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04

사무엘상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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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복습>
2020-08-16
주께 경배하는 모습을 가지는 것이 성도의 중요한 자세이다.
-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한나의 문제는 한나 자신에게 있다.
- 문제를 밖에서 찾는 것은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한나는 엘가나에게 순종했고 하나님께 순종했다.
-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 질서가 순종으로 지켜지지 않으면 죄가 들어옵니다.
<본문>
Å 9절 성경에 나오는 7가지 성전건물 대해 설명
9 ¶ 이에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나니라. 이제 제사장 엘리는 {주}의 성전 기둥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더라.
¶ So Hannah rose up after they had eaten in Shiloh, and after they had drunk. Now Eli the priest sat upon a seat by a post of the temple of the LORD.
“성전 기둥 옆에” /성전 : Temple / 성막 : tabernacle
많은 분들은 이 대목에서 성경의 모순을 지적합니다.

아직 솔로몬의 성전이 지어지기 한참 전입니다.

성전은 솔로몬 시대에 가서 만들어지는데 어떻게 이곳에서 성전이 있다고 하는가에 대한 지적입니다.
성전(temple)은 영적인 의미에서도 사용됩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몸이 주님의 성전입니다.
중의 적인 적용이 가능합니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Know ye not that ye are the temple of God, and that the Spirit of God dwelleth in you?
성막은 텐트의 개념으로 이동성에 중점이 있는 형태의 장소입니다.
광야생활에서 이들이 이동하면서 성막을 설치하고 다시 해체해서 이동하는 형태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온 뒤에 이동의 개념은 거의 사라지고 한 곳에 머물게 되면서 텐트의 개념은 약해지고
고정된 건물로서 기능이 추가된 의미도 있다고 봐야 합니다.
즉, 성막의 형태가 유지되지 않고 건물의 형태가 더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모임의 중심

l 구약에서는 성전중심의 모임
l 예수님 당시에는 회당 중심의 모임
l 바울 당시에도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이 선포되었음
l 교회가 조직체로 등장하고나서 교회를 중심으로 모임
건물로서의 성전(temple)을 알아보겠습니다.

>>일곱 개의 성전이 있습니다.

1 실로의 성전 : 현재 있는 성전
2 솔로몬 성전 왕상 6장
3 재건축된 성전 에스라 4장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 고레스왕의 명령으로 포로귀환후 진행
4 헤롯 시대의 성전 요한복음 2장 예수님께서 부순다고 했던 성전
5 적그리스도가 있을 성전 살후2:4
(살후2:4) 그는 대적하는 자요, 또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인 것을 스스로 보이느니라.
6 천년왕국시대의 성전 에스겔 41장
에스겔을 통해서 장차 있게 될 성전에대해서
자세히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신약교회에서는 볼수 없었던 제사가
다시 시작되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7 하늘의 성전 계시록 11장
(계11:19)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는데 그분의 성전 안에 그분의 상속 언약 궤가 보이며 또 번개들과 음성들과 천둥들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먹고 마신 뒤에”
7절에서 한나는 울고 먹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는 먹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희생물을 드리고 나누어 먹는 음식을 같이 먹는 것입니다.
화평헌물을 드린 것으로 보입니다.
번제는 다 태워서 먹을 것이 없습니다.
화목제는 일부는 제사장과 헌물을 드린 사람이 같이 먹게 됩니다.
9“엘리는 … 의자에 앉았더라.”
엘리는 성전 기둥 옆에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의자"는 상징적으로 통치자의 역할을 한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의자에 앉아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모습입니다.

엘리의 영적상태

엘리는 계속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영안이 닫히면서 누워있기도 합니다.
(삼상3: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져서 그가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 그는 자기 처소에 누웠고
And it came to pass at that time, when Eli was laid down in his place, and his eyes began to wax dim, that he could not see;
사무엘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엘리를 찾아왔는데 가서 누우라고 말합니다. 누워서 잠자리에 들라는 것입니다.
(삼상3:5) 엘리에게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으므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매 그가 가서 누우니라.
And he ran unto Eli, and said, Here am I; for thou calledst me. And he said, I called not; lie down again. And he went and lay down.
(삼상3:6) 주께서 여전히 다시, 사무엘아, 하고 부르시니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으므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거늘 그가 응답하되, 내 아들아,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And the LORD called yet again, Samuel. And Samuel arose and went to Eli, and said, Here am I; for thou didst call me. And he answered, I called not, my son; lie down again.
전쟁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도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베냐민 군사가 패전 소식을 전하러 달려옵니다. 두 아들이 죽고 언약궤를 빼앗긴 소식입니다.
(삼상4:13) 그가 이를 때에, 보라, 엘리가 길옆에 있던 자기 의자에 앉아 기다렸으니 이는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인하여 떨렸기 때문이라. 그 사람이 도시에 들어와 그 일을 고하매 온 도시가 부르짖으므로
And when he came, lo, Eli sat upon a seat by the wayside watching: for his heart trembled for the ark of God. And when the man came into the city, and told it, all the city cried out.
죽을 때도 의자에 앉아서 죽습니다.
(삼상4:18) 그가 하나님의 궤를 언급할 때에 엘리가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옆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이는 그가 노인이요, 또 몸이 무거웠기 때문이라. 그가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하였더라.
And it came to pass, when he made mention of the ark of God, that he fell from off the seat backward by the side of the gate, and his neck brake, and he died: for he was an old man, and heavy. And he had judged Israel forty years.
신약성도는 항상 감사와 더불어 깨어있어야 합니다.
(골4:2) 항상 기도하고 기도 중에 감사를 드리며 깨어 있으라.
Continue in prayer, and watch in the same with thanksgiving;
9“한나가 일어나니라”
엘리가 앉아있던 것과 대비해서 한나는 일어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나는 일어나서 성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러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나에게 다가올수록 폭풍이 내 눈 앞에 일어날 수록
주저 앉아 있거나 낙심하지 말고 일어나서 주님께 향해야 합니다.
군사는 일어나 싸워야 합니다.
10 그녀가 혼이 쓰라린 가운데 {주}께 기도하고 심히 통곡하며
And she was in bitterness of soul, and prayed unto the LORD, and wept sore.
한나가 혼이 쓰라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나는 주께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은 때론 우리를 어려운 상황에 몰아 넣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뭔가 더 큰 것을 주시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시편 107편 5절 6절 목마르고 기진하게 만드심 / 고통에서 건시십니다.
(시107:5) 주리고 목마르매 그들의 혼이 그들 속에서 기진하였도다.
(시107:6) 그때에 그들이 고난 중에 {주}께 부르짖으매 그분께서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건지시고
12, 13절 고난 중에 부르짖게 만드심. / 고통에서 구원하심
(시107:12) 그러므로 그분께서 고역으로 그들의 마음을 낮추시니 그들이 넘어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시107:13) 그때에 그들이 고난 중에 {주}께 부르짖으매 그분께서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18, 19절 사망의 문들 앞에서 부르짖게 하심 / 고통에서 구원하심
(시107:18) 그들의 혼이 온갖 종류의 음식물을 몹시 싫어하매 그들이 사망의 문들에 가까이 이르느니라.
(시107:19) 그때에 그들이 고난 중에 {주}께 부르짖으매 그분께서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7, 28절 비틀거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하심 / 고통에서 구원하심
(시107:27)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고 술 취한 자처럼 비틀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도다.
(시107:28) 그때에 그들이 고난 중에 {주}께 부르짖으매 그분께서 그들을 그들의 고통에서 데리고 나오시며
교회 시대의 고난과 기도는 / 사망, 슬픔, 눈물이 없는 곳
(계21:4)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하더라.
한나에게는 사무엘이 태어나면 이 모든 슬픔의 눈물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신약 성도에게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의 모든 고난과 슬픔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사망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다시 오실 소망가운데 기도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심히 통곡하게”
엘리 제사장은 여인의 기도를 지켜 볼수는 있지만
그녀의 필요를 공급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녀의 필요를 들어 줄 수는 있지만
그녀의 필요를 채워 줄 수는 없습니다.
한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한나는 스스로 모든 힘을 다해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더이상 아무 힘도 없어 보입니다.
너무 울어서 눈도 퉁퉁 불어 있었을 겁니다.
통곡하며 자신에게 닥친 문제의 해답이 생길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제발 해결의 실마리를 달라고 끝까지 매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힘이 탈진 할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이상 입술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해결해 주실 분이십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 앞에 모든 것을 쏟아 놓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승리하는 방법은 이런 절박한 기도뿐 입니다.
Å 11절 한나의 서원기도 (20+10분=30분)
11 서원하여 이르되, 오 만군의 {주}여, 만일 주께서 참으로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주의 여종에게 사내아이를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토록 그를 {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And she vowed a vow, and said, O LORD of hosts, if thou wilt indeed look on the affliction of thine handmaid, and remember me, and not forget thine handmaid, but wilt give unto thine handmaid a man child, then I will give him unto the LORD all the days of his life, and there shall no razor come upon his head.
한나는 주님께 무언가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 11절에서 자신을 돌아봐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돌아 보시고 /Look / his eyes”
한나는 주님의 눈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나를 돌아봐 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원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나는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불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나는 자신이 아기를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주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태를 열고 닫음이 하나님의 주권임을 부정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까!”
그러나 한나는 하나님께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한나는 그저 자신의 고통을 봐달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제발 제가 놓여있는 이 상황을 돌아봐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눈을 통해 봐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기억하시며/ remember me”
두 번째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고 주님의 마음에 기억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를 만드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저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저를 여인으로 만든 것이 주님이십니다.
제가 여인으로 아이를 갖기 원합니다.
주님 저의 모습을 봐 주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기억해 주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내가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를 기억하시며…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 by his heart”
주님의 마음에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저를 기억하시고 저를 구원해 주시기 원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모른다 하신다면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떤 모습이 주님께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실 때 여러분이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사내아이를 주시면 / by his hand”
세 번째 한나는 그분의 손을 향해 기도합니다.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그 아들을 다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의 일꾼으로 다시 주님께 내 놓겠습니다.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한나는 주님을 향해서만 자신의 문제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욥16:20) 내 친구들은 나를 비웃되 내 눈은 하나님께 눈물을 쏟는도다. My friends scorn me: but mine eye poureth out tears unto God.
욥이 친구의 조롱에도 하나님만 바라봤던 것처럼 한나도 지금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조롱하는 친구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다 고하는 것입니다.
욥에게 닥친문제는 친구들이 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문제입니다.
(시62:1) 진실로 내 혼이 하나님을 바라나니 나의 구원이 그분에게서 나오는도다.
Truly my soul waiteth upon God: from him cometh my salvation.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십니다.
(시62:5) 내 혼아, 너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라. 내가 기대하는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는도다.
My soul, wait thou only upon God; for my expectation is from him.
한나는 자신이 아기를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주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태의 열고 닫음이 하나님의 주권임을 부정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엘가나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브닌나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엘리 제사장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1. 한나는 그저 자신의 고통을 봐달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2. 그리고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기억해 주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모른다 하신다면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떤 모습이 주님께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3. 잊지 말고 사내아이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절망가운데 눈을 여시는 하나님

“사내아이를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토록 그를 {주}께 드리고”
한나는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지
길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녀는 절망가운데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녀가 흘린 눈물로 눈을 씻어주시고
한나가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주님이 이루고자 하는 일을 보게 하십니다.
한나의 기도는 그저 하나님으로부터 받기만을 바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선물을 주시면 그 선물을 주님을 위해서 드리겠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한번 돌아보고
한나의 기도와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요구만하는 기도를 합니다.

우리는 주로 하나님께 요구만하는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나요?
이거 해주십시오. 저거 해주십시오.
그 모든 요구가 자신의 필요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지는 안나요?
우리가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주님의 영광이 되고 주님의 기쁨을 위해서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복수하고 싶어합니다.

“주님 저에게 아들을 주십시오. 그래서 나를 괴롭히는 브닌나의 코가 납작하게 만들어 주시길 원합니다.”
이런 정도의 기도를 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한나는 그런 수준의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지하게 원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간을 갖고 올바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서로 올바른 방법으로
지적인 대화를 하길 원하십니다.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달라는 기도나 이 사람 저 사람 축복해 달라는 기계적인 무뇌적인 기도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적이고 논리적인 기도를 원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목적과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인격과 인격이 마주 않아 설득하듯이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약국에 가서 약을 살때는
정확한 처방전을 가지고 가서 처방전대로 사야 합니다.
그래야 병이 치료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도록
(살후1:11)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께서 너희를 이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자신의 선하심의 모든 선한 기쁨과 또 믿음의 일을 권능으로 성취하시게 하려 함이며
Wherefore also we pray always for you, that our God would count you worthy of this calling, and fulfil all the good pleasure of his goodness, and the work of faith with power:

우리가 고난 중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사26:3) 주께서는 생각을 주께 고정시킨 자를 완전한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하기 때문이니이다.
Thou wilt keep him in perfect peace, whose mind is stayed on thee: because he trusteth in thee.
평강은 어떤 좋은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환경이든 나쁜 환경이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를 신뢰하느냐 입니다.
우리에게 평강과 기쁨이 주어지는 방법은
우리가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상상 속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한나가 기도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나는 기도했습니다. 주님 앞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그 아들을 다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의 일꾼으로 다시 주님께 내 놓겠습니다.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한나의 아들은 제사장의 혈통으로 주의 성전에서 일을 돕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이 사사시대의 암흑기에 하나님이 얼마나 슬픈 상황에 있는지 알고 자신의 아들을 말씀의 부재의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드리겠다고 하나님과 약속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