐 내가 잘해주고 열심히 섬기면 되겠지하던 마음이 2년이 넘어서면서까지 지속되면 그런 마음으로 바뀌는 겁니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하는 것인지 또 과연 변화가 될 수는 있는 것인지 그러다 그러한 마음이 커지만, 아마도 나는 도무지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를 고민하게 되곤 합니다.
올해 4월이 되면 제가 신황등교회에 온지 약 3년이 넘어섭니다. 저는 작년에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를 계속 고민하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돌아보니 뭔가 애를 쓴 것 같은데, 그 결실은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적잖은 회의감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내가 사랑해야될 대상을 미워하고 긍정해야할 대상을 부정함으로 온전한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생각과 믿음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눈앞에 현실은 답답한 구석이 있고 아쉽고 성에 차지 않는 구석이 있지만, 하나님은 놀랍게 역사하셔서 나의 부족함에도 나의 연약함에도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룰 것입니다. 그 믿음을 통해 이전에 미웠던 대상을 다시금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고요. 사랑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 인간의 이해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실험에서 밝혀진 것으로 인간은 그렇게 이기적인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과연 성경의 이야기는 어떠할가를 관심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구절이 이를 이야기해 주고 있는데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2:10(신약 311쪽)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존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선한 일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저는 이를 통해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의 모습은 악하거나 이기적인 존재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죄로 인하여 악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격하되고 추락했습니다. 그러니 본래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은 악하고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저는 인간에 관한 희망을 발견합니다. 물론 인간은 죄로 인해서 악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살아가지만, 하나님께 구원받은 인간은 그로부터 돌아서서 다시 태초의 본래의 선하고 존귀한 존재가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이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소망입니다. 곧 하나님을 통해 우리는 변화된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할 신앙이 교훈이 라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는 잘 압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죄많은 인간이었는지 말입니다. 그런 내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변화된 존재로 거듭남으로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답고 선한 존재로 얼마나 새로워졌는지 말입니다. 적어도 내가 그러한 변화를 경험하고 그 변화를 믿는 사람이라면, 오늘 나의 곁에 있는 이 사람들이 그와 같은 변화를 이룰 것을 믿고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하게 또한 좋게 창조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그것이 왜곡되고 망가졌지만,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고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지음받고 하나님을 통해 변화되는 인간을 긍정하고 기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데 하나님을 믿음으로 오늘도 서로를 더욱더 사랑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힘써 섬기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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