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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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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편 11:1-9(구약 810쪽)
설교제목 :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편 11편은 신뢰의 시라고 부릅니다. 달리 보자면, 믿음에 관한 내용을 담은 시입니다. 아마도 우리에게 익숙한 믿음에 관한 대표적인 성경구절을 들자면 이렇습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장 1절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러니깐 이 성경구절을 통해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생겨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리 눈에 하나님이 확실하게 보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믿음이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증명을 통해 하나님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특성을 생각하다보면, 믿음은 현대사회랑 참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린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내면보다 외면에 많은 비중을 두고 보여지는 것을 잘 가꾸는 일에 더 힘을 쏟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평가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대체로 그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예를 들면, 그가 어떻게 생겼고, 그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차를 몰고 어떤 집에 살고 하는 등등의 것이요. 또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하는 눈에 보여지는 것들을 통해 사람들은 대체로 누군가를 평가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채용하는 대부분의 회사의 경우에 사람을 볼 때, 그의 성품을 보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을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그가 가지고 있는 스팩이 중요하게 됩니다. 어떤 경력이 있고 어떤 자격증이 있고 하는 등등 것 말입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믿음은 다소 이상한 얘기이거나,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가 됩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이 처한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시편 1절에서 3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봅시다.
시편 11:1-3(구약 810쪽)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시인은 절박한 상황 속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원수가 자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은 비웃으며 말하기를 ‘의롭게 산다고 한들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얘기합니다. 다시 말해 시인이 처한 눈에 보이는 현실은 원수의 손아귀에 위협받는 비참한 신세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오늘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신앙생활이 당장에는 눈에 띄는 어떤 성과를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한때 기독교의 문화가 대중문화보다 좀더 앞서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교회에 속한 것이 자랑스러운 때가 있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교회가 더이상 젊은이들에 관심과 자랑이 되지 못합니다. 더나아가서 종종 사회적 비판이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신앙교육에 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특별히 제가 담당하고 있는 청년부에 대해 말입니다.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또는 믿음의 다음 세대들은 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믿음을 온전히 가질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는 더 이상 젊은이들 또는 다음 세대에게 매력적인 것이 되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른바 MZ세대니 알파세대니 하는 청년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유튜브라는 매체가 또 그와 유사한 여러 매체가 더욱더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식으로 호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속사람보다 겉사람에 내면보다 외면에 관심을 더욱더 관심을 기울이며 살게 합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이러한 세대의 눈 높이를 맞추기도 쉽지 않습니다. 언젠가 담임목사님도 얘기하셨지만, 또 저도 경험하는 바이지만, 교회에서 나눠주는 선물이 그것을 받아드는 아이들에게 또는 청소년, 청년들에게 더 이상 가치 있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 만큼의 선물을 사실은 교회가 줄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교육의 목적이나 방향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전히 신앙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삶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 또한 마찬가지 생각인데요. 4절에서 6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11:4-6(구약 810쪽)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시인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지요.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인데요.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고 그 분이 열어주시는 세계를 볼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가령 우리는 죽음 이후의 것들을 알 수 없습니다. 죽음 이후를 볼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께 시선을 돌릴 때 죽음 이후의 것을 비로소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방금 읽은 성경구절에서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과 같이 죽음 이후의 삶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고 믿음을 통해서 보게 되는 세계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기독교의 신앙은 결코 눈에 보이는 것을 쫓거나 그것을 통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에요. 끝끝내 우리는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신비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생을 마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바로 신앙인 것이죠. 그래서 시인은 오늘 시편 마지막 절인 7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11:7(구약 810쪽)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하나님이 의로운 일을 하실 분임을 믿기 때문에 그 믿음에 따라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된다는 것이죠. 오늘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일 수 있는 것이죠. 신앙생활로 인해서 내 삶에 눈에 뛰는 성과가 없을지라도 정직히 신앙생활 해 나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있는 것이지요.
바라건데, 저와 우리 성도분들께서 오늘도 믿음 안에서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경험하며 그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를 놓고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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