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금과 빛인 이타적인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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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5:13-16(신약 6쪽)
설교제목: 세상의 소금과 빛인 이타적인 인간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어제 제가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와 유사한 실험 곧 ‘신뢰게임’이라고 불리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어제 소개해드린 최후통첩게임과 비슷하면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됩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어제 게임과 마찬가지로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을 게임에 참여시킵니다. 심지어 이들은 서로의 얼굴도 볼 수 없습니다. 편의상 어제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을 갑과 을이라고 칭하겠습니다. 먼저 갑에게 만원을 줍니다. 갑은 을에게 그 돈을 자유롭게 나눠줄 수 있는데, 이번에는 한푼도 안 줄 수도 있습니다. 반면 을은 갑이 나눠준 금액의 세 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가령 갑이 5천원을 을에게 주면 을은 그 세 배에 해당되는 만 오천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을은 그 받은 돈을 갑에 또 나눠줄 수도 있고 나눠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게임 방법이 이해가 가셨죠. 갑과 을이 자신의 돈을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나눠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게임을 여러 차례 진행해본 결과 이와 같은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갑은 평균적으로 8원 정도의 돈을 을에게 나눠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갑은 2천원을 가지게 됩니다. 이에 을은 평균적으로 갑에게 받은 돈의 절반을 다시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갑이 8천월을 나눠주면, 을은 그 세 배인 21,000원을 받게 되는데, 이 돈을 받은 을은 다시 갑에게 약 만원 정도의 돈을 돌려줌으로써 서로 비슷한 금액을 나눠가졌다는 것입니다.
어제 최후통첩게임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놀랍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을에게 질문을 하면서 나타났습니다. 게임 진행자는 물었습니다. 왜 갑에게 받은 돈을 절반 가까이나 돌려줬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많은 경우에 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갑이 을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었고 신뢰를 보여줬는데, 이에 마땅히 보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이름을 ‘신뢰게임’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 어제 소개해드린 최후통첩게임과 마찬가지로 경제학자들이 고안한 게임입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관찰하기 위한 실험이었습니다. 어제 실험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가 아님을 이 실험은 보여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게임을 통해 인간은 신뢰를 받을 때 신뢰로 답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상대에게 믿음을 보여주면 상대고 그 믿음에 답한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게임을 하면서 사람들의 피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 성분을 살펴보았는데 참으로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 게임에 참여하고 서로를 신뢰한 갑과 을에게서 ‘옥시토신’이란 호르몬이 나왔습니다. 옥시토신은 행복에 관계된 호르몬인데요. 주로 임산부가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얻게되는 호르몬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호르몬의 영향으로 임산부는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것이 옥시토신 호르몬에 의해서 행복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이 실험이 보여주는 놀라운 결과는 이렇습니다. 사람은 서로 신뢰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행복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실험을 통해 얻어진 결론은 이렇습니다. 인간은 이타적인 행동을 통해서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참 의미있는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은 성경의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을 통해 이를 다시 확인 할 수 있는데요. 다시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16절까지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13-16(신약 6쪽)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요약하자면, 예수님은 우리 곧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부르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또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입니다. 언젠가 이에 관한 설교를 하면서 이러한 부분을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할 사람이 아니라 이미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인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에 관하여 여러 설명이 뒤따를 수 있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소금과 빛이 자신을 희생해서 세상을 맑히고 밝히는 것처럼 우리는 이타적인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이타적인 존재이기에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이 때때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오래 전에 사촌 동생과 나눴던 이야기입니다. 왜 기독교인은 양보만 해야하고 배려만 해야하냐고 그것이 불만스럽다는 듯 따져 물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것이 이러한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자도생 곧 스스로 살길을 찾는 것이 옳고 이에 따라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옳은 일인데, 어째서 기독교는 이타적으로 살라고 가르치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손해를 보는 일이고 삶을 힘겹게 만드는 일이니 말입니다.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자기를 희생해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간다면, 참 피곤하고 힘든 일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이러한 삶에 관해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돌려대고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같이 가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다 내어주라고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왜 이렇게 피곤하고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사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니까 따라야 함을 알지만 이것이 우리게 썩 유쾌하고 좋은 삶 같지는 않아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앞서 소개한 ‘신뢰게임’을 통해서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하는 것은 단지 예수님의 명령이라서 또는 예수님이 좋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소개한 신뢰게임에서 보았듯이 사람들은 이타적인 선택을 통해 더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언뜻 우리 생각에 그것은 손해보는 일이고 별로 유쾌한 삶인것 같지 않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요.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은 놀랍게도 이기적인 삶보다 이타적인 삶을 살아갈 때 더 행복해지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요사이에 특별히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관심있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를 통해 목회와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인간에 관한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더욱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은 성경이 참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우리 인간의 삶을 훨씬더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언뜻 드는 생각에 때때로 성경이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핀 성경구절처럼 우리에게 이타적인 삶을 요구하는 성경의 가르침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성경은 참으로 인간을 위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바라건데 저는 오늘 이러한 믿음과 고백이 우리 성도분들에게서도 나타나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등대 삼아 그 길을 온전히 따라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그 길을 걸으면서 더욱더 행복한 삶을 경험케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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