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하나님은 엘리야, 오바댜 모두를 쓰신다(왕상1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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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0월 18일 수요일 새벽
1.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3. 성경봉독 : 열왕기상 18장 1-15절
4. 말씀선포
1. 한 마음, 한 뜻으로 세우는 교회
1) 나의 작음이, 나의 조심스러움이 다른 이들의 능함과 큼이라
20살이 되어서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패기도 있었고 열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과 그 때를 비교하면, 능력이나 기술은 지금이 더 우위에 있을지 몰라도, 그때의 패기와 열정이 그립습니다.
그런데, 그리움뿐 아니라 이젠 두렵기도 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시기를 크게 그리워하게 될까. 점점 더 작아지고 조심스러워지는 이 과정이 여전히 더 남았다 생각하니 두렵기도 합니다.
물론 일부는 ‘지킬 것이 많아지면 조심스러워진다.’고 말들하지만, 또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지만, 이를 깨지 못하고 계속 조심스러워 해야 하는 현실에 아쉬움도 남습니다.
그런데 요즘들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런 아쉬움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하나님은 모두에게 같은 아쉬움 거리를 주시지 않으셨다.” 라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교회 공동체 안에 제가 ‘작다’ 평가했던 영역에 있어, 능한 분들이 계시고, 제가 ‘조심스러워’ 했던 영역에 있어 담대한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한 마음, 한 뜻으로 교회를 이뤄가니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보여집니다.
2. 엘리야와 오바댜를 통해 은혜를 누리다
1) 하나님은 엘리야와 오바댜 모두를 쓰신다
오늘 본문은 엘리야와 오바댜의 이야기 입니다. 저번 주 우리가 들었듯, 엘리야와 오바댜는 다른 성향을 지녔습니다. 엘리야, 그는 오바댜를 만나자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까탈스러워 보이고 상당히 멸시하는 태도가 느껴집니다. 오바댜가 엘리야를 향해 “내 주 엘리야여” 라 부르지만, 엘리야는 오바댜를 향해 “네 주에게 말하기를” 이라며, ‘내가 왜 너의 주인이냐, 너는 너 주인에게 말하라’ 라는 겁니다. 엘리야가 생각하는 오바댜의 주인이 누굽니까? 바로 아합 왕 인거죠.
서로의 첫 만남부터 이들은 잘못된 관계가 형성되어집니다. 오해 아닌 오해가 이 둘 사이에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부정적 분위기를 감지한 오바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12절과 13절입니다.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영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말하였다가 그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는 자신의 위치가 비록 아합 왕 옆일지라도 자신은 어려서부터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 그는 선지자 백명에게 떡과 물을 먹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엘리야 또 오바댜 누구를 위해 일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위한 열심 아니었습니까? 세상에는 엘리야처럼 전방에 서서 전진해 가는 성도가 있고, 또 오바댜처럼 후방에서 묵묵히 하나님을 위해 주어진 일들을 감당해 내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성도님들이 함께 마음 모아 소그룹을, 또 이 교회를 세워가는 것 아닙니까? 교회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창조된 이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하나의 목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며 나아오는 곳입니다. 교회는 그런 곳입니다. 서로 다르나, 그 안에서 하나 되어 가는 곳.
내가 엘리야이기 때문에, 오바댜를 책망할 수 없고, 내가 오바댜이기 때문에 엘리야를 나무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12명의 제자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베드로나 야고보처럼 열정적으로 나아가는 자들이 있는 방면, 또 요한이나 안드레처럼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섬기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저희 교역자들도 다 너무나 다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강점을 떠올려보면 그 강점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비교하며 작아지기도 하지만, 또 오늘 말씀을 보며 제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모양대로 하나를 이루시는데, 이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또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다 불러주셔 이 자리 가운데 함께 모인 우리 성도님들. 우리 성도님들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보며 힘차게 걸어가시는 하루이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사람을 기뻐 쓰시는 은혜를 오늘 하루 맛 보길 원합니다.
2)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담대히 믿으라
또 오늘 본문을 보며 나눌 두 번째 은혜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담대히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릿 시냇가에 엘리야가 있을 때,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가 됩니다. 그래서 기근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아합은 3년의 기근에도 그의 완악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엘리야를 탓하며 그를 죽이려 합니다. 또 이세벨이 예언자들을 학살하는 것도 방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저히 듣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엘리야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이렇게 결단합니다. 15절입니다. “엘리야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 아합에게 보이리라”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담대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어 선포했습니다. 저는 이 엘리야의 담대한 선포가 저와 우리 성도님들에게 도전되길 원합니다. 오늘 내게 맡겨진 하루, 나와 함께 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담대히 선포하는 하루요 행진해 가시는 하루이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 이 새벽을 깨어 나아오게 하신 하나님 앞에 먼저는 감사로 시작하는 하루이길 원합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어, 말씀에 근거한 담대한 선포가 힘입어 선포되기를, 또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의 다름을 수용하고 또 그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시며 도전해보시는 저와 여러분들의 하루요 이 새벽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4. 기도제목
1) 말씀을 가지고
- 나와 다른 이들을 수용하며 품어 나아가는 하루 되게 하소서. 그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 나와 함께 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그 분의 능력 앞에 겸손함으로 엎드리되, 힘 입어 담대히 행진하는 우리의 하루 되게 하소서
2) 삶을 위해서, 그리고 각자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 우리의 한 영혼을 사랑으로 품게 하소서. 그들을 위해 마음 열어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