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목표의식 그리고 절제 (고전 9: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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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ral Message‌: 하나님께서 주실 상이라는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는 절제력을 가지고 끝까지 복음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내라!‌‌
: 하나님께서 주실 상이라는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는 절제력을 가지고 끝까지 복음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내라!

도입 5’

1) 자기 소개
- 먼저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한마음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섬기고 있는 박성은 목사입니다. 싸우스웨스턴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기도 함.
- 7년 전에 미국에 왔다.
- 두렵고 막막한 마음이 많았지만, 좋은 공동체를 만나게 하셨고, 무엇보다도, 특새가 제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
>> 2024년을 시작하는 시점에, 특새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나아가는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 본문 읽기 >> 기도하기
2) 본문 소개: 27절 해석에 대한 논쟁
-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님들에게 쓴 편지다. 아주 중요한 본문인데 특별히 27절 마지막 부분으로 인해 논쟁이 있어왔다.
-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 “버림을 받는다”는 표현 때문에 구원을 받은 자도, 나중에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의견이 항상 제기되어 왔다. 구원 이후에도 그 삶에서의 순종 여부에 따라 하나님께 다시 버림 받고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과연 그러한가?
~ 저는 이시간 이 본문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함께 듣기를 원합니다.
3) 본문의 문맥
- 오늘 본문의 이전 본문에서, 바울은 복음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복음에 참여하는 삶”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나눈다.
<< 23절 언급
>>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는 복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그렇죠? 우리가 그러한 은혜을 입었다면, 바울이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복음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동의하시죠?
- 복음에 참여하는 삶? 내가 먼저 복음에 붙들린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가 되고, 그 복음의 능력을 흘려보내어 다른 이들도 구원받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 이것이 복음에 참여하는 것이다.
- 지금 이곳에는 신학공부를 하고 인생을 주님께 온전히 드린 사명자들도 있고, 그렇지 않는 성도님들도 계신다. 그런데 우리가 모두 제자의 길,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며 복음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 똑같다. 우리는 모두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
~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러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2개의 메시지를 2개의 예화, 2개의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첫째, 달리기 선수 예화: 분명한 목표의식 9’ 30”

- 둘 다 운동선수와 관련된 이미지다. 당시에 이미 고린도 사람들은 올림픽과 같은 운동경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 첫번째는 달리기 선수, 두번째는 복싱 선수
1) 본문 소개 및 메시지
- 먼저, 달리기 선수들을 언급한다.
<< 24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 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려라!”
- 달리기 선수들을 보라! 상을 받기 위해서 저렇게 열심히 뛰지 않느냐? 너희도 상을 받기 위해서 달려라!
-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달리기 선수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첫번째 메시지는 “분명한 목표의식”가지라는 것이다.
- 바울도 26절에서 자기 자신도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달리기 경기 이미지를 계속 활용
- 분명한 방향성을 두고 사명을 감당해 왔다.
2) 오해 해결: 목표가 필요없다? 한사람만 상을 받는다?
- 지금도 운동선수들을 보면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는데 그 목적은 분명하다. 상이다.
- EX: 지금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아시안컵에 참여하고 있는데, 주장인 손흥민 선수나 이강인 선수가 인터뷰할 때, “이번 대회의 목표는 우승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죠! 만약에 어떤 선수가 인터뷰를 하면서 “열심히는 하겠지만, 상은 안 받아도 괜찮아요”라고 한다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은 그 선수가 승리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비판할 것이다.
- 요즘 시대, 특별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목표 잡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난 목표가 없어요. 목표가 크면 실망도 크니까요.” “난 지금 내 삶에 만족하고, 소소한 행복과 마음의 평안을 추구합니다.”
-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그 말이 목표 자체가 필요없다는 논리로 이어진다면 최소한 성경적이지는 않다.
- 물론 성경은 세상적인 가치를 목표로 삼는 것이나 세상적인 개념의 성과주의는 비판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성경, 특별히 오늘 본문은 상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 상을 바라보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제자의 길, 사명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 오해가 있을 수 있다. 24절에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이다”라고 바울이 말을 했는데, 달리기에서는 그렇지만, 신앙생활에서는 그렇지는 않다. 신앙여정 끝에 한명만 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 바울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운동선수가 그 경기에 참여한다고 해서 모두가 자동적으로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
>>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다. 신앙생활의 여정, 사명감당의 여정을 걸어간다고 해서 자동으로 상을 받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상 받는 것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이라는 목표를 두고 달려라!
3)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상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 "브라베이온" 이라는 단어 (“미스도스”가 아님): 신약에서 두번만 등장하는 단어
-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오늘 본문과 아주 비슷한 문맥이다!
- 우리의 삶의 여정을 마친 후, 또는 주님이 오실 때, 주님을 만나게 될 텐데 그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상을 말한다.
- 그리고 그 상의 성격은 주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했는가에 따라 주어지는 "부름의 상"
- 야고보는 "생명의 면류관"이라고 말했고,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얻게 될 칭찬과 영광과 존귀"라고 말한다. 다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겁니다. 상이나, 면류관이나, 주님의 인정, 칭찬, 주님께서 주실 영광!
- 그 상급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상급론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마지막 그날, 주님께서 그 부르심에 신실하게 반응하며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신다는 것이다. 칭찬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 인생을 인정해 주신다는 겁니다.
>> 그것을 위해 달려가라!
4) 적용
>> 하나님께서 주실 상”이라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질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위기가 왔을 때, 이겨낼 수 있다.
- 우리는 연약해서, 교회생활을 하다가 자주 넘어집니다. 사역을 하다가 낙심합니다. 왜 그렇죠?
- 많은 경우, 인정욕구!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극복 X
- EX: 어떤 사람들은 성향상 주변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 저는 후자.. 태생이 그렇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그런 예민함에서 자유해졌다. 그런데 나중에 교회 사역을 하면서 다시 발동이 되었다.
- 한번은, 교회 사역을 하다가 또 그 병이 도질 때가 있었다. 인정욕구~!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신경쓰다 보니 너무 힘들고, 그런 제자신이 싫어짐. 그러고 있는데 어떤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인터넷으로 듣다가..
- 성경에..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면 화가 있으리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해를 받고 박해를 받으면, 하늘에서 상이 크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이미 너희 상을 받았다!” >> 자유해 짐!!
- 우리가 만약에..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세상적인 상급 (명예, 영향력), 인간적인 보상 (사례비), 자아성취감 등을 목적으로 한다면...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다. 우리의 신앙이 자랄 수 없다. 순수한 마음으로 복음에 참여할 수 없다.
>> 우리가 다 이 길을 걸어가야 하고, 때로는 달려가야 하고, 때로는 기어가야 하는데, 이 세상에서의 보상,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마지막 그날 하나님께서 주실 상, 하나님의 인정! 칭찬!을 바라보고 달려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우리는 너무 연약해서 주변 환경에 쉽게 휩쓸리고, 세상조건에 흔들려서 우리의 목적을 자주 잊어버린다. 탈선한다. 초심을 잃어버린다.
- 그래서 더 자주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방향성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하나님의 상이라는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는 것!
- 이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첫번째 메시지입니다.

둘째, 복싱 선수 예화: 자기절제와 훈련 9’ 30”

1) 본문 설명 및 메시지
- 바울은 두번째로, 복싱 선수 이미지를 가져옵니다.
<< 25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 “이기기를 다투는 자” / 26절에서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 복싱경기를 표현하고 있다.
-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두 선수가 싸우는데, 이기는 사람은 승리자의 면류관을 얻는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것은 그 복싱선수가 그 승리의 관을 얻기 위해서 “모든 일에 절제하는 것”을 주목하라는 거예요. 운동선수들이 시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절제하며, 얼마나 치열하게 훈련하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거죠!
- EX: 정찬성.. 미디어를 통해서 그가 어떻게 경기를 준비하는지 공개한 적이 있었다. 한 경기를 위해 1년 이상 준비한다. 식욕을 억제하고, 물도 잘 안 먹는다. 입에 단내가 나도록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훈련한다.
- 세상의 운동선수들도 그렇게 모든 일에 절제하며, 치열하게 훈련하는데, 하나님의 나라의 사명자들은 어떻해야 하겠느냐? 바울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더군다나 복싱선수가 얻게될 면류관은 썪어 없어지는 것이다. 면류관 외에서 그들이 얻게 될 영광과 돈이 있겠지만, 결국에 썩어 없어질 것이다.
- 하지만 우리가 목표로 하는 그 영광은, 그 면류관은 썩지 아니할 영원한 것이다.
- 치열하게 절제할만할 가치가 더 있다. 영원을 위해서 순간을 포기하는 것! 어리석은 것이 아닌 줄로 믿습니다.
- 우리가 받을 그 상은 영원하다. 만왕의 왕이신 우리 삶의 주인이신 주님이 주시는 칭찬과 인정이다. 절제할 만할 가치가 있다.
- 바울이 복싱선수 이미지를 통해 강조하는 2번째 메시지는 “절제와 훈련!”
2) 바울의 자기 이야기
- 바울은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나눈다.
-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였다
- 상대방의 얼굴을 맞추지 못하고 허공에 주먹을 날리는 것처럼 사역하지 않았다.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모습으로, 훈련되지 않은 모습으로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다.
- 항상 절제하며, 자기의 욕구를 억제하며,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며 이 길을 걸어왔다.
- 바울의 자신감 있는 고백이다. 누가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3) 적용
>> 우리는 어떤가?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길을 걸어가면서 절제하고 있습니까? 내 몸을 치고 있습니까?
!!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우리의 욕구를 억제하며 절제하길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하시고 은혜를 주시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의지와 인내, 절제, 순종을 철저하게 요구하신다.
- “내 몸을 치다": “휘포피아조" (치다): 눈을 쳐서 멍들게 하다. 복싱경기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 자신의 몸을 쳐서 멍이 들게 해서라도 욕구을 억제했다는 것!
- “복종하게 함”: 원어적으로 "자기 자신을 종으로 만들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우리의 주인되신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주실 상을 위해 자기를 부인하며, 자신의 모든 욕구를 자발적으로 억누름.
-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 없는 절제는 금욕주의죠! 하지만 여기는 의미가 있어요! 주님 주실 영원한 상이라는 더 나은 가치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내 욕구를 억누른다는 것이다!
- "몸"이 여기서 단순히 육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지혜와 계획도 복종시켰다. "매일의 삶 전체"를 의미한다. 바울은 자신의 육신의 약함, 육체적 욕구, 자신의 생각, 마음의 감정 등 모든 것을 철저하게 주님께 복종시켰다. 왜?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명확한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이며, 본문의 문맥에서는 복음을 위해서! 더 가치있는 영원한 상을 위해서!
>> 우리는 어떤가?
- 주님께서 놀라운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셨다.
- 신학생, 평신도 할 것 없이, 이 땅에서 주님을 닮아가고, 말씀에 순종하고, 서로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라는 사명을 다 주셨다.
- 우리 각자에게 고유한 사명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 이게 복음에 참여하는 삶인데,
- 우리가 그러한 삶을 위해 얼마나 스스로 절제하고 있는가?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을 훈련시키고 있는가? 되돌아 봐야 한다.
>> 이건 분명합니다. 방향성이 분명하다고 해서, 누구가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그 방향성이 아무리 성경적이고, 그 동기가 순수하고, 하나님의 상이라는 분명한 목표의식이 있다고 해서 다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 훈련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온전히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훈련에는 절제가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 EX: No Cross No Crown!
- 십자가 없이 면류관 없다.
- 예수님께서 고난 받지 않으시고 죽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부활의 영광,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그 이름의 영광을 얻으실 수 있었겠는가?
- 우리가 걸어갈 길도 마찬가지! 절제와 훈련 없이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없다. 절제하지 않고 주님의 인정 받을 수 없다!
- EX: 유학 처음 왔을 때, 첫 3-4년 진짜 공부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내가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왔고,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 사명 감당하는 것이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 여행도 안 가고, 한국에서 치뤄진 여동생 결혼식도 안 가고!
- 지금은 그렇게 못합니다. 지쳤어요ㅎㅎ
- 한번은, 부부싸움을 크게 했어요… 진짜 공부하기 싫었는데, 정말 소명감으로 가방 싸들고 학교가서 수업듣고, 공부! Due Date 지키기
- 정말 그 때는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느낌이었어요.
>>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유학생이 많으신데.. 공부하기 위해서 미국에 오셨다면, 정말 치열하게 절제하며 공부하시기를 권면합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길!
- 공부해야 할 시기에, 치열하게 공부하는 사람이 나중에 교회에서 할 때에서 그렇게 사역할 줄로 믿습니다.
- 물론, 공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공부도 하고, 교회 사역도 하고, 가정을 위해서 일도 하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이 삶의 패턴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고, 마지막 날 주님께서 주실 상을 생각하며, 치열하게 절제하며,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신앙생활도, 가정생활도,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 때로는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악에 악으로 갚아주고 싶고, 입에서 험한 말이 나가고 싶을 때,
-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내 자아를 부인하고, 내 몸을 치고, 내 욕구를 억지로라고 억제하고, 복종시키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구문 해석 & 마무리 4’

1) 마지막 구문: 두려워하라!
- 바울이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그리고 철저하게 절제하며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했던 이유는 본문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 여기서 “버림을 당할까봐 두렵다”라는 표현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일부의 주장처럼 바울은 구원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그렇게까지 절제하며 복종했을까?
- 여기서 “버림을 받다”라고 번역된 “아도키모스"라는 단어는 정확하게는 “인정받지 못하다" "상을 받을 자격을 잃어버리다"라는 의미이다.
- 관계가 깨어지고 존재적으로 버림을 받는다라는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 바울이 운동경기와 운동선수가 상을 받는 예화를 들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서, 이 단어를 해석해야 한다. 그렇다면, “상”을 받지 못하게 되다로 보는 것이 명확하다.
!! 구원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상을 목표로 달려왔는데, 그 상 받을 자격을 잃어버릴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미 이야기했지 않느냐? 달리기 경기에 참여한다고 다 상 받는 것이 아니다!
- 워렌 위어스비 목사님은 이 본문을 설명하면서 분명히 말한다. 운동경기에서 이기지 못한 선수들이 로마 시민권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단지 승리자로서의 상과 영광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 바울이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장차 주님 앞에 서게 될 텐데, 그 때, 주님께서 바울을 승리자로 인정하지 않을까봐, 일평생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사명을 감당했던 그 길을 인정 못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 우리도 이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 오늘 바울이 이야기한다. 다 상받는 것이 아니다. 다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이 아니다.
>> 상상해보자! 마지막에 주님 앞에 섰는데,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인정해주지 않으신다. 칭찬해 주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 놀라운 은혜에 그렇게 밖에 반응할 수 없었느냐 책망하신다면..
>> 비참하다. 끔찍하다. 부끄럽다. 후회스럽다. 우리는 이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2) 마무리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구요? 어떻게 복음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내며, 이 길을 가야 하겠습니까?
!! 오늘 우리 주님은 바울의 편지를 통해서, 2가지를 말씀하신다.
- 첫째, 하나님께서 주실 그 상, 사람의 인정이 아닌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 그 관점, 그 방향성 놓치지말고, 분명한 목표의식 가지고 전진하라!
- 둘째, 그 길을 너무 쉽게 가려고 하지 마라! 바울처럼 주님의 철저한 종으로서 내 몸을 쳐서 자기를 부인하고 절제하고 훈련되어서 그 상을 쟁취하라!
<마지막 기도>
- (1) 흔들리지 않고 마지막 하나님의 평가를 바라보게 하소서!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이길을 완주할 때,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게 하소서!
- (2) 이시간 절제하는 마음을 부어주소서! 강인한 의지! 우리의 의지를 날마다 새롭게 하셔서, 바울처럼 매일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킬 수 있는 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