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 거듭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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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복음 3:1-5
설교제목 : 니고데모, 거듭남에 관하여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번 대림절을 보내면서 같이 살펴보았으면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오늘 성경말씀에 등장하는 니고데모입니다. 니고데모는 당대에 유명인이었습니다. 오늘 성경구절 1절을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3:1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니고데모는 바리세인이었으며, 유대인의 지도라라고 소개하는데요. 유대인의 지도자에 덧붙여진 설명을 보면, 그는 산헤드린 공회원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당대에 얼마나 영향력 있는 인물인지를 보여줍니다.
먼저 니고데모가 바리새인임을 주목해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바리새인은 그렇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있지 못하지만요. 당시 사람들에게 바리새인은 꽤 존경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은 율법에 철저한 사람이었고, 겉으로 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는 것에 철두철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들과 같이 신앙생활해야하하고 어쩜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 여겼습니다.
또 니고데모가 산헤드린 공회원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특별한 지위를 보여줍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은 오늘로 치면, 재판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고, 그러다보니, 주권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일제식민지를 생각하시면 돼는데요. 주권이 없다는 것은 나라를 우리의 손으로 다스릴 수 없고, 또 우리의 손으로 재판을 할 수 없는 것이죠. 이렇게 이스라엘도 로마의 식민지였기에 그와 같은 일들을 할 수 없었는데요. 유일하게 허락된 것은 종교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자치권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문제를 재판하는 역할을 했던 곳이 바로 산헤드린 공의회였습니다. 여기에는 약 70명정도의 회원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는데요. 이 회원은 아무나 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적어도 율법에 정통하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니깐 니고데모라는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신앙의 열심뿐만 아니라, 율법에 정통하며,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훌륭하고 잘난 사람은 별다른 고민없이 살 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음을 니고데모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도 남모르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니고데모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구절 3절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3:3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보건데, 니고데모의 고민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그것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거듭나야 한다’고 말이죠. 그런데 이 거듭남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니고데모의 고민은 오늘 우리에게도 궁금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에 대해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의 말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단어의 원래 뜻은 이렇습니다.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어로 이 단어를 ‘아노덴’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위로부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거듭남은 다시 태어남일 것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도 오늘 성경구절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읽습니다.
요한복음 3:4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니고데모 역시도 거듭남은 다시 태어남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이 거듭남을 니고데모가 생각했던 것처럼, 어머니의 자궁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일종의 회개와 비슷한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니깐, 마음의 변화 같은 것으로 여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흔히 거듭남을 신앙심이 깊어졌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남은 분명 변화된 상태를 말하지만,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본래 ‘위로부터’라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잘 못알아들어서 덧붙여서 이렇게 설명해 주십니다. 오늘 성경구절 5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3:5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러니깐, 거듭나는 것 곧 위로부터 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이 되었는지도 모르지만요. 사실 이것은 의외로 간단한 얘기입니다. 거듭남이란 우리가 애쓰고 노력해서는 할 수 없고 하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실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거듭남은 우리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노력으로 성취하는 곳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열심히 노력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없고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령, 주일성수를 얼마나 열심히 했고 복음을 얼마나 전했으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사랑으로 섬겼느냐 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세상에 이치에 가까운 것인데요. 우리가 그러한 세상에 익숙하게 살다보니까 오해하곤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그와 같은 열심을 내다가 이내 지치기도 하고 때때로 그러한 열심을 내지 못하는 이들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니고데모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이렇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사람들에 능력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경험되어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아무리 대단한 니고데모라고 할지라도, 스스로가 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일로도 하나님의 나라를 획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 대림절에 보내면서 함께 살펴볼 인물로 니고데모를 택한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대림절은 어제 말씀드린데로 기다림에 관한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날에 관한 기다림입니다. 그 기다림은 또한 하나님께서 이룩하실 나라 곧 하나님나라에 관한 기다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는 그것을 이룰 수 없고 하나님을 통해서만 그 나라에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통치해 주셔야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룩하시고 완성하실 하나님의 나라를 또한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막연한 기다림 또는 아무런 준비없는 기다림은 아닙니다. 열처녀의 비유에서도 보앗듯이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충분히 등잔대의 불을 밝히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속에는 언젠가 신랑되신 우리 주님이 오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바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기다림은 반드시 우리 가운데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 위에서 우리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이 누구신지를 다시금 되시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은 참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셔서 우리를 하나님나라로 이끄실 분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어떤 노력으로도 성취할 수 없고 오직 주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부어지지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바라건대 오늘도 그와 같은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날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주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복된 하루를 맞으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를 놓고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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