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통한 신앙의 교훈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시편 6:1-10(구약 807쪽)
설교제목: 고통을 통한 신앙의 교훈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
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 악을 행하는 너희는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고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겪는 고통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 6절인데요 제가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우리가 무심히 읽고 지나간 성경구절 일수 있는데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인은 자신의 고통으로 인해서, 침상이 눈물로 뜰 지경이고, 이불이 푹 젖을 지경이라고 표현합니다. 좀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 시인이 당하고 있는 고통의 크기를 짐작해 볼 수 있어요. 그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그가 눈물에 잠길 지경이라는 것이죠.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할 때 쉽게 떠오르는 성경의 인물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욥일 거에요. 잘 아시는데로, 욥은 하나님께 칭찬받는 의인이었지만,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고난과 고통을 겪게 됩니다. 사랑스런 아들 딸들은 갑작스레 죽게 되고요. 건강했던 자신의 육신은 병이 찾아옵니다. 물론 이러한 배후에는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 었었고요. 그로 말미암아 욥이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이지만, 욥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사실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막한 것은 욥의 친구들의 방문이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기 위해 왔는데요. 오히려 그들은 욥에게 괴로움을 안겨다주는 이들이 되어버립니다. 그들 나름대로 욥이 처한 상황에 관해 애써 설명해 내는데요. 대부분의 얘기가 그렇습니다. 욥이 잘못을 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것이 욥의 친구들의 얘기였어요. 그러나 욥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 수 없었고요. 친구들의 말이 위로는 커녕 오히려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한편 우리는 오늘 시편을 읽으면서 어쩌면 욥의 친구들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오늘 시편을 쓴 시인도 자신의 고통이 죄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는데요. 오늘 시편 말씀 1절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6:1(구약 807쪽)
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방금 읽은 시편의 구절처럼, 우리도 종종 불행이 찾아왔을 때, 죄 때문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속담에도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지 않는다’고 하니, 어떤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의 사람들의 생각은 더욱더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소경을 치료하시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당시 사람들이 소경을 보며 물어요. ‘누구의 죄로 이렇게 된 것이냐’고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세요. ‘누구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이지요. 사실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우리에게 고통이 찾아오는 것이 단지 죄에 따른 결과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욥기도 사실은 고통의 원인 죄에 따른 것이 아님을 시작부터 보여줍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욥의 친구들의 이야기는 모두 틀린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욥기에서 고통의 문제에 대한 답을 하나님은 은유적으로 말씀하시는데요. 가령, 욥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죠. 창조의 때에 하나님 행하신 일들 보았냐고 말이죠. 좀 뜬금없는 대답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거예요. 고통의 문제는 우리 곧 인간의 영역 밖의 문제라는 거예요. 우리는 그것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죠. 마치 창조에 대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고통의 문제를 대할 때, 우리는 그것을 죄의 문제라던지, 어떤 원인을 찾을 수 있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다가가서는 안 됩니다. 사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다만, 우리는 그와 같은 고통이 우리 가운데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요. 우리는 고통을 제거해야만 하는 것 또는 제거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사실 고통에도 하나님의 뜻과 신앙적 교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이 찾아올 때, 우리는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급급해 하기보다는 우리에게 찾아온 고통 너머의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당장에 아파죽겠는데, 그렇게 한가하고 여유 있는 말을 하는 것은 고통을 당하는 당사자에게는 참 화가나는 일일 수 있습니다. ‘너가 내 고통을 모르니하는 말이지, 그렇게 한가한 얘기는 집어 치우라고 말입니다.’ 사실 고통의 순간에는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원망하고 저주한다고 해서 고통의 문제가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어떤 고통은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스스로 ‘가시’라고 불리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 고통이 너무 괴로워서 계속해서 하나님께 그 가시를 없애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에 응답을 주시지 않고 도리어 그 고통에 관해 새로운 눈을 열어주십니다. 그 가시로 인하여 사도 바울은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것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더 이상 자신에게 있는 ‘가시’를 문제라고 여기지 않은 듯합니다. 그가 그 일로 두 번을 기도했지만, 세 번째 기도했다는 얘기는 성경에 없으니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몸이 쇠약해져 갔으니 더욱더 고통은 가중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사도 바울은 그 고통 너머의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한번이라도 통증을 느껴봤다면, 그 통증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잘 아실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바람대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우리의 곁에 머물 수 있습니다. 고통 자체에만 주목하면 아마도 고통의 문제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지 모릅니다. 계속해서 원망하는 삶을 이어갈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을 조금 돌려서 하나님께 이 모든 것들을 맡겨드리게 되면요. 그 때 비로소 우리는 고통을 넘어설 수 있을테니까요.
오늘 시편에서 시인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시편 8절에서 10절을 다시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6:8-10(구약 807쪽)
8 악을 행하는 너희는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시인은 자신의 문제와 고통을 하나님께 다 맡겨드립니다. 처음에 자신의 죄로부터 이 고통이 왔다고 생각하고 그 고통의 문제를 제거하려던 시인의 고백이 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드림으로 끝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에 매달려 삶을 허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 나에게 불행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의 가시가 그러했던 것처러 말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 또한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있는 문제와 고통들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 드립시다. 그것이 나에게 당장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을지라도, 그 고통에 주목하지 말고,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고, 그 고통을 넘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분들이 그러한 믿음의 사람 다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를 놓고 함께 기도합시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