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봅시다!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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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린도전서 15:19(신약 283쪽)
설교제목 : 잘 살아봅시다!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제 기억이 맞으면 올해 들어서 두 번째 장례가 이번 주에 있었습니다. 첫 번째 장례는 교회장으로 치뤄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실상 올해 교회장으로 치뤄진 첫 번째 장례가 이번 주에 있었던 故 이윤순 권사님의 장례입니다. 안타깝게도 매년 저는 평균 7회 이상의 장례를 경험합니다. 제가 올 4월이 되면 신황등교회 온지 3년째가 됩니다. 일전에 말씀드렸는데, 그 사이에 저는 스무 번이 넘는 장례를 경험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얼굴을 거의 뵌적이 없는 분들이었지만, 이제는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 신앙생활하고 때때로 담임목사님과 심방하며 밥도 같이 먹고 했던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장의 풍경이 낯설지 않지만 고인이 되신 분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 같이 예배드리고 같이 활동했던 분이 너무나 갑작스레 사라져 버린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인이 되신 이윤순 권사님에 관한 기억도 그렇습니다. 제 기억으로 재작년 봄쯤 화사한 분홍색 정장을 차려입은 이윤순 권사님을 교회에서 뵙고나서 그 후로 다리를 다치시고 약 2년이 가까워지는 시간 동안 교회에서 뵙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담임목사님과 심방을 가서 찾아뵙기도 하였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얼굴을 보는 일도 연락을 주고 받는 일도 차츰 힘들어졌습니다. 지난 달로 기억하는데요. 동역장님과 함께 달력을 전해주러 갔었는데, 모처럼 얼굴을 뵐 수 있을 걸 기대했지만, 그 또한 아쉽게도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 날이 좀 따뜻해지면 또 얼굴을 뵐 수 있겠지 생각하던 차였는데, 갑작스런 비보에 꽤 놀랐습니다. 제 생각에는 너무 일찍 소천하셨다고 여겨졌습니다.
문득 돌이켜 보니, 근래에 장례를 치르면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참 많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억이 쌓이는 성도 분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왜 이다지도 금세 떠나셨는지하는 안타까움이 더 커져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참 짧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수명이 과거보다 길어져 평균수명이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그것이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나 죽음 앞에서 어떤 분도 오래 살았다는 생각보다 아니 벌써라는 생각이 들곤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고인이 되신 분을 뵈온지가 길어야 이제 3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더욱더 짧다고 느껴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길어야 100년 조금 넘을 것입니다. 분명 100세를 넘기신 분도 있고 심지어 120세를 전망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이 지구의 역사를 놓고 봐도 그리 길다고 할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보다 몇 배 혹은 몇 십배를 더 오래 사는 동물이나 식물도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마음은 몸보다 젊어서 언제나 본래 내 나이보다 작게 여기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여기 계신 성도분들에 비해 어리지만, 저도 올해 마흔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은 종종 그렇게 여기지 않는 듯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제 나이를 보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아니, 벌써? 내가 예전 봐왔던 40대 형님들은 나같지 않았는데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내 마음은 내 몸의 나이보다 어린 것 같습니다. 그러니 100세가 되고 심지어 120세가 된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스스로는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여기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100세가 되던 혹은 200세가 되던 어쩌면 이제 죽어도 괜찮다고 쉽게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물론 말로는 오래 살았다고 이제는 그만 살아도 되겠고 할지모르나 막상 죽음 앞에 서는 일에 생의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인생이 짧게 느껴지고 죽음은 늘 생각보다 너무 일찍 찾아오는 것같다 여겨집니다. 한편 그로 말미암아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게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봅니다. 평균수명 100세를 이야기 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죽음은 정해진 것이 아니기 그것은 언제 어느 때 우리에게 닥칠지 모릅니다. 그렇게보면 정말 우리의 삶이 언제 어느 순간 부지불식간에 끝나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는 그것에 교훈을 주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구절이라 생각합니다. 다시금 같이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입니다.
고린도전서 15:19(신약 283쪽)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이는 고린도전서 15장이 주로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 있는 몇몇 성경 구절은 장례예식에 많이 사용되곤 합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도 그러합니다. 저도 장례 예식 가운데 이 구절을 익히 들은 바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부활 곧 새로운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 걸맞는 삶을 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걸맞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함께 사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것은 이타적인 삶이고 사랑하는 삶입니다. 만약에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난다면, 우리는 현재의 삶을 가장 이기적으로 살아야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짜피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인데, 무엇을 위해 남을 생각하거나 배려하며 살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명확해집니다.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내일 나는 죽게 됩니다. 이 죽음으로 나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부활도 없고 영생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죽음 앞 둔 나는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것이 만약 진리라면, 저는 모든 사람들이 철저히 이기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죽으면 아무런 책임도 비난도 없을테니 말입니다. 그냥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선택을 하고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죽음 이후의 삶이 있고 그것이 이전과 다른 영원한 삶으로 나타날 것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결코 이기적으로만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나의 선택은 최종판결을 받을 것이고 그 선택 앞에서 나는 완전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활을 믿고 영생을 믿는 우리의 삶은 결코 이기적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택에 우리는 심판을 받고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우리는 이타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의 욕망이 앞서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그것이 내게 심판으로 책임지게 될 것인 말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고려하고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죽음 이후에 심판이 두려워서 마지 못해 선행을 하고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면 부활과 영생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까울 것입니다. 마치 평생을 눈치보며 살았는데 죽음 이후에도 그렇게 살아야한다면 그것은 도리어 지옥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해야할 삶은 그렇게 두려워 떨며 눈치보는 삶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충만해져 기쁨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언젠가 행복이라는 주제를 공부하면 배우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물질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특별히 사람 사이에 맺는 좋은 관계로부터 비롯된다고 말입니다. 이는 우리가 좋은 관계를 이루며 더불어 사는 삶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일례로 사랑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사랑이란 결국 관계맺음입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관계맺읍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는 그 관계가 주는 풍성한 기쁨을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나 새신랑이기 때문에 더욱더 잘 압니다. 혼자 일 때보다 함께 일 때 더 즐겁고 기쁘고 만족스럽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추구할 삶이 여기에 있습니다. 함께 살아감으로 행복과 사랑을 경험하는 것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풍성한 은혜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와 같은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생각보다 우리의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짧습니다. 그 삶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일을 함께 살아가는 일을 이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의미이고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데, 우리가 오늘 우리의 삶을 이와 같이 풍성한 사랑으로 함께 더불어 살기를 힘쓰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됩니다. 함께 하는 것이 기분 좋은 사람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한 우리 성도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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