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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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향단 위치 2. 세 가지 향의 의미와 목적 3. 기도의 자세 4.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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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번의 저녁 예배 때 나누었던 성막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들었던 말씀들을 잘 기억하고 삶으로 드러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정말 축복합니다.
삶의 자리. 가장 중요한 나의 중심에 성막을 세우고,
성막 안을 활짝 열고 가장 깊은 곳에 하나님을 모시는 우리가 되기를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메노라.
빛을 뿜어내시면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어두움과 죄, 오염된 부분들을 태워 깨끗하게 만들고 계심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해요.
뜨문 뜨문이긴 했지만 성막에 대해 기억하고 계실 것이라 믿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지난 3번의 성막설교를 통해 우리는 삶으로 드리는 예배. 예배의 자리는 온전한 기쁨만 남으며 그 안에는 하나님과 나 사이를 증거 하는 내용들이 써 내려가야 한다 나눴어요.
오늘은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나누려고 해요.
저와 여러분의 삶에 예배가 회복되었고, 우리가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면 빠뜨리지 말고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 있어요. 메노라. 하나님의 빛의 역사를 매일 누리고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있어요.
이것은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해주는 척도가 되는 역할을 해요.

신앙생활은 무엇일까?

신앙생활 잘 해라. 잘 해야죠. 이런 이야기들 우리 할 때가 있잖아요?
신앙생활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잘 하는 신앙생활인지 생각해 본적이 있나요?
신앙생활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야 제대로 시작할 수 있어요.
바른 신앙생활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을 넘어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필요해요.
다시 말해 삶에 성막을 세우고 하나님을 모시고 그 분이 비추는 빛 가운데 살아가는 것. 하나님이 내 삶에 실제적으로 역사하고 계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삶. 즉 매일의 삶 속에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이라는 것이죠.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언제 인격적인 교제를 했나요?라고 물어본다면 어쩌면 예전에 수련회 때 울면서 기도했던 것들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까마득한 옛날이라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거에요.
이 인격적인 교제는 뭐 엄청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인격적인 교제는 나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런 엄청난 사건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인격적 교제는 여러분 조금 전에도 했어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이 했어요.
나의 신앙생활의 척도가 되며,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이루어 나가도록 하는 중요한 것은요.
기도에요.
하나님과 대화. 어디에서 했던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했다면, 인격적인 교제를 알게 모르게 계속 해왔다는 것을 이야기해요.

분향단 - 나와 공동체의 연결고리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이 성막의 기구 분향단이 바로 그런 하나님과 나 그리고 나와 공동체가 소통하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요.
분향단의 위치는 성소 안과 밖을 나누는 휘장 정면에 놓여 있어요.
성소 안에는 우리가 나누었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 지성소가 있어요.
휘장 안은 특정인물만 들어갈 수 있지만, 분향대가 있는 휘장 밖은 그래도 좀 자유롭게 사람들이 오고 갈 수 있었어요.
아론이 성막으로 들어와서 아침 저녁으로 등잔대에 등불을 켰어요. 그리고 나면 분향단에 불. 향을 피우는데, 이 향은 그냥 뭐 단순히 연기 이런 것이 아니에요.
지금은 거의 없는 것 같는 것 같은데 저 어렸을 때 저희 동네에 방구차가 많이 돌아다녔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어떤 특정한 때가 되면요. 병충해 방지를 위해서 연막 소독기를 달고 다니면서 뒤로 하얀 연기를 뿌리던 차가 있었어요.
그게 나타나면 저랑 친구들이 그 차를 막 쫓아다녔어요.
방구차와 가까워질수록 하얀 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고 옆에 달리는 친구들도 보이지 않아요.
마치 연기 속에 들어가 사라진 것처럼 보여요.
분향단에서 피워 올리는 향들의 강도가 방구차처럼 강했어요.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잘 분간이 되지 않을 정의 강한 향과 연기들이 그 안을 가득 채웠어요.
왜 이렇게까지 연기를 그 안에 가득 채워야 했을까요?
창문도 없는 곳에 등잔대의 불빛을 의지하고 있는데 거기에 연기까지 가득 차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좀 신비한 분위기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이러한 신비주의적은 목적으로 향을 피운 것은 아니에요.
그들이 향을 피우고 그 안을 연기로 가득 채운 것은요. “살기 위해서 / 죽지 않기 위해서”에요.
레위기 16장 12-13절을 보면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요.
향기가 없으면 이들은 죽어요. 타오르는 연기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을 막아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연기와 향기는 보호막의 역할을 해요.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도 그랬어요. 구름과 연기로 그 산을 가득 채워 주셨어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실체를 마주하면 죄인인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에 성막 안을 연기로 향기로 가득 채워야만 했어요.
죽지 않기 위해 연기를 피운 것은 알겠는데, 왜 하필 그 곳에 연기를 피웠을까요?
이들은 분향단이 있는 그 공간에서 향을 피울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이 지금 서 있는 그 자리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하는 장소에요.
분향단 앞에는 휘장이 있는데, 이 것을 열고 들어가면 속죄소가 나와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를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아무나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래서 휘장 맞은편에 분향단을 둔 것이에요. 여기에는 그래도 조금 자유롭게 사람들이 올 수 있었거든요.
대제사장이라도 죄를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 앞에 나가서 죽게 되는 지성소였어요.
연기와 휘장은 하나님 앞에 나온 이들이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죽게되는 순간을 막아주는 그런 역할들을 했어요.
분향단이 있는 곳은 언제든지 하나님을 찾아 올 수 있는 자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리에요.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제대로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잖아요?
바로 속죄소 맞은 편 분향단 그 자리가, 이스라엘에게 있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교제할 수 있는 곳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와 이야기하고 싶으신 거에요
그 자리에 나와서 모든 것들을 시시콜콜 다 이야기해주시기를 원하고 계셔요.
기도는 흔히 ‘하나님과 대화이다'라고 이야기를 하죠.
여러분 하나님과 대화를 충분히 많이 하고 계신가요?
정말 하나님과 대화하고 계셔요?
혹시 대화보다는 일방적인 나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은 아니었나요?
우리가 ‘기도는 대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방적인 나의 대화로 하는 이유는 기도를 “무엇인가를 구하는 것”으로 우리가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기도는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죠. 복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것도 아니죠.
즉, 기도의 중심이 내 자신이 되어서는 안 돼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과 제대로 된 대화도 인격적인 교제도 이루어 나갈 수 없어요.

어그러진 기도의 방향

저도 그렇지만 우리의 기도를 잘 돌아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하며 마무리 하지만 사실 내 욕심과 주장, 교만과 자기 의 등으로 가득 찬 기도를 하는 비중이 더 높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기도는 무엇인가를 구하는 것으로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구하는 것으로 기도해왔다는 거에요.
우리만 이렇게 기도해왔을까요?
아니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광야에서 성막을 짓고 있는 이스라엘도 똑같았어요.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그들이 가장 원하던 것. 가장 열심히 기도했던 것이 무엇이었겠어요?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이었지 않을까요?
드디어 구원을 얻었어요! 자유를 얻어 광야로 나왔어요. 그럼 그 다음 그들이 원하던 기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빨리 안전하게 약속의 땅으로 가서 정착하고 사는 것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생각보다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것이 더뎌져요. 그럼 그들이 어떤 기도를 했겠어요?
기도 응답이 더뎌지면 더 매달리고 해결해달라고 하는 저와 여러분처럼 이스라엘도 빨리 가게 해달라고. 우리를 인도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갈 길 바쁜 이스라엘을 광야에 눌러 앉히시더니 성막과 그 안에 들어갈 모든 기물들을 지으라고 말씀하셨어요.
얼마나 속이 탔을까요. 지금 어린 아기들부터 노인들까지 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노출되어 있어요.
자신들은 광야에서 이렇게 살 것을 기대하지 않았어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딱 집도 얻고 땅도 갖고 편안하게 살고 싶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약속의 땅은커녕 지금 광야에서 성막을 짓고 있는 상황이에요.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성막과 기구를 짓도록 하면서 그리고 저와 여러분에게 기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셔요.
하나님은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소원을 들어줘! 라고 말하는 그런 신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힘들고 어려운 광야에서 기도하는 법을 알려주고 계셔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

기도는 나의 넋두리와 복을 비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말씀하세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를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반복했어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향을 매일 매일 만들어야 했어요.
출애굽기 30장 34-36절을 찾아서 같이 읽어볼까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가져다가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같은 분량으로 하고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니라.”
여기에 나오는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이 이들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할 때 필요한 것이에요.
그들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그 시간에 필요한 향이에요.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의 시간에도 꼭 필요한 향이에요.
물론 우리에게는 이런 향이 없지만 이 것들을 기억하며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이어 나갈 필요가 있어요.
세 가지는 그들이 있는 광야에서 절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어요.
소합향.
소합향나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에요.
나무에 뜨거운 태양의 빛이 계속해서 쏟아지면 나무에서 송진이 나오는데 향이 엄청 좋다고 해요.
소합향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어색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에 등장해요.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부었던 향유 옥합 있죠?
이 향유 옥합에 소합향이 상당수 포함되어있었어요.
피부를 보호하고 부드럽게 하는 효능까지 갖고 있어요.
예수님이 오셨던 시대에도 비쌌을만큼 이 향은 가치가 있었어요.
이스라엘은 이 소합향을 구해서 섞어서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했어요.
소합향의 의미는 겉모습만 갖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 말라. 구하기 쉽지 않은 소합향을 구해 하나님 앞에 나올만큼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향을 내는 송진을 만드는 나무처럼, 아름다운 향이 너에게 흘러 나와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원하는 것은 겉모습이 아닌 중심에서 자연스럽게 표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나감향
조개껍질 같은 것을 부술 때 나오는 향이에요.
이들은 지금 어디있죠? 사막에 있어요.
조개껍질 같은 것을 구하기 쉬웠을까요. 조개껍질을 깨뜨리고 부술 때 향이 나온다고 했잖아요?
이것의 의미는 부서지고 깨어져야 향이 나온다.
즉. 나의 고집과 자아, 생각 그리고 편견 등이 하나님 앞에서 깨어져야 한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위해 스스로 그것을 깨뜨려야 한다.
나 스스로 깨어지고 부서지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고 만날 수 없다.
나 스스로 깨어지고 부서지는 기도가 무엇일까요. 바로 회개에요.
하나님 앞에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과정 그것이 필요해요.
풍자향
나무의 뿌리에서 나오는 송지 같은 것에 배어있는 향이에요.
심겨진지 얼마 안 된 나무가 아닌 정말 그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서 있던 나무에게서 나요.
사막에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나무들이 많았을까요?
오랜 시간동안 모여진 송진이기에 엄청 기름지고 윤택하기도 하고, 향도 짙어요.
풍자향의 의미는 오래 기다리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응답이 지금 당장 오지 않는다 해도. 빨리 약속의 땅으로 가고 싶고 하나님의 기가 막힌 역사를 눈으로 보고 싶다 해도 기다리라.
지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빠른 응답이 아닌, 하나님과의 교제를 진득하게 이어 나가는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라를 이야기 해주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나아갈 때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첫째, 마음의 중심. 그 고백을 하나님께 하라. 당장 눈앞에 보이는 그 어떠한 현실을 해결 해 달라 혹은 거룩한 척 사람들 앞에 신앙생활 하지 말라.
하나님 앞에 나아 올 때는 하나님께서 일해주심을 기대하는 간절함으로 나아오라. 자연스러운 향기를 뿜어내라.
둘째, 그리고 그 간절함을 다시 깨뜨리고 부서뜨리라. 내 욕심, 경험, 자아, 편견 등으로 얼룩져 있는 나의 모습을 깨달으라. 하나님 앞에 이것들을 내세우지 말라.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목을 세우고 뻣대고 있는 너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것을 고백함으로 깨어지고 부서지라.
셋째, 좀 더 참으라. 인내하라.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신다.
하지만 절대 조급하게 응답하지 않으신다. 기도 응답은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기억하며 기도해야 해요.
이 것들을 적절하게 섞으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 중심에는 반드시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요.
조금 잔에 말씀드린 출애굽기 30장 34절을 보면 이 향품들을 가져다가 ‘유향’에 섞으라고 되어 있어요.
기도 할 때 가져야 하는 이 세 가지는 절대 따로 갈 수 없어요.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께 집중하며 기도할 수 있어요.
이 유향은 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이어나가며 얻게 되는 중심의 변화를 의미해요.
우리가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또 나의 태도가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이 세 가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왜 이 부분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우리가 아는 것만큼 그리고 내 마음과 다르게 기도할 수 없을까요.
기도 - 타락한 세상에 대한 반항
제가 예전에 PSP라는 선교 훈련을 받을 때 읽었던 칼럼이 있었는데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인상 깊었던 문장이 떠올랐어요.
”기도는 현상에 대한 반역이다.” 기도의 본질은 ‘타락한 세상에 대한 반항’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세상은 우리에게 늘 무엇인가를 강요하고 무엇인가에 쫓기도록 만들어요.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으로 받아드리라 해요. 여기에서 말하는 비정상적인 것들은 성경적 관점에서 벗어난 것들이에요.
하나님이 세우신 기준들과 절대 조화 될 수 없는 것들이에요. 우리가 즐겁게 보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가 이와 같아요.
기도는 이것을 거역하는 것과 같아요.
나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적 관점으로 맞지 않는 것들에 대해 거부한다.
나는 나의 마음을 세상 문화가 아닌 하나님께만 온전히 드리겠다.
나의 삶의 영역에 성막을 세우고 하나님을 모시고 그 빛의 역사를 기대한다! 를 선포하는 것이에요.
생각은 쉬운데, 실제로 이렇게 선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현실이 함정이에요. 왜냐하면 정말 무수히 많은 정보와 혼란스럽게 하는 소식들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쏟아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드리기도 해요.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관점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내 삶에 빛으로 일하고 계심을 인정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세상이 계속해서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 대한 반역. 하나님 편에 있겠다!”는 “선포”를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삶의 예배의 자리 그리고 이 자리에서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 앞에 내 스스로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싶어도 쉽게 할 수 없는 것이죠.
우리의 기도는 절대 단순하지 않아요.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세상에 NO라고 외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잊고 살도록 만드는 이 세상을 향해 “나는 하나님을 기억할거야”라고 외치는 것과 같아요.
하나님을 우습게 만드는 이 세상. 그 가치를 떨어뜨리고 응답하지 않는 신이라 말하는 세상을 향해 우리는 반역의 깃발을 들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며 세상과 맞서야 해요.
우리가 정말 아까 말한 세 가지를 기억하며, 내면의 중심에 직접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면 세상에 맞서 반역하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낼 수 있게 될거에요.
그리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회복했다면 해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있어요.
빠른 속도로 지워지고 있는 하나님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며, 세상에 그 분을 알리는 것까지 가야해요.
그래서 우리가 하는 기도는 단순하지 않아요.
(쉬고)
기도 쉽지 않지만 우리는 기도해야 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셨거든요.
어떤 상황에도 나를 기억하고 나에게 마음의 중심을 놓고 기도하는 그 사람의 기도는 내가 반드시 응답해주겠다는 약속을 하셨거든요.
하나님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분이잖아요. 언약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분이에요.
응답이 더디더라도, 내 기도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기도를 멈추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분향단의 위치가 속죄소의 맞은 편이라 했죠? 하나님은 그 곳에서 이스라엘이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세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휘장은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찢어져서 사라졌어요.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나의 생각과 감정이 담긴 기도. 혼잣말 같아 보이는 기도도 다 괜찮다. 그 중심에 나만 있으면 된다.
너와 나 사이를 가로 막는 휘장도 이제 없다. 나에게 나오라. 어디든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마음을 쏟으라. 바로 그 자리가 너와 내가 만날 자리이다.
어디에서 기도하던 장소와 시간은 전혀 상관없다.
기도하는 그 순간 그 곳이 속죄소. 자비의 자리가 될 것이다.
세상이 너를 흔들고 나.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온다 하더라도, 너의 인생이 내가 필요 없다 말해도 나는 그 자리에 있다.
지금 그 자리에서 나를 부르라.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세요. 그리고 그 것에 대한 보증으로 만들어진 향에 소금을 뿌리라 말씀하셨어요.
성경에서 소금은 언약을 의미해요. 절대 깨어질 수 없는 언약. 그 누구도 부술 수 없는 완벽한 언약을 이야기 할 때 소금을 치라고 하세요.
민수기 18장 19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하나님은 소금을 통해 절대 너와 나의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 그 약속은 변질되지 않는다.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소금을 치는 것은 언약의 약속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성결하게 하는 역할을 해요.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해요.
때론 나의 기도가 전달되지 않는 것 같은 고구마 오만개 먹은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을거에요.
아니 어쩌면 맨날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할 수도 있어요.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데 내 기도가 벽에 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먹먹할 때도 있을거에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 다 듣고 계셔요. 절대 무시하지 않으세요.
간구하는 자의 기도를 절대 외면하지 않으세요. 내가 원하는 그 때 딱 이루어지지 않을 뿐이지 나의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져요.
그것이 시간이 너무 흘러 내가 기억을 못하게 된다해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다 응답해주고 계셔요. 그것을 보증하는 것이 소금이에요.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소금와의 약속에 소금을 치며 변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셔요. 이것을 믿는다면, 가슴으로 받아드렸다면요.
이제 우리는 반드시 반응을 보여야 해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아요. 나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하나님께서 소금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기로 약속하셨어요.
그 약속을 믿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래요. 약속하신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바래요.
그리고 이 시간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함께 기도하기를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래요.
(쉬고)
광야와 같은 길을 걸으며, 어떤 걸음을 내딛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분향단이 하나의 지침이 되기를 기도해요.
소합향처럼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려 나에게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 향기를 뿜어내는 여러분 되기를
나감향처럼 하나님 앞에 나를 쳐서 깨뜨리고 부서짐을 통해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낼 수 있기를
풍자향처럼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매일 이어나가며 인내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거창하지 않더라도 삶의 작은 부분이라도 괜찮아요. 하나님과 매일 대화하며, 인격적인 교제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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