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민감함으로(왕상22: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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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0월 30일 월요일 새벽
1.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1,4,5절
3. 성경봉독 : 열왕기상 22장 29-40절
4. 말씀선포
1.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살아갑니다
1) 새벽을 깨움도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우리의 삶, 구석 구석 하나님의 손길이 안닿은 곳이 없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그 은혜를 날마다 고백하려 힘씁니다. 오늘 이 새벽을 깨어 나아온 우리 성도님들의 하루가 또 그런 하루 되길 바랍니다.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음을 믿음으로, 또 기쁨으로 간증하는 하루이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의 계획에 확신을, 죄에는 무단히 민감함으로
1) 하나님의 계획에 ‘민감하게’ 감사하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성취됨을 누렸으나 끝내 하나님을 보지 못한 아합 왕의 처참한 결말을 보여줍니다. 지난 새벽을 통해 본 하나님의 말씀을 복기 해봅시다. 그는 아람과의 두 번의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승리였습니다. 왜냐하면, 군사적으로 아람이 훨씬 더 강한 군사진을 보유했었기 때문에, 자체적 운영의 승리라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였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두 번의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아합의 정상적인 반응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의심없는 순종이 마땅함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나봇을 죽였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가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입니다.
두 번의 전쟁 승리, 원하던 포도원 쟁취 그리고 3년간 전쟁 없는 평화. 아합 입장에서는 기고만장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밖에 안보이는 어리석음 가운데 갇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기 의를 더욱 드러내는,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행위를 보입니다.
고난에 놓인 우리를 하나님이 보시고 승리의 길로, 평화와 평안의 길로 인도하신 경험, 다 있지 않으십니까?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기도 하지만, 막상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보단 내 삶을 더 꺼내어 걸어가지는 않으십니까? 생각해보면 고난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도 참 쉽지 않지만, 평안과 평화 중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참으로 많이 놓치고 살아가는게 우리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저는 매일 아침 눈을 떠 기도할 때, 빠짐없이 하는 기도제목 하나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제 숨을 허락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맡기신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오늘 하루 되도록 순종으로 걸어가겠습니다.” 어느 순간, 매일 숨을 공급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이 물 밀듯 차올라 눈을 떠 첫 고백이 되기도 했지만, 요즘은 습관적 고백은 아니었는가 회개하는 아침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합은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하나님을 떠난 악한 자의 모습을 보여 우리와 다르다 생각도 들겠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연약함이 저와 또 오늘날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을 보게 됩니다.
바라옵기로는, 오늘 하루 조금 더 민감하게,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는 하루이길 소망합니다. 세밀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부드러운 손길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 앞에 “주님 감사합니다. 주께서 행하셨습니다.”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2) 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거절하라
또 3년간 전쟁이 없었으나 아람과의 세 번째 전투를 눈 앞에 둔 아합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30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아합의 모습을 보십쇼. 왕이 왕복을 입지 않습니다. 왕이 신분에 걸맞는 의복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일반 병사의 옷을 입어 전쟁터로 나아갑니다. 왜 이런 행동을 취했을까요? 전쟁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모든 군사를 전멸시키거나 또는 상대의 수장을 처치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합의 행동은 자신을 죽이려는 상대로부터 시각적 피함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결국 자신을 대신해 죽음을 맞이할 병사를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또 두 번의 전쟁을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려움 가운데 놓인 아합으로부터 한숨만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저버린, 여전히 죄 가운데 놓여 하나님을 찾지 않고 보지 못하는 아합이 짠하기 까지도 합니다.
그런 아합의 최후는 어떻습니까? 아람에서 아합 왕을 죽이기 위해 32명의 정예병사를 구축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합 왕을 찾지 못해 돌이키는 모습을 보며, 아합의 전략이 성공했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34절 그의 최후는 너무나 허무 합니다.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이름 모를 한 병사의 활시위에 죽임을 당합니다. 그것도 무심코 당긴 활에 말입니다. 심지어 갑옷 솔기, 즉 갑옷과 갑옷 사이의 이음새에 맞아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연같지만 이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엘리야의 예언처럼 아합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죄로 가득한 삶을 살아낸 자의, 모든 것이 하나님 계획이었음을 수긍하지 못한 자의 최후는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을 살아낼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계획에 민감하며 죄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내는 영적 민감을 지니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어제 교역자들과 함께 짧은 연극을 준비해 보였습니다. 그 연극을 아내 또한 자모실에서 아엘이와 보았습니다. 처음에 아엘이가 무심히 보더랍니다. 그런데 왠걸요, 아빠가 다른 여자랑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며 아엘이가 흥분한겁니다. 엄마를 가리키며 “아빠! 아빠! 아빠!” 라고 했다는 겁니다. 아엘이도 알았던 거지요.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랑 있는건 안된다는 걸 말입니다. 어제 또 연합예배로 자모실에 부모님들과 아기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아엘이 덕분에 자모실에 계신 분들이 다 빵 터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웃겨서 감사하다 싶지만서도, 그만큼 죄에는 순수한 아기들처럼 안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반응해야 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바라옵기로는 오늘 하루 살아가며, 하나님의 계획에는 의심없는 확신으로, 그리고 다가오는 사단의 유혹과 수많은 죄성에는 “안돼! 안돼!” 외치며 확실하게 쳐내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5. 기도제목
1) 말씀을 가지고
-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아멘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 사단의 유혹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거부하고 거절하는 우리되게 하소서
2) 삶을 위해서, 그리고 각자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 이어진교회를 방문한 한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맛보게, 또 이어진교회가 날마다 하나님 말씀으로 새로이 전도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