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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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74:2(구약 855쪽)
Psalm 74:2 NKRV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쯤입니다. 당시에는 군대를 다녀오고 다시 대학교 3학년으로 복학하여 학교를 다닐 때였습니다. 해서 토요일과 주일만 일을 하는 이른바 파트타임 사역을 하게됐습니다. 그래도 교회에서 배려를 해주셔서, 교회에 있던 사택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에 저는 월에 50만원 정도의 사례를 받았는데, 당시로써는 보통 파트타임 전도사님들이 받는 사례의 평균에 해당하는 정도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사실상 남는 돈이 거의 없는 생활이었고 혼자 생활하기 모자라지 않은 정도였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 입학하기까지 대략 2년정도의 시간을 거기서 보냈습니다. 경제적인 아쉬움은 있었지만, 첫 사역지였던 만큼 그곳에서의 활동이 제게는 의미있는 또는 가치있는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아마 그로부터 약 5년 정도의 시간이 경과한 무렵입니다. 그 무렵에 저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당시 있던 교회는 세 번째로 사역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좀 뜻밖의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그 당시에 신학교에 입학한 대학생들이 교회에서 봉사하기를 꺼려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를 선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에서 신학생들에게 주는 사례가 아르바이트하는 월급보다 작아서 차라리 교회보다 밖에서 일하기를 선호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있던 교회도 당시 신학교 1학년생에게 교회에서 일을 하도록 하고 제가 알기론 30만원 혹은 50만원의 사례를 책정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그 친구는 저처럼 파트타임 사역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수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미 5년전에 받았던 사례 혹은 그보다 적은 사례를 받으며 교회에 봉사하는 상황을 보면서 왜 신학생들이 교회에 머물러 봉사하지 않으려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변화하는데 교회는 정체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그랬습니다. 자기 동기들은 혹은 선배들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교회에서 일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요사이 교회에는 이른바 부교역자들이 귀해졌습니다. 우리 교회도 전도사님을 청빙하기까지 대략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본격적으로 부교역자 청빙한 시기로보아도 1년이 넘는 시간입니다. 그러다보니 부교역자들의 처우가 과거보다는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우리교회만 보아도 저와 전도사님의 사례가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근에 있는 큰 교회에는 사례뿐만 아니라 장학금까지 줍니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전액장학금을 지급해달라는 요청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해서 교회에 머물지 말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그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너무 지나친 요구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저는 교회가 할 수 있다면, 교역자들이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면에서도 잘 지원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저는 불현듯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사역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그것의 많고 적음이 사역의 우선순위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하나님이 아닌 돈을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역이 개인의 출세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듭니다.
아마도 과거의 세대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높은 지식을 소유한 지금의 세대가 과거보다 더 신실하지 못하다는 것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저를 돌아봅니다. 어쩌면 저역시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과거에 50만원 받고 통장의 잔고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문제라 여기지 않고 사역해 왔는데, 어느 순간 정기적으로 납부하고 또 유지해야할 비용들이 늘어날수록 통장의 잔고에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것이 과거처럼 더 이상 아무렇지 것이 아니게 된 마음이 참 서글프게 다가옵니다. 결국 저도 생계형 목사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그러면서 저와는 다르게 살았던 위인들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가 잘아는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는 자신의 영달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당시 일제식민지배에 처한 나라의 현실에 온 몸을 바쳐 살아왔던 사람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물론 그들이 그만큼 훌륭한 인물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한편으로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리만을 위한 삶을 넘어서 살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언젠가부터 세상에는 ‘각자도생’ 곧 ‘각자 스스로 제 살길을 찾는다’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합니다. 더이상 다른 누군가를 돌아보거나 돌볼 여유가 없고 자신을 위해 살기에도 바쁜 삶이 우리내 삶의 되어 버렸다는 것이지요. 참 비극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러한 영향이 신학생들에게도 미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왜 금전적인 것에 목을 매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각자도생하여 살아남아야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참 뼈아픈 현실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그것과는 다른 길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도 각자도생과는 다른 삶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시의 배경이 그렇습니다. 기원전 587년 이스라엘은 바벨론제국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신성시 여겼던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가 됩니다. 그 상황 속에서 시인은 이러한 현실에 가슴아파하며 이 시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고난에 침묵하지 마시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인은 나라의 존망을 걱정하며 시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각자도생이 삶을 살아가는 오늘의 현대인에게 이 시는 와닿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나라가 망해도 나만 잘살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불행하게도 국가의 수장이라고 불릴만한 대통령에게서 보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군다가 앞서 말한 신학생들의 이야기가 오늘 이 시대의 신학생들의 모습이라면 나라의 존폐를 넘어서 신앙의 존폐까지 걱정이 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떻게 해야 좀더 신앙인답게 또 삶을 나만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좀더 넓어진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저는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을 통해서 그 길을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인데요. 시편 74편 2절입니다.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74:2(구약 855쪽)
2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시인은 하나님께 구하기를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을 기억해달라고 청합니다. 왤까요? 오늘의 우리가 하나님을 통해 존재하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으로부터 구해주시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말해보자면요. 우리는 나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현재의 나로 이룩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과거를 통해서 오늘의 현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잘나서 지금 이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나를 만드시고 지으신 분을 통하여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주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 삶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과거를 기억함으로 통해 오늘의 나를 발견하는 일이 참 중요함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말이 있잖습니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저는 여기서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할 것은 이 역사를 이루시고 이 역사를 완성하실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에 관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오늘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에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그것 너머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하는 것이지요. 궁극적으로 이 역사는 이루신 분을 통해 완성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우리의 삶에 집중하기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 이루신 역사와 이루실 역사를 집중해야하는 것이지요.
저는 신앙인으로서의 삶은 각자도생의 삶은 아니라고 봅니다. 진정 신앙인이라면 우리는 스스로를 믿고 의지하기 보다 하나님을 더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오늘 현실의 답답함고 괴로운 상황에 머물지 않고 과거부터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고요. 그렇게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삶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길 것을 믿고 기대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 믿음 안에 살아간다면요.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을 쫓는 것에 힘을 쏟기보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그 일을 이루기에 힘쓰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라건데 오늘 우리가 우리의 삶의 먹고사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우리의 삶을 더 넓혀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바라보고 이루실 일들을 기대함으로 하나님을 따라 살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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