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났으나 비어버렸다

룻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 views

1. 희망을 갖고 떠나다 2. 말씀을 믿지 않다 3. 모든 것을 잃어버리다

Notes
Transcript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룻기인데, 룻기는 삼손이 살았던 사사 시대에 일어난 한 가정의 이야기에요.
희망을 가졌으나 비극을 경험했고, 인생의 나락에 빠졌던 한 여성이 하나님을 통해 회복되어지는 이야기에요.
간단하게 생각하면 우리 나라의 전래동화처럼 ‘권선징악’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것은 단순하게 착한 사람이 승리한다! 착한 사람이 결국 행복한 결말은 맞이한다. 그런 내용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떠난 사람. 하나님을 알지만 동행하지 않는 사람은 어떠한 모습인지. 그 처절함을 보여주는 이야기에요.
하나님을 떠난 사람만 처절함을 경험할까요?
아니에요.
사랑하는 내 자녀가 떠난 모습을 보고, 그 자녀가 처절함을 느끼고 비참함 그리고 공허함을 느끼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도 동일하게 처절하고 비참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계시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에요.

하나님을 떠난 삶

하나님을 떠난 삶. 우리는 참 행복해 보이고 편안해 보이죠.
거리낌 없이 말 하면 되고 선택하면 되고, 움직이면 되니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대로 선택하고 멋대로 살면 진짜 편하거든요. 그리스도인처럼 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하나님하고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알면서도 죄를 짓고 하나님을 멀리 멀리 밀어내고 떨어져 살려고 하는 이유내가 좀 더 편하고 싶어서에요.
좋고 즐거울 때는 하나님 없이 막 살면서, 힘들고 괴로울 때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우리죠.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왜 내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으시냐고, 왜 내 기도는 듣지 않으시냐고 투정부려요.
철저히 나 중심이죠.
하나님을 떠나서 멋대로 살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관심도 없어요.
하나님 얼마나 대단한 분이에요?
우리가 싫다고 밀어내고 멋대로 살아도, 변함없이 서서 우리를 바라보면서 기다리고 계시잖아요.
오늘 함께 나눌 룻기에도 이런 내용들이 가득 차 있어요. 지극히 일반적인 우리 인간들의 이야기에요.
(쉬고)
사사시대는 일단 어두워요. 매일 상실감 속에 빠져 살아요.
그래서인지 사사기를 묵상할 때 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참 힘이 빠지고 마음이 들어요.
사람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버렸으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상실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는다고 하거든요.
진짜 얼마나 이기적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한단 말이에요.
그러면서도, 잘 안되고 힘들면 하나님 탓을 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사사기에 더 희망이 있는 것은 완벽한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사시대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도 희망이 있는거에요.
(쉬고)
룻기는 바로 그런 어두운 시대. 사사시대의 이야기에요.
그럼에도 참 감사한 것은. 어둡고 개인적 상실감을 느끼는 그런 시대. 하나님을 버리고 멀리 떠나간 나오미의 가족을 기억하시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죠.
제가 인도에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 때 제가 정말 충격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바로 영화관을 갔을 때에요.
인도인들은 영화를 볼 때 진짜 진지하게 봐요.
인도영화를 보면 3시간씩 하는데 그 안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춤과 노래 안에 영화의 모든 줄거리가 들어있어요.
그리고 인도 영화는 브레이크 타임이 있어요. 3시간이면 1시간 30분 정도 하고 영화를 정지시켜요. 그리고 불을 켜요.
다 나가서 화장실도 가고 먹을 것도 사오고 하면서 시간을 갖고 다시 앉아서 영화를 봐요.
단순히 길기 때문에 이런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닌, 남은 시간을 더 잘 즐기기 위한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이죠.
인도에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보러 갔는데, 저의 첫 영화였어요. 완전 충격이었어요.
우리나라는 영화가 시작되면 어때요? 조용하죠. 누가 핸드폰 꺼내서 눈뽕 당하면 째려보면서 “왜 저래" 그러잖아요?’
여기는 도때기 시장이에요. 진짜 엄청 시끄러워요. 와 소리 지르고 싶을 정도로 시끄러워요. 영화 대사를 따라하지를 않나 스파이더맨 등장하면 박수를 치지 않나, 또 악당 나타나면 욕을 하지 않나.
스파이더맨이 빌런에게 얻어 맞으면 일어나서 야유하고 손에 있는것 던져요. 그리고 로맨틱한 장면 나오면 휘파람을 불어요. 결국 스파이더맨이 싸워서 이기니까 기립박수를 치면서 휘파람을 부르더라구요.
진짜 너무 충격이었어요. 제 눈에는 다들 미친 것 같았어요.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오다 인도친구에게 물어봤어요. 아니 이거 너무 노매너 아냐? 진짜 뭐야 나 영화 하나도 못봤어! 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저를 측은하게 쳐다보면서 영화를 즐기라는거에요.
무슨 소리냐 물었더니, 본인들은 영화를 볼 때 내가 그 곳에 있다고 가정하고 본다는거에요.
내가 스파이더맨이 되기도 하고 주변 인물이 되기도 하면서 감정을 이입하고 몰입한다는 거죠.
그렇게 하면 영화를 즐길 수 있고 더 재미있다고 하더라구요.
우리가 말씀을 볼 때 이래야 해요. 단순히 글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안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감정을 넣고 텍스트와 문맥을 보며 읽어야 해요.
오늘 나누는 룻기를 통해 저와 여러분이 나오미가 되어야 하고, 룻이 되어야 해요. 그래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야 그들이 느꼈던 처절함과 상실감을 이해하고, 우리도 나락에 떨어지는 감정을 가질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처절함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함께 누리길 바래요.
(쉬고)
룻기의 배경을 잠깐 살펴 볼건데, 나오미의 가정에 대해 기억해야 하는 것이 6가지가 있어요.
첫째, 흉년, 둘째, 그 흉년이 한 가족에게 미친 영향. 셋째, 그 가족의 이주, 넷째, 구성원의 이름의 뜻, 다섯째, 유다 베들레헴 출신 마지막으로 에브랏 사람들이에요.
첫째와 다섯째를 한번에 살펴볼까요?
흉년이 베들레헴에 들었어요. 베들레헴은 성경 역사상 중요한 위치이지만, 사사시대에는 정말 타락했던 도시였어요. 그 베들레헴 출신 사람이 나오미의 가정이에요.
베들레헴의 뜻은 “떡집”, “빵집”으로 알려죠 있죠. 도시 이름을 “빵집”이라 할만큼, 풍요로운 곳이었어요. 그 사막지대에 얼마나 먹을 것이 많고 풍요로운 도시였으면 그 이름을 빵집. 베들레헴이라고 했을까요.
그런데 풍요가 넘쳐났던 이 빵집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빵집에 빵이 없는거죠. 떡집에 떡이 없는 것이죠.
제가 이래뵈도 카페에서 4년 반 정도 일을 했었어요.
때론 매니저도 하면서 메뉴도 개발하고 했었어요. 4년전쯤? 브라운슈가 버블티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어요.
흑설탕 버블티. 제가 일했던 카페에도 이 버블티를 팔았어요. 그런데 이게 늘 있는게 아니어서 떨어지면 Sold out을 붙이고 팔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이 버블티를 먹으려 신나게 웃으면서 들어왔다가 버블이 떨어졌다고 하면 엄청 실망한 표정을 짓고 돌아가요.
그 모습을 보면서, ‘여기 카페가 아니라 다른 카페가서 먹을 수 있는 흑설탕 버블티를 여기에서 먹지 못한다고 저렇게 실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우리는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이 떨어지면 실망해요.
갖고자하는 무언가를 열망하는데 갖지 못할 때 상실감을 느끼고 허탈해 해 한다는 것이죠.
(쉬고)
젖과 꿀이 계속해서 흘러야하는 약속의 땅 그 중에서 빵집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어요. 이건 정말 엄청난 문제에요.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흉년이에요. 예년 같았으면 추수하면서 힘을 쏟아야 하는 시기에요. 그런데 지금은 논에 밭에 아무것도 없어요. 쩍쩍 갈라진 땅과 알맹이 없는 곡식들만 널려 있어요.
허털감으로 인해 마음이 공허해지고 있어요.
어떤 열매가 열렸을까? 얼마나 농작물이 자랐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매일 논과 밭에 나갔을텐데, 아무 것도 없는 논과 밭을 보아야 해요.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은 사람들의 삶이 고달파지는 것을 의미해요.
제가 고등학생일 때, ‘만원의 행복’이라는 프로그램이 유행했었어요.
만원만 갖고 일주일을 살아가는 것이죠. 연예인들을 이 만원 안에서 일주일간 밥을 사먹어야 했고, 필요한 것들을 해야 했어요.
그 만원을 아끼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남기기 위해 진짜 별 방법을 다 썼어요.
식당가서 누가 남긴 밥을 100원 주고 먹고, 집에서 반찬만 싸와서 밥 먹는 동료들에게 가서 200원주고 밥을 사서 먹고 했어요.
저의 대학생활이 이랬어요.
거의 매주가 만원의 행복이었어요. 매주 대전에서 논산을 왔다 갔다 해야 했어요. 만원 중 6천원이 교통비였어요. 남은 4천원으로 일주일을 살아야 했어요.
그때 부모님께서 감사하게도 자취방을 하나 잡아주셨고 용돈을 주셨었지만 사실 넉넉하지 않았어요.
전공책 한권에 4-5만원씩 하는데 그거 최소 5-6권은 사야하는 것. 그러니까 저는 좀 어려웠어요. 부모님 몰래 택배도 하고 피시방 알바도 하면서 버텼어요.
그렇게 남은 4천원을 아끼기 위해, 약속도 잡지 않고 자취방에서만 밥을 먹었어요. 후배들이 밥 사달라고 하면 자취방에 밥 많으니까 라면 사서 오라고 했어요.
그렇게 3-4년을 지냈어요. 기차역에서 자취방까지 걸어서 1시간인데요. 1200원 버스비 아끼려고 걸어 다녔어요.
진짜 처절하게 살았어요.
돈이 없다는 것.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것이, 진짜 사람을 초라해지게 만들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사사시대에 들었던 이 흉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요.
떡집에 흉년이 들어서 먹을게 없어요. 그리그 그 흉년은 한 가족에게 영향을 미쳤어요.
아마 이 시기를 기드온 시대와 가장 가까운 시대이지 않을까 추측해요.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으로 이주했는데요.
당시 이스라엘은 모압 왕 에글론의 압제를 받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사 에훗이 모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냈어요. 에훗이 구해낸 직후부터 기드온이 사사가 될 때 그 무렵 흉년이 있었고, 그 흉년은 나오미의 가정에게 영향을 주었어요.
그래서, 이 가정의 가장. 엘리멜렉은 가족 모두를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이주했어요. 임시적인 이주였어요. 이 흉년이 해결되면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려고 한 것이죠.
왜 모압땅이었냐면, 모압 땅은 고지대에 있었고, 다른 지역보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그 곳에는 먹을 것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쉬고)
가족 구성원의 이름은 엘리멜렉, 나오미, 말론, 기룐이에요.
엘리멜렉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 나오미 “유쾌한”, 말론 “병약한”, 기룐 “연약한”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흉년을 피해 하나님의 적의 땅에 이주를 했어요. 그리고 그 아들들의 이름은 병약하고 연약한 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요.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진정으로 고백했던 사람이라면, 이렇게 모압 땅으로의 이주를 쉽게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에요.
심지어 모압땅으로 이주할 때 이 가정은 가진 것이 많았어요.
이들은 에브랏 사람들인데, 부유한 상류층을 의미해요.
가진 것이 많았던, 아직은 흉년을 버틸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었던 엘리멜렉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잃어버릴까봐 모압땅으로 이주 한것이에요.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피한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가진 사람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했어요.
그는 흉년을 버틸 수 있었으면서도 스스로 어려운 동족을 돕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등지고 이주했다는 것이에요.
이제 모압 땅에서 새로운 인생 즐거운 삶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어요.
텅 비어버린 흉년을 피해, 꽉 채워진 삶을 기대하며 모압으로 갔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어요. 두 아들은 그 곳에서 모압 여자들과 결혼을 해요. 이건 하나님의 율법을 직접적으로 위반 하는 것이었어요.
하나님께서 모압 사람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올 수 없다고 신명기에 말씀하셨는데, 그런데 지금 약속의 땅을 버리고 도망친 것도 모자라,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모압 여자들과 결혼까지 한 것이죠.
나오미는 남편은 죽었지만 그래도 두 아들이 있었기에 버텨냈어요.
그런데 두 아들도 갑자기 죽어버렸어요.
병약하고 연약하다는 이름의 뜻을 가졌던 두 아들은, 자녀도 남기지 못한체 갑자기 죽었어요.
이제 나오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텅 빈 흉년을 피해 꽉 찬 새로운 삶을 기대하고 야심차게 모압으로 남편과 자녀들을 믿고 이주해왔건만, 오히려 더 텅 빈 인생을 살게 되었어요.
모압으로 이주한지 불과 10년 만에 일어난 일들이에요.
(쉬고)
왜 저는 이렇게 암울한 한 가정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요?
(쉬고)
오늘날 저와 여러분의 암울한 영적 모습 때문이에요.
사사시대는 대표적인 ‘답정너의 시대’에요.
우리는 답정너가 너무 익숙해요. 답은 정해져있죠.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더 좋고 편하죠.
결국 내 하고 싶은데로 하면서 하나님께 묻기만 할 때가 많아요.
우리는 너무나 악해서, 타락해서, ‘눈에 보이는 것을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살아가요.
사사시대는 ‘왕이 없었던 시대라 각자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갔다.’라고 말해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을까요?
왕이 왜 없어요. 우리 삶에 왕이 없을까요?
아니요. 이스라엘도 우리도 왕이 있어요.
누구죠? 하나님이죠. 우리를 지으신 분.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시며 구원해주시는 분. 그 분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진짜 구원자. 왕으로 여기지 않아요.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매일 매일 타락을 갱신하면서 살아가고 있을지 몰라요.
어제보다 오늘이 더 타락한 삶을 살아요. 하나님과 더 멀어질수록 매일 타락 세계 신기록을 세우는 것이에요.
(쉬고)
룻기는 정말 암울하게 시작해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정말 우울하게 시작한 한 가정의 이야기에요. 하지만 그 끝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다윗을 낳았더라.”라고 끝이 나요.
히브리어 성경으로 보면 룻기의 마지막 단어는 ‘다윗’이에요.
결국 룻기는 암울하고 처절한 이 시대. 상실감과 허무함을 느끼고 외로움을 느끼는 이 시대. 나에겐 아무도 없다는 처절한 패배감을 안겨주는 사사시대, 지금 이 시대에 ‘다윗’이라는 왕을 통해 메시아의 소망을 갖도록 하는 말씀인 것이에요.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다윗을 통해 메시아의 소망을 갖는다면요.
우리는 룻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라는 메시야, 구원자를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져야 해요.
룻기는 단순히 효도하는 한 며느리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진부한 해석과 적용이 있는 말씀이 아니고, 룻과 보아스의 사랑이야기도 아니에요.
룻기가 저와 여러분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쉬고)
룻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중 하나는 ‘가알’이이에요. 이것은 ‘구속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구약 성경에서 116회 사용되는 이 단어가, 4장밖에 되지 않는 룻기에서 22번이나 사용되었어요.
구속하다. 하나님 편에 붙이다. 하나님 곁에 가까이 두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안에 포함시키다.
22번이나 사용되었어요.
(쉬고)
이 가알. 구속하다. 사사시대에 끝났을까요?
나오미의 가정만 그렇게 돌보시고 더 이상 구속하지 않으실까요?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있고, 하나님 편에, 그 곁에 딱 붙어 있어요.
내 삶에 하나님이 없음을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큰 역사와 그림 안에 내가 속해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왕으로, 구세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를 계속해서 기다리고 부르시겠어요.
무엇이 아쉬우셔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를 사용하시겠어요.
우리가 잘나서,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동참시켜주신 것이에요.
여러분이 보내는 그 하루. 24시간. 모든 시간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흐르는 시간들이에요.
룻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 삶의 고난과 아픔 그리고 좌절을 이기는 소망을 반드시 깨달아야 해요.
하나님의 은혜를 반드시 누려야 해요.
(쉬고)
룻기는 룻이라는 한 여자의 이름이 제목인 책이지만요. 저는 룻기를 묵상하면 묵상할 수록 이 책의 주인공은 나오미, 저 그리고 여러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을 자원해서 자발적으로 떠난 사람. 그리고 그가 느끼는 텅비고 공허한 마음을 나오미는 누리고 있어요.
우리는요? 우리도 스스로 매일 하나님을 멀리하는 순간들이 계속 등장해요.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은 공허해져요. 그런데 느끼지 못할 뿐이죠.
(쉬고)
나오미의 고난과 아픔. 우리도 이미 경험하고 있어요.
룻기를 통해, 우리의 고집과 교만 그리고 못난 자아가 산산히 부서지고 깨졌으면 좋겠어요.
나의 교만이 부서져야 해요.
내가 인정하지 않던 부분이 인정하게 될 때 처절하고 슬프겠지만, 그 순간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탈바꿈하는 시간이 될거에요.
내 정체성을 다시 깨닫고 큰 숨을 쉴 수 있게 될거에요.
내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 될 것이에요.
(쉬고)
나를 인정하는 것. 나의 약함을 고백하고 나의 처절한 모습과 외로움, 공허함을 바로 보는 것.
그것은 패배한 것처럼 보일거에요.
나는 이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좌절하고 낙심될 거에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행동은 나를 보잘 것 없게 만들거든요.
일순간 내가 패배자처럼 느껴지고 또 내가 나 자신을 괴롭게 하는 순간이 되겠지만요.
전 확신해요. 결국 그 패배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위대한 패배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어요.
하나님이 그 패배를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분명히 바꿔주실거에요.
(쉬고)
나오미는 더 좋아보이는 것을 찾아 떠났어요. 그리고 모든 것을 잃었어요. 하나님이 자신을 버린 것만 같고 나는 실패한 사람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가알.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하나님의 일하심은 진행 중이었어요.
그래서 그녀는 결국 회복해요. 비어버린 그 자리를 하나님이 채워주실거에요.
이번 한 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해요. 삶 속에 만난 하나님의 은혜가 매일 매일 쏟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쳐도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거에요. 그 자리에 있는거에요.
가알.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하나님의 지치지 않는 일하심이 반드시 함께 할거에요.
그 일하심을 마음껏 누리는 한 주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