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7 양청] 89-90문

소요리문답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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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난 시간까지 살펴봤던 것은, 모든 죄인들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택자들에게 죄의 진노와 저주를 피할 수 있도록 회개와 믿음, 그리고 은혜의 외적 수단들을 주셨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는 그 외적 수단으로 말씀, 성례, 기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봤다. 오늘은 특별히 그 중에서도 말씀에 대해서 제일 먼저 살펴볼 것이다.
89문. 말씀은 어떻게 구원에 효력이 됩니까?
답. 하나님의 영은 믿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말씀을 읽는 것, 특히 말씀의 선포를 죄인을 확신시키고 변화시키며 거룩과 평안 가운데 그들을 세워가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게 하십니다.
90문. 말씀이 구원에 효과적이 되도록 말씀은 어떻게 읽히고 들려져야만 합니까?
답. 말씀이 구원에 효과적이 되도록 우리는 부지런함과 기도로 말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믿음과 사랑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며, 우리 마음에 말씀을 간직해야 하고, 우리의 삶에서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살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은혜의 수단으로 이것들을 우리에게 주시기는 했는데, 그것들이 기계적으로 그냥 은혜를 주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냥 말씀을 읽으면, 또한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의 자리에 앉았다 가기만 하면, 항상 은혜를 자동으로 받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은혜의 수단으로 말씀을 주셨지만 그 말씀이 진정 우리에게 은혜를 주는 수단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내가 어떻게 읽고 어떻게 들어야 하느냐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이에 대해 90문에서는 우리가 부지런함과 기도로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고, 믿음과 사랑으로 말씀을 받아야 하며,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 이 은혜의 수단으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 성경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성경이다. 이 성경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은혜의 수단으로서 은혜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 먼저 여러분 교재의 1번을 보시면 성령님의 역할이 있다고 한다. 성령님께서는 말씀을 읽는 것, 특히 말씀의 선포를 효과적인 수단이 되게 하신다. 말씀을 읽는 것은 교회 전통 가운데 크게 두 가지로 이해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통상적으로 큐티를 하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말씀을 읽는 것이 있겠고, 둘째는 소그룹이든지 교회 전체이든지 함께 모여서 말씀을 읽는 것이 있겠다. 교회역사적으로는 두번째인 함께 성경을 읽는 것이 매우 강조되기도 했다.
오늘날은 그 전통이 대부분 사라졌으나 20-30년전만 하더라도 한국교회 가운데 예배 시간에 말씀을 읽는 순서가 보통 있었다. 설교본문과 상관없는 본문을 회중과 목사가 번갈아가며 읽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교독문이라고 해서 오늘날 찬송가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데, 교회는 함께 공적으로 성경을 읽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오늘날 이 전통이 거의 사라진 이유는 예배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그냥 예배시간을 한 2시간 정도 하면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 주일 1부, 2부, 3부, 제가 예전에 대구에 있던 교회는 주일5부예배까지 있었다. 주차장과 예배공간은 한정적이라서 빠르게 사람들이 빠져줘야 다음 예배가 준비된다. 그러다보니 예배시간을 조정해야 했고, 귀한 전통들이더라도 빼야만 했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 말씀을 읽는 것과 선포되는 말씀을 들을 때이다. 여기에는 그림이나 삽화가 있나? 없나? 물론 요즘에 아이들 용으로 그림이 들어간 성경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언어”라는 수단을 사용하셨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언어를 주셨고, 또한 언어로 자신을 우리에게 설명하셨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데, 언어보다 정확한 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대부분 무얼 활용하는가? 시각적인 자료이다. 그래서 유튜브나 틱톡을 활용하고, 1분 짜리 쇼츠 영상으로 설교 인트로를 구상하거나, 1분 메세지로 설교를 축약해서 올리는 교회들도 있다더라. 물론 이런 영상매체를 활용한다면 그것을 접하는 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정확하게 메세지를 전달해주는 것은 아니더라. 영화도 그렇지 않나? 오픈결말의 영화들이 있다. 각자 본 바대로 알아서 결론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같은 작품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각자 결론이 다르다. 같은 작품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각자 얻은 교훈이 다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약에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을 이처럼 유튜브를 통해 주셨다고 한다면, 쇼츠 영상을 통해 주셨다고 한다면, 우리는 진리를 명확하게 발견할 수도 없고, 정확하게 받아드릴 수도 없으며, 그러다보니 진리 가운데 거하는 것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설명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식을 사용하신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은혜를 받는다고 할 때 그 말씀을 하나님은 언어로 표현하셨다는 것이다. 이미지나 영상이 아니라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언어이기 때문에 이를 우리가 듣거나 읽을 때 은혜가 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려던 그 당시, 독일에서도 언제나 미사는 라틴어 성경으로만 진행이 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라틴어가 거의 성경의 원어마냥 권위가 높아졌는데, 히브리어나 헬라어보다 로마 바티칸의 교황이 사용하는 라틴어를 더 뛰어난 언어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세 시대에 라틴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라틴어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문맹률도 높던 시절이어서 자기 모국어조차 제대로 읽거나 쓸 줄 모르는 사람들 태반인데, 남의 나라 말을 알아들을 사람이 어디 많았겠는가?
독일에서 마르틴 루터역시 비슷한 고민에 빠졌다. 독일사람들은 독일말을 쓰며 사는데 모든 미사가 라틴어로 진행이 되니 회중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질 못하고, 신부들조차도 라틴어를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니까 은혜를 받을 래야 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종교 개혁의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했을까? 바로 모국어로 된 성경을 가지고 모국어로 드리는 예배였다. 그래서 루터는 가장 먼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직접 자기가 사용하는 독일어로 번역하였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 번역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느헤미야 8 장을 찾아보자. 구약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느헤미야 8장은 수문 앞 광장에서 일어난 큰 구약 역사의 부흥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느헤미야 8:7–9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해 주었고, 그 뜻을 해석을 해서 백성에게 깨닫게 해줬다. 그런데 백성들에게 어떤 반응이 일어났는가? 그들이 울고 자복하고 회개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성령께서 들리는 그 말씀, 선포되는 그 말씀을 마음 가운데 깨닫게 하시니까. 이것은 단지 몰랐던 것을 배우는 차원에서의 지적 깨달음이 아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역사는 지금 들리는 그 말씀이 내 삶을 바꾸어 낼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말씀이 우리에게 효과적인 수단이 되게 하시는데 히브리서 4:12–13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이 말씀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으며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한다. 또한 그 말씀 앞에서 우리는 벌거벗은 자처럼 드러나게 될 것이라 말씀한다. 그런데 이것이 말씀을 듣기만 하면, 말씀을 읽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가? 천만에.
성령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실 때에만 우리가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성령께서 내게 죄를 지적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은혜를 주실 때 우리에게 변화가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가 성경을 듣거나 읽을 때 은혜의 효과적인 수단이 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라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여러분, 말씀을 읽는 자에게 악한 영이 역사할 수 있을까? 당연히 있다. 악한 영이 역사하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비판적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좋은 쪽으로 악용한다. 그렇기에 성령님께 은혜를 구해야 하는 것이 이토록 중요하다. 말씀을 들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설교 시작할 때 막 허겁지겁 뛰어 들어오시면 설교를 제대로 들을 수 있겠는가? 몸은 예배의 자리에 와서 앉아있지만 마음은 세상에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들에 가 있는다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제대로 들리기는 하겠는가? 몸은 예배의 자리에 와 있지만 새벽까지 신나게 게임하고 친구들과 놀다가 예배의 자리에 왔다면 그 맹한 컨디션으로 말씀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예배 전에 미리 와서 하나님 말씀을 기다리며,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해 주십시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나?
그 다음 교재 2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어떤 효과적인 수단을 일으키시는가에 대해 설명하는데, 말씀이 죄인을 확신시키고 변화시키며 세우는 수단으로 사용하신다 한다. 믿음이 발생하는 것도, 믿음이 증가하는 것도 말씀을 통해서 하시는 일이다. A번에 1번을 보라. 함께 읽어보자. “믿음의 은혜는 성령님의 역사로 말씀에 의해 주어지고 믿음의 증가와 강화 역시 성령님의 역사로서 말씀과 성례와 기도로 이루어진다" 로마서 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주신다는 말이다. 또한 믿음이 증가되고 강화되는 것도 말씀을 통해서 성례를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말씀 앞에 마음에 숨은 일들이 드러나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된다고 했다. 고린도전서 14:24–25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고린도전서 14장에 방언과 예언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중에 “예언을 하면 이러이러한 일들이 일어난다" 라고 말씀한다.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된 은사이다. 마치 무당이나 타로 등을 통해서 미래를 예언하는 이런게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은사로서 설교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마음 속에 숨겨진 우리의 죄를 드러나게 하시고, 이런 일들을 통해서 믿지 않는 자들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다.
셋째로,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디모데후서 3:15–17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영감으로, 성령께서 쓰신 것일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통해서 네 가지 기능을 한다. 어떤 기능인가? 교훈, 책망, 바르게함, 의로 교육함.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떠난 신앙생활은 존재하지 않는다.
2번의 B를 보면, 믿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한다 했다. 이것은 전도의 효과를 말하는데, 전도를 하는 것은 분명히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 말씀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바울이 말씀했던 것처럼, 복음이 선포될 때 내가 전도를 하지만 하나님이 내 말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분명 복음전파는 사람이 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입을 통해서 대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로마서 10:13–17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누군가의 복음전함을 듣고 하나님을 영접했던 것처럼, 지금도 주변에 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여러분들의 전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전하지 않으면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전도해야 하는가? “우리 교회 규모가 커, 우리 교회 청년부 예쁜 애들 많아, 우리 교회 예배당 시설 괜찮아” 이런 걸로 전도해야 하는가? 로마서 1: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오직 복음만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다. 전도는 다른 애매모호한 무언가를 전하는게 아니라 당신을 위해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곧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 복음에는 능력이 있다 했다. 여러분, 전도대상자로 마음에 품고 있는 분이 있는가? 다른거 전할 필요없다. 복음만 전하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복음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은혜주시는 방편이라 했는데, 이 말씀을 내가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는데, 이 말씀을 어떻게 읽고 들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 교재 3번과 4번에 정리를 해두었는데, 먼저 3번의 A를 보라. 말씀을 부지런함과 준비함과 기도로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라 했다. 매일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는 것 너무너무너무너무 중요하다. 그래서 성경은 은을 구하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구하라고 했다. 은을 구한다는 얘기는 무슨 뜻이겠나? 돈을 버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구하라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의 방편으로 사용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기에 우리는 말씀을 읽거나 묵상하거나 듣는 자리에서 늘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시편 119:18 를 찾아보자.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시편기자의 간구처럼, “하나님께서 말씀을 읽을 때, 그리고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영의 눈과 귀를 열어주셔서 하나님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읽고 듣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말씀을 읽고 들어야 한다.
그다음 B를 보면, 믿음과 사랑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며 우리의 마음의 말씀을 간직하라고 했다. 말씀을 들을 때 믿음으로 들어야 한다. 히브리서 4:2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듣는 자가 믿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씀한다.
또한 진리를 사랑하는 자, 진리를 사모하는 자가 은혜를 받는다 했다. 요한서신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이 신자의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 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표현하지 않는가? 함께 읽어볼 살후2:10 의 배경이 이렇다. 데살로니가후서 2:10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기적과 체험과 신비한 은사들을 사랑하는 자들은 은혜를 받지 못한다. 절대로 은혜를 눌리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늘상 미혹을 당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C번, 우리의 삶에서 선포된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마7:15-27 에서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셨다. 행함이 없는 말씀듣기는 사상누각, 곧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금새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재 5번을 보면, 말씀을 잘 읽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밥을 매일 먹듯이 말씀도 매일 먹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여러분이 하시는 큐티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큐티 자신이 없거든 새벽기도회라도 나오라. 못나오시거든 교회 유튜브를 통해 들으라. 오전까지는 파일을 저장해 두고 있으니 그렇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하나님 말씀이 매일 잔존하는 죄성을 죽인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께서 내 안에 있는 것을 드러내신다. 따라서 회개는 말씀을 통해 이뤄진다. 점점 더 거룩한 삶을 살길 바라는가? 말씀을 가까이 하라.
세 번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는 일반적인 방법은 예배의 설교를 잘 경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기계적으로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했다. 예배자의 준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기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말씀을 잘 받기 위해서 여러분이 예배 전에 기도해야 하는데, 여러분 자신이 은혜를 받을 것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특별히 말씀을 맡은 자, 목사를 위해서도 기도하셔야 한다.
베뢰아 사람들은 사도바울의 설교를 들으면서, 이 말씀이 정말 성경에 있는 말씀인지를, 그들은 성경을 상고했다고 했다.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저 설교가 복음에 합당한 설교인가를 여러분 분별하며 들어야 한다. 강대상 위에 선 목사의 말이라고 100% 진리겠거니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된 예배자의 모습이다. 바른 청중이 바른 설교자를 만든다 했다. 여러분이 설교를 들으면서 정말 저 말씀이 복음의 말씀인지를 상고해야 한다. 이것이 저는 분별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선포된 말씀이 성경의 복음을 다루는 말씀이라면, 선포된 말씀을 여러분이 되새기는 것, 이게 바로 묵상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님이 통치 방법을 가르치실 때 율법을 네 옆에 두라고 했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이스라엘의 왕들도 그러했고, 지금 세상의 위정자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만 곁에 두었다면 그 사람이 다스리는 나라는 망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처럼 우리를 정직하게 만들고,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우리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 어디에 있겠나? 우리가 우리 죄성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그 교만함에 치닫게 되는 일들을 막아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율법책을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거리가 생기는 만큼 타락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통제가 없다면,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지시하시지 않는다면,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함이 없다면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지는 분명한 것이다. 다시금 강조한다. 하나님 말씀과 여러분의 개인의 삶,여러분의 마음의 거리가 어떤지, 말씀과 나의 거리, 바로 이것이 지금 여러분의 영적 상황이다. 이를 놓치지 말라.
적용이다. 말씀이 있는 자리에 여러분이 늘 머물도록 부지런하라. 예배의 자리, 기도회의 자리, 말씀을 배울 수 있는 자리,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자리, 그 자리에 항상 여러분이 머물게 하라. 특별히 여러분들에게 권면하고 싶은 것은 말씀을 간직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귀를 여셔서 말씀이 들리게 하실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여러분의 마음에 새겨지는 그 말씀을 한 주간 붙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겠는가?
저는 설교노트를 추천하고 싶다. 설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목사님이 설교 중 드는 예화나 시시콜콜한 농담까지 모두 기록하라는 것이 아니다. 설교의 대지들, 설교의 핵심 주제들, 설교의 뼈대와 살들을 기록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기록한 내용들을 주중에 다시 꺼내 읽어보며, 그 설교를 묵상하며, 그것을 붙들고 주중에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말씀을 간직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전에 어떤 기독교 설문조사 기관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예배당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오늘 무슨 설교 들으셨어요? 그러면 설교 제목이 뭐예요? 설교 본문이 어디였어요? 그러면 정말 극소수만이 그걸 기억해서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만큼 말씀을 간직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분명히 내가 은혜를 받았는데 왜 은혜를 받았는지 모른다. 무슨 은혜를 받았는지 모른다. 간직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내가 깊이 묵상하면서 회개하게 되는 것, 굉장히 중요한 신앙의 훈련이다.
마지막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마친다. 이제 여러분들이 결혼을 하게 될 것이고, 장차 이사를 하게 됨에 따라 교회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놓일지도 모르는데, 여러분이 교회를 정하고, 또 남아있는 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지만, 말씀이 이끄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다. 결국 하나님 말씀이 천지를 창조했고, 하나님 말씀이 교회를 세워가며, 하나님 말씀이 은혜를 베푸신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 하나님 말씀밖에 믿을 게 없다. 말씀 외에 이상한 것들 믿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믿어야 하고, 그 믿는 말씀 앞에 여러분들이 가능한 여러분 자신들을 맞추라. 여러분의 생활을 말씀에 맞추라. 그래서 그 말씀을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는 하나님의 그 은혜를 놓치지 않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란다.
기도하자.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들에게 말씀을 통해 주시는 그 은혜 평생 누리게 하시고, 애독하게 하시고, 경청하게 하시고 그 말씀을 저희들에게 풍성하게 온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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