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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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도행전 11:25-26(신약 207쪽)
설교제목 : 그리스도인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은 그리스도인의 기원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말이 생겨난 배경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바나바와 사울, 여기서 사울은 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울을 말합니다. 이 두 사람이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할 때,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성경은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뜻을 좀 더 새롭게 이해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바나바와 사도 바울이 사역했던 안디옥 교회는 당시로써는 특별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른바 이방인이 함께 있던 교회였습니다. 여기서 이방인은 유대인이 아닌 사람을 말합니다. 오래 전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정확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럴 법한 이야기입니다. 과거 중국에서는 중화사상에 의거하여 중국 외에 국가를 ‘오랑케’라고 낮춰 불렀습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 외의 국가는 미개하다는 의미로 말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이방인’이라는 말이 그와 비슷합니다. 정확하게는외국인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른 나라의 사람을 이방인합니다. 이 말에는 자신과 다른 종류의 생활을 하는 이들을 열등하거나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바라보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유대인이 가지고 있던 외국인의 관한 일반적인 생각과 시선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바나바와 사도 바울이 사역했던 안디옥 교회에는 그와 같은 이방인 또는 외국인이 유대인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결코 일반적인 교회의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붙여졌습니다. 이를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 이전에도 분명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대표적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교회의 목회자였고 사실상 그는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었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교회가 당시 교회의 표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그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안디옥 교회로부터 생겨난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본래 그리스도인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한편으로 그리스도인은 인종과 문화 또는 국가를 넘어선 이를 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사실상 세계의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물론 예수를 그리스도 또 주로 고백하는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입니다. 그리고 더 넓혀서 보면, 교회는 그런 곳입니다.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예수를 주로 고백함으로 함께 모일 수 있는 곳 말입니다. 저의 고민은 또 우리의 숙제는 과연 우리는 그러한 교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래 교회다운 것이고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과 관련하여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이 사역했던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또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바나바와 사도 바울에 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바나바는 어떤 사람입니까? 당시 초대 교회에서 신망 받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에 앞선 24절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행 11:24)”이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바나바는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울이 사도 바울로 쓰임받기까지 변화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본래 사울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이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열심과 노력으로 초대 교회의 역사에서 안타까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 유명한 스데반의 순교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변화를 반갑게 맞이한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고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모두가 의심의 눈초리로 사울 곧 사도 바울을 지켜보고 있을 때, 바나바는 기꺼이 그를 안디옥 교회에 데려와 하나님의 일을 행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울 곧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바나바와 사울이 사역하던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또한 이러한 의미를 지님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 같은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인데요. 이를 달리 말해보자면, 성령이 충만하고 은혜 받은 자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놓고 생각해 보는 겁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의 기본적인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성경에서 안디옥 교회에서 유래하고 일컫어진 말인 것으로 보아서, 한편으로 그리스도인은 인종과 문화와 국가를 초월한 모든 이들을 포함할 수 있는 말이 됩니다. 물론 예수님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조건에서요. 그리고 또한 바나바와 사울이 사역한 교회에서 그 말이 유래했다는 것을 놓고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사람이고 은혜받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진다는 것에 관해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경계를 넘어선 존재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고요. 성령 충만함과 은혜 받은 인생의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관심을 보다 넓히는 일은 아닐까 합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급급한 문제 또는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문제에만 천착하기 보다는요. 오히려 이 세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 관한 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 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늘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끝으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에 관해 생각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만드셨다고 얘기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존재를 가리켜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인간은 피조물인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께 속하여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두 가지의 정체성을 가지게 만듭니다. 하나는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종과 자녀는 서로 다른 지위의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에서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위에 하나님이 늘 계시다는 것을 염두해 두게 만듭니다.
또한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을 때, 그저 종으로 부리기 위해서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를 자녀로 불러 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치 않고, 우리 스스로를 가장 높은 자리에 두기 시작할 떄,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던 것처럼 어리석은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상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에게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크게 두 가지를 얘기했어요. 하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피조물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에 의미를 깊이 살펴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야를 널펴 주시고, 우리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은혜 받은 자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셨음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 창조됨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또 다시 확인하게 되는 데요. 그것은 사랑의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일이 우리의 인생을 얼마나 넓혀갈 수 있는지를요. 또 그와 같은 변화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채워갈 수 있는지를 저와 우리 성도님들께서 신앙생활 가운데 그러한 경험들을 이뤄가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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