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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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39:7(구약 830쪽)
Psalm 39:7 NKRV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젠가 밝혔던 이야기지만 저는 이른바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습니다. 제가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완벽을 추구하려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제가 완벽하지 않은데, 그러려고 하니 계속 문제가 생깁니다.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문제를 일으켜서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못견뎌합니다. 사실 참 당연한 일인데요. 저는 결코 저의 생각대로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는 너무나 부족한 인간이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못견뎌하는 제가 이상합니다. 더욱 큰 문제는 그러다보니 저는 제 생각에 의지하여 제게 주어진 일을 쉽게 판단하게 됩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두 가지의 문제를 마주하곤 합니다. 하나는 지레 짐작으로 어떤 일이든 흔쾌히 맡아서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확실한 결과가 보장되는 또는 예측 가능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일은 쉽게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것에 관하여 도전하지 않으려하고 모든 일을 쉽게 수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제가 어떤 일이든 긍정적인 전망을 하기보다는 부정적인 전망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만큼 문제가 될 만한 요소를 계속해서 점검하고 그것을 대처 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잘 될거야라고 생각하기보다 어떤 문제는 없나를 생각합니다.
제가 이것이 참 문제라고 생각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청년과 얘기를 나누다가요. 제가 뒤늦게 말실수를 했고 어리석은 판단과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저는 그 청년이 신앙생활을 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조언이랍시고 이런 저런 얘기를 쏟아냈는데, 그 과정에서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면,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얘기나, ‘이건 신앙생활이 아니다’ 등등의 말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한참 쏟아 놓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었구나’ 결코 해서는 안됐고 할 필요가 없는 말을 쏟아내고 있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다보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리석게도 폭력적인 방법을 쓸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또는 부모님이 휘두르던 ‘사랑의 매’가 그런 것입니다. 좋은 뜻을 이루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사랑이 아니라 폭력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또는 제자들이 매를 맞고 변화하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폭력에 눌려진 결과이니 말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스스로의 내적결단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왜 이런 실수를 했고, 한편 왜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되었는지를 반성하며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저의 완벽주의적 성향에 따른 문제가 아닐까 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못견뎌하고 그것을 그쪽으로 이끌기 위해 일종에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그것이 저의 신앙과 믿음의 문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니의 자리에 앉았던 것은 하나님보다 저를 더 믿고 의지한 결과이고 하나님이 이루실 일들에 관한 믿음이 부족한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 1. 믿음에는 소망이 필요합니다. >
곰곰히 생각해보니 믿음은 소망을 가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장 1절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현실의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이 그런 일임을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보이지 않은 이른바 영적인 세계를 갈망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며 우리가 가진 소망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결코 맹목적으로 환각이나 환상 같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닙니다. 마치 그것은 콩나무 시루에 물을 주는 것 같고,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콩나무 시루에 물은 다 빠져나가고 과연 콩나물이 자랄까 의심스럽지만, 나중에보면 콩나물은 쑥쑥 자라나 있습니다. 딱딱한 씨앗은 움트고 열매맺게 될지 의심스럽지만, 적절한 토양에 심겨지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튀우며 열매 맺기에 이릅니다. 그것을 키워내는 것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서 그것이 자라고 변화할 것이라는 긍적적인 소망에 따른 기대 말입니다. 의심이 들어서 땅을 파서 씨앗을 확인하고 콩나물 시루의 구멍을 막아버리면, 씨앗은 자라지 못하고 콩나물은 썩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니 자라고 변화할 것을 기대하는 소망과 그에 따른 믿음이 결국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 2. 주님께만 소망을 두십시오. >
제가 참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긍정의 힘, 하면 된다’ 이 모든 것은 너무 무책임하고 잔인한 말로 들릴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말들은 종종 우리의 궁핍하고 곤고한 삶이 우리의 노력의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믿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노력을 안 했기 때문에 가난한 것입니까? 부자는 노력을 많이 해서 부자가 된 것입니까?
이렇게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포츠 선수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요즘은 손흥민이라는 축구선수가 있겠네요. 그가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세간에 알려진대로 그가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철저한 트레이닝을 받았기 때문인가요? 물론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다른 축구선수들은 노력을 안해서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지 못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적어도 축구로 먹고 살겠다고 프로선수가 된 선수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 일에 매진해 왔습니다.
단지 손흥민이 타고난 체격과 그에 덧붙여진 노력이 그를 세계적인 선수로 만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요. 가난한 사람들이 노력을 안 했기 때문에만 가난해진 것은 아닙니다. 노력했음에도 부자가 되기 어려운 세상이고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래도 자수성가한 사람이 있지 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 분들은 몸소 경험하셔서 더 잘 알 것입니다. 오늘 내 삶이 내 노력의 결과인가요?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분명 우리 성도 분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오셨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면 된다는 식의 말을 믿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해도 안되는 것이 많은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운 빠지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굉장한 소망의 말씀을 줍니다. 사실은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이기도 합니다. 시편 39편 7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습니다.
시편 39:7(구약 830쪽)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인은 주님께 소망을 둔다고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다른 것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께만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주님 한 분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소망이 됨을 믿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노력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곤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하면 된다’는 얘기는 사실은 성실히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일지도 모릅니다. 실패를 모르는 미성숙한 사람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살아봐서 알지만 해도 안 되는 일이 분명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부터 저의 신앙과 믿음에 관해서 돌아보았습니다. 앞서 말슴드렸듯이 저는 하나님보다 저의 생각과 판단과 경험을 더 믿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결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계속 어리석게도 저는 저의 힘으로 무언가를 바꾸려하면서 이른바 폭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얘기라고 하지만 사실은 상대를 무시하고 공격하는 폭력일 따름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제가 신앙과 믿음으로 상대를 대했다면, 변화를 이룩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믿고 그것을 인정하며 상대를 대해야 했을 것입니다.
마치 이런 것이죠. 콩나물 시루에서 콩나물이 자라고 딱딱한 씨앗에서 새싹이 돋아나 더 많은 열매가 맺힐 것을 믿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제가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실 것을 기대하고 소망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조건 잘 될 거야 긍정의 힘 따위의 얘기가 아닙니다. 내 생각과 내 방식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기대하면서 나는 그 믿음에 따라 오늘을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나는 그를 사랑으로 대하고 하나님께 온전한 소망을 두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건데 오늘 우리의 믿음이 주님의 대한 소망으로 가득차길 바랍니다. 내가 변화시키지 않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믿음에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확실한 변화를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 믿음 안에서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대하십시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함으로 소망 가운데 사랑으로 그들을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분명 놀랍게 역사하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소망하며 오늘도 살아내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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