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

야곱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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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잔머리 2. 야곱과 얍복 3.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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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머리

우리는 오늘 야곱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부분 야곱에 대해 알고 계실텐데요, 여러분에게 야곱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아마도 예상하기로는 그렇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오랜시간 동안 야곱하면 사기꾼. 남을 속이는데 능한 사람 그리고 장자의 축복을 빼앗읏 사람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야곱이 뒤에 하나님을 만나 변화되었다는 이야기도 알고 있지만, 그 앞선 내용들이 너무 강렬해서,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나! 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에게 야곱은 나쁜 이미지가 되어 버린 것이죠.
야곱은 남을 속이는 것에 특출난 은사가 있었고, 자신의 위에 있는 사람의 뒷목을 잡아 당겨 넘어뜨리고 그 사람을 밟고 일어나는 것에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사람이에요.
우리 관점에서 야곱은 사실 넘사벽이죠. 남을 속이는데 있어 넘어설 수 없는 벽과 같은 존재이죠. 그런데 그가 더한 존재를 만난 적이 있어요. 야곱의 머리 꼭대기에 서서 그를 갖고 놀았던 사람. 바로 삼촌 라반이죠.
더한 사기꾼 라반의 밑에서 20년동안 고생하던 그가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어요. 20년간 사위이지만 거의 노예처럼 품삯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살아가던 그가 결국 삼촌을 이기고 많은 재산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죠.
장자의 축복이 이루어진 것처럼 가정을 이루었고, 많은 재물과 짐승들을 다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야곱의 마음에 걸리던 것이 하나 있었어요.
야곱의 형 에서였어요.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고 난 후 에서는 그를 죽이려했고, 그래서 야곱이 도망간거잖아요? 그리고 20년이 지났어요.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마음엔 에서가 부담으로 남아 있었어요.
왜냐하면 에서에게 야곱을 향한 분노의 마음이 남아 있었거든요.
(쉬고)
혹시 20년 전 사건이 기억 나시나요?
저는 20년 전에 중국으로 비전트립을 다녀왔었는데, 모든 일들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마냥 좋았던 것 같아요. 물론 가서 공안도 만나고, 16시간 차를 타고 가다가 타이어도 펑크가 나는 등 힘든 일들도 있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모든 것들이 다 미화 되어서 굉장히 좋은 기억들로 남아 있어요.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내어준지 20년이 지났어요. 20년이 지났으면 “그랬었지. 그 때는 참 화가 많이 났었는데, 이제는 나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고 또 나라를 이루어 왕이 되었으니 충분하다. 용서 해야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에서는 그러지 않았어요. 20년이 지났음에도 그 기억이 미화되지 않고, 여전히 분노만 남아 있었어요.
20년동안 형 에서는 어떻게 지냈을까요?
에서가 처음에는 삐뚤어져서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해요. 그런데 부모님이 진짜 극혐하는거에요. 이방 여인과 결혼했다는 것 때문에 정말 너무 싫어하니까 에서가 같은 민족이랑 한번 더 결혼을 해요.
결혼하는 대상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또 다른 아들이자 아버지의 배다른 형제 이스마엘의 딸이었어요.
이방 여인과 결혼해서 부모님이 싫어했으니까 이제 같은 민족과 결혼하면 부모님이 좋아할 줄 알았던 것이죠.
부모님이 자기를 돌아봐주고 잘했다! 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부모님이 또 싫어하는거에요. 아버지 이삭을 놀리고 괴롭히다 쫓겨난 이스마엘. 배다른 형제 이스마엘의 딸을 하필 에서가 데려온거에요.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은 이스마엘의 자녀를! 아니 동족이 그렇게 많은데 왜 하필이면 또 가서 이스마엘의 딸을 데려와서 결혼한건지 에서를 이해 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에서는 이렇게 계속 헛발질만 하며 살았어요.
부모님 눈에 들고 싶어서 발버둥은 치는데 그럴수록 관계만 더 악하되어 가는거에요. 부모님의 사랑은커녕 눈길조차 받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죠.
(쉬고)
사실 에서는 집 밖에서는 굉장히 인정받는 사람이었어요.
부모님에게나 천덕꾸러기 취급 받으며 무시당했지. 밖에서는 굉장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타고난 사냥꾼. 타고난 카리스마가 그에게 있었어요. 분가해서 나와서 거의 나라를 하나 세웠어요.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정말 굉장히 많았어요.
밖에서는 인정받고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데 집에만 오면 주눅이 드는거에요. 뭘 해도 부모님이 쳐다도 안 봐요.
이 상처의 분노를 풀어낼 대상이 필요했는데, 그 대상이 바로 야곱이었던거에요.
그래서 20년이 지났음에도 그 때의 기억들이 미화되지 않고 남아있었 던 것이죠. ‘내가 부모님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야곱 때문이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그에게 한 소식이 들려와요.
(쉬고)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에서는 너무 기뻤을거에요. 야곱에게 복수만 하면 자신을 눌러왔던 것에서 해방이 되는거잖아요. 그래서 에서는 자신을 짓누르는 그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발걸음을 재촉해요.
무려 400명이나 데리고 야곱의 고향 귀환을 맞이하러 나가요.
당시 고대 근동에 있었던 한 나라의 군대 숫자가 400명이었어요. 야곱의 귀향을 환영하기 위해 400명이나 되는 숫자가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전쟁을 치르겠다는 각오를 에서가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야곱은 진퇴양난이에요.
앞으로 나아가자니 400명의 군대가 기다리고 있고 뒤에는 자신에게 복수하려 하는 라반과 그의 아들들이 있어요.
지금까지 자신의 지혜와 생각을 의지하며 살아왔던 야곱이었어요. 어떤 상황에도 묘수를 생각해서 원하는 것을 다 이루고 빠져나왔던 미꾸라지 같았던 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요.
진짜 노답. 답이 없어요.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지금까지 자기 맘대로 원하던데로 다 이루어왔는데 이제는 진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거죠.
정말 답답했던 야곱은 모두가 자는 그 밤에 일어나 얍복강을 다시 건너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해요.
야곱이 얍복을 건넜어요. 야곱. 얍복 좀 비슷하지 않아요?
얍복이라는 이 이름은, 야곱이 이제부터 여기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를 보여주는 이름이에요. 얍복의 뜻은 ‘그가 씨름하다'거든요.
얍복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국경선이에요.
약속의 땅에서 이루어질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 은혜를 누리려면 하나님 앞에 너의 인생을 놓고 씨름해야 한다. 라는 것을 얍복이라는 단어 하나가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죠.
평생 남을 속이고 뒷목 움켜쥐고 잡아 당겨서 넘어뜨리고 밟고 일어서는 것에 익숙했던 야곱이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축복을 정말 받기 위해선 이 얍복에서 “모든 지난 행동들을 돌아보고 내려놓는 씨름을 해야 한다!” 라고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변화되는 삶을 살며 전진하기를 바란다면 이제 우리도 얍복 앞에서 씨름해야 해요.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내려놓고 아니 내던져야 해요. 그러한 치열함 없이는 내면의 변화를 경험할 수 없어요.
얍복에서의 야곱의 모습을 통해 나를 돌아보아야 해요.
야곱의 그 변화가 나에게도 있는지 살펴보세요. 나도 야곱처럼 하나님 앞에 나를 내던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세요.
(쉬고)
사실 야곱은 잔머리만 뛰어났던 것은 아니에요.
머리 회전 속도도 빠르지만 힘과 체력도 엄청나게 좋았던 사람이에요.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형의 뒤꿈치를 움켜쥐고 나왔어요.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무슨 힘이 있다고 형의 뒤꿈치를 잡고 나왔겠어요. 뒤꿈치에 손을 올린게 아니라 움켜쥐고 나왔어요. 떡잎부터 이미 남달랐어요.
야곱은 형처럼 사냥을 좋아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약하고 유약한 마마보이가 아니었어요.
형의 축복을 대신 받고 도망가서 삼촌 라반의 집에 갔을 때 먼저 우물가에 가서 정보를 얻다가 운명의 여자를 만났어요.
한 여자가 양들을 쫙 데리고 와서 물을 먹이려고 하는데, 그 여자를 보고 진짜 한눈에 뿅 가버렸어요. 그래서 야곱이 벌떡 일어나서 우물 위 뚜껑을 번쩍 들어서 치워요.
이 우물 뚜껑은 장정 3-4명은 달라붙어서 사방을 잡고 옮겨야 하는 무게에요. 그런데 야곱이 혼자 그걸 옮겨요.
태어날 때 형의 뒤꿈치를 잡을만큼 악력이 있었고 3-4명이 들어야 하는 우물 뚜껑을 혼자 옮길만큼 그는 강한 남자였어요.
그러니까 머리도 똑똑하고 잔머리도 엄청나고 힘과 체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무리들과 떨어져 얍복강을 도로 건너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이 상황을 해결할 전략을 짜기 시작해요. 머리 회전이 점점 빨라져요. 형에게 먼저 많은 가축 등으로 선물을 주는 전략도 짰어요.
자신의 재산을 형에게 주는 이 전략은 아주 좋아보였어요. 왜냐하면 형의 축복을 빼앗아갔으니까 많은 짐승을 주면 축복을 나눠주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럼 형이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라 생각할만큼 기가 막힌 전략이었어요.
형에게 주는 이 수많은 가축들의 의미는 “형 나 이제 부자가 되었어. 아버지가 주신 그 축복을 내가 받지 않아도 돼. 나 이렇게 돈 많아. 그 때 속여서 축복 받은 것 쏘리. 사과의 표시로 내 재산을 형에게 줄게. 나 축복 안 받아오 돼 형" 이라는거에요.
정말 많은 재산을 나눠주었으니 형이 당연히 받고 용서해줄거라 생각을 했어요.
여전히 자신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죠. 여전히 형을 띄엄띄엄 봤던 거에요.
에서가 이 선물을 받았을까요? 안받죠. 이런 것 필요 없어요.
에서도 가진 것이 많아요.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는데 이런 재산들 필요 없죠.
에서에게 필요한 것은 그에 가장 큰 소원과 목적은요 야곱이에요. 야곱을 끝장 내는게 목표에요.
야곱은 자신의 기준에서 기가 막힌 전략을 짰는데 실패했어요. 이제 그에게 남은 선택지가 없어요. 아무리 생각하고 묘안을 짜내도 뭐가 나오지 않아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 내몰렸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지식, 경험만을 의지하고 있어요.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도 내일이 보이지 않아요. 내일이 보장되지 않아요. 이제 이렇게 밤이 지나 해가 뜨면 끝이에요.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그 순간에도 그는 내일을 확실하게 보장 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을 찾지 않아요. 잘못된 답 속에서 생존해내려고 발버둥만 치고 있어요.
야곱의 이 모습은 어쩌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일지 몰라요. 우리의 삶에도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져요.
그 선택지들 중에 여러분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인가요?
정말 그 선택지들의 유일한 정답인 하나님을 가장 먼저 선택했나요?
아니면 수많은 오답을 찍어내다가 한번 하나님을 선택하지는 않았어요?
수많은 오답을 선택한 삶. 실패한 것 아니에요. 잘못한 것 아니에요. 그런 수많은 오답이 쌓이고 쌓여야 정답과 가까워지거든요.
지금 야곱은 수많은 오답 속에 정답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까지 왔어요.
그에겐 하나님이 남아 있어요. 하지만 그는 정답이신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아요.
24절. 홀로 남았더니. 홀로 그 자리에 남아있어요.
(쉬고)
지금 그의 머리에는 오직 “내일"밖에 없어요. 어떻게 해서든 “내일만 버텨보자"그 생각밖에 없어요. 내일 이후에 뭐가 어떻게 되던 중요한게 아니에요.
‘그냥 내일만.’ ‘내일 하루만'이라는 생각 속에 잠겨 있어요. 거기에 몰두하니까 하나님이라는 정답이 떠오르지 않는거에요.
그렇게 머리가 터질 것 같이 복잡한 야곱 앞에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요. 시비를 걸어요.
분명 나 혼자 홀로 여기 남아 있었는데 누군가 왔어요. 가뜩이나 지금 신경도 예민하고 머리도 터질 것 같은데 누가 시비를 걸어요.
(쉬고)
화가 나지 않았을까요?
야곱은 힘이 강한 사람이죠. 그 사람과 싸워서 빨리 정리하고 싶었을 거에요.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눈 앞에 이 사람이 아니잖아요. ‘내일'이잖아요.
‘내일을 살 전략'을 짜야 하는데 이 사람 때문에 짤 수가 없는거에요. 근데 더 열받는 것은 시비 턴 이 남자가 힘이 너무 쌘거에요. 자기랑 비슷한거에요. 금방 내다 꽂아버리고 쫓아버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닌거에요.
쉽게 이기기 힘들어요. 근데 또 짜증나는건 질 것 같지도 않아요. 승부욕이 강했던 야곱이에요. 쉽게 이기긴 힘든데 질 것 같지도 않으니까 포기를 못하는거에요. 점점 더 승질나는데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끝까지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던 야곱이에요.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답을 앞에 두고도 자기 힘으로 끝까지 씨름하던 그 야곱에게 치명타가 터져요.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힘을 주도록 지탱해주는 엉덩이 뼈를 얻어 맞은거에요. 싸우던 중에 우연히 맞은 것이 아니라요.
25절 말씀처럼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의도하고 내려 친거에요. 의도하고 내려 친 그 부위에 치명타가 터지면서 야곱이 고꾸라져요.
이 사람이 마치 지금까지 봐주면서 힘 겨루기를 했던 것처럼 그 부위를 정확히 노려서 쳤어요.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젠 희망조차 꾸지 못하게 되었어요.
끝이에요. 끝. 내일 형을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하는데, 내일을 살아내야 하는데 서 있을 힘조차 사라진거에요.
‘내일'을 걱정하던 야곱이 이제는 ‘지금'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어요.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생존'하는 것 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었어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야곱은 그제서야 물 늘어져요. 다리에 힘은 들어가지 않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붙잡고 물고 늘어져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자기는 이제 끝났어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이 사람을 더 움켜쥔거에요. 물고 늘어지면서 이렇게 말해요.
“나에게 축복하지 않으면 절대 갈 수 없어. 아무데도 못 가! 절대 놔줄 수 없어!”
좀 쌩뚱 맞은 이야기 아니에요? 일반적이라면 갑자기 그에게 시비 튼 사람, 자신을 때려서 엉덩이 뼈를 아작낸 이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겠죠.
“나한테 왜 이러냐고!! 나 지금 안그래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너 뭔데 나한테 이러냐고!” 막 소리를 지르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인데, 그는 그 순간 “나를 축복하라!”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죠.
그의 이런 외침 이해할 수 없어요.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내일을 버티는 것' ‘내일 살아남는 것'이지 축복이 아니거든요.
(쉬고)
누군지도 모르는 이 사람에게 “축복을 달라"라고 외쳤던 것은요. 그가 싸움을 통해 이 사람이 나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자신보다 더 강한 존재가 이 사람이다. 그렇다면 난 이 사람에게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본능적 외침인 것이죠.
‘어쩌면 이 사람과 함께라면, 내일을 살아 낼 수 있겠다. 이 사람이 나와 함께 하면 형과의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순간 그의 머리 회전이 빨라졌던 것이죠. 원래 축복은 위에 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잖아요. 이 당시 표현으로는, 열등한 자가 우월한 자에게 구하는 것이 바로 축복이었어요.
지금 이 상황이 되어서도 머리를 굴리는거에요. 사실 축복은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처음 본 이 사람이 어떻게 야곱에게 ‘내일을 버틸 축복'을 줄 수 있겠어요. 어떻게 ‘에서와의 만남을 피할 수 있게’ 해주겠어요.
야곱은 끝까지 자신의 방식으로 축복을 얻어내 ‘내일을 보장' 받고 싶어 했어요. 29절을 보니까요. 야곱은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어요. 일단 축복부터 받고 나서 그에게 ”근데 당신 누굽니까?” 라고 물어요. 진짜 자신의 방식을 끝까지 유지하는 거에요.
(쉬고)
오로지 ‘내일을 살아내는 것'에만 몰두한 그에게 그 사람은 또 쌩뚱 맞은 질문을 해요.
“너 이름이 뭐야?”
저는 이 부분을 묵상할 때마다 어이가 없어요. 아니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던 사람들이잖아요. 서로 싸우다가 안 되니까 한명이 암묵적인 룰 힘 겨루기를 포기하고 후려 쳤단 말이에요.
처음부터 치고 박고 싸운게 아니라 힘겨루기만 했는데, 치사하게 힘이 들어가는 곳을 내려쳤단 말이에요. 얻어 맞은 사람은 느닷없이 ‘축복을 달라' 말하고 때린 사람은 ‘너 이름이 뭐야'라고 묻고.
(쉬고)
그런데 이 어이없어 보이는 상황이요. 평생을 남을 속이고 헛발질만 해오던 야곱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상황으로 전환이 되요. 야곱의 삶을 완전히 반전 시켜 버려요. ‘내일만 바라던 야곱’의 삶 ‘그 이상을 바라보는 소망을 갖는 시간'이 되어 버렸어요.
(쉬고)
축복을 바라고 있는 야곱에게 ‘너의 이름이 뭐야?’라고 묻는 이 질문의 의도. 무엇이었을까요?
야곱은 이 질문을 듣고 그 숨은 의도를 알아차려요. 아프고 정신 없는 그 상황에서요. 그의 머리가 차분해지기 시작하면서 그 질문의 의도대로 대답을 해요.
“너의 이름은?” 이라는 질문을 받은 그의 대답은 27절에 있어요.
“그 사람이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아멘.”
이름이 뭐냐 물었으니 당연히 ‘야곱'입니다. 라고 대답한 것 같죠?
아니에요. 그는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한게 아니에요.
이 말의 숨겨진 뜻
“저는 사기꾼이에요. 저는 아버지와 형을 속였고 평생 남을 속이며 살아왔어요. 저는 누군가 저보다 잘 나가면 질투했고, 그 사람을 어떻게든 끌어내리고 짓밟았어요. 저는 사기꾼이에요.”
“저는 죄인이에요.”
(쉬고)
야곱은 외면하고 싶엇던 그리고 묻어버리고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인생을 처음보는 그 사람. 자신을 때린 그 사람에게 고백했어요.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는 사기꾼입니다.”라는 고백이 나온거에요.
야곱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았어요. 삼촌에게 속아가면서 결혼도 했고 돈도 제대로 받지 못했어요. 나름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살았어요. 자신이 형과 아버지를 속였지만 그리고 결국 라반도 속이고 나왔지만 어쨌든 그는 나름 열심히 삶을 살아낸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은 절대 지워지지 않아요. 사람들은 그를 매일 사기꾼이라 불렀거든요.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야곱. 사기꾼 속이는 자라 부르는 것과 같았어요.
남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를 때마다 야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을거에요. 남들이 그렇게 불러도 자신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거에요.
그러니까 삼촌 라반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지나왔던 것이죠. 끝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정체성. “사기꾼”이라는 것을 지금 야곱은 그 사람에게,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고백하고 있는거에요.
(쉬고)
“저는 지금까지 제 삶을 제가 이끌어 왔습니다.
내 삶의 주인공은 오직 나였습니다.
지금까지 성공했던 나의 모든 삶은 내 욕심에서 시작됐습니다.
지금까지 나에게 하나님은 필요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지만 믿었지만 사실 없어도 괜찮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였습니다.
나는 나를 믿었고, 나의 능력만 의지했습니다.”
이 모든 내용이 담긴 한마디
“저는 야곱입니다.”
(쉬고)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과거에 받았던 은혜, 과거에 했던 내 믿음의 고백이 아닌, 지금 현재 이 순간에 고백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비밀. 누구에게도 오픈 할 수 없는 나만의 추악한 모습.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지금 바로 이 순간이 되어야 해요.
부끄러워도 나 자신을 마주하고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우리 삶은 비로소 앞으로 전진 할 수 있게 되어요.
(쉬고)
야곱은 그런 마음으로 ‘나는 사기꾼입니다.’라고 고백한거에요. 그리고 기적을 맛봤어요. 새로운 정체성과 신분을 받았어요.
이스라엘. 이 새로운 이름은
‘지금까지 너의 마음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나의 지도와 통치를 받아라. 너가 나를 수없이 배신했던 그 순간에도 나는 참고 감수했다. 너의 모든 투정을 받아왔다.”
(쉬고)
“나는 이 순간을 위해 기다렸다. 너의 그 고백을 듣기 위해 수많은 배신의 아픔을 참아가며 기다렸다. 이제 너는 나의 것이다. 이제 고백했으니 되었다. 너의 삶 내가 이끌어줄게’ 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죠..
(쉬고)
이 이름은 야곱을 변화시키는 어떤 보증과 같은 것은 아니었어요.
그가 이름을 받았다고 해서 그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뀐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여전히 그의 앞에는 형 에서가 서 있었거든요. 에서를 만나야 하는 현실은 그대로였어요.
(쉬고)
야곱은 그날 밤 변화되었어요. 뭐 바뀐 현실은 없는데요. 변화 되었어요. 당장 눈 앞에 큰 현실이 남아 있지만 변화되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예수님을 만났고 구원을 받았어요. 그래서 새로운 신분을 받았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현실이라는 벽 앞에 좌절해요.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내 환경은 그대로에요. 그리고 우리의 옛 습성도 그대로에요.
그날 밤 하나님을 만난 야곱도 우리도 여전한 끊어버리지 못한 옛 습성이 있어요. 그래서 여전히 현실을 바라보고 두려워해요.
(쉬고)
평생 남을 속이며 살던 야곱이 이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속으며 살기 시작해요. 자녀들이 치는 사기를 눈 감아줘요.
다시 되갚아주지 않아요. 속이지 않아요. 그냥 속아주고 받아주기 시작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곱이 착해졌다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그도 벗어 버리지 못한 옛습성이 . 여전히 교활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도 옛 습성이 남아 있어서 하나님보다 더 그 습성을 더 좋아하고 즐거워할 때가 분명 많아요. 하나님 앞에서 정말 교활해요. 여전히 간사하고 꾀가 많아요.
야곱도 우리도 분명히 변화되었는데요! 그 사실을 알겠는데요. 여전히 바뀌지 않는 모습이 너무 너무 많아요.
(쉬고)
그 때 여러분! 이것을 꼭 기억하세요. 야곱도, 저도, 여러분도 옛 습성과는 별개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요.
내 모습과는 별개로 내 상황과는 상관없이 이미 여러분의 내면. 중심은 성령님의 주도적인 일하심으로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어요.
여러분의 마음. 그 중심. 내면. 성령님이 거하시는 그 자리이미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거에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그 변화가 여러분에게 일어나고 있어요.
여전히 교활하고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나
머리로만 이해할 뿐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고 계심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나
(쉬고)
옛 습성을 유지하며 줄타기하는 것을 즐기는 것과 별개로 하나님은 이미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내면을, 영을, 삶을 주도적으로 바꾸어 가고 계셔요.
절대 저와 여러분을 그대로 두지 않으세요. 그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셔요.
혹시 오늘 여러번의 예배를 드리면서, 지금 저녁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된 것들이 있으신가요?
깨달은 것으로 만족하고 끝내버려서는 안돼요.
이미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이 변화시키고 계신다니까요.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기만 하면 된다는거에요.
야곱처럼, 너 이름이 뭐냐 물었을 때!
그 뜻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던 그 야곱처럼!
우리도 인식해야 해요. 힘 빼고 그 변화를 받아드려야 해요.
야곱이 힘을 빼지 않으니까, 계속해서 버티고 잔머리 굴리니까요. 하나님이 치셔서 힘을 빼셨어요.
힘이 빠지니까 보인거에요. 나는 사기꾼이고 죄인이구나. 이런 나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변화 시키려고 기다리고 계셨구나.
그게 보인거에요. 저도 여러분도 힘을 빼고 받아 드려야해요.
야곱은 약속의 땅 경계 앞 얍복에 서서 하나님을 만났어요. 이제 그는 남은 인생을 절름발이로 살아야 해요.
하지만 괜찮아요. 행복해요. 비록 절름발이고 지금까지 자신의 모든 고집과 삶의 방식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왔지만!
괜찮아요. 그의 마음에는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평안이 생겼거든요.
(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미 변화시키고 계셔요.
그것을 의식하며 살아가길 바래요.
“나는 야곱입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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