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03

사무엘상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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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서 강해 03
2020-08-02
<복습>
대상6:1을 보면 이 족보는 레위 가문의 족보
고핫 자손으로 제사장 가문입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는데 …
제사장 집안의 영적 상태
2 …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다른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더라. 브닌나는 자녀가 있었으나 한나는 자녀가 없더라.
가정의 질서가 무너짐으로해서 잠재적 문제를 항상 안고 살게 됩니다.
3 이 사람이 해마다 자기 도시에서 나와 실로에 계신 만군의 {주}께 올라가 경배하며 희생물을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거기서 {주}의 제사장으로 있더라.
“해마다”
예수님 가정도 절기를 지키
현재 엘가나의 제사장으로서의 모습은 망가져 있다고 묘사하고 있고
엘가나의 종교적 삶은 신실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실로”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지였습니다.
성막이 있고 하나님의 법궤가 있던 곳
아내에 대한 사랑,
가장으로서 충실한 역할
사무엘서의 주인공
사무엘? 한나? 다윗?
만군의 주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관자 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책
오늘 강의 시작>>>
4 ¶ 엘가나가 봉헌하던 때에 자기 아내 브닌나와 그녀의 모든 아들딸들에게 여러 몫을 주었으나
5 한나에게는 상당한 몫을 주었으니 이는 그가 한나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나 {주}께서 그녀의 태를 닫으셨더라.
엘가나는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였지만 그를 사랑했습니다.
(엡5:25)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 같이 하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셨나요?
자기 목숨을 내어주고 교회를 얻어 되신 것입니다.
자기 아내를 목숨까지 바쳐서 사랑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남편의 역할입니다. 이것이 성경적 기준입니다.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은 교회가 주님께 순종해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랑은 조건부가 아닙니다.
정확한 기준 안에 들어와서 신부의 신분을 얻게 되는 순간, 그 사랑은 커졌다 작아졌다, 줬다 뺏었다 하지 않습니다.
일단 내 아내가 되었으면 절대로 헤어지지 말고 목숨바쳐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남편은 그렇게 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남편의 몫입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든 하지 않든 주님의 명령이 순종이면 순종하셔야 합니다.
나쁜 남편에서 순종하시면 상이 더 커집니다.
감사하셔야 합니다.
5 … 그러나 {주}께서 그녀의 태를 닫으셨더라.
우리 생명의 태를 열고 닫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 이십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만드셔서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를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것입니다.
(시139:13) 주께서 내 콩팥을 소유하셨으며 내 어머니 태에서 나를 덮으셨나이다.
(시139:14) 내가 주를 찬양하리니 내가 두렵고도 놀랍게 만들어졌나이다. 주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놀라우므로 내 혼이 그것을 매우 잘 아나이다.
아담을 만든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과 우리 모두의 생명을 주께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6 {주}께서 그녀의 태를 닫으셨으므로 그녀의 대적 또한 그녀를 심히 자극하여 애타게 하였더라.
“그녀의 태를 닫으셨으므로”
여기서 이야기의 초점은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이를 출산하지 못하는 모든 여자는 내가 태를 닫았기 때문이라는 일반론도 맞습니다.
여기서는 한나의 경우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주께서” 하셨다고 하십니다.
한나가 아이를 못 갖는 것은 한나의 육신적인 문제가 아니고
남편의 문제도 아니고 그 어떤 다른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지적으로 그렇게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일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이시라는 것입니다.

분별력의 필요

주어진 상황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지, 나의 잘못때문인지를 분별하는 능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원인은 자신이 제공하고 있는데 해결을 주님께 해달라고 하면 하나님이 해주실 수 있는 것은 아주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내와의 문제나 자식과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그 문제의 원인이 자신의 교만한 말과 상대방의 화를 돋구는 표현이 문제인데 하나님께 해결해 달라고 기도만 하면 해결이 안됩니다.
원인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식견이 없으면 문제 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그 문제를 볼 수 있게 하는 일을 먼저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실 뿐일 겁니다.
문제의 원인이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 이라면
어설프게 내가 뭘 해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기만 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녀의 대적 또한 그녀를 심히 자극하여 애타게 하였더라.”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상대가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항상 우리를 자극해서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베드로전서 5:7-9.
(벧전5:7)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벧전5:8)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5:9)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잠자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요11:11) 이것들을 말씀하시고 그 뒤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자는도다. 그러나 내가 그를 잠에서 깨우러 가노라, 하시니
마귀가 울부짖는 이유는 뭘까요?
(암3:4) 사자가 먹이가 없는데 숲 속에서 부르짖겠느냐? 젊은 사자가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으면 자기 굴에서 소리를 지르겠느냐?
우리 마음에 교만이나 염려 근심 탐욕이 있으면 마귀가 울부짖습니다.
한나와 동일한 문제를 갖고 계신 분들도 계시고 동일한 문제는 아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유사한 상황에서 마귀의 유혹에 실족해서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가버리고 싶은 상황에 놓이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알고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빌립보서 4:6-7.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빌4:7)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7 그녀가 {주}의 집에 올라갈 때에 해마다 그가 그와 같이 하므로 브닌나가 그녀를 자극하니라. 그러므로 그녀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녀를 자극하니라”
자극하는 것은 화나게 하거나 분노하게 했다는 표현보다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 드는 표현입니다.
지금 교회 시대에 세상은 교회를 자극합니다.
앞에서는 교회가 어려운 사람도 돕고 좋은일 많이 합니다.
그러다가 뒤에서는 “코로나나 퍼트리는 집단아냐~”
“광신도들…”
“지금 수련회를 할때야…”
“코로나 끝날때까지 예배좀 안드리면 안되나!”
“그러므로 그녀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한나는 브닌나의 공격에 맞대응하지 않음

예수님도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는 악인의 공격에 맞대응할 필요 없습니다.
(사53:7) 그는 학대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였어도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며 도살장으로 향하는 어린양같이 끌려가며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는도다.
원수 갚는 일은 주께 속한 것
(롬12:19)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도리어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된바, 원수 갚는 일은 내 것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느니라.
(욥16:20) 내 친구들은 나를 비웃되 내 눈은 하나님께 눈물을 쏟는도다.
하나님이 한나를 아프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녀가 간절히 기도하게 만들어서 무언가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의 간절한 기도가운데 사무엘을 출현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녀를 간절히 목마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이 기진할 때 주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녀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이 말이 교회시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우리 신앙생활에 열매 맺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하고 계십니다.
세상은 오히려 교회의 열매맺지 못함은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특히 이들이 실로에 올라갈때면 더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교회 이슈가 나오면 우리를 더 조롱합니다.
세상 사람도 감사를 두고 제도와 법을 둬서 회계를 투명하게 하는데 교회는 목사의 권위로 재정을 마음대로 집행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한다고 답변만 한다면 이게 맞는 걸까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만 하면 어떤 것도 가능한 걸까요?
세상은 교회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여러분이 울지 않으면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신음하시고 울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상도 조화를 이루고 투명하게 조직을 이끌고 있는데 교회는 잘난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록된 성경에 하나되는 것도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눈이 가려 울지 않고 있다고 해도 여러분 안에 성령님께서는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8 이에 그녀의 남편 엘가나가 그녀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우느냐?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의 마음이 괴로우냐?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엘가나의 적극적인 사랑에도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불임)

구약적 배경

그녀의 대적이 그녀를 비난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일까요? 이 당시 태에 열매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통하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브닌나는 한나를 비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대적이 그녀를 애타게 만듭니다
한나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창세기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창30:22) ¶ 하나님께서 라헬을 기억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그녀의 태를 여셨으므로
(창30:23) 그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께서 내 치욕을 없애 주셨다, 하고
기본적으로 여자는 결혼을 하면 아이를 갖고자 하는 본능이 있고 아이가 없으면 치욕으로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오늘날 신약시대에 그대로 적용 할 수는 없습니다.
브닌나가 한나를 비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전부 일까요?
무엇일까요?
아이가 없다는 것만 가지고 한나가 슬퍼한 걸까요?
남편의 큰 사랑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했던 다른 이유가 없을까요?
성경 구절들을 찾아 보면 그 해답을 찾아 보겠습니다.
(신7:14) 네가 모든 백성들보다 더 많이 복을 받아 너희 가운데 남자와 여자와 너희 가축 가운데 수컷과 암컷이 수태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며
아이가 없다는 자체보다 그것이 당시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으로 비춰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약적 적용

영적 생명의 잉태 / 영적 열매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에게 만 명의 스승이 있다 해도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았느니라.
위 구절은 복음을 통한 혼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갈4:19) 나의 어린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께서 형성되실 때까지 내가 다시 너희를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겪노라.
위 구절은 그리스도인으로 열매 맺는 사람을 만들었다는 의미
8 …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사랑은 마음만으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정한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은 형식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엘가나는 한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브닌나 보다 더 많은 물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말로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엘가나가 질문 형식으로
왜 우시오? 왜 아무것도 안먹느냐? 왜 괴로우냐? 계속 묻고 있는 것은 엘가나가 그 원인을 몰라서 묻고 있을까요?
엘가나가 한나의 괴로움을 모를리가 없는 것입니다.
열 아들보다 내가 더 낫지 않냐고 묻는 것은
엘가나도 한나가 슬퍼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엘가나의 마음은 어떤 마음으로 이 질문을 한 걸까요?
현재의 문제를 나로 인해 위로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에게 위로받으셔야 합니다.
남편이 나를 위로해주지 못한 다고 밖에 나가서 다른 남자에게 위로받는 일을 하는 것은 음행입니다.
남편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으셔야 합니다.
남편이 보기 싫어서 밖에 나가서 다른 것으로 만족을 채우시는 것은 죄로 향하는 길입니다.
남편이 보기 싫어서 노래교실가고 춤배우러다니고 ...
남편에대한 마음의 질서가 올바른 상태에서 그 다음에 여러분의 각자의 문화생활을 위해서 취미를 넓혀가는 것은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마음의 질서가 남편과 하나님께 올바로 향하지 않은 상태에서 밖으로 나가면
속이는 사람에게 바로 낚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죄에 내어주는 상태에 방치하시는 것입니다.
(딤전6:6) 그러나 만족하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큰 이득이 되느니라.
억지로 교회나오고 신앙생활하면서 마음은 딴데가 있으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엘가나가 지금 말로 무언가 표현해서 한나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알지만 엘가나의 힘으로 이 상황이 정리되지 않는 것입니다.
한나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이 문제는 브닌나가 없어도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브닌나는 한나의 마음을 자극하지만
브닌나가 이 문제를 제공한 사람도 아닙니다.
한나가 아기를 못 가진 문제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문제의 원인은 한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 마음에 갖고 있는 패배감이기도 합니다.
한나가 아이를 낳게 되면 해결된 문제입니다.
그때까지 감당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선악과 사건에서도 문제의 근본 제공자 불순종의 죄를 범한 것은 여자였습니다. 뱀은 그저 자극하고 속이는 일만 한 것입니다.
라헬의 자세와 비교해 볼까요?
(창30: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기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달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죽으리라, 하니
(창30:2) 야곱의 분노가 라헬을 향해 타오르므로 그가 이르되, 당신이 태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금하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내가 그분을 대신하겠느냐? 하매
사라도 순종(벧전3:6)
아비가일도 남편을 가르쳤다거나 가르치라는 말이 없습니다.
아내의 지혜를 따르지 않은 남편은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는 경우는 있지만 아내가 남편을 흔들 수 없습니다.
나발을 죽이시고 다른 남편을 주시는 것은 있지만 남편을 좌지우지 하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비가일의 경우는 다윗을 예수그리스도로 예표하면서 벌어지는 일로 보면됩니다. 신약에서 현실 적용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아내를 잘 지키지 못하는 남편은 목숨을 내 놓고 한다 생각하시고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현숙한 여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실 현숙한 여인은 없습니다.
성경의 현숙한 여인은 신부 된 교회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현숙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