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한계를 넘어

야곱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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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쓰임 받으려면 다듬어져야 한다 2. 환도뼈를 만지듯 삶을 만지신다 3.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지 말라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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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 받으려면 다듬어져야 한다

한 주 건너뛰고 설교를 하려니 이게 참 쉽지 않네요.
여러분 오늘은 몇번째 야곱에 관한 설교인지 알고 있어요? 벌써 9번째에요. 그리고 야곱 이야기 마지막 날이기도 해요.
야곱의 삶을 보면서, 내 삶을 돌아보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나누고 생각하고 결단도 했지만 사실 그렇게 살아가지 못했던 것이 우리들이기도 할거에요.
저도 마찬가지이구요.
2주전 내용 기억 나요?
야곱은 세상과 최종 배팅을 했는데 실패했죠.
그래서 그는 나뭇가지를 벗기고 물가에 꽂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어요.
미신적인 세상의 방법이었다 해도, 그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 것을 통해 일하시는 것을 기대하는 마음밖에 없었거든요.
20년간 자신의 힘으로 부단히 싸웠지만 모든 것들이 실패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모든 힘을 빼고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렸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죠.
여기에서 놀라운 기적은 ‘라반 보다 두 배 많은 짐승을 얻은 것이 아니에요'
(쉬고)
라반의 아들들이 “거짓말. 사기꾼쟁이!”라고 외치면서 그가 얻게 된 모든 얼룩이 있는 짐승들을 빼앗아 가려했지만, 정말 위험한 상황까지 갔지만 야곱은 흔들리지 않았어요.
진짜 기적은 “하나님이 하셨다.”라는 야곱의 고백이에요.
세상에 치이고 흔들리고 넘어지고, 자신의 힘으로, 머리로 어떻게든 비비고 버텨내 승리하려 했던 야곱이 모든 힘을 빼고,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거에요.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최종 위협은 20년간 겪었던 것들 이상이었어요. 진짜 죽을 수도 있는 위기였어요.
예전 같았으면 잔머리를 굴려서 변명하거나 피했을텐데, 이제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신앙을 세상에 고백하며 맞서기 시작해요.
이것이 기적이에요.
(쉬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20년만에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데, 오늘 본문은 고향 땅으로 돌아가면서 처음 만나게 되었던 상황이 담겨 있어요.
(쉬고)
야곱이 20년만에 수많은 재물과 짐승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고향에 돌아가고 있어요. 여러분이 야곱이었다면 그 때 어떤 기분이었을 것 같아요?
20년만에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는 묘한 기대감과 흥분 그리고 자신이 잘 되어 돌아가고 있으니 가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 등등 여러 복합적인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요?
(쉬고)
하지만 야곱에게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남아 있었어요.
20년 동안 집에 연락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에서에게 어떤 화해의 제스쳐도 한 적이 없어요.
즉, 문제 해결을 뒤로 미뤄왔다는 것이죠.
이제 그 문제를 맞닥드려야 하는데, 형 에서가 여전히 자신을 향한 적대감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는거에요.
굉장히 두렵고 걱정이 되는 상황 속에 고향 땅으로 들어서는데, 그 때 그의 마음을 잘 아셨던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해 마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내셨어요.
그 군대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온 야곱을 기다리고 있었고 보자마자 환대하기 시작해요.
마하나님은 하나님의 군대라는 뜻으로, 두 군대. 두 진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요.
지금 마하나님은 준전시 체제를 갖춘 부대에요. 준전시 체제를 갖추었다는 말이 무슨 뜻이죠?
지도자의 말에 절대 복종해서 언제는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었다는 거에요.
정말 많은 두려움을 갖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온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군대를 보내셨어요.
야곱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일까요?
(쉬고)
너의 앞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
“에서가 있어서”
“그를 만나면 전쟁을 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쌓여 있겠지만"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 군대로 너를 지켜주겠다.”
“내가 너를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아무 걱정도 고민도 하지 말고 고향으로 가라!”
(쉬고)
이 군대는 야곱이 요청해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거에요.
세상을 이기고 나온 야곱이 이전에 졌던 경험이 있는 세상 앞에 다시 주눅들고 두려워하니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나의 군대와 함께 가라' 라고 위로하고 세워지고 계신거에요.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땅에 들어가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쉬고)
이제 야곱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음으로 당당하게 고향을 향해 걸어가야겠죠.
준전시 체제를 갖춘,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가 앞에 있어요.
그런데 야곱이 그 것을 의지하지 않아요.
또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요.
(충분히 쉬고)
4절.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습니다.”라고 에서에게 말하라.
여기에서 ‘거류하다'는 ‘잠시 머문다'라는 뜻인데, 라반의 집에 머물다 고향에 돌아온 이유를 에서에게 설명하고 있는거에요.
그러니까 “형님 제가 라반의 집에서 평생 살러 간 것이 아니라는 것 아시죠?.”
“잠깐 거기 살다 온거에요. 저 오지 못할 곳 오는거 아니잖아요?”
“저도 고향에서 살고 싶어요.”
형의 마음이 상할까 완전 저자세로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는거에요.
(쉬고)
얼룩이 있는 짐승들을 얻는 과정에서, 라반의 아들들의 위협에서 살아나오면서 그리고 지금 마하나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 잠깐 야곱과 에서에게 주었던 이삭의 축복을 생각해볼까요?
야곱에게 내렸던 장자의 축복“열국이 굴복할 것이면, 형제들의 주인이 될 것"이었어요.
에서가 가져갔던 것“아우를 섬기게 될 것"이라는 말 뿐이었죠.
(쉬고)
야곱이 정말로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그분을 붙잡고 있었다면 이런 저자세로 나갈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지금 군대를 보내주셨잖아요. 그렇다면 야곱은 당당하게 나가야 했어요.
그런데 지금 그가 뭐라고 하죠?
4절.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내 주인되는 에서에게”
에서에게 주인. 장자의 축복을 되돌려 주고 있는 것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어요.
스스로를 너무 심하게 낮추고 있어요.
(쉬고)
야곱의 이 모습. 딱 저의 모습이에요.
저 하나님 믿어요. 사랑해요. 어쩌면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목사가 됐겠죠.
저는 제 자신을 정말로 무익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잘하는 것도 없는데 잘하는 척하고, 내 의를 드러내기 좋아하는 위선자라고 생각해요.
사랑도, 열정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아주 못된 놈이 저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렇게 문제 많고 무익하고 자존감 낮은 저를 하나님께서 불러주셨어요.
이 자리에 오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셨고, 상황 속에서 깨지기도 하고 깨부셔보기도 하면서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훈련을 시 셨어요.
저 너무 잘 알아요. 저 같은 사람이 목사가 되어서 감히 말씀을 나누고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 제 자신이 잘 알아요.
그런데 하나님을 저를 사용하시겠데요.
(쉬고)
이걸 잘 알고 있어요. 그렇기에 저는 저같은 사람을 사용해주심에 감사해야 해요.
그런데 감사가 잘 나오지 않아요.
왜?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고 세워주신 것과 별개로, 제 머리속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난 사역자로 부적합 해.’라는 생각이 잊을만하면 올라오거든요.
(쉬고)
마치 야곱처럼 해결되지 않은 그 문제 앞에 자꾸 넘어지고 쓰러지고 좌절하는 것이죠.
그래서 야곱의 모습이 딱 제 모습이에요.
그리고 하필이면 제 영어이름도 “JACOB” 야곱이에요.
스벅에서 제이콥 고객님! 하고 부르면 “사기꾼아! 정신 차려라”라고 부르는거 같아요. 그러니까 영어이름 잘 지으세요.
(쉬고)
여러분 사탄은 이러한 우리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공격해요.
이삭이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몰래 주려했지만, 야곱이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기만 했다면 에서에게 약점 잡힐 일 없었을거에요.
하나님은 분명히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삭의 잘못된 행동을 가만두지 않으셨을거에요.
야곱이 조금만 더. 아니 털을 뒤집어 쓰고 음식을 만들어 들어가지 않고 1시간 아니 30분만이라도 참았다면 에서에게 쩔절매는 관계가 되지 않았을거에요.
(쉬고)
순간에 지은 죄가 평생의 짐이 되어버린거에요.
하나님의 군대가 왔어요.
그의 곁에 서서 “내가 너를 지켜줄테니 걱정말고 가자!”라고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평생의 짐이 되어버린 죄를 등에 업고, 죄의 그늘에 서 있어요.
(쉬고)
여러분도 여러 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을거에요.
잘 아는 것처럼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죠.
학교, 직장, 교회 어디던지 생활을 하다보면 관계가 틀어질 때가 있어요. 관계가 틀어졌을 때, 내 기분 편하자고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풀려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더 큰 문제와 어려움을 만나게 되어요.
나는 괜찮을지 몰라도 상대는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 있거든요.
관계는 관계로 풀어야 해요.
관계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면, 아니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스럽게 했다면 우리는 반드시 용서를 구해야 해요.
용서에는 대가가 따라요.
상처를 준 만큼 용서를 구하는 땀과 눈물이 있어야 해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어떻게 됐어요?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를 지셨어요. 죄 없으신 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어요.
관계에 대한 어려움은 대가를 치러야 그 문제가 해결이 되어요.
(쉬고)
상대가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고 불평해서도 안돼요.
내가 용서를 구했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해진 것은 절대 아니거든요.
상대가 이해하고 받아드리고 용서를 해야 진정한 관계의 회복이 되는거에요.
(쉬고)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아니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고 싶다면 ‘다듬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드려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결정적일 때 발목 잡혀요.
지금 야곱이 발목이 잡힌거에요.
‘다듬어지고 힘을 빼는 과정'을 겪어 왔지만 여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 ‘에서와의 관계 문제가 남아’있어요.
(쉬고)
그는 여전히 에서를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 두려움을 사용하셔서 그를 다듬기로 마음 먹었어요.
에서를 통해 ‘그를 향한 하나님의 큰 뜻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날을 준비’하셨어요.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오죠. 당시 400명은 한 나라의 군대 숫자였어요.
에서와 400명은 ‘야곱을 다듬고 세우는 조연의 역할’을 하게 되어요.
(쉬고)
여러분을 지독히 괴롭히는 그 세상. 어려움은 ‘여러분을 좀 더 나은 신앙인으로 만들어주는 조연에 불과'해요.
‘하나님이 써 내려가는 구원의 역사 속에 여러분은 주인공이에요.’
‘조연. 들러리에 불과한 세상에 주눅들지 마세요'
(쉬고)
야곱이 성화되지 못하고 20년을 돌아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한계 안에 갇혀’ 있었거든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로 풀어야 할 문제이지만, 그 정도 믿음을 갖지 못했고 보여주지 못했거든요.
(쉬고)
이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는 부분이에요.
머리로는 되는데, 삶이 따라가지 않으면 결정적일 때 우리는 머리를 쫓아가게 되어 있어요.
삶으로 살아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신앙인은, 하나님을 알고 닮아가기를 바라는 신앙인은, 잘못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어요.
죄의 무게를 더 묵직하게 느끼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결정적일 때 ‘머리가 아닌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에게 귀를 기울여' 머리가 아닌 믿음의 발걸음을 걷게 돼요.
(쉬고)
죄를 짓지 않고 살수는 없어요. 죄의 그늘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없어요.
하지만 의지적으로 죄를 짓지 않을수는 있어요.
스스로 죄의 그늘에 들어가지 않도록 늘 우리는 나 자신을 말씀을 통해 살펴보아야 해요.
(쉬고)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 주역'들이에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은 늘 언제나 행복하고 잘 살기만 하나요?
우여곡절을 겪고, 힘든 일들을 다 이겨내잖아요. 꼭 주인공들에게만 이상한 일 생기고 꼬여가잖아요.
하지만 그들은 결국 끝까지 살아남아서 행복해져요.
왜? “주인공이니까"
여러분 역시 어떤 일들이 있던지 간에 결국 “주인공의 자리"에 서게 될거에요.
우리를 주인공으로 세워주는 ‘세상에 마음 꺾이지 마세요'

환도뼈를 만지듯 삶을 만지신다

내가 주인공이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 에서 앞에 굴복하던 야곱이 그 날 밤 혼자 얍복강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내일 죽을 것'같아요.
하나님의 군대가 옆에 있어도, 자신이 가진 것이 정말 많지만 그럼에도 그는 ‘세상이 나를 죽일 것’이라는 두려움과 불안함에 쌓여 있어요.
9-12절. 그러다가 그가 기도를 시작해요.
그가 신앙인의 모습을 보였던 그러지 않았던간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긴 했어요. 기도를 해오긴 했어요.
하지만 그의 마음이 담긴 직접적인 기도문은 여기에서 처음 등장해요. 그만큼 그가 진짜로 다급한 상황까지 갔다는거에요.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 굉장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기도를 시작하고 또 하나님을 의지한다 말하지만 사실은 아니에요.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내가 정당한 계승자 아닙니까!”
“왜 에서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십니까? 400명 보이십니까?”
“저 내일이면 죽어요!”
“제가 죽으면 그 축복 무효되는 것 아닙니까!” 라는 뜻이에요.
(쉬고)
하나님이 야곱을 혼자 두셨나요?
아니죠.
하나님께서 군대를 보내주셨어요. 에서가 아무리 사냥과 전쟁에 능한 사람이고 그에게 훈련을 받은 군사 400명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군대랑 비교할 수 없어요.
하나님의 군대가 사람의 군대를 이기지 못할리가 없어요.
(충분히 쉬고)
그럼에도 야곱은 “하나님과 군대"를 믿지 않아요.
머리로는 알지만 삶으로 실천이 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의 말대로 ‘축복의 계승자는 본인’인데 ‘죽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어요.
(쉬고)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갖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오면서 “여러분에겐 수많은 믿음의 도전들이 있었을 것”이에요?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어렵고,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서 너무 힘들었을거에요.
(쉬고)
그런데 지금 그 때를 생각하면 어때요?
여러분은 그 수많은 도전들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온 사람들이에요.
(쉬고)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믿음'은 환난 가운데 있을 때 자라고 빛을 발해요.
문제가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은 더 간절해지고, 강해지고 단단하게 다져져요.
(쉬고)
지금 야곱에게 ‘하나님의 군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내일 그리고 그 이후를 살아낼 수 있다.’라는 그 대답만 중요했어요.
하나님의 군대와 함께 있으면 ‘무조건 살 수 있는데' 그는 ‘대답'을 듣고 싶었어요.
지금 야곱에게 중요한 것은 “그래 내가 너 살려줄거야. 내일 넌 살 것이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거야"라는 이 문장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위기 앞에 서 있는 야곱에게,
세상의 수많은 도전과 위협 속에 서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입술이 아닌, 삶 자체의 변화를 갈망하는 것 이에요.
세상은 절대 우리를 죽음의 자리에 눕힐 수 없어요.
죽음이라는 공포까지 몰아갈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절대 우리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없어요”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동일한 것을 원하고 계셔요.
“너의 믿음이 나에게 있다면, 이제는 너의 삶의 방향키를 나에게 주지 않겠니?”
“네가 입술로 고백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한다면, 오늘을 살아내는 것에 급급하지 말고 나를 바라봐주겠니"
“입술에서만 맴도는 고백이 아니라, 삶 자체의 고백을 나에게 주기를 바래"
(충분히 쉬고)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지 마라

우리의 삶은 지금 이 곳.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아요.
나를 위협하는 도전 앞에 내 삶이 멈추지 않을거에요.
그리스도인의 성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우리의 삶의 발걸음은 ‘우리가 죽어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계속'될거에요.
(쉬고)
저는 우리가 9번이나 야곱의 삶을 살펴보았다고 해서, 여러분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화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9번의 설교를 마치고 결단 찬양과 함께 기도를 할 때 여러분에게 빛이 쏟아져서 모두가 다 바뀐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믿어요.
제가 동의하던 하지 않던, 제 믿음과 별개로 하나님은 분명히 일하신다는 것. 그것은 믿어요.
그리스도인의 성화. 삶의 변화는 갑작스럽게 단번에 일어나지 않아요.
서서히 점진적으로 일어나요.
(쉬고)
여러분 비행기가 하늘에 오르기 전에 어떤 시간을 갖죠?
활주로에서 달리는 것부터 하잖아요.
충분히 예열하는 시간을 갖고, 이륙할 준비가 되었을 때 속도를 내고 달리면서 하늘로 올라가잖아요.
지금 저와 여러분은 활주로를 달리고 있는 것과 같아요.
변화의 속도가 더딜지 몰라도, 그것이 탄력이 붙기 시작하면 우리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을만큼 변화되기 시작할거에요.
우리는 반드시 복음 앞에 변화되게 되어 있어요!
(쉬고)
오늘의 내가 약할 뿐이지, 내일의 휘석이는 오늘보다 더 강해질거에요.
오늘의 휘석이는 얻어 터져서 뒤로 나자빠져 있겠지만, 내일의 휘석이는 또 다시 무릎을 집고 일어날거에요.
그리고 가야 할 길을 향해 예수님의 손을 꼭 붙들고 걸어갈거에요.
(쉬고)
하나님은 야곱을 20년이나 기다리셨어요. 야곱은 얍복강에서 살아난 이후 자녀들에게 속는 삶을 살아가요.
사기의 정점을 찍은 사람이, 자라는 사기꾼 새싹들에게 당하기만 해요.
얄팍한 수가 다 보였지만 그래도 괜찮았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으로 충분했으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주셨으니까.
저들의 삶도 하나님께서 변화시킬 것을 믿었으니까.
(쉬고)
하나님의 사자가 ‘왜 야곱과 씨름하다 고관절. 환도뼈를 내려 쳤을까요?’
그냥 그가 듣고 싶은 대답 해주시면 씨름도 안해도 되고 편했을텐데 ‘왜 굳이 밤새 씨름하고 내려 치는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셨을까요?
(쉬고)
변화된 그를 세상에 세워 증거하기 위해서였어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변화된 삶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어요.
변화의 시작을 선포하기 위해서였어요.
(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이유가 뭐겠어요.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를 세상에 증거하기 위해서였어요.
(쉬고)
아브라함도 야곱도,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해냈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삶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세상에 전해지고 있어요.
그들의 믿음과 삶의 변화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증거될거에요.
그렇게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주인공'이 된거에요.
(쉬고)
우리의 믿음은 매 순간, 매일 자라고 있어요.
믿으세요? 여러분의 믿음이 계속해서 자라고 있고 삶의 변화가 내가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음을 믿으세요?
(쉬고)
왜 변하지 않을까! 왜 나는 여전히 똑같을까? 이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 잡히지 마세요.
“스스로 내 한계를 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한계를 정하지 않으셨어요"
(쉬고)
그 분이 저를, 여러분을 선택하고 구원하신 그 순간부터 “끊어졌던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이 계속해서 흘러 들어오고” 있어요.
상황과 환경에 스스로 주눅들어 지고 들어가지 마세요.
여러분은 이미 상황과 환경 그리고 세상이 설정한 한계를 넘어선 사람들이에요.
감히 세상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에요.
(쉬고)
지금 그 자리에 갈 때까지 여러분은 세상의 한계를 뛰어넘었어요.
그 경험이, 은혜가 있기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잖아요.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라 주라 고백할 수 있는거에요.
(쉬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스스로 설정한 한계에 좌절하지 마세요"
이번 한주 “내 안에 한계를 넘어"를 끊임없이 듣고 묵상하고 부르세요.
“한계를 모르시는 분께서 주시는 마음과 힘과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하는 마음으로 들으면서 기도하세요.
(쉬고)
그렇게 한주 하나님을 깊이 묵상함으로, 돌아오는 주 토요일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나의 힘과 능력이 되어 주셨던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요.
오늘로 야곱의 이야기는 끝이나요.
하지만 우리 삶의 변화는 끝나지 않아요.
계속해서 변화되고 또 변화 될거에요.
그 변화의 은혜를 매일의 삶에서 즐기고 누리고 감사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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