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박탈감을 넘어서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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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73:17(구약 855쪽)
Psalm 73:17 NKRV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 자신의 처지가 열등하다고 느끼는 감정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우리는 대체로 열심히 일해서 먹고사는 것이죠. 반면에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것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더 나아가서 열심히 일한 우리 보다 잘먹고 잘사는 이들이 세상에 있죠. 흔히 재벌2세라고 또는 금수저라고 불리는 이들 말입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손해를 끼친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 우리의 처지를 비교할 때, 우리는 큰 상실감을 느끼고 패배감을 느낍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도 종종 나타납니다. 악인들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이 우리에게 그와 같은 마음을 줍니다. 오늘 시편 73편을 기록한 이도 그러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음을 봅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결한 삶을 살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의 삶은 위태로운데 비해 그 반대편에 있는 악인들의 삶은 형통해 보입니다. 오죽하면 이것이 질투가 날 지경에 이릅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차라리 시험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계속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어떻게 시인은 자신에게 찾아온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설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 1.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
어쩌면 과거보다 오늘날 상대적 박탈감이 더 심한 것은 아닐까 합니다. 왜냐하면 상대적 박탈감은 결국 비교를 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크면 클수록 강하게 느껴지는 것인데요. 오늘날 빈부의 격차는 과거보다 더욱더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들었던 얘기로는 세계 1%의 부자가 전체 부의 약 50%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백개의 떡을 100명 중 1명이 50개를 가지고 나머지 50개를 99명이 나눠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떡으로 비유해서 그렇지 집으로 비유하면 또 돈으로 바꾸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겨우 1개의 떡을 가진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수두룩 할 텐데,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50개의 떡을 가질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노력을 한다고 해도 과연 이른바 재벌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격차를 생각하다보면, 미래가 우울해지고 그다지 행복하거나 희망차게 전망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적 박탈감의 더 근본적인 원인은 아마도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의 가치에 너무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깐 내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내가 비교하는 대상보다 어떤 눈에 보이는 물질을 많이 가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것은 결국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로 여기는 생각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달리 보자면 반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 성도 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많은 돈을 벌고 많은 땅을 소유하고 여러 많은 물질을 소유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구지 신앙생활을 또는 하나님을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과 믿음은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중요하고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2. 신앙생활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습니다. >
저는 신앙생활이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짚어볼까요? 하나님은 보이는 분입니까? 물론 성육신하셔서 이 땅 가운데 성자 예수님으로 임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장에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음을 시인하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보이는 것입니까? 혹시 여기 계신 분 중에 믿음을 보실 수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제 믿음은 어떤 것 같습니까? 또 스스로의 믿음은 어떻게 생겼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이렇게 신앙의 중요한 요소인 ‘하나님’ 그것의 형태인 ‘믿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숨을 쉬기 위해서는 공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공기를 도구를 이용해서 측정할 수는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종류의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대체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고대 사람들은 심장에 있다고 믿었고 현대 과학자들은 뇌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사실 마음은 정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이 분명 있습니다. 또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것은 또는 그것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입니다. 더욱이 신앙은 보이는 것 너머의 것으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도 안 믿고 신앙생활을 안 한다면 모를까 신앙생활을 한다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고 특별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으로부터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 3. 신앙은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서게 합니다. >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시편 73편 17절(구약 855쪽)입니다.
시편 73:17(구약 855쪽)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앞서 말했듯이 시인은 악인들의 형통함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낍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노력하였으나 시련과 고난을 겪어야 했는데, 오히려 악인들은 더 승승장구 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성소에 들어가서 다시 말하면, 예배의 자리로 또는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벗어납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악인들의 종말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은 언젠가 멸망할 것이고 그들의 미래는 현재와 같이 결코 밝고 희망차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앙이 또는 신앙생활이 주는 유익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넘어서게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우리의 판단기준 또는 가치의 기준을 바꿔놓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눈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물질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장 궁극의 것이 아닙니다. 분명 우리는 그것 너머의 세계와 존재를 믿고 있으며 그러한 가치가 물질 너머의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더욱이 물질의 종말을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에 물질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모두 죽는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 물질도 언젠가는 다 썩어져 버릴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우리의 인생에 비해 그 기간이 훨씬 더 길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깨달음이 가치의 변화를 가져오고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서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비교의 대상으로 가치의 대상으로 삼아왔던 것이 더 이상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언젠가 모두 사라지고 종말의 때를 맞이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4. 신앙생활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
저는 이런 점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넘어서지 못하고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현실의 상황들에 좌절하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을 참으로 불행하게 만들고 우리에게 어떤 굴레를 씌웁니다. 변화와 개선의 여지가 없는 인생의 굴레는 우리의 삶을 어둡게 하고 인생을 무가지하게 또는 무의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계속적인 비교에 노출이 되는 어떤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벌이거나 비극적인 결말에 치닫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굴레를 끈어버리고 그로부터 벗어날 길을 신앙이 또는 신앙생활이 제공해줍니다. 세상의 기준과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기준 아래 우리는 세상과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게 됩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일해서 돈 많이 벌고 많은 것들을 획득하자는 삶이 열심히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전혀 새롭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의 삶을 불편하게 하고 고난에 처하게 만드는 것 같은 순간들이 있지만, 정말 무엇이 우리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인지를 종말의 때를 깨닫고 나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그것만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신앙생활은 그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고 진정으로 우리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더해주는 것은 세상의 길이 아니라 신앙의 길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더 좋게 더 가치 있고 의미있게 바꾸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데,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구원과 가치를 이루는 우리 성도 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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