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람과 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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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민수기 22:28-31(구약 234쪽)
설교제목: 발람과 말의 힘.
Numbers 22:28–31 NKRV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발람’에 대한 얘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발람은 잘 아시는 것처럼 성경에 등장하는 한 인물입니다. 그에 대해서 좀더 소개를 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그의 이름인 발람은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의 직업과도 굉장히 잘 어울리는데요. 그의 직업은 오늘 우리식으로 말하면, 복술가 또는 무당입니다. 성경의 내용으로 보면, 그는 일종의 저주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주라는 것이 불행이나 재앙이 일어나도록 비는 것을 뜻하니, 발람의 이름 뜻인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라는 것이 썩 잘 어울려 보입니다.
한편 오늘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무당 또는 복술가인 발람은 그렇게 대단한 인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분명 현대 사회에서 점을 치는 사람들의 사회적 높은 지위에 있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고대로 가면, 사정이 달라지는데요. 발람이 전혀 다른 사회적 위치에 놓여져 있고 꽤 중요한 인물로 평가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발람과는 다르지만, 요셉을 생각해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로 출세를 한 것은 그가 이집트 왕의 꿈을 해석함에 있지 않았습니까?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국가의 중대사를 미리 대비할 수 있었기에 요셉이 총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발람을 비롯한 고대의 점술가가 미래를 예견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인물로 여겨졌으며 또 나라의 요직에 오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찌보면 이것은 오늘날 좀 다른 방식이지만, 분명히 국가의 중요한 요직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입니다. 그러니깐, 오늘날 대통령 옆에서 돕는 이들 곧 장관이나 이런 사람들이 하는 역할이라는 것이 미래를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예측하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것은 고대처럼 점을 치거나 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 과학적인 방법이나 학문적인 방법이 체계적으로 갖춰지진 않았으니까요. 그것을 대신해서 미래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을 고대의 왕들이 곁에 두었는데, 그 사람들 중에서 한 종류의 사람이 곧 점을 치는 종류의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고대 사회에서 대단한 점쟁이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를 수도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발람은 그 방면에서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고 보여지는데요. 그것은 왕이 사람을 보내어서 발람을 모셔오려고 하는 장면이 우리가 읽은 성경이야기 앞쪽에 나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이야기는 발람이 왕궁으로 향하는 장면입니다. 발람이 살았던 곳이 ‘브돌’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는 왕궁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인데요. 왕이 신하들을 보내서 발람을 모셔가는 것을 보면, 당시 그에 대한 평가가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런데 왜 그가 이렇게 모셔져서 왕궁에 불려가는 가 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가데스바네아의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하긴 했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이 약속한 땅의 동편을 점차 정복해 나가게 되는데요. 그러자 하나님이 약속한 땅의 동편 곧 요단강 동쪽의 나라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하게 돼요.
그래서 그 요단강 동편의 나라 중 하나인 모압의 왕인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진을 막고자 했어요. 그리고 그 막을 방법의 하나로 저주를 잘 한다는 저주전문가 발람을 모셔오기로 하죠. 그렇게 해서, 발람이 모압 왕 발락에게 가게 되는데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일이 생기게 돼요. 그것이 오늘 성경의 이야기인데요. 성경전체를 놓고 이것은 굉장히 드물고 특이한 일이었어요.
무엇이냐면, 발람이 타고 가던 나귀가 말을 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성경에서 동물이 사람에게 말을 거는 장면은 딱 두 군데만 나오고 있어요. 하나는 잘 아시는 창세기 3장에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말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성경이야기인 민수기 22장에 나귀가 발람에게 말을 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특이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발람의 진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인데요.
앞에서 발람이 모압 왕이 모셔갈 정도로 대단한 인물로 소개를 했잖아요. 그런데, 그가 사실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이 오늘 성경이야기를 통해서 밝혀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귀가 발람에게 말을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어요.
나귀는 하나님의 사자가 길을 막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대단한 점쟁이라고 하는 발람은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었죠. 이것은 사실 발람의 능력이 짐승인 나귀만도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가 겉으로는 혹은 당시 세상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사람이었고요. 영적인 눈을 뜨지도 못한 인물에 불과 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이러한 인물을 들어서 사용하세요. 저주를 하기 위해서 갔던 발람은 결국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한 마디의 저주도 하지 못하고,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축복만을 행하고 돌아오게 돼요.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몇 가지 깨닫는 것이 있어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꺽지 못한다는 거예요. 일찍이 가데스바네아의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할 것으로 보였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자 하셨으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결국 광야에서 헤메이는 신세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뜻은 거기에서 끝이 나지 않고요. 계속됩니다. 나중에 우리는 그 뜻이 결국은 이뤄지는 것을 보게 되지만요.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1세대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약속의 땅에 한 발짝 가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계셨죠. 그렇게 함으로써나 그들은 약속의 땅 동편 곧 요단강 동쪽을 정복할 수 있게 된 것이고요.
또 그 과정에서 오늘 성경이야기처럼,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려는 세력들을 수도 없이 만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전혀 흔들림 없이 지속되는 것을 보게 돼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려 했던 세력들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게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죠. 이렇게 하나님은 아주 오래 전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들 또 모세를 통해서 이어진 약속을 져버리지 않으시고 그 뜻을 끝까지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심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어요.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발람의 이야기 곧 민수기 22장에서 24장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깨닫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 말이 큰 힘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돼요. 앞서 얘기했지만, 발람은 저주 전문가라고 했잖아요. 우리는 그것을 별대수롭지 않게 그냥 기분 나쁜 정도로 치부해 버릴 수 있지만, 고대에서 또는 성경 속에서 그것은 결코 가볍게 여겨지지 않아요. 실제로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는 과정에서 복과 저주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요. 복에 대한 내용보다 저주에 대한 내용이 훨씬 더 길게 나오기도 해요. 그것은 저주에 대한 효력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실제로는 어땠을지 몰라도, 성경의 세계 속에서 저주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는 것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에요. 그것을 하나님이 금지하고 있기도 하고요. 결국 발람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것도 저주하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다시 말하면, 그것은 말이그만큼 중요한 것임을 생각하게 해줘요. 특별히 신앙생활에 관계되어서 말은 큰 힘을 지닐 수 있음을 생각해요. 또 이와 관련해서 민수기 14장 28절 하반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제가 읽어드릴게요.
민수기 14:28
2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은 가데스바네아의 사건이 있던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 향해서 말씀하셨어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니’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그 말씀대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게 돼요. 이것은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말이 우리의 길을 결정할 수 있음을 말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신앙인은 좋은 말 이쁜 말만 써야 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말은 우리의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는 말 또는 저주하는 말을 쏟아 놓는 것은 우리의 그러한 생각을 반영할 수 있죠. 달리 보자면, 우리의 말이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이기도 해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 안에 살아간다면, 우리의 말은 믿음과 소망으로 채워진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 누군가를 저주하기 보다는 축복하는 말로 우리의 말이 채워질 것입니다. 바라건데, 오늘 우리의 말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과 소망의 말들로 채워지고 서로가 서로를 축복하는 말들도 채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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