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변화를 이룹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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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후서 5:17(신약 291쪽)
설교제목: 좋은 변화를 이룹시다!
2 Corinthians 5:17 NKRV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 분들의 배려로 어제 무사히 휴가를 마쳤습니다. 제가 지금 마스크를 쓰고 있잖아요. 제가 휴가를 가기 전부터 피부에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일단 병원에서 진찰을 받기로는 면도를 하면서 상처부위에 세균이 감염되어 입술주변에 수포가 생기고 상처부위가 넓어졌다고 하는데요. 다행히도 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약이랑 연고가 잘 들어서 휴가 가기 전보다는 상태가 호전이 됐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았는데요. 그래서 휴가를 보내면서 계속해서 제가 집중한 것은 언제 이 피부가 회복될지 또 매일매일 얼마나 변화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로 인해서 휴가의 모든 일정은 저의 몸을 회복하는 것으로 조정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최근에 교제하는 분들과 저의 지인들과 가족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요.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고 밥을 편히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보니 그 모든 일정을 취소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참 슬픈 휴가일수도 있는데요.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가장 힘들 때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거나 자기를 아끼는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아픈 덕분에 저를 진정 아껴주는 사람이 누군지 보다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또 휴가를 보내면서, 변화라는 것에 집중해 볼 수 있었는데요. 당장에는 상한 피부가 온전하게 변화될 것에 관심을 기울였지만요.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변화를 이룬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휴가에 앞서 청년부 수련회가 있었는데요. 이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제 안에 깊이 고민했던 지점이기도 합니다. 나름 교회에서 사역자로 적잖은 시간을 보내왔는데, 현재에 속한 교회에서 또는 과거에 속한 교회에서 나는 또는 내가 사역한 곳에서 변화를 일으키거나 경험해왔는가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청년 정도의 신앙인이라면 이제는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과연 그러한 신앙인으로 우리가 거듭나고 변화되었는가 하는 것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더 나아가서 청년들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분들은 어떠십니까? 과거보다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되어가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쉽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분들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당장 저에게도 이 질문은 어렵게 느껴지는데요.
< 1. 변화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
변화를 생각하다보니까요. 저는 변화에는 두 가지가 있음을 봅니다. 쉽게 말해서 좋은 변화와 나쁜 변화가 그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발효와 부패는 서로 다른 것이지요. 흔히 홍어는 삭혀서 먹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발효이지요. 그러나 이것이 온도와 습도에 있어서 조금만 어긋나면 부패가 되는 것이지요. 둘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만, 어떤 것은 유익한 반면에 어떤 것은 무익하다 못해 해가 될 수 있는 위험한 변화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변화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닌듯합니다. 좋은 변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2. 살리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
그렇다면 신앙 안에서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일까요? 성경에는 하나님으로 인해 변화된 많은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경우로 모세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모세는 인생에 큰 두 번의 변화를 겪습니다. 첫 번째 변화는 그의 나이 40세 무렵에 있었던 사건이고 두 번째 변화는 그의 나이 80세 무렵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첫 번째 변화는 모세가 자신의 혈기로 이집트 사람을 죽게 한 것으로 비롯됩니다. 나름 그것에도 이해가 되는 측면은 있습니다. 동족인 히브리인이 학대받는 것에 분노해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일일로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라는 신분에서 내려와 광야를 유랑하는 유목민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아마 모세 스스로는 잘해보려 한 일이었지만, 그 결과는 비천해져버렸습니다.
반면 두 번째 변화는 하나님을 통한 모세의 변화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광야에서 유량하던 모세는 양치는 자가 되었는데, 어느 날 그는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그를 이집트로 보내십니다. 모세가 이를 몇 차례 거절하긴 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서 그는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단순화해서 보자면, 저는 모세에게 두 가지 변화가 이렇게 읽힙니다. 하나는 죽이는 변화였고, 다른 하나는 살리는 변화였다고 말입니다. 저는 좋은 변화라는 것은 살리는 변화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변화를 통해서 누군가를 살리고 생명을 더하는 결과를 가져다줘야지 나의 변화가 누군가를 죽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 것은 얼마나 비극입니까?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는 살리는 변화입니다. 물론 여기서 살린다는 것이 실제로 목숨을 살리는 그런 차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달리 말해보자면 살리는 것은 생명에 관계된 일입니다.
식물을 키워보면 알지만, 생명을 돌보는 일은 그 생명이 잘 자라도록 여러 가지를 살피는 일이 됩니다. 때로는 물이나 거름도 주고 때로는 잡초나 벌레도 잡고 하는 식으로 살피고 돌보는 일 말입니다. 이렇듯 생명이 꽃 피울 수 있도록 돕고 섬기는 일이 좋은 변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앙생활과 관련해 생각해 보자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잘 할 수 있도록 돕고 섬기는 일이 좋은 변화를 이루는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지 아마 우리 각자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껏 신앙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분들 속에서 나의 신앙생활을 성장시키는 분이 있었던가 하면, 나의 신앙생활을 퇴보시는 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스스로의 신앙생활도 살리는 변화와 더불어서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도 살리는 좋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 3. 변화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
디모데후서 4장 10절 상반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이 말은 데마라는 인물이 신앙을 버렸다는 얘기를 말합니다. 본래 데마는 사도 바울의 다른 동역자들과 마찬가지로 골로새서에서 빌레몬서에서 중요하게 이름이 거론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동역자가 변심하여 결국 신앙을 저버렸음을 이 짧은 구절 곧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에서 나타납니다.
이는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신앙생활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이 긴 거리를 가야하는 경주라고 말입니다. 지치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해 나아가야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고 중간에 포기하거나 지치면 완주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이나 그에 따른 변화는 일시적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긴 호흡으로 계속 행해야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우리가 같은 목적지 도달할때까지는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주어진 길을 온전히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왜 중도포기 할까요? 끝이 보이지 않고 나아진다는 희망이 꺾여서 일겁니다. 앞서 제가 피부에 병이 들어서 아직까지 고생이고 휴가내내 그것을 치료하고 있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사실은 아직도 입술주변이 화끈거릴 만큼 치료의 속도가 늦습니다. 중간이 너무 쓰라리고 아프니깐, 과연 이게 제대로 치료가 되고 있는 것인지, 대체 언제 치료가 될 수 있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의사의 지시에 따라서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고 하루하루를 보낼 수록 조금씩 좋아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내가 좋아지고 있구나 내가 이전보다 좀 덜아파졌구나 더 나아가서 내가 곧 낫겠구나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 계속 달리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마냥 머리 속으로 동의하는 믿음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변화를 경험해야하는 것입니다. 변화가 뭡니까? 달라지는 것입니다. 달라지지 않는데, 어떻게 믿고 어떻게 미래에 좋아질 것을 희망합니까? 변화가 더디올 수는 있습니다. 기대한것보다 작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를 경험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 변화를 지속하기 위해서 변화를 통함 달라짐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의 연장선으로 이것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종종 제가 얘기하는데,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곳이 천국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천국을 경험해야 죽어서도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실제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변화가 하나둘 모여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긴 신앙생활의 여정을 달려갈 수 있습니다. 지치지 않고 가기 위해서 오늘을 잘 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 4. 성령님이 변화시키십니다. >
저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은 성령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열심을 다해서 노력하면 구원에 이를 수 있나요? 앞서 말한 좋은 변화를 이룰 수 있나요? 부분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한계에 부딪칠 것이고 결국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함으로 나아갈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으로 생각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어디서 들었던 이야긴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이야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가난한 집안에서 자녀들이 유학을 가겠다고 하니까요. 어머니의 반응은 영어사전을 사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그 나머지를 준비하는 것이죠. 성령께 맡기는 것은 그 일이 일어질 줄 알고 믿고 그 다음 내가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변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그 변화가 이뤄질 줄을 믿고 오늘 우리에게 찾아온 변화에 따른 삶을 살아내는 것이 성령께서 변화시킨 삶을 살아내는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바라건데, 오늘 우리가 받은 줄로 알고 그 믿음 따라 좋은 변화를 이룩하며 살아갑시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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