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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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복음 6:9-15(신약 152쪽)
설교제목 : 오병이어 사건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이른바 오병이어 사건 곧 물고기 2마리와 떡 5개로 5천명 이상의 사람들을 먹이신 사건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 가운데 꽤나 유명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의 행적을 담고 있는 복음서 곧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복음서를 기록한 이들은 이 사건을 굉장히 중요한 사건으로 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요한복음에 나온 오병이어 사건에서 우리는 또 이러한 점들을 알 수 있는데요. 먼저는 오병이어 사건에 사용된 떡에 대해 요한복음은 그것을 ‘보리떡’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보리가 건강식으로 또는 다이어트식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음식인지 모르나, 본래는 보리로 만든 음식은 가난한 이들의 밥상을 채우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보리떡이라는 것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병이어 사건에 나오는 물고기도요.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어로 ‘이크수스’라고 하느데요. 흔히 이것은 어부들이 고기를 잡은 후에 챙겨가지 않고 버려 버릴 정도의 작은 물고기라고 합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멸치와 같은 작은 생선일지도 모르죠. 이렇게 오병이어에 나오는 떡도 그리고 물고기도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에 불과했는데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그것은 많은 이들의 허기를 달래는 귀한 것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서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은요. 세상에서 어찌 보면, 보잘 것 없고 작은 존재라고 할지라도요.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되면, 귀한 일들을 감당하는 존재로 변화될 수 있다라는 것이지요. 어쩌면 그것이 오늘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인지도 모르지요.
한편 우리는 이 말씀을 놓고 예수님에 대해 좀 더 생각을 해보았으면 하는데요. 사실은 그렇습니다. 복음서 곧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예수님을 중심에 놓고 읽어야 하는 것이죠. 그 복음서에 담긴 각각의 이야기들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우리에 전하는 것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오병이어의 사건을 읽으면서도 예수님을 중심에 놓고 이 사건에 대해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나타나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이죠.
먼저 우리가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시다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이 오병이어 사건에 비춰보면 육적인 필요에 채워주시는 것으로만 이해되어질 수 있는데요. 신약성경 요한복음의 보다 앞선 얘기들을 살펴보면, 그것은 육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영적인 필요까지도 채워주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신약성경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가나의 한 결혼식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님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요. 물론 이것이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만, 그냥 내용만 놓고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육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요한복음 3장에서는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만나는 장면을 보는데요 그곳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시고요. 계속해서 요한복음 4장에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육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영적인 필요까지도 채워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돼요. 그리고 요한복음 5장에서 38년 된 환자를 치유하시는 것과 오늘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의 사건은 또 다시 영적인 필요와 육적인 필요를 모두 채워주시는 사건들이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영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육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임을 생각하고요. 또 이를 통해 우리를 완전케 하시는 분임을 알게 됩니다. 만약 예수님이 어느 한 가지만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라면요. 그와 같이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불완전한 분을 우리는 어떻게 온전히 믿고 따를 수 있겠어요. 가령 영적인 문제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육적인 문제는 다른 것을 의지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잖아요.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 곧 영적인 필요와 육적인 필요 모두를 채워주시는 분이시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 분을 통해서 우리는 완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우리 성도님들께서 이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주님 한 분만으로 우리는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 분이 우리의 삶을 부족함 없이 모두 채우시는 분이시니 말이지요.
또한 우리가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예수님은 사람들의 기대와 다른 구원자이셨음을 보게 돼요. 우리는 이것을 오병이어 사건이 있은 직후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요. 예수님은 오병이어 사건 후에 사람들을 피해 떠나셨다고 해요. 오늘 성경말씀은 그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던 것은 예수님이 당시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바랐던 까닭 때문이지요.
보충해서 설명하자면요. 당시는 고대 로마제국이 세상을 지배하던 때였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들이 고대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는데요. 고대 이스라엘도 이것에서 예외가 아니었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식미지의 삶을 끝내고 독립을 열망하는 마음들이 있곤 했었죠. 그리고 그와 같은 마음들이 결국 구약성경 이사야서에서부터 약속된 메시야 곧 그들을 구원할 이에 대한 기대로 나타났어요.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래 전에 주신 약속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메시아 또는 구원자의 모습을 나름 여러 방식으로 상상했는데요. 그 중 하나가 과거의 다윗 왕처럼 군대를 일으켜서 적들을 물리치고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와 같은 무력을 통한 독립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살기도 하였어요. 그리고 그와 같은 기대와 열망 속에서 오병이어 사건을 경험한 이들은 바로 예수님이 기다리던 구원자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물론 우리가 알고 있기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심에 틀림이 없으시죠. 그러나 막상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하자, 예수님은 그곳을 피하시는 것을 보게 돼요.
그것은 예수님이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른 구원자임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리고 이를 놓고 깨닫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은 분명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시죠.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기대를 예수님이 무조건 적으로 들어주시는 분이 아님을 생각해야 해요. 우리는 어쩌면,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것들을 구하며, 그것을 들어주시지 않는 예수님을 원망할지도 모르지만요. 그것은 예수님이 그와 같은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해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생각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지요. 오늘 살펴본 오병이어 사건은요. 우리가 그것을 분별하지 못할 때,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보여줘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바라건데, 오늘 우리 성도님들께서도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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