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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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하나님 앞에서 행한다고 생각하면 죄를 이기게 된다.

고린도후서 5:11 NKRV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사람은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서 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상상을 해봅시다. 은서야 너가 가장 존경하는 웹툰 작가가 누구야? 그 사람이랑 1:1 밥먹는 시간이 주어졌어. 옷은 어떻게 입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겠어? 작은 사랑이 세븐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야? 그 연예인이랑 단둘이 카페가는 시간을 갖게 됐어. 츄리닝입고 슬리퍼 신고 갈거야? 막 친구들한테 말하는 것처럼 욕하면서 말하고, 상대방이 말하는데 핸드폰하거나, 꾸벅꾸벅 졸거에요? 전화통화왔다고 나갔다가 한 10분통화하고 올거에요? 아니죠?
진짜 좋아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고, 잘 보이고 싶죠? 은서야 진짜 좋아하는 웹툰작가가 너의 그림보면서 너의 색감표현이, 선 표현이 너무 좋더라. 늘 챙겨보고 있어 앞으로도 꾸준히 연습해서 더 좋은 작가가 돼야해! 라고 한다면 어떨 것 같아? 집에가서 더 열심히 그리겠지? 내가 좋아하는 웹툰 작가가 이걸 본다고? 하면서 더 성실하게 그림연습하겠지? 너무 좋기도하고, 또 부족한 모습이 부끄럽기도하고 해서 진짜 연습 많이할거야.
이처럼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말과 행동, 모습을 바꾸게 합니다. 오늘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뭘까요? 바로 신앙생활도 이와 같기 때문이에요. 하나님 앞에 있다는 그 사실이 우리의 모습을 바꾸게 합니다.
사랑하는 다윗 공동체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1:23 NKSV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는 뜻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하나님께로 올라가시며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16–17 NKSV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성령님은 우리 마음 가운데 계셔서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아침에 일어날 때에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도, 수업시간 공부를 할 때에도, 부모님 몰래 PC방 가서 게임을 하고 있을 때에도, 학원 땡땡이 치고 친구랑 놀 때에도, 부모님 몰래 술, 담배를 하고 있을 때에도, 아무도 몰래 음란물을 보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동주야 카메라가 24시간 너를 지켜보고 있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생중계로 다 지켜본다고 생각해봐. 몰래 술, 담배, 도둑질, 성행위를 못하는 건 당연하고 길 가다가 쓰레기하나 못버리겠지? 침도 못뱉을걸?
부모님, 선생님, 목사님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절대 속일 수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러분 마음 속에 늘 함께 계시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의 행동, 말을 다 보고 다 듣고 계세요.
여러분이 죄를 짓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을 할 수가 없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이 말이 죄를 짓는 자들은 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가 너무나 쎄서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죄를 짓기 때문이에요.
죄와 싸우지 않고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들,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에요. 아무도 모르겠지. 이번 한번만 하고 다음부터 안할거야 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있음을 인정하지 하는 거라는거에요.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들은 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다는 것을 죄송스러워하고 죄를 안지을려고 노력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들이에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떠한 상황에 있든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서”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지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보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운 거에요.
바울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5:11 NKSV
11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두려운 분이심을 알기에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환히 드러났습니다. 여러분의 양심에도 우리가 환히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11절에 주의 두려우심을 안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10절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앞에 서게 될 것이며, 우리의 행동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그 어떤 것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11절 본문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환히 드러났기 때문이래요.
11절 문맥을 살펴보면 바울은 지금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역의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 앞에 순수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문맥이에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기에 감히 거짓을 행하거나, 속임수가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죠.
바울에게 주님 앞에 두려움이란 사역의 동기이자 삶의 중요한 원동력이었고,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내라고 자주 말합니다.
여기서 주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이 두려움은 공포가 아니에요.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내 뒤에서 몽둥이를 들고 잘못하기만을 기다렸다가 잘못하는 순간 요놈 잘걸렸다 하면서 때리시는 하나님이식 때 두렵다는 것이 아니에요. 이 두려움이란 처음에 은서의 예시로 들었던, 정말 존경하는 작가 앞에설 때에 가지는 존경심에서 비롯된 두려움이에요. 너무 대단한 분이시기에, 존경하는 마음으로 내 행동과 말투를 조심하는 것이죠. 전지전능한 하나님, 내가 너무나 좋아하고 존경하는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기에 내 작은 행동이 그분을 실망시키면 어떡하지? 그분이 싫어하는 행동을 해서 그분이 마음아파하면 어떡하지? 그분이 나를 떠나시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움인것이죠. 그리고 이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성령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로마서 7:21 NKSV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선을 행하고 싶어도 육신은 죄를 행하는 나의 모습 가운데 성령님께 기도하는 것이죠. 죄를 이길 수 있게 해주세요. 제 의지와 힘으로는 안 됩니다.
(클릭)자 표를 보면서 다시한번 죄를 이기는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죄를 미워하고 안 짓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사랑의 감정이 식으면서 다시 죄를 짓게 되죠. 여기서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죠. 내 마음은 죄를 안짓고 싶은데, 막상 나는 죄를 짓고 있어요.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건가? 고민하게 되죠. 그리고 죄와 싸우게 됩니다.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죠. 이때 “하나님 앞에서”라는 믿음이 죄를 이길 힘을 줍니다. 그러나 또 넘어지죠. 잘 안됩니다. 또 다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 죄를 짓고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나 연약해서 늘 죄를 짓습니다. 주님 이 죄를 이기게 해주세요. 이때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이 임하게 되고, 죄와 멀어지게 되는 것이죠.
즉, 하나님의 사랑이 죄와의 싸움의 시작이라면,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죄와의 싸움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죠.
제가 작년부터 묵상하는 좋아하는 시구가 있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인데 혹시 아세요? (클릭)바로 윤동주 시인의 서시입니다. 한번 읽어볼까요?(클릭) 이 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시 전에 쓴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를 먼저 읽어야 합니다. (클릭)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십자가 시에 담긴 윤동주 시인의 외침은 예수님처럼 살고싶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있죠.
이 다음 같은 해 (클릭)서시를 썼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그의 고백에는 하나님 앞에서 행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이는 십자가 시에서 했던 예수님처럼 희생하겠다는 굳은 의지에 따라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살고싶다는 믿음의 고백이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것은 작은 고난과 시련에도 믿음과 의지가 흔들렸다는 고백입니다. 선을 행하려고 육은 악을 행한다는 아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는 바울의 고백과 같은 고백이죠.
사랑하는 다윗 공동체 여러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 고백이 우리의 삶의 고백이 되고, 목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죄와의 싸움을 이겨내는 비결은 “하나님 앞에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가지고 죄를 이겨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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