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영적 네비게이션(왕상22: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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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0월 31일 화요일 새벽
1.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 351장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3. 성경봉독 : 열왕기상 22장 41-53절
4. 말씀선포
1. 도입
1) 네비게이션
흔히 남자들에겐 ‘살면서 세 명의 여자말을 들으면 살만해진다.’는 표현을 합니다. 엄마, 아내 그리고 네비게이션 안내멘트로 길을 인도하는 여자. 실제로 네비게이션 말 잘들어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신빙성은 있다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크리스천에게도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고 예비된 길로 나아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은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모습이, 또 삶에서의 예배를 통해 넘어질 수 있는 우리의 걸림돌이 무엇인가를 점검케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
1) 우리의 예배를 방해하는 산당이 있습니까?
여호사밧이 아버지 아사의 뒤를 이어 유다의 왕이 됩니다. 그리고 25년간 그 땅을 다스리며 그의 행실이 나쁘지 않습니다. 43절 상반절을 보니,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모습으로, 선한 모습으로 삶을 걸어 갑니다.
그러나 하반절을 보니,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아버지 아사처럼 하나님 앞에 선한 길을 걸었지만, 산당은 폐하지 않는 아쉬움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엇이 정직이며, 어떤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선한지 압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삶이 우리 아닙니까? 그러나 무엇이 아쉬워 한 두개의 문제 속에 우리는 여호사밧이 여전히 산당을 남기듯, 우리도 죄의 걸림돌을 떨쳐내지 못해 남겨두곤 합니다.
여호사밧이 산당을 남겨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백성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즉 여론이라는 기에 눌려 차마 제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 주변 뿐 아니라 자신의 욕심에서도 이를 제거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어떤 의미입니까? 이 땅에서 잘 살기를 원하여 건강이며, 부나 명예를 위해 예배를 드리던 곳이 바로 산당이었습니다. 그러니 여호사밧도 산당을 막상 쉽게 제거하기란 어려웠던 겁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 가운데 여전히 남겨진 산당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은 무엇입니까? 건강입니까? 또는 부나 명예입니까?
저 역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나아감에 얼마나 많은 산당이 제 안에 있는지 모릅니다. 동기들과 저 스스로를 계속 비교하며 낙담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땐 그리 걸림돌이 아니었는데, 점점 사역의 연차가 지날수록 “너는 자유로운 사람이고, 예체능에 재능이 있는 사람인데 왜 신학을 하려하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른 길로 가도 괜찮단다.” 라 말씀하시던 부모님의 말들이 제 발목을 잡는 산당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발목을 잡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리에 있어 여전히 남겨진 산당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마음 한켠에 떠오르는 산당들이 있다면, 저와 여러분 이 자리에서 결단하시고 도전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감에는 높고 낮음도 없고, 크고 작음도 없습니다. 그저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어 나아가는 것 뿐,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라옵기로는 오늘 하루, 우리 삶 가운데 놓여진 산당을 담대히 제거해 나가는, 하나님 앞에 온전함으로 나아가 삶의 예배의 승리를 맛보는 저와 여러분 되길 원합니다.
2)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는 바알이 있습니까?
유다의 왕이 여호사밧으로 교체될 때, 북 이스라엘도 왕권이 교체됩니다. 바로 아하시야로 정권이 바뀝니다. 이미 다들 잘 아시다시피, 북 이스라엘에서 사실 선한 왕이 없습니다. 그 말인 즉슨, 아하시야 또한 선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여호사밧, 어떤 모습을 보였습니까? 52절과 53절이 그의 행실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
하나님이 아닌 바알을 예배하는 완벽한 경로 이탈의 모습을 보입니다. 여호사밧은 목적지를 가는 중에 중간 중간 샛길로 빠져 돌고 도는 느낌이라면, 아하시야는 동쪽으로 가야할 길을 아예 서쪽으로 향하는 완전히 반대된 길을 향해 가는 좋지 못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경로 이탈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노하신다는 겁니다. 당연한 결과 아닙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길이 있는데, 그 길로 가지 않으니 하나님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모습이 우리는 아니라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아하시야 처럼 다른 이방신을 섬긴 적이 없는걸요?’ 라 말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보다 더 중요시 여겼던 것들이 우리 삶 중에 있지 않습니까?
제가 학업에 집중하고자 1년 사역을 내려두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영적으로 피폐해졌는지, 제 삶에 바알이 이리도 많았는지 보게 되었습니다. 사임 후 1, 2주는 즐거웠습니다. 사역자가 아닌 예배자로 함께 마음을 드림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1, 2달이 지나니 잠이 예배를 막아섭니다. 오전에 못일어나면 ‘괜찮아, 저녁예배가 있는 교회를 찾지 뭐.’ 이제와 돌이켜 보면 뭐가 괜찮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데, 그때 저는 수많은 바알이 제 삶에서 예배를 무너뜨리고 반대를 향해 나아가도록 함을 경험했습니다. 1년이 지나 다시 사역자로써 발을 내딛었을 때, 하나님 앞에 매임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삶에, 예배를 무너뜨리는 바알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우리 성도님들을 ‘괜찮다’ 속삭이며 유혹하며 꿰어 넘어지도록 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 예배로 나아왔으나 방해하는 산당이 있을 것입니다. 또 삶에서 하나님을 멀리 두도록 하는 바알이 우리게 있을 줄 압니다. 바라옵기로는 나의 산당, 나의 바알을 하나님의 능력 힘 입어, 또 온전히 의지함으로 단 번에 끊어내는 저와 여러분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오직 주님의 품 안에 안겨, 하나님의 말씀 의지해 이끄심 따라 살아가겠노라 결단하시고 도전하시는 하루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5. 기도제목
1) 말씀을 가지고
- 예배를 방해하는 내 안의 산당을 무너뜨리게 하소서
- 삶 속에서 하나님을 멀리하게끔 유혹하는 바알을 떨쳐내게 하소서
2) 삶을 위해서, 그리고 각자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 가정의 어려움으로 상처입은 우리 청년들과 우리의 이웃들. 그들의 가정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하게 임재하여 그 안에 세워진 산당을, 바알을 떨쳐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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